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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99화 (99/450)

99. 시작이다

99. 시작이다

“사령관님,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부르시면 바로 갔을 텐데요.”

노바 경찰청장 에르젠 자작이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밤베르크 백작을 맞이했다.

에르젠 자작은, 가문으로는 밤베르크의 오래된 봉신이었을 뿐 아니라 개인으로 볼 때에도 대전쟁 때 밤베르크 백작 휘하에서 싸웠다.

사회 개혁 이후 봉건적 주종 관계가 희미해졌다고는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에르젠 자작은 파일럿으로서의 능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밤베르크 백작은 대전쟁 이후 수도 군단 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그를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데려왔다.

자신이 군문을 나오면서는 에르젠 자작이 군인으로 출세하기 어렵다고 보고 경찰로 진로를 틀어 주었고 필센 제국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청장에 오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에르젠 자작에게는 가장 두렵고 고마운 사람이 바로 밤베르크 백작인 것이다.

“잘 지내지?”

“그럼요! 염려해 주시는 덕분에 잘 지냅니다.”

밤베르크 백작은 자연스럽게 회의용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았고 에르젠 자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가까운 측면 의자에 앉았다.

“자네는 잘 지내는지 몰라도 우리 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군.”

“······!”

에르젠 자작이 긴장하며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곱씹어 보았다.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령관님,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려 주시면 빠르게 조치하겠습니다.”

“그게······.”

밤베르크 백작은 말을 길게 빼 긴장감을 더욱 끌어 올렸다.

“공화주의자 놈들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지 않는가.”

“아!”

에르젠 자작은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작게 탄성을 토했다.

“아는 무슨 아야? 자네는 아직도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군.”

“아닙니다, 사령관님!”

에르젠 자작이 신병처럼 바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이반 황제 폐하의 개혁 헌법도 자신들의 요구로 만든 거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놈들이야. 폐하께서 백성들에게 재산권을 비롯한 여러 자유를 주신 까닭은 제국의 체질을 튼튼히 하여 침략자 놈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함이거늘 어리석은 것들이 은혜도 모르고 감히 불경한 말을 서슴지 않는단 말이야. 개혁 헌법 수립 60주년을 앞두고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에르젠 자작은 듣지 못했다.

들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밤베르크 백작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꾸며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에르젠 자작은 공화주의자들이 간간이 소동을 일으켜 온 일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여태껏 큰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은 없었다.

이반 황제 이후 필센 제국의 백성들에게 황제란 삶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외적으로부터 보호해 준 은인이었다.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었지 배격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부 사상가, 대학생, 노동자들이 황제를 몰아내고 마리노 공화국처럼 공화제를 수립하자는 주장을 했으나 백성들로부터 욕을 먹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공화주의자들이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개혁 헌법 수립 60주년 행사를 방해하는 시위를 벌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르젠 자작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니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개혁 헌법 60주년 행사를 망칠 셈인가? 불순한 녀석들이 황실의 존엄을 뭉개도록 방치할 작정이야?”

“아닙니다!”

“자네도 들었겠지? 대전쟁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말이야.”

“···네.”

“아직까지 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곧 민간에까지 퍼질 것이야. 이런 때에 그런 무리까지 날뛰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황제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려야지.”

노바 경찰청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노동자들이 멕 워커를 동원해 대규모 위력 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는 거야. 기동 타격대를 동원해야 할 수도 있어.”

경찰 기동 타격대.

멕 나이트는 노바 안으로 들어오는 것부터 엄격히 통제되지만, 멕 워커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므로 그런 제약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멕 워커를 타고 건물을 부수거나 사람을 해치거나 도심을 돌아다니며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리 용감한 경찰관도 맨몸으로 멕 워커를 저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멕 나이트를 운용하는 부대를 둔 것이다.

“대규모 멕 워커 시위라니, 으음······!”

에르젠 자작이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밤베르크 공작이 따끔하게 야단을 쳤다.

“정신 차리게!”

“네! 사령관님!”

“그런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하는 게 자네의 역할이야.”

“네!”

“이번 기회에 공화주의자 놈들을 뿌리 뽑아야 해. 생각보다 그런 허무맹랑한 사상을 신봉하는 놈들이 많아. 정부 관리, 경찰에도 그런 자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 이 일은 실행 당일까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해.”

“알겠습니다!”

이후 밤베르크 백작은 동원해야 할 경찰 병력의 규모와 체포·소탕 방식, 기동 타격대를 투입할 지역과 동원할 멕 나이트의 규모에 대해 대략적으로 일러 주었다.

상당한 규모여서 에르젠 자작은 무척 놀랐으나 감히 밤베르크 백작에게 이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밤베르크 백작은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 이 일이 새 나가지 않도록 비밀 유지에 철저히 신경을 쓰게. 나중에 황제 폐하께서 자네의 노고를 잊지 않으실 거야. 노바 청장으로 공직을 마무리하는 것은 서운하지 않은가?”

에르젠 자작은 밤베르크 백작이 자신을 더 높은 곳까지 기꺼이 끌어올려 주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령관님!”

“암! 그래야지. 다시 연락하겠네.”

“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에르젠 자작을 만난 뒤 밤베르크 백작은 수도 군단 제4 기동 전단장을 만나러 갔다.

만에 하나라도 반란군이 동원한 멕 나이트가 너무 많아 경찰 기동 타격대로 막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제4 기동 전단장은 30대에 수도 군단 사령관을 역임한 선배 영웅을 대함에 있어 에르젠 자작보다 훨씬 깍듯했다.

밤베르크 백작은 4전단장에게 멕 나이트 동원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 대전쟁 시절의 추억, 수도 군단의 어제와 오늘, 개혁 헌법 60주년 기념식, 닥쳐올 대전쟁 대비 태세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을 뿐이다.

