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따뜻하게 입어요
107. 따뜻하게 입어요
“변경 7구역에서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변경부 특별 감찰단이 갑자기 들이닥쳐 불순 세력을 찾는다면서 우리 파일럿들을 감금해 조사하고 본부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통에 7구역 통치자가 병력을 소집해 특별 감찰단을 감금하고 거병했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흐음, 유감스럽게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시기에 특별 감찰단이 찾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거병한 7구역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사람을 보낸 겁니다.”
“이런!”
“하아!”
방 안은 원망과 탄식으로 가득 찼다.
“아니, 얼마나 오랜 세월을 준비해 온 일인데 그걸 못 참고 일을 망가뜨려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소이다.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특별 감찰단을 보내다니 이상하지 않소이까? 우리의 거사를 눈치 챈 것 아니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른 구역은 어떻습니까? 우리 거사 계획은 그대로 가는 겁니까?”
소란스럽던 사람들의 시선이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일제히 쏠렸다.
“변경 다른 구역 소식은 아직 모르겠고, 정부에서도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변경부에서 단독으로 진행한 감사가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7구역 통치자가 지레 겁을 먹고 거병했다는 겁니까?”
“변경부에서 왜 이 시기에 특별 감사를 진행했는지, 조사가 어느 정도 강도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어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거사하기로 한 날짜까지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7구역 거병에 맞춰 시기를 앞당길 것이냐.”
“흐음······.”
“하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7군단이 거병한 사실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제국군이 먼저 대비 태세를 갖추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리 된 것, 7군단 먼저 움직이게 하고 그 사이 다른 쪽에도 명령을 내려 거병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다소 시간 차가 나더라도 제국군이 변경 쪽에 신경을 쓰면 상대적으로 노바는 빌 테니까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아니죠. 우리 쪽도 거사 일에 맞춰 그 직전에 노바로 들어오기로 돼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얼마 안 됩니다.”
“음!”
“차라리 7군단에는 변경을 틀어막고 버티라고 하는 겁니다. 혹여나 진압군이 가더라도 지세가 험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변경 다른 구역 동지들에게는 거사 일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단단히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버티면 7군단이 제국군 병력을 많이 붙들고 있게 되고 그 사이 동지들이 노바로 모여 예정대로 거사를 일으킨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7군단 소식에 노바로 들어올 때 검문검색이 강화될 것 아닙니까? 행사 경비도 더욱 삼엄해질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그래도 갑자기 거사를 앞당기면 다른 지방 동지들이 시기를 맞출 수가 없어요. 7군단이 잘 버텨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요.”
상석에 앉아 있던 자가 사람들의 논의들 듣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다들 당황스럽겠지만, 예정대로 하는 것이 더 낫겠군요. 작은 행사가 아니기에 동지들이 모이는 일정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7구역에는 변경을 지키라 하고 다른 구역에는 인내하라 하세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더욱 조심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정부 내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도 예의 주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나 예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상석에 앉아 있던 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태연함을 유지하던 것과 달리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후유······.”
“잘하셨습니다.”
“괜찮겠지요, 선생?”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변경을 진압하려면 상당한 병력이 움직여야 합니다. 거사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죠.”
“흐음!”
“돌발 변수는 늘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걸 어떻게 대처하고 돌파하느냐에 따라 군주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인데, 더할 나위 없이 잘하셨습니다.”
그제야 상석에 앉아 있던 자의 표정이 풀렸다.
“선생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이제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
빌헬름의 저택에서 나온 사람들을 모두 추적하기는 어려웠다.
워낙 마차와 자동 마차가 고급스러웠고 수행원들도 많아 얼마 되지 않는 인력과 허름한 마차로 섣불리 따라붙었다가는 들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스텐커가 율리안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핵심에 다 도달한 것 같은데, 경찰을 좀 많이 배치할 수 없겠습니까?”
“흐음, 저기서 나온 사람들만 해도 고관 아니면 고위 귀족일 텐데 경찰을 붙였다가 들키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어요?”
충분히 우려할 만한 부분이었다.
반란과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 이쪽이 오히려 역풍을 맞아 고초를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스텐커 씨가 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들이 누군지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다만, 소재를 파악한 뒤에는 일괄 체포를 위해 경찰에서 상당한 인원을 파견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황제의 동생과 고위층 인사를 체포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반란 사건이면 그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 부분은···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그 조치들을 취해야 할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다.
변경 7구역에서 반란 세력이 거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코부스에서 완전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노바를 뒤흔든 것이다.
코부스 지방군의 공식 보고 외에도 변경 8구역까지 왕복하는 정기 열차가 철로 파괴로 막혀 돌아오고 철로가 복구된 뒤 코부스 지방의 사람과 화물을 다시 운반해 오면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것이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필센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변경에서의 반란.
그 소식은 당연히 스텐커와 율리안의 귀에도 들어왔다.
황제의 동생 빌헬름의 저택에 다시 화려한 마차와 고급 자동 마차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때는 스텐커가 율리안의 자금 - 밤베르크 백작의 주머니에서 나온 활동비 - 으로 자동 마차들을 구입해 미행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빌헬름의 저택으로 들어갔던 고급스러운 탈것들이 다시 나오자 스텐커와 귀족 사기 사건 피해자들은 각자 흩어져 미행을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율리안은 밤베르크 백작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체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음······.”
