86. 그들은 왜 거기로 갔을까?
86. 그들은 왜 거기로 갔을까?
감찰부 요원들이 레겐스의 재산을 철저히 훑어 조사했다.
현금, 예금, 귀금속, 보석, 예술품, 투자 지분, 토지, 건물··· 그야말로 탈탈 털었다.
레겐스 가족은 옷만 입고 쫓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찰부 요원들이 철저히 검사한 작은 짐 - 간단한 먹을거리와 허름한 의복 - 보퉁이만 들고 초라하게 쫓겨났다.
열차를 타기 전 레겐스는 원독에 찬 얼굴로 본부 건물이 있는 쪽과 반달 호수 방향을 쳐다보며 외쳤다.
“가만 안 두겠다, 8군단! 반드시 갚아 줄 것이다, 루산!”
레이크 시티 북쪽 장벽 위에서 트리어가 실감 나게 그 표정과 억양을 따라했다.
그 자신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면서.
“어? 나는 또 왜 걸고넘어진대요? 내가 쫓아냈냐고? 원망하려면 단장님이나 원망할 것이지. 그 양반이야 무슨 욕을 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분이니까.”
루산이 툴툴거리자 트리어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함정을 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나 보지.”
“쯧!”
“어쨌든 본부 요원들 사기가 말이 아닌 모양이야. 잘했든 잘못했든 20년 넘게 변경에 몸 바친 전대장이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니 그보다 지위가 낮은 자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테지.”
“그야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일이고······, 몸 바치긴 무슨 몸을 바쳐요? 자기 위해서 일했지 변경 위해서 일했나? 누가 들으면 충신열사가 억울하게 쫓겨난 줄 알겠네.”
“너무 그러지 마라. 다 자기 위해서 일하지 그럼 변경 통치자나 단장에게 충성하려고 일하냐?”
“그 뜻이 아니잖아요. 적당히 해야지. 파일럿들 줄 세우고, 편 가르고, 찍어 누르고, 분배 비율로 장난치고··· 그러다 이 꼴이 난 건데 무슨! 어차피 변경 다른 구역으로 가서 다시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지원해 잘 먹고 잘 살겠죠, 뭐.”
“그건 그래. 뿌린 대로 거둔 것이지. 회계부 쪽에 들으니 6만 골드 정도 회수했다더라.”
“어휴! 많이도 모았네요. 그동안 얼마나 분배 비율로 장난질을 친 거야?”
8구역 최고의 실력, 놀라운 사냥 성과, 자신의 멕을 보유하여 군단 멕을 타는 파일럿과는 비교가 안 되는 분배 비율. 이로 인해 막대한 성과 보상금을 획득하는 루산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존재였다.
보통의 변경 파일럿은 아무리 전대장이라 해도 그 정도의 재산을 모을 수 없었다.
“그렇지?”
“그렇죠.”
“어쨌든 1전대 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네.”
이미 떠난 사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두고 보자! 갚아 주겠다!
루산에게 이런 말은 눈곱만큼의 의미도 없었다.
“1전대장은 누가 되나요? 내부에서는 안 될 테고.”
대형 사고를 친 1전대 파일럿들을 승진시키는 어려웠다.
“가우스가 될 거야.”
“가우스? 2전대의 가우스 말인가요?”
“응.”
루산은 아쉬웠다.
“가우스라는 사람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켐니츠가 낫지 않아요? 1전대 파일럿들이 다들 개차반이라 해도 완전히 휘어잡을 것 같은데?”
“자르는 켐니츠? 크크크!”
트리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긴 하겠네. 켐니츠가 전대장이 되면 벌벌 떨겠구먼. 그래도 생각해 봐.”
“······?”
“나, 너···, 이제 켐니츠까지 전대장이 되면 델타 기지 출신이 기동 전단을 장악하는 건데, 말이 안 나오겠어?”
“이 작은 8구역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능력 되니까 앉힌다는 건데?”
“그럼! 두 사람만 있어도 근무 편성 하나로 신경전이 벌어지고 뒷말이 나오는데, 당연히 신경을 써야지.”
“그래서 우리 단장님이 늘 인상을 쓰고 계시는 거구나!”
루산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 말도 맞아. 평생 이런 일들을 얼마나 겪어 오셨겠어? 그러니 변경 놈들 못 믿는다고 하시지. 어쨌든 가우스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실력 있고, 강단도 있고.”
“우리 전대장님이 그러시다면 그런 거겠죠.”
