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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02화 (102/450)

102. 내가 올 때까지 죽지 마

102. 내가 올 때까지 죽지 마

이반 황제의 사회 개혁은 평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귀족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그러나 이반 황제에게는 매우 강력한 명분이 있었다.

“아우로라 연합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로다!”

개혁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귀족들에게는 적을 이롭게 한다는 혐의가 씌워졌다.

백성들은 기꺼이 황제의 편에 서서 개혁 조치에 저항하는 귀족들을 비난하고 공격했다.

수구 귀족으로 낙인찍히면 전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리던 백성들이 귀족의 마차에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심지어 개혁 조치 이행을 요구하며 귀족의 저택과 성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였다.

새로 창설된 경찰들은 이런 백성들의 행위를 못 본 척하거나 은밀히 조장했다.

견디다 못한 귀족들은 항복하듯 장원과 봉토의 상당 부분을 백성들에게 헐값에 장기 분할로 넘겨줌으로써 명예와 재산을 모두 잃었다.

끝까지 저항한 귀족들은 이적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되거나 최전방 전선에서 반강제적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귀족들이 목숨을 잃었고 가문이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브뤼크 남작 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뤼크 남작은 이적죄로 재판에 넘겨져 수감되었고,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석방을 조건으로 최전방 복무 각서를 작성하고 아우로라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두 명이 전사하고, 한 명이 불구가 되었다.

석방된 브뤼크 남작은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고 쓰러져 병석에 누워 있다 얼마 후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나이가 어려 강제 복부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막내아들 오토 브뤼크는 가문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복수를 다짐했다.

복수의 대상은 당연히 이반 황제와 필센 제국이었다.

안타깝게 이반 황제는 복수를 하기도 전에 죽었지만, 필센 제국은 가문의 재산과 가족들의 피를 자양분으로 삼아 더욱 성장해 있었다.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그러나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중 남방군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방군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복무하던 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복수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따르라.”

오토는 그를 따르기로 했다.

많은 동지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혼자서는 절대 실행할 수 없는 구체적 계획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오토는 계획에 따라 남방군을 나와 무려 15년을 기꺼이 변경 파일럿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왔거늘!’

오토는 분노했다.

지난 세월 그 많은 노력들이 고작 멕 나이트 여섯 대에 의해 무의미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코부스 역은 확보해야 한다!]

코부스 역은 오스나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차량 기지가 있어 멕 나이트를 운반할 화차를 확보할 수 있었다.

코부스 역에서 노바로 가는 방향의 철로가 망가지면 자신의 15년 변경 생활이 헛수고가 될 뿐 아니라 계획에 크나큰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서브 파일럿을 어깨에 태우고 추적한다. 놈들은 서브 파일럿이 없으니 지쳐서 계속 달아나지 못할 것이다!]

오스나 역에 남아 있던 멕 나이트들이 어깨에 서브 파일럿을 태우고 뛰기 시작했다.

***

[헉헉~]

[후하후하후하~]

3전대 파일럿들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멕 나이트는 연료만 있으면 언제까지 뛸 수 있지만, 파일럿은 그렇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했다.

[후하후하~, 싸울 힘이 있을 때 한번 싸워야 할 것 같지 않소, 전대장님?]

파펜의 말에 루산도 동의했다.

달아나다 완전히 체력을 소진하면 싸울 힘이 없어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말 것이다.

숨소리로 판단할 때 현재 파펜이 가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가 타고 있는 중고 아이언 워리어가 중량 대비 엔진 출력이 제일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모리츠, 파비안이 타고 있는 레오파드 001, 002, 시에나가 타고 있는 003은 엔진 출력이 높고 기체 중량이 낮았다.

바이크가 타고 있는 005역시 003에 비해 출력은 낮았으나 기체가 가벼워 움직임이 무척 경쾌했다.

우르사는 가장 무거웠지만, 엔진 출력 또한 가장 높아 속도 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동화기 장력이 너무 세 아무리 체력이 좋은 루산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루산이 말했다.

[저 앞 언덕 사잇길에서 한번 막아 보죠.]

철길은 경사가 완만한 언덕을 올라 양쪽 산봉우리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바이크는 오른쪽 봉우리, 시에나는 왼쪽 봉우리로 올라가서 혹시나 비탈길로 돌아가려는 놈들을 저지하고, 계속 상황을 알려. 내가 앞을 막을 테니 다른 사람들은 잠시 쉬었다가 교대합니다.]

[예스, 커맨더!]

[예, 대장님!]

003과 005가 완만한 비탈을 골라 겅중겅중 봉우리로 올라갔다.

나머지 멕 나이트는 철도가 지나는 고갯길 정상에서 멈췄다.

우르사가 육중한 몸을 돌려 7군단 멕 나이트들이 달려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고갯길이 살짝 휘돌아 있어서 언덕을 올라오는 멕 나이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대장님, 선두 그룹이 언덕을 올라오고 있습니다! 약 20대!]

