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이 땅에서 뭐 하니?
88. 이 땅에서 뭐 하니?
“7구역 주요 현황을 일단 볼까요?”
율리안이 금년에 발간된 변경 백서를 펼치며 말했다.
“주민 수가 19만, 멕 나이트 375대, 작년 유입 인구 2만 7천 정도······, 대략 느낌이 오나요?”
루산은 정말 많이 놀랐다.
7구역이 필센 제국의 변경 8개 구역 중에 두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다는 것은 언젠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많이 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관심 갖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요. 서로 교류하는 것도 아니고.”
“···네.”
“차이는 어쩔 수 없어요, 역사가 다른데. 우리는 겨우 30년, 저쪽은 200년 가까이 됐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8구역의 역사가 가장 짧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8구역이 가장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변경 구역 안에서도 전진 기지가 가장 먼저 들어가 그 일대를 개척하고 안전을 확보해 놓으면 더 깊숙이 새로운 전진 기지를 건설하고 기존 개척지는 본부가 다스리는 것처럼, 변경 각 구역도 변경으로 분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정화가 되면 제국 내 일반 영토로 편입되기 때문에 변경 구역이 무한정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1구역부터 4구역까지는 이미 넓은 땅이 제국 일반 영토로 편입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변경 구역은 아직까지 일반 영토로 편입된 적이 없는 5구역과 7구역이 가장 크고, 4구역과 8구역이 가장 작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산맥에 가로막혀 원시의 땅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어려운 4구역보다는 개척된 지 얼마 안 됐지만 확장 가능성이 높은 8구역이 좀 더 크다고 했다.
“우리 8구역은 보름스 부장님 덕분에 아라드 왕국 피란민을 많이 받아 규모가 갑자기 크게 늘었어요.”
레인보우 시티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7구역 수용 인구에는 못 미치죠. 거기는 평소대로만 해도 우리보다 더 많은 피란민을 받았으니까요.”
아라드 왕국 피란민이 가장 많이 이주한 곳 역시 변경 7구역이었다.
무엇보다 멕 나이트가 무려 375대.
이 수치만으로도 7구역의 힘이 느껴졌다.
8구역은 3전대 - 가프 마법 연구소가 제공한 레오파드 시험 기체로 운용하는 부대 - 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겨우 50대 남짓이었다.
어쨌든 루산은 변경 백서를 볼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혹시 변경 백서가 더 있나요?”
“이건 각 구역에 두 권씩 나와요. 통치자와 단장에게 돌아가죠. 이거 보고 분발해서 더 열심히 하라고. 나름 권한 외 비밀로 분류된 거라 빌려주는 건 곤란해요.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하하하!”
“그게 아니라 어느 정도 주기로 나오는 건가요?”
“매년 나옵니다. 작년 현황을 정리해 금년 여름쯤에 나오는 형식이에요. 근데 왜요?”
“이런 게 있는 줄 몰랐거든요. 각 구역 현황이 매년 정리돼 나온다면 다른 구역들이 매년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그걸 보고 우리도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게 바로 정부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겁니다. 백서를 발간하는 이유죠. 그리고 회의 때마다 단장님이 간부들을 다그치시죠? 다 여기에 근거해서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늘 현장에 있어서 그런 회의에 참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궁금하네요.”
루산이 눈을 빛내자 율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바쁘지 않아요?”
“이제 제가 없어도 돌아갈 정도는 되니까 여기에 왔지요.”
루산이 너스레를 떨자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름스 부장님은 제국 정부의 농간에 넘어가신 겁니다. 코가 꿰인 거죠. 나야 좋습니다, 뭐. 내가 할 고민을 대신해 주시는 거니까.”
율리안이 백서가 꽂혀 있는 책장으로 루산을 이끌었다.
그러고는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보라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다른 문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루산은 먼저 변경 모든 구역의 최근 15년 간 멕 나이트 수의 변화를 정확히 기록해 나갔다.
최근 10년 동안의 변화가 가장 궁금했지만, 그 전에도 이상한 징후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통치자께서 나를 좋게 보신다 해도 아무 때나 드나들며 책장을 뒤적일 수는 없어.’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인구 변화, 괴수 부산물 수입 추이, 세금 수입 변화 추이까지 정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막연히 알고 있던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변경과 정부의 관계.
제국 정부에서 제국의 앞날을 위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변경에 지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분명 그런 측면은 있었다.
개척 초기에는 확실히 비용이 많이 들고 수입은 없으니 결국 정부 지원이나 빚으로 버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크고 오래된 변경 구역의 수입 구조와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 액수를 보니 정부가 변경을 지원해 주는 구조가 아니라 변경이 정부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변경은 제국 정부의 짐이 아니야. 오히려 정부의 든든한 돈줄이었어!’
그리고 괴수 부산물 수입은 상상 이상이었다.
주민의 수가 가장 많은 5구역과 7구역도 주민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 수입이 괴수 부산물 수입 - 비용을 제외하고 구역 본부로 들어오는 순수익 - 을 넘어서지 못했다.
