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변경 기사들을 위하여
104. 변경 기사들을 위하여
악에 받친 7군단 선두 멕 나이트는 왼팔로 방패를 들어 올려 상체를 보호한 채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마나 진동 대검으로 우르사의 몸통을 찌르고 그대로 밀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우르사의 아트라스 대검이 얼마나 긴지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쐐애액-!
아트라스 대검이 바람을 가르며 수평으로 빠르게 회전하자 선두 멕 나이트의 머리가 목에서 가볍게 분리되었다.
스릉!
선두 파일럿은 시각과 청각을 잃고도 두려움을 느낄 새 없이 암흑 속에서 관성에 의해 그대로 돌진했다.
우르사는 똑바로 들어오는 상대 대검의 옆면을 왼쪽 팔꿈치로 밖으로 쳐냈다.
터엉!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 머리가 떨어진 상대 멕 나이트의 목을 도로 바깥쪽으로 힘차게 잡아당겼다.
2.7배의 중량과 2.5배의 출력은 무시무시하여 직진으로 달려오던 상대 멕이 45도 방향을 틀어 그대로 계속 달리더니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으아아아아!]
암흑 속에서 자유 낙하 하는 파일럿의 비명이 마나 통신기를 통해 7군단 파일럿들의 귀에 소름끼치게 꽂혔다.
두 번째, 세 번째 멕 나이트 파일럿은 동료의 비명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추락을 피하기 위해 도로 안쪽으로 붙어 달려왔고, 그로 인해 대검을 강하게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쐐애액-!
우르사는 오른쪽에 가 있던 아트라스 대검을 왼쪽으로 휘둘러 상대 멕 두 대를 절벽에 세워 놓고 토막 내듯이 분리해 버렸다.
그때 첫 번째 멕 나이트가 낭떠러지 저 아래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자유 낙하 하던 파일럿의 비명은 그제야 사라졌다.
세 대의 멕을 순식간에 잃자 7군단 쪽에 정적이 흘렀다.
루산은 도로 안쪽 벽면 가까이 붙은 채 절단돼 있는 멕 나이트들이 사용하던 마나 진동 대검 두 자루를 집어 바닥에 꽂아 두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후쿵, 후쿵, 후쿵, 후쿵-!
[죽여!]
오토의 명령에 7군단 멕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트라스 대검이 춤을 추었다.
7군단 멕 나이트들의 팔이 날아가고 목이 떨어졌다.
우르사는 근접전에서도 아트라스 대검을 몸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다.
상대의 대검과 맞댄 상태에서 힘으로 찍어 누르며 그대로 검을 푹 찔러 뒤에 있던 멕 나이트 가슴팍을 꿰뚫고, 자신의 주위를 완전히 밀착해 둘러싼 멕 나이트들이 몸을 찌르려 하자 다시 검을 쭉 당겨 상대의 목과 가슴을 일제히 베어 버렸다.
츠르르릉-!
그 와중에 7군단 멕 나이트들의 대검도 우르사의 몸통 장갑을 무수히 찌르고 긁었다.
촤라라라라-!
끼리리리리-!
우르사는 상처를 입어 더 분노한 괴수처럼 온몸에 마나 진동 대검 자국을 새기면서도 계속 밀고 들어갔다.
벼랑 위 좁은 도로 위에 멕 나이트 밀도가 높아지자 도로 바깥쪽에 서 있던 멕 나이트들이 떠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아!]
안쪽에 있던 멕 나이트들이 우르사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기 위해 힘껏 밀었다.
그러나 우르사는 살짝 피하며 상대 멕 나이트를 오히려 잡아당겨 벼랑 아래로 떨어뜨렸다.
중량, 파워, 몸놀림, 검술!
좁은 벼랑길에서 우르사는 무적이었다.
[대장, 피해가 너무 큽니다!]
[이놈!]
대열 중간쯤에 있던 오토는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분노로 몸을 떨었다.
한편 힘을 한껏 쏟아부어 7군단 선두 그룹을 벼랑 아래로 우수수 떨어뜨린 우르사는 몸에 많은 상처를 간직한 채 뒤로 서서히 물러났다.
겁에 질린 멕 나이트들이 조심스럽게 한 대씩 다가오면 긴 아트라스 대검을 이용해 팔다리를 잘라 버렸고, 다가오지 않으면 바닥에 나뒹구는 방패를 들고 자신이 돌진해 상대를 힘으로 밀어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버리면서 7군단 파일럿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 이런 개죽음을 하라고 여기까지 끌고 온 거냐?
