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너희도 경쟁해 볼래?
91. 너희도 경쟁해 볼래?
기다란 멕 나이트 대검을 양손으로 꽉 쥔 글라디아토르 1호와 2호는 탐색전 없이 시작부터 과격하게 충돌했다.
쾅!
흡사 성난 소 두 마리가 달려들 듯이 어깨로 서로 들이받은 것이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부딪치는 충돌음에 관객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동안 글디아토르를 타고 여러 차례 대결을 펼친 경험에서 나온 공격이었다.
마나 진동 기능이 없는 대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몸으로 들이받을 때의 충격이 더 강하다는 것을 바이크와 시에나 둘 다 깨달았던 것이다.
특히 바이크는 충돌의 충격이 두 파일럿에게 공평하게 전달되고 이 충격으로부터 회복되는 시간은, 비로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몸집이 더 크고 더 단단한 자신이 조금 더 짧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몸통 박치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충돌로 글라디아토르 1호와 2호의 몸이 뒤로 살짝 튕겨났지만, 바이크는 재차 어깨로 들이받았다.
거리가 살짝 떨어지는 틈을 이용해 시에나가 검을 들었다가 내리쳐 장갑판을 뜯어내려 한 것과 달리 바이크는 장갑판을 뜯는 것과 무관하게 오로지 상대를 들이받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계속해서 돌진했다.
“붉은색 멕에 탄 파일럿의 투지가 대단하군요!”
“멧돼지처럼 들이받기만 하는구먼, 뭘.”
율리안의 말에 단장이 툭 내뱉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덧붙였다.
“흐음, 파란색 멕에 탄 파일럿의 실력이 좀 더 나아 보이는군.”
글라디아토르 2호에 탄 시에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글라다이토르 2호는 1호의 돌진을 피해 거리를 두고 물러나며 대검을 내리쳐 장갑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밀리지 않기 위해 간간이 몸으로 들이받았다.
거리가 벌어지면 대검을 날카롭게 휘둘러 장갑판을 두드리고, 거리를 벌리지 못할 것 같으면 같이 부딪치면서 능숙하게 상대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1호는 계속 들이받기만 했다. 그러면서 팔을 뻗어 2호의 장갑판을 뜯어내려 하거나 대검으로 옆구리를 가격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대검 공격은 유효하지 않았지만, 몸으로 들이받아 우그러진 장갑판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뜯어내는 공격은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우드드드!
장갑판이 뜯어지는 그 파괴적인 음향에 관객들이 몸서리를 치며 열광했다.
와아아아아!
환호성은 바이크를 더욱 흥분시켜 폭주하게 만들었다.
빨간색 글라디아토르 1호는 싸울수록 힘이 나는 듯 거칠게 돌진했고 파란색 글라디아토르 2호는 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이었다.
시에나는 멕 워커를 타고도 바이크가 탄 멕 나이트를 걸어 넘어뜨릴 만큼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글라디아토르 1호가 돌진해 오자 허둥대는 모습으로 상대를 방심시킨 시에나는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살짝 오른쪽으로 피하며 발을 걸어 글라디아토르를 넘어뜨렸다.
쿠웅-!
보는 사람이 깜짝 놀라고 민망할 정도로 크게 넘어진 글라디아토르 1호를 향해 2호는 가차 없이 대검을 휘둘러 장갑판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글라디아토르 1호는 대검을 들 겨를도 없어 급하게 팔을 들어 막아 봤지만, 팔에 있는 장갑판도 떨어졌다.
그러나 1호는 그 와중에도 서둘러 일어나 2호를 들이받으며 싸움을 계속 이어나갔다.
달려들고 넘어지고 두드려 맞고, 다시 일어나 달려들고 넘어지고 두드려 맞고··· 이후로 이 패턴의 반복이었다.
글라디아토르 1호는 유능한 검투사에게 찔려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덤비는 맹수처럼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뜯어낸 장갑판도 상당히 많았다.
그럼에도 승자는 파란색 글라디아토르 2호였다.
“파란색!”
“파란색!”
“파란색!”
소년 소녀들은 모두 파란색을 연호했다!
루산은 대결 결과에 만족했다.
‘잘했다, 바이크!’
마나 진동 대검을 들고 싸웠다면 진작 승부가 났겠지만, 나름 글라디아토르의 특징을 파악하고 자신의 방법을 찾아냈다는 데 만족했다.
- 승리는, 파란색으로 도색된 글라디아토르 2호!
와아아아!
끼야악!
레이크 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첫 번째 시합은 어른들의 함성을 가뿐히 묻어 버릴 정도로 높고 날카로운 소년 소녀들의 환호성 속에서 끝이 났다.
관객들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섰다.
소년 소녀들의 재잘거림은 끝도 없었다.
“재미있었습니다, 보름스 부장님!”
율리안이 루산을 치하했다.
“고생했다.”
단장도 짧게 한마디 던졌다.
