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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89화 (89/450)

89. 그러면 치명적인데?

89. 그러면 치명적인데?

루산은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율리안 부부와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술 좋아하세요?”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러면 차를 내 갈게요.”

식사가 끝난 뒤 율리안은 루산을 서재로 데리고 갔다.

창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니 라돔 시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노바의 야경에 비할 수는 없지만, 8구역을 개척한 통치자 - 율리안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 가 자신이 피땀 흘려 일궈 낸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와인 한 잔 할 수 있는 장소 같았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보고 있을 때 율리안의 부인이 하녀에게 다과를 들려 왔다.

“그럼 8구역을 노바처럼 만들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많은 말씀들 나누세요.”

율리안의 부인이 농담을 하고 돌아갔다.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오늘 기분이 좋은가 보네. 부장님, 신경 쓰지 말아요. 농담이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하.”

농담이라는 것을 알지만, 뼈 있는 말이라고 루산은 생각했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레이크 시티, 반달 호수 지역 개발 현황에 대한 이야기가 가볍게 나오고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이어졌다.

루산은 기회를 보다 둘 사이에 말이 줄어든 틈에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저야 물론 제 사정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고 처음에는 여기서 버티고 살아남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전혀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 직위가 조금 올라가고 변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니 우리 제국의 변경 개척 방식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시스템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리안도 일단 동의한 뒤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게 다르지 않겠어요? 부장님은 특히 어떤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루산은 대답하기 전에 양해를 먼저 구했다.

“혹시나 불쾌하시더라도······.”

“에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제국 변경 개척 시스템 중에 가장 놀라운 점은, 황족을 책임자로 앉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황족 통치자? 왜 그렇게 생각하죠?”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졌어도 결국은 책임자의 마음가짐, 의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를 책임자로 앉히느냐에 따라 성과와 효율이 달라질 테니까요. 그런데 황족은, 직계 혈통을 제외하면 능력이 있어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황족들에게 변경 개척의 임무를 맡기면 처음에는 중심에서 완전히 멀어진다는 소외감이 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펼쳐졌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정말로,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루산의 말에 율리안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고.

“부장님 말씀이 맞아요. 우리 제국의 변경 개발 시스템은 억눌린 황족의 마음까지도 이용하는 시스템인 것 같군요.”

“그런 뜻이 아니라······.”

“하하, 나무라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게 처음이라 살짝 놀란 것이지 맞는 말씀이에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아!”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고······.”

“···네.”

루산은 율리안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더 깊숙이 들어간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뭔가요?”

“의지, 의욕의 다른 말은 욕심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죠.”

“황족에게 변경 개척 임무를 맡긴다는 것은, 어쨌든 제한적이나마 금권과 군권을 주는 것이지 않습니까? 막대한 자금과 상당한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죠. 특히 능력이 빼어나 개척에 크게 성공한다면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음······.”

율리안의 표정이 다소 무겁게 바뀌었다.

그러나 루산은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이것은 오늘 변경 백서를 통해 다른 구역의 현황을 처음으로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더군요. 만약 5구역이나 7구역이 야욕이 있어서 백서에 기록된 것보다 강한 힘을 숨기고 있다면, 제가 알기로는 이미 수도 군단에 필적할 만한 멕 나이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막으려고 이 강한 힘을 주는 것일까요? 제국 정부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물론 여러 견제 장치를 두었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흐음······.”

율리안이 콧숨을 길게 뿜어냈다.

무거운 질문에 이어 무거운 정적이 깔렸다.

그러나 율리안은 질문 자체가 무거워서 그렇지 루산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하하, 확실히 보름스 부장님은 날카로운 데가 있어요.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이라 그런지 군사력을 중점적으로 보셨군요?”

“······.”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반란을 생각해 봤다는 뜻은 아니고요.”

율리안이 싱긋 웃으며 무시무시한 농담을 던졌다.

“아! 그게··· 당연히··· 네!”

엄청난 농담에 루산은 허둥지둥 대답했다.