- 나는 7구역으로 돌아갈 거야!
7구역 변경 파일럿들이 두려움과 분노를 참지 못해 소리쳤다.
‘모두 반란군은 아니야! 섞여 있다!’
루산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좁은 길에 길게 늘어서 있는 7군단 멕 나이트들은 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러다 혼자 다 막는 거 아니야?]
루산의 당부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싸움을 지켜보던 파펜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눈 감고 쉬라니까, 말을 안 들어요. 2조 교대!]
[예스, 커맨더!]
혼자 다 막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싸우고 달아나고 다시 모든 힘을 쥐어짜 적을 해치운 루산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우르사 안에 있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우르사가 물러나고 001과 002가 교대를 위해 다가오자 상대가 지쳤다고 판단한 7군단 멕 나이트들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루산은 마지막 힘을 다해 바닥에 꽂아 두었던 마나 진동 대검 두 자루를 뽑아 던졌다.
쐐애액-!
7군단 멕 나이트들이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마나 진동 대검은 두꺼운 강철 방패를 뚫고 멕 나이트 가슴 장갑에까지 꽂힌 채 파르르 떨었다.
‘조금만 더 박혔으면 조종실이 뚫렸다!’
7군단 파일럿들은 가슴이 철렁하여 추격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 사이 001과 002가 우르사 자리를 차지해 7군단 멕을 상대했고, 우르사는 파펜과 시에나 뒤까지 이동했다.
루산은 동화기를 풀고 조종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불안했지만, 이제 동료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
001과 002는 우르사처럼 싸우지는 못했다.
중량에서 살짝 부족해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데는 취약해 할 수 없이 뒤로 계속 밀렸지만, 상대보다 더 출력이 높은 기체를 탄 덕분에 위험한 벼랑 위 좁은 길을 안정적으로 지키는 데 성공했다.
벼랑 위에서 다수의 적과 싸우는 것은 모리츠와 파비안에게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어 그들도 금세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3조 시에나의 003과 파펜의 중고 아이언 워리어와 교대했다.
시에나의 감각적인 움직임이 빛을 발했다.
파펜의 아이언 워리어를 가운데 세워 놓고 상대가 아이언 워리어를 공격하면 뒤에서 알짱거리며 갑자기 훅 들어가 공격했다가 아슬아슬하게 물러났다.
그때 상대가 003을 공격하기 위해 무리해서 들어오면 파펜의 마나 진동 대검이 영리하게 옆구리를 푹 찔러 파일럿을 저 세상으로 인도했다.
[대머리 아저씨, 좀 하네?]
[나야 원래 좀 하지. 꼬맹이 너야 말로 겁먹지 않는 게 대견하구나.]
[히히, 난 최고가 될 사람이니까.]
심지어 그들은 시시덕거리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방군 출신의 에이스가 나타나 파펜이 탄 아이언 워리어의 팔다리를 잘라 버리면서 여유는 끝이 났다.
- 동료들 곁으로 보내 주마!
남방군 에이스 파일럿의 날카로운 공격을 003이 막아내는 사이 파펜이 얼른 조종실을 열고 뒤로 뛰었다.
이제 003 홀로 계속 줄지어 오는 7군단 멕 나이트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
시에나는 감각을 이용해 피하며 버텼으나 중량이 낮다는 것은 이런 곳에서의 전투에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돌진, 밀치기, 당기기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루산이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모르게 설핏 잠이 들었다 깨어난 루산은 근육과 관절의 극심한 통증에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 상황이 지옥 같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우르사가 다시 다가오자 7군단 멕들이 주춤했다.
- 물러서지 마라! 놈은 지쳤다! 이대로 끝을 본다!
저 뒤쪽에 있던 남방군 출신 실력자들이 조심스럽게 앞쪽으로 넘어와 투지와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루산은 움직일 때마다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약간의 휴식이 오히려 독이 되어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이 의지와 따로 놀았다.
그럼에도 익숙해진 우르사의 무게와 출력, 아트라스 대검의 길이를 이용해 적들을 상대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르사의 다리와 옆구리에 마나 진동 대검이 박혔다.
앞에 있는 동료의 겨드랑이를 이용해 뒤에서 몰래 찌른 대검이 우르사의 복부에 박힐 때는 루산도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털이 쭈뼛 섰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 팔로 옆으로 쳐냈기에 제대로 꽂히지 않았지 안 그랬으면 죽었을 것이다.