루산이 가볍게 목례하며 말했다.
“이제 식사를 하러 가시죠. 레이크 시티에 괜찮은 식당이 있거든요.”
“그래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 괜찮은 식당이 있다니,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앞장을 서자 귀빈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편 경기장에서는 바이크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이 탔던 글라디아토르 1호를 살피고 있었다.
하도 두드려 맞아 장갑판이 거의 다 뜯어지고, 아직 붙어 있는 것도 찌그러져 볼품이 없었다.
“헤헤, 아직 나한테는 멀었지?”
시에나가 놀리며 다가왔다.
“쳇!”
바이크가 못마땅하여 돌아보지도 않았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게 화가 나서 그래?”
“너 잘난 거 아니까 그만 까불고 가라. 혼나기 전에.”
“아이고, 무서워라! 이러다 사람 패겠네.”
“그만하라고!”
바이크가 주먹을 쥐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분을 참지 못해 살짝 젖어들었다.
시에나는 멋쩍게 볼을 긁으며 - 루산이 가끔 보이는 모습을 따라하다 몸에 밴 습관 - 말했다.
“왜 그래? 많이 늘었다는 거, 너도 알잖아, 바이크. 가자! 후크 식당에서 이 누나가 밥 사 줄게.”
“누가 누나야? 이 꼬맹이가 까불고 있어!”
“이기면 누나지! 네가 이기면 오빠라고 불러 줄게.”
“흥!”
콧방귀를 뀐 바이크가 고개를 돌리고 눈 밑을 닦으며 말했다.
“네가 사는 거 맞지?”
“그럼, 그럼! 이번에 기본급 올랐잖아!”
루산의 요청에 따라 1전대와 어깨치기를 했던 시에나, 파펜, 레보르크의 기본급이 살짝 올랐다.
“잘났다, 정말!”
“그럼, 그럼! 이제야 인정을 하시는군그래. 상대를 인정할 줄 알아야 그때부터 실력이 느는 거야. 우리 바이크 실력이 곧 쑥쑥 늘겠구먼!”
시에나가 엄마 같은 목소리를 내며 장난을 쳤다.
바이크가 시에나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시에나가 화가 나 갚아 주려 했지만, 바이크가 달리기는 더 빨랐다.
“거기 서!”
“잡아 봐라! 꼬마야!”
“잡히면 죽는다!”
말뚝 사이를 통과해 경기장을 벗어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정비부 요원이 입술을 삐죽였다.
“좋단다. 우리는 뒷정리하느라 쉴 틈이 없는데.”
“하하, 좋을 때니까. 각자 할 일이 있는 거지.”
정비부 요원들이 멕 워커를 동원해 뜯어진 장갑판을 회수했다.
***
바세노 식당.
루산이 괜찮은 식당이라고 말한 것에 비해 그리 대단한 식당은 아니었다.
노바에 있는 고급 식당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규모가 작지 않았고 깨끗했다.
“레이크 시티 최초의 민간 식당입니다. 주인 부부가 노바에서 식당을 했다고 하네요.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점이 아니라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로 하는데, 괜찮더라고요.”
“테이블이 상당히 많은데?”
단장이 식당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
“노바에서 들어온 개척민 수가 200가구, 레인보우 시티에서 이주해 온 개척민이 200가구, 그리고 우리 요원들과 가족, 장벽 생산 시설에서 근무하는 가프 마법 연구소 사람들과 건설 인력 수백 명을 대상으로 했으니까요. 아직 민간 식당은 이것 하나뿐이라 선점 효과가 상당하죠. 가격도 싸고 맛도 괜찮아 굳이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여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흐음······.”
“이 식당이 잘 되면 다른 식당들이 들어서겠죠. 벌써 옆에 다른 음식을 파는 식당이 생겼습니다.”
루산이 창업 대출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식당뿐 아니라 제재소에서 목재를 구입해 가구를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식당도 그 가구점에서 만든 테이블과 의자를 들여왔어요. 개척민이 늘면 주택이 늘어날 테고, 각 가정마다 최소한의 가구를 들이려 할 테니 그걸 생각하고 특기를 살려 가구점을 연 거죠. 가구뿐 아니라 식기, 침구, 의류, 공구를 만들거나 밖에서 구입해 판매하는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어?”
8구역에 들어와 개척한 지 30년이 넘은 단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루산은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많은 시도와 실패가 레이크 시티를 더 튼튼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경의 어떤 개척 도시보다 다양하고 부유한 도시가 될 겁니다.”
“자금은?”
“정부와 변경 본부에서 지원하는 기본 자금 외에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오!”
율리안이 탄성을 터뜨렸다.
“우리 부장님 능력 좋은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까! 그 비결, 나도 좀 배우고 싶군요.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나중에 따로 알려 주세요.”
루산이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식당 주인에게 미리 말해 놓았기 때문에 식사는 그리 늦지 않게 나왔다.