봉우리 위에서 바이크가 루산의 사각(死角)을 보완해 주었다.

[알았다.]

잠시 후 7군단 맨 선두의 멕 나이트들이 고개 정상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르사가 아트라스 대검의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금빛이 검신 전체에 일렁였다.

[조심해!]

7군단 멕들이 그 광경을 보고 동료에게 경고한 뒤 방패를 치켜들고 자신의 마나 진동 대검을 활성화시켰다.

마나 진동 대검 제작소에 따라 약간씩 다른 색깔의 빛을 뿜어냈다.

마나 진동 대검이 빛으로 일렁이는 것, 양쪽 모두 전투 준비를 완료했다는 뜻이었다.

[경사 길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달려 올라가야 해!]

확실히 군 출신 파일럿들이라 멕 나이트 대응 훈련이 잘돼 있었다.

비록 경사가 급한 것은 아니지만, 무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위에 있는 쪽이 유리했다.

[오케이! 셋을 세면 동시에 달려 올라간다! 하나, 둘······.]

그러나 셋을 세기 직전, 우르사가 먼저 달려 내려왔다.

루산 역시 경사로에서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쿵쿵쿵쿵!

아이언 워리어의 2.7배에 달하는 중량을 지닌 육중한 우르사가 돌진해 내려오자 7군단 멕들은 당황했지만, 얼른 상황에 맞게 대처했다.

[등을 받쳐!]

네 대의 멕이 선두 멕 나이트의 등을 방패로 받치고 힘을 주었다.

그때 우르사가 마지막 발로 땅을 박찼다.

믿을 수 없게도 잠시나마 공중에 붕 떠 날아왔다.

그 짧은 시간에 우르사는 아트라스 대검을 뒤로 한껏 젖혔다가 힘차게 내리쳤다.

쐐애액-!

멕 나이트 키만큼이나 긴 아트라스 대검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더니 검 끝으로 상대를 힘차게 내리쳤다.

[헙!]

선두의 7군단 멕 나이트가 방패를 들어 올렸다.

쓰릉!

불꽃이 일어나며 방패와 함께 왼팔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놀란 파일럿이 대응하기도 전에 우르사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왼쪽 어깨로 팔이 잘린 멕 나이트의 몸통을 들이받았다.

터텅!

선두 멕의 등을 받치고 있던 네 대의 멕 나이트가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아 뒤로 튕겨 나갔다.

선두 멕 역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왼팔이 잘리고 경사로에서 뒷걸음질을 치는 와중에도 선두 멕 나이트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반격을 시도했다.

휘익!

투지는 훌륭했지만, 루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우르사가 아트라스 대검으로 상대의 대검을 쳐내자 중량과 출력 차이로 인해 상대는 대검을 든 오른팔이 밖으로 크게 벌어지며 몸이 빙그르 돌고 말았다.

우르사는 회전하는 멕 나이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균형을 잃은 선두 멕 나이트는 철로 침목에 걸려 쿵 넘어졌고 금빛으로 일렁이는 우르사의 대검이 녀석의 하체를 생선 토막 내듯 잘라 버렸다.

쓰릉!

이 모든 일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났다.

우르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루산은 튕겨 나간 네 대의 멕 나이트를 쉬지 않고 공격해 나갔다.

7군단 멕 나이트가 사선으로 베어오자 우르사는 아트라스 대검으로 상대의 대검을 쳐 올리고, 상대의 팔이 벌어지자 그대로 대검을 오른쪽 사선으로 내리 그어 상대의 오른 다리를 베어 버렸다.

쓰릉!

오른 다리가 잘려 나간 멕 나이트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쿵!

그다음 멕이 수평으로 우르사의 허리를 베어 왔다.

우르사 역시 아트라스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쑤우웅-!

우르사의 위치가 살짝 더 높아 아트라스 대검은 상대 대검 위를 교차하여 지나갔다.

상대가 휘두른 대검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지만, 길이가 더 긴 아트라스 대검은 상대 멕 나이트의 가슴에 깊이 틀어박혔다.

쓰릉!

대검 날이 조종실을 침범해 육신을 잘랐는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우르사는 발로 상대 멕을 밀쳐 아트라스 대검을 뽑아냈다.

끼이이이!

소름끼치는 금속 마찰 소리가 두 봉우리 사이에 잠시 메아리쳤다.

우르사는 세 대의 멕 나이트를 쓰러뜨리고도 멈추지 않았다.

7군단 멕 나이트의 대검을 아트라스 대검으로 쳐내고 경사의 이점, 육중한 중량과 강력한 출력, 아트라스 대검의 길이를 이용해 나머지 두 대도 연달아 베어 버렸다.

잠깐 사이에 다섯 대의 멕 나이트를 처치한 것이다.

[후우우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킨 루산은 호흡을 고르며 맨 선두 다섯 대의 뒤를 따라 올라오던 7군단 선두 그룹 멕 나이트들을 내려다보았다.

