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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87화 (87/450)

87. 애초에 우리와 규모가 달라요

87. 애초에 우리와 규모가 달라요

오스카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수재 의연금을 수령한 남방군 파일럿들 가운데 그때 이후 은퇴한 파일럿이 40여 명. 그중 10여 명은 특이 사항 없고, 10여 명은 확인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나머지 20여 명이 묘하게 행선지가 일치하더군요.”

스텐커는 오스카가 내민 봉투를 끌어당기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멕 나이트 파일럿이 은퇴 후 기사 아카데미 교수로 가거나 멕 나이트와 관련된 마법 연구소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많은 파일럿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죠. 무기 회사에 특채되거나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려 21명이 그런 경우가 아니면서 행선지가 일치하는 겁니다.”

“절반이나?”

“네. 비율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죠.”

스텐커는 오스카의 말을 끊지 않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17명은 변경 7구역으로, 4명은 노바에 있는 모 회사로 갔어요. 그런데 군에서 복무한 멕 나이트 파일럿이 돈벌이를 위해 변경으로 가는 경우는, 사고를 치고 쫓겨나거나 도망친 경우 외에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오스카는 그 자신이 전선 파일럿 출신으로 순환 근무 때문에 군무부 감찰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히 말할 수 있었다.

필센 제국군의 멕 나이트 파일럿은, 변경만큼은 아닐지언정 급여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귀족 출신인 경우에는 집안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군에서 복무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가치와 자부심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사정이 있어서 갑자기 가세가 기울었다든가 은퇴 후 재산을 말아먹어 변경으로 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렇게 한꺼번에 같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흐음!”

“이 회사로 네 명이나 간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멕 나이트 파일럿이라면 멕 나이트를 제조하는 마법 연구소나 관련 업체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멕 나이트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더군요. 건축 자재 생산 공장으로 왜 갈까요? 멕 워커 파일럿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멕 나이트 파일럿은 전혀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건축 자재 생산 공장이라니, 확실히 이상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또 있습니다. 행선지가 이상한 은퇴 파일럿들의 나이와 출신이 정상적이지 않아요. 멕 나이트 파일럿 은퇴 연령보다 5년에서 10년은 더 젊고, 제법 이름 있는 귀족 가문 출신들이 많습니다.”

“······!”

“앞에서 비율 문제를 나중에 얘기한다고 했지요?”

“네.”

“소재가 불분명한 1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은퇴 연령이 평균보다 낮아요. 그들 역시 이상한 행선지로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절반 이상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조사한 수재 의연금 수령 파일럿은 남방군 전체 파일럿의 5분의 1 정도입니다. 만약 조사하지 않은 파일럿들도 비슷한 비율이라면······?”

스텐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00명 이상? 125명까지!”

“그렇죠.”

“그리고 이렇게 은퇴자들이 이상한 선택을 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5년이라면 5백 명, 10년이라면 1,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파일럿을 이상한 곳으로 빼돌리고 있는 겁니다.”

“······!”

스텐커는 소름이 돋았다.

오스카 역시 처음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베론 지방에서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수를 대체 왜 변경으로 빼돌렸느냐?

나름의 결론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변경은, 모두의 관심 밖에 있는 땅이고, 군대를 제외하고 합법적으로 멕 나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아!”

필센 제국은 사회 개혁 이후 영주들의 권한이 축소되고 군제가 개편되면서 귀족이라 해도 사사로이 멕 나이트를 보유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스텐커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뒷말을 꾹 삼켰다.

그럼에도 오스카는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

오스카가 목소리를 낮추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과연 변경 7구역뿐인지, 다른 구역도 관련이 있는지, 변경 통치자는 황족인데 알고 가담한 것인지 모르고 있는지, 노바에 있는 건축 자재 회사는 뭘 하는 곳인지, 그리고 정말 오베론 공작이 꾸민 일인지······.”

오스카는 이 마지막 의문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오베론 공작은,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조차 군인으로서 존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반 황제의 든든한 벗이자 개혁의 지지자이고 전선에서 필센 제국의 선봉에 섰던 영웅이, 과연 반란을 계획하고 있을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라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개혁 수호파들이 복고파를 공격할 때 흔히 가정하는 상황이 아닌가?