밤베르크 백작은 고심했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저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소재는 확보한 상태니까.”
“그러다 저들이 동원하는 병력이나 멕 나이트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면 어떡하려고요? 이 정도 됐으면 차라리 수도 군단이나 근위대에 정보를 주고 일망타진하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밤베르크 백작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할 때, 애초에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반란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들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해 소재를 확보한 것은 오롯이 자신들의 공이었다.
수도 군단이나 근위대에 그 공을 넘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공을 탐내서가 아니라 그동안 애써 온 노바 경찰청장 에르젠 자작이나 다른 경찰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공을 세우고 상을 받아야 자신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조카님을 위해서도 그렇게는 못 하지.’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일은, 반란군이 봉기하여 황제나 황태자가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지경으로 해를 입은 뒤 율리안이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혼란에 빠진 필센 제국의 구원자로 노바 정계에서 주목을 받고 부상하는 것이다.
물론 황제와의 친분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는 야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공을 세워도 화려하게, 극적인 상황에서 공을 세워야 한다! 지금 확보한 정보로 볼 때 충분히 그것이 가능한데 이 기회를 밋밋하게 날려 버릴 수는 없지!’
밤베르크 백작은 조카와 자신을 위해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조카님, 조금만 더 기다리시게. 일거에 뿌리 뽑으려면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해.”
율리안은 정치와 군사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보다 오랜 세월 많은 경험을 쌓아 온 외숙의 판단을 존중했다.
황제의 동생이 포함된 일이라면 확실히 옭아맬 증거와 역풍을 맞지 않을 안전망을 확보할 필요가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외숙.”
***
변경의 반란 사건으로 노바 정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진상 조사단이 코부스와 변경 7구역으로 파견됐다.
가는 데 3일, 오는 데 3일이 걸리는 일이었다.
처음 파견된 조사단은 반란 가담자를 일일이 심문하는 일이 아니라 황제의 측근이 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사건의 개요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코부스 지방군 사령관의 안내를 받으며 전투 현장을 돌아보고 감옥에 갇혀 있는 반란군 파일럿들의 수를 세고 변경 7구역을 방문해 변경부 조사관들의 보고를 받았다.
그렇게 하는 데 5일이 걸렸다.
그들의 보고를 받고 다음 조치를 결정하는 데 다시 3일이 걸렸다.
“변경 7구역은 임시로 단장이 통치한다. 7구역 통치자와 주요 간부, 반란에 가담한 자들은 노바로 압송한다. 변경 모든 구역에 황제가 임명한 특별 조사관을 파견한다.”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코부스와 변경 7구역으로 고위 관리가 출발했다.
반란죄를 저지른 범인들을 호송하기 위한 병력을 꾸리는 데는 며칠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나 호송단은 노바를 출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반란 진압 사건을 보고받고, 조사단이 갔다 오고,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반란자들을 노바로 호송하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14일이라는 시간은, 거사를 일으키려는 세력이 다시 모여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이 결정을 각지에 전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변경 7구역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소. 게다가 동지들이 붙잡혀 우리 정체가 노출될 수 있으니 서두를 수밖에 없소. 거사 날짜를 2월 25일로 당길 것이니 각지로 가서 이 사실을 전하시오!”
연락책이 변경 모든 구역뿐 아니라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소식을 접한 각 지방의 책임자는 동지들에게 명령을 전했고, 그들은 곧바로 노바로 출발했다.
반란 사건 이후 노바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에서 검문검색이 엄격하게 이루어졌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걸리지 않았다.
무기를 소지한 것도 아니고 신분이 불분명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됐습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보홀트 경.”
“수고하시오.”
경찰과 군인들은 신분증을 검사하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지방에서 올라온 품위 있는 귀족들을 아무 의심 없이 노바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숙소를 잡은 뒤 노바 외곽에 있는 한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차를 잡아타고 여기까지 온 귀족들에게 바덴이 일일이 인사했다.
원래 계약한 날짜는 2월 말부터 3월 15일까지였지만,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손님이 뚝 끊겨 장원이 한산했기에 날짜를 앞당겨 달라는 와이젠 자작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귀족들은 세련된 자세로 고개를 까닥하고는 아는 얼굴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였다.
“미스 고슬라, 전에 말한 대로 따로 시중을 들 필요가 없어요. 요청할 때 식사를 준비해 들여오고 요청할 때 음료를 가져오면 됩니다.”
와이젠 자작 역시 조금은 어두운 얼굴로, 그러나 바덴을 대할 때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자작님.”
바덴은 의아했지만, 이 시기에 막대한 매출을 책임져 줄 뿐 아니라 고객의 요청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야말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본연의 자세이기 때문에 기꺼이 직원들을 별장에서 모두 철수시켰다.
그리고 지시를 들을 직원 하나만 별장 문 바깥에 대기시켰다.
“따뜻하게 입어요.”
노바의 바람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차가웠기에, 그 일을 맡은 직원에게 친절하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