‘멕 나이트를 늘리면 늘릴수록 이익이다! 유능한 멕 나이트 파일럿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
남방군 파일럿들이 대거 7구역으로 들어갔을 때, 7구역 통치자가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겼다 해도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고 공모했다면 당연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7구역과 8구역을 대상으로 괴수 부산물을 들여와 가공해 많은 수입을 올리는 가프 마법 연구소.
왜 하필 8구역으로 와서 세르펜스 사냥을 의뢰하고 레오파드 테스트를 진행했는지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7구역은 워낙 규모가 커서 8구역보다 훨씬 많은 마법 연구소들이 활동했다.
비밀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7구역 본부는 괴수 부산물 생산 규모가 워낙 커서 아쉬운 쪽은 오히려 마법 연구소들이었다.
섣불리 부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8구역에 부탁을 한 것이구나!’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를 원망하거나 타박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니까.
그리고 그 덕에 자신과 8구역은 많은 것을 얻었으니까.
어쨌든 8구역도 가프 마법 연구소뿐 아니라 여러 마법 연구소들과 괴수 부산물을 거래하지만, 가프 마법 연구소와의 관계가 점점 긴밀해지고 있었다.
더 많은 괴수 부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가프 마법 연구소로서도 바람직한 일이었다.
‘가프 측에 더 요구해도 되겠어.’
루산은 지난 정보들과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남방군 파일럿 이동 사건에 대한 조사뿐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더 이익을 볼 궁리를 해 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몰두해 있었다.
“부장님, 오늘만 날이 아니니 이제 퇴근할까요? 오늘 저녁은 내가 대접하겠습니다.”
루산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창밖으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아무리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탐탐을 타고 레이크 시티까지 가기는 부담스러웠다.
레인보우 시티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미 많은 폐를 끼친 것 같은데, 더 큰 부담을 안겨드릴 수는 없습니다.”
“폐도 아니고 부담도 아니에요. 가죠. 퇴근하면 할 일도 없는데,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세요.”
아직 궁금한 게 남아 있기는 했다.
백서로는 알 수 없는 것들.
그래서 루산은 뒷말이 나올 것을 무릅쓰고 율리안과 함께 퇴근했다.
그의 호위 기사가 살짝 목례를 하고 대화를 듣지 않기 위해 뒤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본부의 직원들이 율리안을 보고 인사를 하고 루산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루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100퍼센트 소문이 나겠구나.’
그러나 율리안은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에게 미소로 답례하며 루산과 함께 걸으면서 백서에서 쓸 만한 내용을 건졌는지 물어 왔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욱여넣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 방은 보름스 부장님께 언제나 열려 있으니 더 알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 때나 오세요.”
물론 아무 때나 갈 수는 없겠지만, 루산은 그러마고 했다.
루산은 율리안의 마차를 함께 타고 라돔 시에서 그나마 고급 주택가에 있는 율리안의 저택으로 갔다.
통치자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궁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작고 소박했다.
이것이 궁전이라면 노바에 있던 과거 보름스 가문의 저택은 초호화 거대 궁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긴 우리 집은 노바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 있었으니까.’
루산은 궁전이라는 말에서 과거의 쓰디쓴 기억을 연상해 내고는 얼른 털어버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정원을 가꾸는 손길이 야무져 변경의 가을꽃들이 등불에 비쳐 소담스럽고 정겨운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원이 예쁩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내 아내에게 꼭 그 이야기를 해 주세요. 무척 좋아할 겁니다.”
루산은 미소를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 잊지 않고 통치자의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통치자의 부인이 정말 기뻐했다.
노바 대학 시절 만난 인연으로 코가 꿰어 변경까지 끌려왔다는 통치자의 부인은 비슷한 또래의 손님이 온 경우가 처음이라 루산을 보고 무척 즐거워했다.
“보름스 부장님도 결혼하셔야죠.”
루산은 멋쩍은 미소로 넘어가려 했다.
“생각이 많으시겠지. 그래도 격에 맞는 사람을 맞으려면 노바 여인들 중에서 골라야 할 텐데, 누가 변경까지 오려 하겠어요?”
율리안이 루산의 편을 들어준다고 자신의 부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부인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당신은 나만 믿고 오라고 큰소리 땅땅 쳐 놓고 왜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라고 못 해요?”
그러고는 루산을 보고 말했다.
“남자는 자신감이에요, 부장님. 혹시나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다면 큰소리치세요. 빌빌대는 것보다 자신감 넘치는 남자가 멋져 보이는 법이니까요.”
루산은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억지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이한테 들으니 부장님이 변경을 사람 사는 곳처럼 만들어 주신다면서요?”
“그, 그건······!”
루산과 율리안 모두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나 부인은 개의치 않았다.
“노바 못지않은 곳으로 만들어 버리세요. 그럼 되잖아요.”