7군단 멕 나이트들이 우르사와 그 앞에 쓰러져 있는 동료들의 멕을 보고 멈칫했다.

우르사는 마치 이 고개에 살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수 곰 같았다.

‘이 고개는 내 것이다! 이 길을 지나가고 싶으면 최소한 팔다리 하나씩은 내줘야 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려움은 잠시뿐이었다.

그들 역시 멕 나이트 파일럿이었던 것이다.

[뭣들 하는 거야? 뚫어!]

7군단 멕 나이트들이 쿵쿵쿵 올라오고 우르사는 쾅쾅쾅 내려갔다.

좁은 고갯길에서 다시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우르사는 긴 아트라스 대검을 이용해 좁은 길목을 혼자서 완전히 차단한 채 7군단 멕 나이트들을 상대해 나갔다.

그러나 괴수도 아니고 기사 출신 파일럿이 조종하는 멕 나이트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루산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우르사가 아무리 중량이 무겁고 출력이 높은 멕 나이트라 해도 재질이 다른 것은 아니어서 마나 진동 대검에 잘리고 뚫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중력과 체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코부스까지는 아직 멀었다.

힘을 남겨 둬야 했다.

루산의 상황을 파악한 모리츠가 먼저 말했다.

[전대장님, 교대합시다! 뒤로 천천히 물러나면 우리가 양옆으로 쇄도하겠소!]

[알았어요!]

루산이 뒤로 서서히 물러나자 7군단 멕 나이트들이 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챙촹촹촹-!

방패를 들지 않은 우르사는 기다란 아트라스 대검으로 녀석들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며 물러났고, 001, 002가 우르사의 양옆 비탈을 지나 7군단 멕을 힘차게 들이받았다.

콰쾅!

강력한 출력에 7군단 멕들이 출렁였다.

그 사이 우르사가 고갯길 정상으로 완전히 물러났고 루산이 빠진 틈을 파펜이 메웠다.

3전대의 멕 나이트 세 대가 7군단의 멕 15대를 상대하면서도 좁은 산길, 유리한 위치, 001과 002의 높은 출력이라는 장점으로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3전대의 편이 아니었다.

[대장님, 고갯길로 멕 나이트가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40대가 넘어요!]

시에나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저 멀리 평원에 훨씬 많은 멕 나이트들이 오고 있는데, 어깨에 사람을 태우고 있어요! 서브 파일럿을 데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바이크의 목소리였다.

서브 파일럿을 동원하는 것은 제국군의 방식이었다.

아라드 왕국 구원 작전에서 수도 군단 3전단이 그렇게 이동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었다.

[으음······!]

루산은 신음을 흘렸다.

물량과 체력에서 밀리는 상황.

[바이크, 시에나!]

[네!]

[넵!]

[산비탈을 달려 내려와 001, 002가 상대하는 적들의 옆구리를 친다! 최대한 많이 쓰러뜨리고 곧바로 이탈한다.]

[알겠습니다!]

[바이크는 이탈하자마자 코부스 역을 지나 노바 방면 철로를 끊어라!]

[네? 저 혼자서요?]

[그래. 우리가 뒤를 막겠다!]

[하, 하지만······.]

[설마 남은 사람들이 걱정 돼서 못 가겠다는 거야?]

[······.]

바이크가 대답을 못 했다.

[까불지 마! 여기에 너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은 없으니까.]

[······.]

[어쨌든 철로를 최대한 많이 망가뜨려. 네가 철로를 끊고 있으면 코부스 지방군이 출동해 너를 공격할지도 몰라. 그러면 가프 마법 연구소로 달아나거나 항복해. 괜히 싸우지 말고.]

바이크가 입술을 깨물고 겨우 대답했다.

[···네.]

[자! 시작한다!]

양쪽 봉우리에 있던 003과 005가 비탈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락-

스스로 내려온다기보다 추락하는 것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레오파드 계열 두 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와 모리츠와 파비안, 파펜이 싸우고 있는 7군단 멕 나이트들 옆구리에 칼침을 놓았다.

그렇잖아도 좁은 길목에서 뒤엉켜 싸우느라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측면 공격을 당해 7군단 멕 나이트 세 대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러나 수에서 저들이 훨씬 많아 승기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산길은 혼잡했다.

바이크는 혼전 중에 옆구리에 한 칼 맞았지만, 비탈을 겅중겅중 달려 가까스로 몸을 뺐다.

그리고 우르사를 지나치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대장님! 임무,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하하하, 혼자 너무 심각한 거 아니야? 곧 볼 거잖아.]

루산이 웃으며 말해도 바이크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루산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적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 사이 우르사도 혼전에 뛰어들었다.

후웅-!

쐐애액!

쓰릉!

터텅!

쾅!

파공음, 금속 절단음, 충돌음, 굉음이 요란했다.

바이크는 그 소리들로 인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이를 악물고 고개를 넘어 철길을 따라 달렸다.

‘다들 내가 올 때까지 죽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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