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미끼를 던진 것이고
94. 미끼를 던진 것이고
세르펜스 사냥.
루산은 네 번째였다.
놀랍게도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바이크가 두 번째였다.
아라드 왕국으로 가는 길에 세르펜스로부터 습격을 당했을 때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멕 나이트도 꿀꺽 삼켜 버릴 정도니까 조심해야 해!]
시에나에게 조언을 가장하여 겁을 주고 있는 바이크의 모습에 루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세르펜스가 그토록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세 명은 세르펜스 사냥이 아예 처음이었던 것이다.
루산은 언제까지 자신이 직접 세르펜스 사냥에 나설 수는 없었기 때문에 위험하고 비싼 괴수를 사냥하는, 실력 있는 원정 사냥 팀을 꾸릴 생각이었다.
단지 멕 나이트 조종과 검술에 뛰어날 뿐 아니라 괴수의 특징과 원시의 땅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장기적으로는 시에나와 바이크를 키울 생각이지만,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파펜과 레보르크를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철버덕철버덕.
멕 나이트와 멕 워커들이 늪지대를 한참 동안 지나갔다.
멀리서 악어를 닮은 대형 괴수 수스마르들이 고개를 들고 다가왔다.
- 멕 워커는 여기서 대기.
- 알겠습니다, 커맨더.
멕 워커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수스마르는 공격적인 녀석들이야. 다가가면 죄다 모여들 거야. 이 일대의 수스마르를 다 잡는다고 생각해. 가자!]
[네, 대장님!]
[예스, 커맨더!]
멕 나이트 네 대가 우르사 옆으로 나란히 서서 전진했다.
수스마르들이 수면을 가르며 다가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수스마르 수십 마리가 몰려드는 광경은 소름이 끼쳤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 나중에 세르펜스를 유인해 낼 때 처리가 곤란해. 여기서 기다려!]
우르사가 멈추자 나머지 멕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이윽고 가장 앞선 수스마르가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우르사가 대형 철퇴를 번쩍 들어 올렸다가 강하게 내리쳤다.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콰작!
머리뼈가 부서지며 기다란 수스마르의 대가리가 늪 바닥에 처박혔다.
흙탕물이 사방으로 퍼지고, 수스마르가 몸을 뒤집으며 요동쳤다.
곧바로 다른 수스마르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고, 우르사의 대형 철퇴가 연달아 수면을 내리쳤다.
콰직!
퍼석!
옆에서 파펜과 레보르크가 탄 중고 아이언 워리어 두 대가 마나 진동 대검을 휘둘러 수스마르의 긴 주둥이를 세로로 쪼개고 있었다.
촥-
촥-
고통에 겨워 온몸을 뒤흔드는 수스마르들.
흙탕물이 쉼 없이 튀어 올라 시야를 방해했다.
수스마르는 흙탕물 장벽을 뚫고 계속해서 달려들어 아이언 워리어의 다리를 깨물었다.
끼우웅!
강철 장갑판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시에나가 탄 003은 수스마르의 물기 공격을 피해 잽싸게 뒤로 물러나며 녀석의 미간 사이를 갈라 버렸다.
바이크가 탄 004도 다리를 몇 번 물리기는 했으나 힘차게 검을 내리쳐 수스마르의 머리를 쪼개고 있었다.
[천천히 물러나며 해치워!]
[네!]
수스마르는 무서운 괴수이지만, 이들의 서식지를 침범한 강철 거인들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하여 잠시 후 수십 마리의 수스마르가 배를 뒤집거나 대가리를 늪 바닥에 처박은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 멕 워커, 작업을 시작하도록!
- 알겠습니다, 커맨더!
등에 괴수 혈액과 체액을 담는 대형 드럼통을 지고 있는 멕 워커들이 다가와 우르사의 시범대로 작업용 마나 진동 단검으로 수스마르의 몸을 세로로 길게 쪼갰다.
당연히 생명 구슬은 챙겼지만, 피는 물살의 흐름을 따라 늪지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세르펜스를 유인하기 위해 아까운 피를 흘려보낸 것이다.
- 모두 늪지대 바깥으로 물러난다.
멕 17대가 철벅철벅 늪지대를 벗어났다.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루를 꼬박 기다렸음에도 세르펜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파펜이 루산을 타박하며 말했다.
[뭐야? 없는 거 아니야?]
[그런가 보네요.]
루산은 순순히 인정했다.
원하는 괴수를 사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멕 워커들은 수스마르 부산물 작업을 시작하세요.
- 알겠습니다, 커맨더.
피는 빠져나갔지만, 이빨, 발톱, 가죽, 힘줄, 뼈, 장기가 남아 있었다.
그동안 멕 나이트들은 혹시나 뒤늦게 세르펜스가 다가오지는 않는지, 다른 괴수가 나타나지는 않는지 주위를 경계했다.