따뜻한 빵에 채소와 고기를 넣어 먹는 간편식과 빵과 수프, 옥수수 샐러드, 채소와 고기볶음이 나오는 가정식 두 가지가 차려졌다.
율리안이 주인에게 물었다.
“음식 재료는 어디서 마련하나요?”
“기, 기본 식재료는 레이크 시티 식료품점에서 구입하고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은 레인보우 시티 식료품점에서 구입해 달라고 공무소에 요청하면 며칠에 한 번 꼴로 구해 줍니다.”
“가격이 어떻게 되죠?”
“간편식은 9코퍼, 가정식은 19코퍼입니다.”
“싸네? 이 가격이면 라돔 시에 비해 비싸지 않은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바뀌나요?”
“바뀝니다. 간편식은 현재 세 종류이고, 가정식은 계절별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파악해 바꿔 나갈 생각입니다. 메뉴도 더 늘리고요.”
주인은 긴장한 가운데에도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그렇군요.”
율리안이 음식을 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괜찮네요.”
주인의 표정이 환해졌다.
율리안, 단장, 가프 마법 연구소 사람들은 그렇게 바세노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당 바깥에도 테이블이 있어 식사를 마친 그들은 차를 시켜 마셨다.
율리안이 차 가격을 확인한 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개척민이 노예 노동자도 아닌데, 일하고 나서 이런 여유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죠. 5코퍼짜리 차 정도는 마실 수 있잖아요. 건설 현장이나 제재소에서 일해도 그 정도는 충분히 버니까요.”
“하지만, 편안함과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되면 누가 고된 노동의 세계로 돌아가려 하겠습니까?”
단장이 율리안의 말에 반박했다.
평소라면 단장의 훈계를 조용히 받아들였을 율리안이 부드럽게 반박했다.
“단장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고된 노동을 감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단장은 인상을 찌푸렸으나 가프 마법 연구소 사람들이 있는 앞이라 이내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율리안이 차를 마시며 루산에게 물었다.
“그럼 개척 경쟁 1기 우승자는 이 바세노 식당의 주인이 되는 겁니까?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우승하는 거 맞죠?”
“맞습니다. 일단은 바네노 씨가 가장 유력하지만, 알 수 없죠. 벌써 다른 식당이 들어서고 있고, 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다른 사람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우승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어느 신문에 연재된다고 했죠?”
“필센 데일리와 제휴해서 변경 섹션을 받아 냈고, 한 달에 네 번 싣기로 했습니다.”
“여하튼 이 개척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보여 주세요. 기대가 됩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 사람들은 처음에는 율리안과 루산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똑똑한 사람들답게 점차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하기 시작했다.
레이크 시티 개척민을 모집해 개척 경쟁을 벌이게 하고 우승자에게는 500골드의 상금을 주는데, 루산이 개척민에게 창업 대출을 해 주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노력 과정을 기사로 작성해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에 싣는다는 것이다.
변경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 오고 있는 그들도 이런 식의 변경 개척 방식은 처음 접해 보았다.
루산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멕 나이트 조종, 판매, 괴수 부산물 사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런 비상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줄은 몰랐다.
‘탐탐 경주, 멕 나이트 검투, 막대한 자금력, 경쟁 체제를 도입한 개척 방식, 그리고 신문을 활용한 홍보까지? 이 사람 뭐지?’
그때 율리안이 가프 마법 연구소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이런! 손님을 초대해 놓고 우리 일에 대한 이야기만 했군요.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8구역이 어떻게 변경을 개척해 나가는지 알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율리안이 루산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다시 가라로슈를 보고 말했다.
“사실 바쁜 분들을 이렇게 모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율리안이 살짝 뜸을 들이자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이 긴장했다.
율리안이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 말했다.
“본느 마법 연구소에서 항의를 해 오더군요. 왜 가프 마법 연구소에만 특혜를 베푸느냐고요.”
8구역과 거래하는 마법 연구소는 가프 마법 연구소만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본느 마법 연구소는 가프 마법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마나 연료와 윤활유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괴수 혈액과 체액을 두고 경쟁해 왔던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느 마법 연구소는 1구역부터 8구역까지 두루 거래하면서 생산 기지를 두는 반면 가프 마법 연구소는 원래 7구역과 8구역에 집중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전체 규모 면에서는 본느가 가프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가라로슈를 비롯한 마법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율리안은 모른 체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자기네도 이곳에 장벽 생산 시설을 세우고 싶다는 겁니다.”
율리안은 처음으로 자신이 주도해서 일을 진행하려는 것이라 가슴이 떨렸다.
단장은 이르다고 반대했지만, 율리안은 최초로 단장의 말을 거역하고 밀어붙여 승낙을 받았다.
어떻게든 성공시키고 싶었다.
공모자나 다름없는 루산은 본부와 가프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음!”
가라로슈가 침중한 표정으로 콧숨을 길게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