“비꼬는 거냐?”
“진심인데요?”
“됐다.”
삐진 척하던 트리어가 다시 진지하게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시간 내서 코부스 지역 레오파드 관련 업체들을 돌아봤더니, 다들 이미 배가 불렀더라고. 얼마 전에 투자를 잔뜩 받았나 봐. 누군지는 말을 안 해 주지만, 슬며시 옆구리를 찔러 보니까 노바에서 사업가들이 와서 지분 투자를 했다는 거야. 한두 업체도 아니고 코부스에 있는 거의 모든 업체에 엄청난 액수를 투자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신규 투자 못 했어요?”
“쬐끔, 아주 쬐끔 했다.”
트리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잖아도 바쁜 장벽 건설 현장에서 휴일을 쓰고 루산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간 것이 민망했던 것이다.
루산은 트리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최선을 다해 위로해 주었다.
“잘하셨어요. 그게 어디에요? 노바 사업가들 빠꼼이인 거야 유명하잖아요. 이미 레오파드라는 신규 멕 나이트가 획득 시험을 거쳤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걸요? 우리만 부자 되라고 놔두겠어요?”
“그렇겠지?”
“그럼요!”
“너는? 더 투자 안 할 거야? 보니까 이제 투자할 곳도 없겠던데? 시간 내서 한번 가 봐.”
“레이크 시티에 돈 들어갈 일이 많아서······.”
“아! 그것도 그렇구나. 이것도 잘만 되면 엄청나니까. 호른 영감처럼 말이야. 나중에 보름스 영감이라고 사람들이 뒤에서 흉보는 거 아니냐?”
“하하하! 보름스 영감!”
루산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일복 터진 녀석 같으니······. 또 목돈 생기면 나도 레이크 시티에 투자 좀 할까?”
“넣어 두세요. 윗사람이 투자자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이것저것 간섭하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날 뭘로 보고? 됐다!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간다!”
“네, 가세요!”
수다와 일 이야기를 충분히 마친 트리어가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장벽 위를 걸어 서쪽으로 이동했다.
장벽이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모든 구간이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깨치기로 손상되었던 기체들이 한 대씩 수리를 마치고 복귀하면서 장벽 북쪽을 담당하는 멕 나이트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루산의 요청으로 3전대 멕 나이트 파일럿 수도 늘어났다.
원래 변경 8군단은 1인 1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해가 진 뒤에는 사냥을 하지 않고, 파일럿 수가 늘어나면 인건비가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을 더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24시간 가동하는 장벽 생산 시설 건설로 기동 전대 운용 방식에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3전대만은 1멕 3인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루산은 생각했다.
늘어나는 인건비보다 사냥 수입 증가분이 훨씬 커질 것이므로 8군단 본부로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테스트 기체의 개량 작업을 모두 마치고, 시제기를 꾸준히 공급해 주면, 늘어난 파일럿들은 곧바로 새로운 자신의 멕을 탈 수 있게 된다.
기동 전력이 즉시 상승하는 것이다.
그러나 멕 나이트 한 대를 여러 명이 타는 방식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몸집과 감각의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탈 때마다 동화기를 조정해야 한다.
자신의 설정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은 에이스 파일럿들은 아예 서브 파일럿을 두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몸집과 감각 민감도가 비슷하지 않으면 매번 동화기를 자기 몸에 맞게 조절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고, 멕 나이트가 고장 났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전선이 아닌 변경에서는 무시무시한 괴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루산은 최소 1멕 2인의 전선 방식을 도입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1전대, 2전대가 모두 빠진 뒤에도 장벽 생산 시설을 여유롭게 감당할 수 있고, 멀리 원정 사냥을 떠나도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장벽 건설 현장 북쪽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상황이 아니지만, 점점 부담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루산은 좌우로 고개를 돌려 호숫가를 면밀히 살폈다.
당장 인스턴트 웨이브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았다.
루산이 확성기를 들었다.
- 바이크! 시에나! 오늘도 한 판 해야지?
오오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개척병, 정찰병, 멕 워커 파일럿, 멕 나이트 파일럿, 건설 인부들이 환호성을 올린 것이다.
탐탐-
탐탐-
쉬고 있던 탐탐들도 무슨 말인지 아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북소리를 냈다.
“상대가 너무 쉽지 않아요?”
시에나가 바이크를 도발하며 글라디아토르 2호에 올라탔다.