언젠가 반란을 일으켜 과거로 되돌리려 할 것이다!

오베론 공작이 그런 이야기를 모르지 않을 텐데,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일까?

“중요한 것은 이 사안이 무척 심각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어요. 그럼에도 누구에게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어느 쪽과 연결돼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죠.”

스텐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도 군단이나 근위대에 말해 보면······?”

“수도 군단과 근위대가 황제 폐하와 제국에 충성한다고는 하지만, 저쪽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법은 없죠. 그리고 괜히 들쑤셨다가 정말로 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오스카는 잠깐 고민했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지.

그러나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다시 대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제국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겁니다.”

“······!”

대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보름스 자작 가문 사기 사건 조사 의뢰를 받아 여기까지 도달한 스텐커는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들로 인해 뇌에 과부하가 걸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오스카 역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큰 사건에 대한 중압감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오스카와 스텐커는 말없이 차를 계속 마시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했다.

“저는 그 건축 자재 회사를 조사해 보겠습니다. 빈켈 경은 정부 내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변경 쪽은 놔둬도 되겠습니까?”

“그 역시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연락하시죠.”

“그러죠. 조심하시길······.”

오스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텐커는 차를 한 잔 더 시키고 오스카가 건네준 봉투를 열어 찬찬히 살펴보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 연인, 가족들과 함께 휴일 오후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텐커는 그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틈도 없이 이 심각한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나갔다.

그런 뒤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사정이 이러하니 기사님께서 변경 쪽의 일을 알아보실 수 있는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니까요.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루산은 스텐커의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정독했다.

그런 뒤 답장을 쓰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때 클라크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니?”

스텐커의 편지를 읽은 직후라 루산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클라크가 차마 말을 못 하고 쭈뼛거렸다.

그러자 루산이 인상을 쓰며 훈계했다.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고,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클라크가 용기를 냈다.

“할 이야기가 있어도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서요. 기사님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 같으니 나중에 하겠습니다.”

루산이 피식 웃었다.

“네 말이 맞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 난 괜찮으니까 말하렴. 그게 내 시간을 아껴 주는 거야.”

클라크가 입술을 깨물었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용건을 꺼냈다.

“기사님, 학교에서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기사님이 일을 나가셨을 때 잠깐 나가서 가르쳐도 될까요?”

“응?”

“물론 제가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대학 근처에도 못 가 봤지만, 저학년 아이들에게 글은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어보니까 선생님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요. 정식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까지만 해 보고 싶어요. 물론 집안일이나 기사님께서 지시하신 일들은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클라크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루산이 검지로 뺨을 긁적이다 말했다.

“그러렴.”

잔뜩 긴장했던 클라크는 기쁨으로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그래, 이 녀석아. 에밀리가 돌아가기 전에 집으로 와. 그리고 약속한 대로 아침저녁 수련하는 일 거르지 말고, 공부할 책도 빠뜨리지 말고 읽어.”

“네! 감사합니다.”

루산은 흐뭇한 얼굴로 클라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스텐커의 편지를 보고 다시 심각해졌다.

루산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변경 쪽은 내가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노바에서도 변경 감사 권한이 있는 인물과 접촉할 수 있는지 찾아보세요.>

루산은 고민하다 덧붙였다.

<나라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도 잘 알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 조사의 목적은 우리 가문을 망가뜨린 놈들이 누구인지, 진짜 배후를 찾는 겁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목적은 나라의 위기라는 거대한 사태 앞에 묻히고 말 테니까요.>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루산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가문이 무너져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누나, 자신은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나라의 위기를 걱정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나라가 해 준 것이 없는데, 무엇을 걱정한단 말인가?

사실, 오랫동안 받아온 기사 교육으로 인해 가슴 속에서 충성심과 애국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려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한 말이었다.

스텐커에게 부칠 편지를 품에 넣은 루산은 탐탐을 타고 본부로 갔다.

본부 우편국에 가서 직접 편지를 부치고, 통치자 율리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

“바쁜 우리 부장님 겸 3전대장님이 무슨 일이세요?”

율리안이 호칭으로 농담을 하며 루산을 반갑게 맞이했다.