율리안이 그 반응을 재밌어 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변경 개척 방식, 황족을 변경 통치자로 앉히는 방식은 무척 오래된 것입니다. 변경은 확실히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죠. 그런데 이 무력을 누구 손에 맡겨야 할까요?”

“네?”

“필센이라는 나라는 다른 나라를 힘으로 제압하거나 그로부터 항복을 받아 제국이 되었습니다. 제국 안에 여러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나라 밖에 큰 적이 있어서 그에 대항하기 위해 뭉친 것이지 사실 내부적으로는 매우 위태로운 나라였어요.”

“아!”

“변경을 황족에게 맡긴 것은, 보름스 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억눌린 황족의 한을 분출시켜 개발 효율을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함도 있겠지만, 황제 입장에서는 그래도 믿을 만한 혈족, 가족에게 병력을 맡겨 제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삼기 위함일 겁니다.”

제국을 지킨다는 말을 마이센 황가를 지킨다는 뜻으로 루산은 이해했다.

그렇다 해도 황족이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가족의 배신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필센 제국의 황제들은 몰랐다는 말인가?

“그리고 보름스 부장님은 야망 있는 변경 통치자가 병력을 숨긴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가정을 하셨지만, 그건 쉽지 않아요. 백서에 나온 8구역 현황을 보면 거의 일치하더군요. 우리는 지원금을 받고 세금을 냅니다.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특별 감찰관이 변경에 들어와 살피고 나가죠. 우리와 계약한 파일럿이나 정찰병, 다른 요원들 중에 특별 감찰관이 없으리란 법이 없어요.”

“······!”

루산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몇 대 정도는 착오를 일으킬 수 있겠지만, 엄청난 수를 누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제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에요.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많으면 수백 대의 멕 나이트를 운영하게 하면서 감시와 견제를 전혀 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더구나 필센 제국인데?”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사회 개혁 이후 황권이 강해진 나라, 황제의 눈과 귀는 도처에 깔려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백서에 기록된 내용은 거의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계란으로 바위에 부딪치도록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바위를 깨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변경 통치자가 강한 욕망을 지녔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율리안은 루산의 눈빛을 보고 그 생각을 짐작했다.

자신 또한 생각해 봤던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변경 통치자가 아무리 야심이 강하고 능력이 대단해도 현실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면 제압될 수밖에 없어요. 우선, 제국군 전력은 변경 전력보다 강해요.”

병력의 규모나 질 면에서 뛰어나다.

“변경을 지켜 독립된 나라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죠. 변경의 가장 큰 소득원인 괴수 부산물을 구입해 주지 않으면 멕 나이트 운용이 불가능해지니까요.”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제국군이 준비를 갖추기 전에 노바로 쳐들어가야 하는데, 열차를 타고 가는 데 3일, 수송 열차를 준비해 수백 대의 멕 나이트를 나르려면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리지 않겠어요? 그 사이에 소문이 안 날까요?”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번 양보해서, 어찌어찌하여 멕 나이트 기동 부대가 노바까지 진격한다 하더라도 관문을 통과해야 수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도 관문.

노바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 요새로, 멕 나이트는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었다.

수도 군단이 바로 이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는 멕 나이트뿐 아니라 멕 나이트 킬러라고 불리는 마나포가 다수 설치돼 있었다.

마나포.

멕 나이트의 두꺼운 철판을 뚫기 위해 거대한 마나 진동 화살을 발사하는데, 마나 진동 기능을 장착하는 것은 일단 가격이 너무 비싸고 쏠 때마다 명중한다는 보장도 없어서 거리가 멀수록 효율이 극악인 무기였다.

그래서 이것을 도입할 바에는 멕 나이트를 추가로 구입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제국군에 보편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지면 이것만큼 무서운 무기가 없었다.

그리고 과거 대전쟁 때 수도를 침범당한 경험으로 인해 수도 관문에만 이 고가의 방어 체계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루산은 제국 기사 아카데미 시절에 수도 방어 훈련에 여러 차례 참가했었기 때문에 이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수도 관문에서 적을 막는 동안 북방군, 남방군과 각 지방 기동 전단 병력이 육로와 엘버 강을 통해 적을 안팎으로 포위해 섬멸하는 것.