“오늘은 각오하라고!”
바이크가 씩씩거리며 글라디아토르 1호 조종실로 올라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루산이 검투 시합을 벌여 왔던 것이다.
정비부장 바르통의 실력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아무런 테스트도 없이 관광객들을 태울 수는 없었다.
신분이 높고 부유한 그들에게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장갑판 뜯기 검투 시합이 과연 재미가 있고 초보자들도 가능할지, 장갑판 고정 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이 검투용 멕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고민 중이었다.
그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이 날 때마다 루산은 시에나와 바이크를 붙였다.
늘 시에나가 이겼지만, 글라디아토르는 마나 진동 대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베거나 찌르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바이크가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통에 제법 박진감이 있었다.
“시에나! 바이크 따위, 혼쭐을 내 주라고!”
파펜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레보르크가 한심하게 바라보자 오히려 화를 냈다.
“왜? 뭐? 응원하는 것이 불법이야?”
“됐소.”
계속 지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물러나지 않고 잡초처럼 일어나 덤비는 바이크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엄마 젖 좀 더 먹고 와, 바이크! 그렇게라도 이기라고!”
“바이크! 이번에는 한 방 먹여!”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으면 덮쳐 버려! 물론 멕을 말이야!”
- 간다!
- 얼마든지!
장벽 건설 현장 북쪽에서 글라디아토르 1호와 2호가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푸하악-!
호수에 사는 거대 괴수도 이 대결이 보고 싶은지 긴 목을 높게 쳐들고 일어났다.
물이 뒤집히고 물방울이 공기 중에 퍼지자 아름다운 무지개가 피어났다.
***
작년에 수해를 크게 입은 남방군 군인들을 위해 제국군 모든 부대에서 모금해 마련한 수재 의연금.
자신의 집이 물에 잠긴 병사와 파일럿들에게 일정 금액씩 지급되었다.
병사보다 멕 나이트 파일럿에게 지급된 금액이 훨씬 더 많다는 이유로 오스카는 멕 나이트 파일럿들을 중점적으로 조사해 나갔다.
문서에 기록된 대상과 금액이 일치하는지 일일이 검토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해를 입었다는 주택을 방문해야 했다.
“이 일대가 작년에 홍수로 강이 범람하여 다 잠겼습니다.”
지역 주민과 관청 직원의 설명을 들은 뒤에도 대상 가정을 직접 방문해 질문하고 대답을 들었다.
“진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수재 의연금, 그거 한 사람당 얼마 되지도 않는 걸 말이야.”
“군무부 감찰국 일처리 방식이 저런가 보지.”
“하여간 속이 터진다, 터져.”
남방군 감찰실 요원들이 다 들리도록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오스카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처럼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수백 가구를 하나도 빼지 않고 돌았다.
당연히 그 사이에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간 사람도 있었고, 전역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도 들러서 질문을 했고 당사자가 없으면 가족들에게 물었다.
“부군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죠?”
“남편은 지금······.”
군 감찰관이라는 명칭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가족들은 아는 것 모르는 것 포함해서 다 털어놓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수재 의연금 부정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찰관님, 부정 수령을 발견했습니다!”
“음!”
다행히, 조사 과정에서 문서에 적힌 액수와 실제 수령증의 액수가 다른 사례를 발견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실무자의 착오이거나 작은 욕심이 불러온 작은 부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남방군 감찰실 요원들의 눈치가 보이는 와중에 이 무식한 조사를 강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오스카와 군무부 감찰국 조사관들은 작년에 수재 의연금을 수령한 남방군 파일럿들은 모두 조사했다.
그런 뒤 결론을 내리고 간략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몇 건의 착오 외에는 부정 지급, 부정 수령 사례를 발견할 수 없었음. 이번 수재 의연금 지급 사건을 조사하면서 남방군의 청렴함과 정확한 일처리에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음. 그동안 조사에 협조해 준 남방군 관계자와 불편을 끼친 조사 대상자들에게 감사와 사과를 드림.>
긴 조사 기간에 비해 무척 허무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군무부 감찰 국장과 남방군 고위 관계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 결론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재 의연금 부정 사건에 대한 조사는 끝이 났다.
공식적으로는.
노바로 돌아온 오스카는 휴일 오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노천카페에서 스텐커를 만나 차를 마시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전역한 남방군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확실히 특이한 이동을 하고 있더군요. 왜 거기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권한 밖이라서요.”
스텐커의 눈이 번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