다짜고짜 민간의 파업에 군의 멕 나이트를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오랜만에 인사를 나눈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경찰 기동 타격대의 작전이 개시될 때 수도 군단 4전단의 연락관을 동행시키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재빨리 부대로 돌려보내 원군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다.

“조만간 또 봅시다, 장군.”

“네, 사령관님! 찾아 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배웅하는 4전단장의 경례를 받은 뒤 밤베르크 백작은 자동 마차를 타고 돌아갔다.

일단 중요한 조치는 취한 것 같았다.

‘고위 관리들이 연루돼 있다면 경찰이 체포하기 어려울 거야. 체포한다 해도 증거 수집이 쉽지 않을 테니 정치적 부담 때문에 에르젠 자작은 풀어줄 수밖에 없어. 결국 경찰의 체포와 수사를 뒷감당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밤베르크 백작은 생각에 잠겼다.

사안이 워낙 엄중하다 보니 평소 잘 아는 사이라 해도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데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 사람을 만나 보자.’

밤베르크 백작이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베스코프 공원으로 가지.”

“네, 백작님.”

노바 남쪽 끝에 있는 4전단에서 나온 자동 마차는 노바 동쪽으로 달렸다.

***

“레보르크라는 자가 보낸 편지의 주소지는 저 사무소입니다.”

스텐커가 가리킨 곳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무소였다.

율리안이 물었다.

“뭘 하는 곳이죠?”

“구인 구직 사무소입니다. 사람을 보내 시험해 보니 실제로 운영하는 곳이 맞더군요. 어쨌든 많은 사람이 드나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업종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레보르크의 편지가 도착한 뒤에 저 사무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이 전부 반란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구별하죠?”

“그래서 경찰이 많이 필요한 것이지요. 일단 다 추적하고 그들이 접촉한 사람도 모두 다 뒤를 밟습니다.”

“하아!”

율리안이 탄식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과 현실은 차이가 컸다.

이렇게 추적해 한꺼번에 모조리 다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고한 사람을 잡아들였을 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스텐커가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켰다.

“경찰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그게 그들의 일이니까요. 충분한 병력을 동원하기만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후에 그들은 파펜이 편지를 보낸 주소지로 가 보았다.

정부 청사 근처의 작은 서점이었다.

변경부 특별 감찰관이 변경으로 잠입해 정부 청사로 편지를 쓰는 것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일이라 이렇게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율리안은 정부가 비밀리에 일을 진행할 때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알아낸 것 같아 약간 뿌듯함을 느꼈다.

그때 스텐커가 말했다.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이라고요?”

“네. 우리는 반란 세력을 일단 조용히 미행하여 한꺼번에 모조리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펜이란 자의 보고를 받은 변경부가 조용히 움직일까요? 과연 빨리 움직이기나 할까요? 제 생각에는 대책 회의를 한답시고 여러 날을 그냥 허비할 것 같습니다.”

“흐음······.”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보면 소문이 나게 되고, 정부 고위층에까지 그 이야기가 금방 퍼지게 되고, 반란 세력의 귀에도 들어갈 텐데, 우리 쪽 미행이 언제까지 그들을 따라다녀야 하는지가 문제 될 수밖에 없죠.”

“그렇군요.”

“그래서 편지가 도착하고, 서점에서 변경부로 누군가가 가서 보고하는 순간, 백작께서 변경대신을 만나 다른 경로로 변경 쪽에서 이상한 소식을 들었다고 말씀하시고 서둘러 변경을 조사하라고 종용하신다면 발이 꼬이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우리 쪽에 최선의 상황은, 레보르크의 편지가 도착하고 저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그 동선을 추적해 용의자들을 모조리 파악해 놓고, 변경부가 변경을 들쑤셔 반란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노바에 있는 용의자들을 단숨에 체포하는 것입니다. 이 타이밍을 맞출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요.”

율리안은 스텐커의 이야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밤베르크 백작에게 얘기할 만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 공업 은행 행장과 지점장들, 툴롱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을 즉각 체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반란에 가담한 파일럿을 체포하는 것과는 충격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일거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흐음!”

오베론 공작의 아들을 체포하다니!

그야말로 필센 제국이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었다.

생각은 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으니 율리안은 가슴이 떨렸다.

게다가 마법 연구소를 기습하다니, 이반 황제 시절에도 없었던 폭거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일!

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소재는 확보하고 있습니까?”

“우리 쪽에서 얼마 전부터 계속 따라붙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밤베르크 백작께 이 부분도 강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치자님.”

“오히려 내가 감사하죠, 스텐커 씨. 덕분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수 있었어요.”

율리안의 감사 인사에 스텐커는 더욱 송구하여 고개 숙인 뒤 주의할 점을 계속 이야기했다.

삐끗하면 내란으로 번질 일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으려는 것이라 아무리 반복해 논의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밤이 되고 율리안은 밤베르크 백작의 저택으로 가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가 알고 있는 점과 모르는 점을 짚어 가며 허점이 없는지 따져 계획을 다듬어 나갔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율리안과 밤베르크 백작은 바쁘게 움직였다.

운명의 시간은 노바의 겨울에 부는 칼바람보다 매섭게 휙휙 지나갔다.

변경 8구역에서 출발한 우편물이 마나 열차에 실려 노바 역에 도착하고, 경찰들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제의 편지를 찾아냈다.

압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추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편지들이 해당 구역 우편국으로 이동하여 우편배달원들에 의해 문제의 주소지에 전해지는 것을, 경찰들과 스텐커 일행이 마차 안에서, 건물 모퉁이에서, 건너편 찻집에서, 신문을 보는 척하며,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시작이다!’

스텐커는 몸이 떨렸다.

노바의 매서운 칼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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