한참 동안 부산물을 수거하던 멕 워커들이 작업을 마치자 루산은 사냥 팀을 데리고 늪지대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물론 그 전에 시에나와 바이크를 불러 지도를 그리고 이 지역의 특징을 기록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
루산은 세르펜스 생명 구슬만 채취하고 말 생각이 없었다.
이왕 원시의 땅 깊숙이 들어온 김에 가치가 높은 거대 괴수들을 사냥하고 부산물을 최대한 많이 획득해 돌아갈 생각이었다.
원정 사냥으로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멕 워커를 12대나 데리고 왔고, 튼튼한 그물망 주머니와 거대한 가죽 부대를 잔뜩 들고 왔다.
지금까지 원시의 땅 깊숙이 들어와 사냥할 때 괴수 혈액은 전부 포기했지만, 이제 그것까지 운반해 가려고 멕 워커 등에 커다란 드럼통 모양의 혈액 용기도 짊어지고 왔다.
멕 나이트를 무리해서 다섯 대나 동원한 이유는 전부 사냥에 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멕 워커가 괴수 혈액이 가득 찬 용기를 수시로 운반할 때 호위하기 위해서였다.
루산은 데려온 멕 워커 절반이 드럼통을 채우거나 각종 부산물을 잔뜩 짊어지게 되면 멕 나이트 두 대씩 호위로 딸려 보냈다.
“이번에는 바이크와 시에나가 갔다 와.”
두 사람이 멕 워커 여섯 대를 호위해 떠났다.
레이크 시티까지 갔다가 돌아올 그들을 위해 남은 팀은 나무를 꺾고 깃발을 꽂으며 이동했다.
원시의 땅 깊숙이 들어간 정글에서 해가 저물었다.
늪지대에서는 멀리 떨어졌지만,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나무가 없는 곳을 찾아 야영 준비를 했다.
나무에서 독충이 떨어지거나 소형 괴수들이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이동해 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영지를 빙 둘러 알람을 설치하고 멕 워커 파일럿들이 식사 준비를 했다.
잠은 각자의 멕 안에서 자지만, 식사는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서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멕 워커 파일럿들은 멕 워커 파일럿들끼리, 멕 나이트 파일럿들은 멕 나이트 파일럿들끼리 모여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멕 워커 파일럿들이 식기를 가져갔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딱히 친하지 않은 세 사람은 그 모습만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그때 루산이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바덴의 편지를 읽은 뒤 스텐커가 보낸 것을 읽었다.
보름스 가문의 장원 깊숙한 곳에서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고, 오스카가 그것을 군사용으로 추측하고 있다는 내용, 들어가 조사할 방법이 막막하여 근처 마을에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과 화물을 감시할 집을 마련해 놓았다는 내용에 이어 다음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봐렌 철골을 조사할 다른 방법을 강구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핵심 인물들을 밀착 감시할 예정입니다.>
이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루산은 얼마나 속이 뒤집히고 분노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읽자마자 확 열이 받았지만,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애인이오?”
할 일 없던 파펜이 편지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레보르크도 모닥불에서 시선을 돌려 루산을 쳐다보았다.
‘왜 편지를 보면 다 애인이라는 거야?’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루산은 두 사람의 관심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변경부 특별 감찰관이라면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해 왔기 때문이었다.
“애인은 무슨······.”
“그럼 빚 독촉장이구먼?”
루산은 엷은 웃음을 떠올리고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뭔데?”
“뭐가 그리 궁금해요?”
루산이 가볍게 쏘아붙였지만, 파펜은 능글능글 대답했다.
“흐흐, 원래 남의 사정이 더 궁금한 법이지. 이렇게 아침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때는 더욱······.”
“뭐, 딱히 할 일이 없긴 하죠.”
루산이 이야기를 꺼낼 듯 여지를 주자 파펜이 더욱 재촉했다.
“거 좀, 비싸게 굴지 말고 이야기 좀 해 봐.”
“재밌는 건 아니고······.”
루산이 마침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도 알다시피 내가 레이크 시티에 공을 많이 들이잖아요.”
파펜과 레보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파드 테스트에도 많이 개입했고.”
“그렇지.”
“그래서 결국 가프 마법 연구소 연료 생산 시설을 유치했고, 레오파드 생산 기지까지 건설하기로 됐잖아요.”
“음!”
솔직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루산 정도 되면 그저 돈을 많이 벌려는 변경 파일럿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대단한 사업가나 뛰어난 행정가였다.
“가프 마법 연구소가 잘 되면 레이크 시티가 크게 발전하고 나에게도 이롭죠.”
“그렇겠지.”
루산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가프 마법 연구소는 잘 될 수밖에 없어요.”
“왜?”
“대전쟁이 일어날 거거든.”
루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전쟁 정보를 풀었다.
두 사람이 알아도 상관없었다.
변경 구석에서 이 소식을 가지고 어찌할 것인가?
무슨 짓을 하려 한다면 그 역시 반가울 뿐이었다.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되니까.