이것이 수도 방어의 기본 개념이었다.

루산은 훈련 이후 이 개념을 확장해 적의 대군을 수도로 끌어들여 포위 섬멸하는 작전을 수립해 제출했다가 칭찬과 꾸지람을 동시에 들은 적이 있었다.

어쨌든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내부에서 돕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 시절의 짧은 경험에 불과할지라도 그때 겪어 본 근위대와 수도 군단 군인들의 충성심은 매우 높았고, 이 방어 체계는 무척 우수해 적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면 이런 내용을 모를까?’

알고 있기 때문에 당장 병력을 일으키지 않고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루산은 자신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쳤지만, 관문 포대를 무시할 만큼 엄청난 대군이 수도로 몰아치거나 내부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반란은 실패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변경으로 파일럿을 빼돌리는 이유는 뭐지?’

자금 확보를 위해 변경에서 돈을 벌게 한다?

변경을 사실상 아예 장악한다?

변경 병력을 움직여 관심을 돌린다?

그러다 생각이 점점 크게 번졌다.

‘대전쟁이 눈앞이야. 이때 필센 제국에 반란이 일어나면 누가 가장 이익이지? 황제? 아니지. 오베론 공작? 당연히 아니지. 그건 바로··· 아우로라 연합군이야!’

반란 성공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라가 혼란스럽기만 해도 저들로서는 대성공인 것이다.

어떻게든 야심가의 곁에서 야심을 부추기고 자신감을 키워 주고 혼란의 규모를 키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역시 추측일 뿐 여전히 확실한 것은 거의 없었다.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과 공업 은행 그리고 툴롱 마법 연구소가 개입해 귀족들의 재산을 사취했다는 것, 그리고 남방군 파일럿들을 빼돌리고 있다는 것,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엮여 있다는 것 정도.

“하하,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세요? 변경에서 반란이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되십니까?”

율리안의 농담에 루산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7구역이 그토록 강한 곳인 줄 몰라서 충격이 컸나 봅니다. 반란이고 뭐고 우리 8구역도 7구역만큼은 성장했으면 좋겠네요.”

“보름스 부장님이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율리안의 능청스러운 말을 듣고 루산은 반란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 구실을 찾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네. 가프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 생산 시설을 레이크 시티에 유치하는 겁니다. 관련 업체들이 다 들어오면 어마어마하겠죠. 게다가 멕 나이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멕 워커 생산까지 시작하면 그 규모는 엄청날 겁니다.”

루산은 율리안에게 자신의 꿈을 보여 주었다.

아무리 상관없다고 말해도 반란 이야기를 계속 나누면 마음이 찜찜할 것이다.

그런 황족의 마음을 말끔히 씻어 줄 화제가 필요했다.

게다가 율리안이 전폭적으로 밀어 줄 때 공업 단지 유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율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후 두 사람은 레이크 시티 개발 계획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

스텐커의 이야기를 들은 오스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봐렌 철골···, 정말 수상하긴 하군요. 사기 당한 가문의 땅에 들어선 수상한 시설, 흐음······.”

“만약 저들의 목적이 그것이고 그것을 위해 땅을 빼앗은 것이라면 거기서 뭘 하겠습니까?”

그것이 반란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반란을 위해 노바 안쪽 땅을 빼앗아 차지했다?’

오스카는 민간인보다 군 시설에 대해 정통했다.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고 해당 지역의 위치와 주변 군사 시설들이 착착 들어섰다.

“근처에 남부선 철도가 지나고······, 설마 4전단?”

“4전단?”

“수도 군단 제4 기동 전단이 근처에 있습니다. 수도 관문 중 남쪽 관문을 지키고 있죠. 그 관문이 뚫리면······!”

“······?”

“남방군이 노바로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죠.”

“······!”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오스카는 오베론 공작이 이 일련의 사건에 가담했다는 것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 군단에는 무척 치명적인 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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