“부인, 그건 지나치게 과장된 거다.”
“뭐 어때요? 남자는 그런 자신감이 필요하다니까. 안 그랬으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어요?”
율리안의 얼굴이 다시 또 빨개졌다.
루산은 황족답지 않게 쾌활하고 수더분한, 젊은 통치자 부부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덴과 줄리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 있게 말하면 변경까지 와서 살겠다고 할까?’
그러나 그리 진지하고 깊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어려운 자리였고,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루산은 통치자와 그 부인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사 후에 질문할 거리를 정리해 나갔다.
***
봐렌 철골.
남방군 파일럿들의 일부가 은퇴 후 들어간다는 건축 자재 생산 회사의 이름이었다.
스텐커는 그곳을 조사하기로 마음먹고 조수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갔다.
“이유를 추측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아.”
“그렇죠. 사기 실행 그룹에도 몸 쓰는 녀석들이 필요할 테니까요. 전에 잡았던, 파워 아머를 착용한 기사처럼.”
“맞아. 거점을 지키고, 요인을 호위하고, 또 필요하면 암살도 하고···, 뭐 그런 일을 하려는 것이겠지.”
지금까지 스텐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폭력을 사용해 사기 피해자들을 겁박한 경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기에 이용되지는 않아도 지난번처럼 거점을 지키는 데 동원될 수는 있는 것이다.
마차는 도심을 벗어나 노바 남쪽으로 이동했다.
노바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고층 건물과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 사라지고 한가로운 전원 풍경이 나타났다.
그런데 왠지 이상했다.
“어째 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조수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저만 느낀 게 아니죠?”
스텐커는 왠지 털이 쭈뼛 섰다.
그는 얼른 주소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조수는 계속해서 목적지로 마차를 몰았다.
주위의 풍경이 확실히 눈에 익었다.
“이거······.”
스텐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보름스 가문 장원 아니야?”
“맞아요!”
조수가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소리쳤다.
루산의 의뢰를 받고 주변인들을 조사하면서 자주 들렀던 땅이라 눈에 익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뢰 초기 이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느라 이곳에 들를 일이 없어 잊고 있었다.
“이거, 이거,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데?”
“계속 갈까요?”
“일단 가 봐.”
전에 조사할 때 보름스 가문의 장원은 무척 넓어 다 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을 찾아다녔지 땅을 보러 다닌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알려준 주소는, 보름스 가문의 장원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해서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뿐 아니라 들어가는 입구가 차단기로 막혀 있고 경비원들이 서 있었다.
“탐정님?”
조수가 앞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계속 나아갈 것인지를 물었다.
“음!”
스텐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차가 차단기 앞에 다다르자 경비원이 사나운 개를 끌고 와서 개보다 사나운 눈초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조수가 우물쭈물하자 스텐커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의 노련한 감각이 건축 자재 회사가 맞느냐고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여기가 뮐러 남작이 계신 곳 맞소?”
“아닙니다.”
“거 봐라! 아니라 하지 않느냐! 어째 길을 잘못 든 것 같더라니. 너는 어째서 길눈도 어두우면서 마부로 들어와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느냐?”
스텐커의 호통에 죄수가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쯧쯧쯧!”
스텐커가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차다가 경비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 주위에 뮐러 남작의 저택이 있소?”
“잘 모르겠습니다.”
경비원이 차갑게, 그러나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그럼 여기는 어디요?”
경비원이 잠시 고민했다.
스텐커는 대응 매뉴얼 중 하나를 선택하느라 잠깐 시간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군 시설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니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그렇소?”
스텐커는 곤란하다는 표정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경비원에게 작별을 고했다.
“알았소. 그런 거라면 여기까지 오는 길에 표지판을 큼지막하게 좀 세워 두지. 그러면 이 고생을 안 했을 것 아니오? 날도 저무는데, 원······. 여하튼, 귀찮게 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이 녀석! 얼른 마차를 돌려라!”
“네, 어르신!”
조수가 서둘러 마차를 돌려 오던 길로 돌아갔다.
경비원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마차를 주시하다가 마차가 고개를 넘어간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차 뒤창으로 그 모습을 본 스텐커가 말했다.
“집에다는 건축 자재 생산 공장에 취직했다고 말했다는데, 군 시설이라고?”
“크크크, 건축 자재 공장이라고 하면 탐정님이 물건 사러 왔다고 할까 봐 그랬나 보죠.”
“그래, 그렇게 말할 뻔했지.”
두 명의 경비원이 곁에 두고 있던 검과 석궁은 장난감이 아니었다.
얼른 둘러대지 않았다면 횡액을 만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어쩌죠?”
“또 고민해 봐야지.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 한 번에 되는 게 있었나?”
“맞습니다.”
조수의 맞장구를 들으며 스텐커는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대며 생각했다.
‘대체 보름스 가문의 땅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고민하는 스텐커를 태운 마차는 저물어가는 전원의 풍경을 뚫고 나아가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