멕 나이트 다섯 대로 이 정도까지 저지하고 상대의 멕 나이트 수십 대를 쓰러뜨렸으니 엄청난 일을 한 셈이지만, 루산은 확실히 깨달았다.
‘여기까지다! 더 버티면 다 죽는다!’
터텅!
루산은 몸통 박치기로 상대를 뒤로 확 밀어 버리며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우르사를 버린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동화기의 장력이 너무 강해 온전한 몸으로도 코부스 역까지 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한 적을 방해할 생각이었다.
[시에나, 우르사를 버릴 테니 달려와서 나를 어깨에 태우고 달아나!]
[네! 대장님!]
시에나가 파펜을 멀찍이 내려놓고 달려왔다.
츠쿵- 츠쿵-
[모리츠 경, 파비안 경은 내가 우르사에서 이탈한 뒤 뒤를 막고 있다가 따라오세요. 적당히 따돌린 뒤에는 둘 중 한 대 버리고 두 사람이 한 대를 타고 와요.]
7군단처럼 교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음! 알겠소!]
우르사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7군단 멕 나이트를 그대로 번쩍 들어 상대 쪽으로 던지고 자신 역시 힘차게 뛰어올라 반 바퀴 회전하며 몸을 날렸다.
이런 무모한 육탄 공격을 예상치 못한 7군단 멕 나이트들은 깜짝 놀라 방패를 들어 막거나 대검을 찔렀다.
우르사의 다리와 등에 마나 진동 대검이 박혔지만, 육중한 무게가 날아오자 피하느라 제대로 찌르지 못했다.
촤르르르-
앞쪽에 있던 7군단 멕 나이트들이 높은 밀도로 인해 완전히 피하지 못해 그대로 우르사에 깔려 쓰러졌다.
그러자 연쇄적으로 밀린 멕 나이트 여러 대가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루산은 우르사가 몸을 날리자마자 동화기를 풀고 조종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파바바밧-!
빠르게 달려오던 003이 손으로 루산을 받쳤다.
- 세이프!
듣기 좋은 시에나의 목소리.
루산을 받쳐 든 003은 바닥을 찍고 반대 방향으로 다시 겅중겅중 뛰었다.
그러다 루산을 왼손으로 들고 저 뒤에 내려놓았던 파펜을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든 채 벼랑길을 계속 뛰어갔다.
001과 002가 7군단 멕 나이트들을 견제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 저것들이!
- 겁먹고 튈 거면서!
분노한 7군단 멕들은 우르사를 짓밟고 타넘으며 추격을 계속했다.
‘멕을 버릴 줄이야!’
파일럿이 멕을 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루산의 의도를 짐작한 오토가 조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쫓아라! 코부스 역에 도착하기 전에 잡아야 한다!]
7군단 멕 또한 속도를 높였다.
벼랑길을 지나며 입은 피해가 막심했다.
그러나 아직도 200여 대 가까운 멕이 남아 있었다.
코부스 역만 확보하면 충분히 노바에서 활약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저놈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놓치면 안 된다!]
7군단 멕 나이트들은 속도를 더욱 높여 벼랑길을 뱀처럼 달려갔다.
산허리를 휘휘 도는 협곡 옆 벼랑길을 지나고 평지로 진입했다.
그러나 8군단 멕은 보이지 않았다.
003이 파펜과 루산을 어깨에 태우고 달렸고, 002는 숲에 버려두고 001이 파비안을 어깨에 태우고 달리며 교대했던 것이다.
변방에서 사용하는 중고 멕 나이트로는 레오파드 001, 003의 출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
오토는 탄식했다.
이대로 코부스 역으로 가 봐야 철로는 끊겨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
일단 코부스를 점령하여 휴식을 취하고 철로를 복구하든, 노바 소식을 알아보든, 노바로 진격하든 할 일이었다.
상황을 보아 코부스를 비롯해 변경 구역을 점령하여 제국군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차선이기는 하지만, 거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거사를 방해하고 일을 어렵게 만든 8군단 멕 나이트 파일럿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가만 안 두겠다!’
오토는 동쪽을 바라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
영차영차!
변경 방면에서 갑자기 나타난 멕 나이트 한 대가 철길을 따라 달려와 코부스 역을 통과하더니 마나 진동 대검으로 철로를 통나무 자르듯 절단한 뒤 일일이 뜯어서 멀리 버리기 시작했다.