“본부에 볼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앉으세요.”

율리안이 냉각기에서 직접 시원한 과즙 음료를 꺼내 와 루산에게 건넸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루산은 율리안이 마음에 들었다.

황족이면서도 이토록 수더분하고 격의 없을 수가 없었다.

“워낙 바쁘시니까 먼저 용건부터 듣기로 하죠.”

배려까지!

루산이, 수많은 계산을 거친 것과는 별개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레이크 시티 북쪽 장벽 건설이 거의 끝나 가고, 관광객을 위한 옵션 상품을 추가했으니 한번 오셔서 시찰해 보시고 경험해 보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가프 마법 연구소의 장벽 생산 시설이 벌써 완공됐습니까?”

“아닙니다. 생산 시설 공사는 계속 진행 중이고, 장벽이 일단 마무리가 돼 간다는 말씀입니다.”

워낙 멕 워커를 많이 동원해서 하루가 다르게 장벽이 올라갔다.

“음! 그럼 1전대, 2전대 병력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된다는 이야기죠?”

“그렇습니다.”

“반가운 이야기로군요.”

율리안이 싱긋 웃었다.

“옵션 상품은 뭡니까?”

“멕 나이트를 타는 것은 모두가 동경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만들어 봤습니다. 멕 스켈레톤이라고 뼈대만 살린 검투용 멕 나이트를 만든 거죠. 마나 진동 기능이 없는 대검을 들고 관광객들이 검투 시합을 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이건 변경 투어 요금에 포함 안 되는 겁니다. 한 번 시합할 때마다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는 거죠.”

“오! 새로운 수익 사업?”

“그렇죠. 멕 나이트 파일럿이 아님에도 기분을 내 보게 하고 높은 요금을 받는 겁니다.”

“하하하! 역시 우리 신사업부 부장님이야!”

“게다가 주민들도 구경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관광객들로서도 자기들이 시합하는 데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신이 나지 않겠습니까? 개척민들도 심심한 이 땅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며 스트레스 풀 거리가 생기니 좋고요. 누구보다 아이들이 좋아할 겁니다.”

“음! 좋은 생각입니다.”

돈벌이뿐 아니라 개척민들의 즐거움을 위한 사업도 된다는 점이 율리안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율리안은 변경 주민들의 삶을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었다.

변경 군단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루산만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수기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 발행도 그렇고, 멕 검투 시합 관람도 그렇고.

돈이 되는 것이 아님에도 주민들의 즐거움과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루산이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어디 보자, 내 스케줄이······.”

율리안이 자신의 일정을 확인하고 곧바로 날짜를 잡았다.

용건이 끝났음에도 루산은 일어나지 않고 장벽 생산 시설을 이용한 괴수 사냥과 부산물 수입 이야기, 레이크 시티 개척 경쟁 이야기, 탁아 시설과 학교 - 이 이야기에서 율리안이 다시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건설 이야기, 레오파드 획득 시험 때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율리안은 루산의 이야기를 듣고 간간히 묻기도 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루산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 8구역이 반달 호수 지역 개척을 시작한 뒤로 규모 면에서나 생산력 면에서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다른 구역에 비해서 말입니다. 특히 7구역과 비교할 때 어떻습니까?”

8구역은 7구역에서 떨어져 나왔다.

분리될 때 병력과 자원의 배분을 두고 갈등이 상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율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7구역에 비하면 멀었죠.”

“그런가요? 그래도 장벽 생산 시설이 가동되면서 부산물 수입이 몇 배나 늘어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전히 차이가 많다는 말씀입니까?”

“그럼요. 애초에 우리와 규모가 달라요. 보름스 부장님은 7구역에 안 가 보셨나요?”

“네, 열차 타고 지나가기만 했지 내린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나랑 한번 같이 가시죠.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그게 어디 있더라?”

율리안은 자신의 책상과 책장을 쓱 훑어 기어이 두툼한 책을 한 권 찾아 들고 왔다.

각 구역 간 경쟁을 촉진하여 변경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국 변경부에서 발간해 각 구역 최고위층에게만 주는 변경 백서였다.

‘저런 게 있었구나!’

루산은 통치자의 친절함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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