“······!”
“······!”
파펜과 레보르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오파드는 많이 팔릴 것이고, 마나 연료와 윤활유도 만드는 족족 비싸게 팔려 나갈 겁니다. 두 사람 다 요새 성과 보상금이 좀 더 늘지 않았어요?”
파펜과 레보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연료, 윤활유 가격이 올라가서 그런 거예요. 우리가 넘기는 괴수 부산물 단가도 따라서 올라가는 거지.”
“그렇군!”
“어쨌든 이대로라면 우리 모두 부자가 될 테고 나는 더 큰 부자가 될 텐데······.”
루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어쨌든 전쟁이 나면 이겨야 될 거 아닙니까? 우리 제국이 패하면 말짱 황이지. 내가 공들여 건설하는 레이크 시티도 결국 아우로라 놈들한테 빼앗기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대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데, 이겨야 한다?”
“그렇죠. 이겨야 좋은 전쟁이죠.”
전쟁 이야기는 누구에게가 흥미로운 주제였다.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레보르크가 대화에 끼어들 정도였다.
“이기지 않겠소? 전에도 이겼고, 과거 대전쟁 이후로 필센 제국의 국력은 더 강해졌으니까. 멕 나이트도 훨씬 많아졌고.”
“그렇지.”
파펜이 동의했다.
그러나 루산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라고 놀고 있었겠어요?”
“그건 그래.”
파펜이 이번에는 루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어쨌든 우리 제국하고 아우로라 연합이 순수하게 붙는다면 완전히 밀릴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면 나는 대박이지. 그런데 문제는······.”
루산이 심각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끊었다.
파펜과 레보르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문제가 뭔데?”
루산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 혼자서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제국에 반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뭐?”
파펜의 목소리가 높아져, 멕 워커 파일럿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쉿!”
“알았어, 알았다고.”
멕 워커 파일럿들이 다시 자기들 이야기에 집중하자 루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제국에 반란이 일어나면 아우로라 쪽 좋은 일 시키는 거잖아요.”
“으음······.”
“근데 뜬금없이 웬 반란 타령이야?”
파펜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루산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슬쩍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내가 이만큼 크게 일을 벌이고 있는데 혼자서 하겠어요?”
거액의 자금을 대는 투자자나 정보통이 있다는 투였다.
두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였다.
레이크 시티는 그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변경 다른 구역에서 멕 나이트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키고, 노바 내부에서 호응하고, 특정 부대가 움직여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거예요.”
“말도 안 돼! 대체 누가?”
“누구겠어요?”
질문에는 질문으로 응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파펜과 레보르크가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여하튼 그러더라고요. 투자 타이밍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안 좋았다고. 이제 와서 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란을 막을 수도 없고.”
“제국 정부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오?”
레보르크가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한테 뭐라고 알려요? 정황뿐인데. 그리고 변경 파일럿 말을 누가 귀담아 듣는다고. 만약 아닌 것으로 판명나면 난 어떻게 하고? 끝장나는 거지.”
루산은 나라의 운명이야 어찌 되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변경 파일럿처럼 말했다.
레보르크는 물론 파펜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러나 루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고했는데 잘못된 정보였다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다.
“반란이 안 일어나면 다행. 일어나면 나 혼자 힘으로 어쩌겠어요? 일어나기 전에 확실한 증거를 잡으면 신고라도 하겠지만······. 그래서 요새 잠이 안 온다니까. 하아!”
루산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입을 다물었다.
파펜과 레보르크도 심각해졌다.
평소 루산이 다른 사람들하고 쓸데없이 농담하는 스타일이라면 헛소리한다고 넘기겠지만, 그런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전대장, 아니 전대장님! 좀 더 구체적으로 말 좀 해 봐요. 무슨 정황 증거가 있다는 거야? 응?”
파펜이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졸랐다.
레보르크도 궁금하다는 눈빛을 강렬하게 쏘아 보냈다.
그러나 루산은 괜히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한번 쑤시고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됐어요. 변경 파일럿이야 괴수 잡아서 부자 되면 되는 거니까. 다 잊어버려요.”
루산은 바덴이 사 준 여행자 외투를 입은 채 우르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둘 중 하나가 변경부 특별 감찰관이라면 이 이야기를 결코 소홀히 넘기지 못하겠지만,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피 냄새가 맛있게 나는 수스마르를 미끼로 던져도 세르펜스가 없으면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음 일을 하면 그뿐.
“이런, 쓰벌! 얘기를 하다 말어? 궁금해 뒈지겠구먼!”
“음······!”
그날 밤, 파펜과 레보르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파펜은 괜히 친한 척 루산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지만, 루산은 귀찮은 듯 털어 버렸다.
“잊어버리라니까! 일합시다, 일!”
그러고는 늪지대 탐색에만 골몰했다.
그러다 마침내 세르펜스가 사는 늪지대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