“웬 미친놈이여?”
“그러게 말이여.”
역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빙빙 돌리며 그 짓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경찰에 신고했다.
철로 파손은 심각한 범죄였지만, 경찰은 차마 멕 나이트 쪽으로 다가가 왜 그러시냐고, 도와드릴 일이 있냐고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코부스 지방군에 지원을 요청했다.
할 일이 없던 코부스 지방군 기동 전대는 다섯 대의 멕 나이트를 파견했다.
변경에서 탈출한 것으로 보이는 멕 나이트 한 대를 잡기 위해 다섯 대나 파견하는 것은 전력 낭비였지만,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한참 동안 철로를 파괴하던 변경 멕 나이트는 코부스 지방군 멕이 다가오자 맥 빠지게 항복해 버리는 게 아닌가!
조종실 문을 열고 나온 파일럿 – 당연히 그는 바이크였다 – 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야말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달리고 걷기를 반복해 여기까지 와서 또 쉼 없이 철로 파괴 작업을 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 뭐야, 이거?
- 진짜 황당하네.
지방군 파일럿들은 당황했지만, 잠시 후 기관차에 타고 먼저 와 가프 마법 연구소에 들렀던 변경부 특별 감찰단 조사관이 와서 신분증을 내밀며 사정을 말해 주었다.
“반란이라고!”
“흐엑? 수백 대?”
코부스 지방군이 발칵 뒤집혔다.
코부스 지방을 변경 7구역의 반란 세력으로부터 막기 위해 일단 기동 전단 멕 나이트가 총출동했다.
보병 사단 또한 움직여 방어 요새를 구축했지만, 멕 나이트가 한 번 몸으로 부딪치면 쓰러질 만한 것이었다.
“차라리 깊은 해자를 파는 건 어떻소? 무거워서 빠지면 못 나오지 않겠소?”
“금방 도착한다는데, 언제 해자를 파고 있습니까?”
“으음······!”
그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멕 나이트 두 대가 달려왔다.
루산 일행이었다.
변경부 조사관과 칼리슈, 바이크의 증언으로 그들은 곧바로 합류했다.
그리고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준비해 준 레오파드 시리즈에 올라탔다.
“그래, 반란 세력의 정확한 규모는 어느 정도요?”
“멕 나이트 200대 안팎일 겁니다.”
코부스 지방군은 기동 전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말이 전단이지 멕 나이트 40대를 겨우 넘겼다. 전대 규모였던 것이다.
“으음!”
지방군 지휘부와 코부스 지방 행정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백성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고, 우리 군도 원군이 올 때까지 전력을 보존하는 게 낫지 않겠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장 온다는데 백성들이 대피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고작 40대로 어떻게 막는다는 말이오? 불필요한 희생은 결국 저들을 이롭게 할 뿐이오!”
군인과 행정관이 언쟁을 벌였다.
그때 루산이 나섰다.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이오?”
루산이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러자 미심쩍어하면서도 결국 따르기로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코부스는 변경과 인접하여 괴수 부산물을 가공하는 각종 산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공장이 많았고, 그곳에서 대량의 화물을 운반하기 위한 멕 워커 또한 많았다.
멕 워커들에 동원 명령이 내려졌다.
멕 워커 수백 대가 모였다.
그들은 커다란 철제 방패를 들었다.
실제 멕 나이트용 방패 여분을 든 멕 워커도 있었고, 커다란 나무 판에 금속처럼 보이도록 페인트칠을 한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방패를 든 멕 워커 수백 대가 코부스 역 서쪽 - 변경 방면 - 에 잔뜩 늘어섰다.
멕 워커는 결코 멕 나이트를 상대하지 못한다. 무게, 출력, 단단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는 방패를 든 멕 워커 수백 대의 위용이 자못 무시무시했다.
코부스 지방군은 멕 워커 부대를 배경처럼 멀찍이 뒤에 두고 가지런히 도열해 있었다. 그렇게라도 기세를 보이려 한 것이다.
그 옆에 자신의 임무 완성에 도취된 바이크를 비롯한 루산 일행이, 레오파드 시제기가 아니라 제국군에 넘기기로 한 특수 기체를 타고 있었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엔진 출력이 높은 001과 003을 제공해 준 것이다.
“반란이 성공하면 우리 가프 역시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 주시길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막을 테니까요.”
루산은 가볍고 빠른 003 모델을 탔다.
변경 7군단은 루산 일행이 도착하고 한나절 뒤에 코부스에 나타났다.
여전히 몸이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한나절을 쉬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코부스에 나타난 반란군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멕 나이트와 그로부터 한참 뒤에 서 있는 멕 워커 부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멕 워커 부대가 신경이 쓰였다.
멕 워커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챘으면서도 수가 너무 많아 왠지 주눅이 든 것이다.
[신경 쓸 것 없다. 어차피 멕 나이트는 몇 대 안 된다. 다 쓸어버리고 코부스를 차지한다. 서브 파일럿들은 전투 중 밟히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라.]
오토가 파일럿들을 다독이며 전투 지시를 내렸다.
그때 루산이 앞으로 나서며 외부 확성기로 크게 소리쳤다.
- 변경 7군단 동지 여러분!
“응?”
멕 나이트에 파고 있는 파일럿, 뒤로 빠지려던 서브 파일럿 모두 동작을 멈추고 루산이 타고 있는 멕 나이트를 주목했다.
- 나는 뚱뚱한 곰처럼 생긴 멕을 타고 있던 8구역의 파일럿 루산이라고 한다!
“저놈이!”
“넌 죽었어!”
7군단 파일럿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 8구역의 변경 파일럿 동지들이여! 반란군에 참여해 개죽음을 당할 텐가, 아니면 괴수나 때려잡으며 평화롭게 부자가 되어 살 텐가?
- 무슨 개수작이야?
남방군 출신 파일럿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루산은 할 말만 했다.
- 변경의 파일럿 동지 여러분, 마지막으로 살 기회를 준다! 살고 싶으면 옆으로, 뒤로 빠져라!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의지를 밝혀라! 빠지지 않는 자는 반란에 가담한 자로서 3족을 멸할 것이다!
- 이놈!
오토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 헛소리다! 저놈들이 반란군이다!
그러자 루산이 외쳤다.
- 반란군이든 정부군이든 여기서 싸우고 싶지 않은 변경 파일럿은 빠져라! 빠지지 않은 자는 다 죽는다!
루산은 확신했다.
진짜 변경 파일럿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고.
그들은 결코 이런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그 자신이 변경 파일럿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문과 얽혀 있지 않다면, 자신의 투자와 관련돼 있지 않다면 그 역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 마지막 기회다!
루산이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키자 대검에 노란 빛이 일렁였다.
루산이 대검을 치켜들었다.
전투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서둘러 선택하기를 재촉한 것이다.
그러자 바이크, 시에나, 모리츠, 파비안, 파펜 역시 빛이 일렁이는 대검을 들어 올렸다.
코부스 지방군 멕 나이트도 마나 진동 대검을 높이 들었다.
그때 뒤쪽 멀리 있던 멕 워커들이 거대한 방패로 땅을 두드렸다.
쿵-
쿵-
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
수백 대의 멕 워커가 방패로 대지를 울리는 소리!
그 소리가 마음을 뒤흔들었다.
7군단 변경 파일럿들이 옆으로,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멕 나이트 한 대가 빠지자, 또 한 대가 빠지고, 여러 대가 우르르 빠져나갔다.
- 움직이지 마!
- 멈춰! 속지 마!
- 비겁한 자식들아! 동료를 배신해?
그러자 단기간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고,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변경 파일럿들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 정말 반란군 놈들이구나! 변경 파일럿이 아니야!
- 너희 때문에 죽은 동료가 몇인 줄 알아?
- 다 뒈져 버려!
루산은 적진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목격하고 마나 통신기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우두머리를 칠 테니 다들 내 뒤를 따라와!]
[예스, 커먼더!]
레오파드 여섯 대가 쐐기 모양으로 돌진했다.
이쪽이 정부군 쪽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7군단 파일럿의 선택을 종용할 필요가 있었다.
루산이 소리쳤다.
- 필센 제국과 진정한 변경 기사들을 위하여!
모리츠와 파비안, 시에나와 파펜이 따라 외쳤다.
- 필센 제국과 진정한 변경 기사들을 위하여!
- 필센 제국과 진정한 변경 기사들을 위하여!
바이크는 감격에 겨워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가 목 놓아 부르짖었다.
- 필센 제국과 진정한 변경 기사들을 위하여!
코부스 지방군 멕 나이트가 그 뒤를 받치며 달려왔다.
- 반란군을 쳐부숴라!
멕 워커 파일럿들이 두려움 속에서 방패로 계속 땅을 울려 아군에 힘을 적에게는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