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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08화 (108/450)

108. 약속 지킨다

108. 약속 지킨다

자작나무숲 장원에 모인 지방의 귀족들은 계획과 편제, 함께 움직일 동료들을 철저히 익혀 나갔다.

그런 뒤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새로 도착한 지방 귀족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종종 치열하게 논쟁하기도 했다.

“거사가 성공하려면 목표가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거사를 앞당긴다면 아예 그럴 기회가 박탈되는 것 아니오?”

“맞습니다. 그래도 그 60주년 기념식이라도 열려야 목표가 밖으로 나올 텐데, 기념식 전으로 당기는 것은 조금 성급한 일이 아니었다 싶군요.”

“이 시국에 외부 기념식은 취소하겠지.”

“아니죠!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제국과 황권의 건재를 과시하고자 기념식을 진행할 수도 있겠죠.”

“자자! 이미 계획이 변경된 마당에 기념식이 열리느니 마느니 하는 말로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어요.”

“맞습니다. 어차피 목표가 집에서 나오든 안 나오든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우리는 의심하지 말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 됩니다. 이번 일은 쉽지 않지만, 그동안 우리의 준비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해냅시다!”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에 모인 사람들은, 들어올 때는 표정이 어두웠지만, 떠날 때는 결연한 의지와 높은 의기로 얼굴이 밝았다.

그렇게 손님들이 들어왔다 떠나기를 수차례, 2월 25일이 가까워지자 손님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다 23일에 손님이 딱 끊겼다.

와이젠 자작은 마지막까지 행사를 책임지면서 대금을 모두 치렀다.

전에 지불한 계약금을 제외하고 잔금 28,800골드를 수표로 준 것이다.

바덴은 깔끔하게 계산을 마무리해 준 와이젠 자작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다음에 이용하실 때는 더 성의를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다음에 이용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미스 고슬라. 여하튼 그동안 많은 손님을 대하면서도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 주어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또 봅시다.”

와이젠 자작이 여운을 남기며 떠나갔다.

바덴은 이번 행사가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예약을 받으면서 들었을 때는 분명 개혁 헌법 수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지방 귀족들이 모이는 친목회 성격으로 이해했는데, 기념식이 시작하려면 20일이나 남은 데다 반란 사건으로 흉흉해진 분위기로 볼 때 기념식 자체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모임이지?’

의아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서비스업 마인드로 철저히 무장된 바덴은 손님이 밝히지 않은 내용을 굳이 파헤치려 애쓰지 않았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와이젠 자작이 떠나자마자 자작나무숲 장원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동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이 별장의 책임자입니까?”

“그, 그런데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경찰입니다.”

사복 경찰이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내밀며 말했다.

직원들이 놀라자 바덴은 손을 들어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경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요새 이곳을 드나들었던 손님 명단을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안 됩니다. 영장을 제시해 주세요.”

사실 명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예약자 와이젠 자작 외에는 이름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바덴은 경찰에게 법적 절차를 요구했다.

신분이 높은 귀족이나 재산이 많은 사업가를 고객으로 하는 영업을 하는 상황에서 고객에 대한 정보를 쉽게 넘기는 사업장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눈살을 찌푸렸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기 어려운 상황이라 특별히 요청하는 겁니다. 안 되면 잡혀갈 수 있어요.”

경찰의 위협에도 바덴은 주눅 들지 않았다.

“헌법과 형사집행법에 의거하여 압수나 수색을 할 때는 영장을 제시하셔야죠. 아니면, 그에 갈음하는 증명서를 보여 주시든가요.”

경찰들이 와락 인상을 쓰며 위력을 보였다.

“사안이 얼마나 중한지를 모르는 모양인데······.”

“이반 황제께서 수립하신 헌법과 법체계를 경찰이 무시할 만큼 위급한 상황인가요? 그렇다면 그런 상황이라는 증명서를 보여 주세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지금 겁박하는 건가요?”

“······!”

바덴의 당당한 태도에 직원들은 ‘멋지다!’ 감탄하면서도 겁을 먹었고, 경찰들은 주춤 물러났다.

그때 뒤에 있던, 나이가 좀 더 많은 사복 경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법은 중요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 위급한 상황이에요. 나중에 국가를 상대로 하든 우리를 상대로 하든 소송을 거시고, 일단은 영장이나 증명서 없이 서류를 좀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위해 동행해 주셔야겠어요.”

그 사람의 손짓에 경찰들이 사무실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바덴은 경찰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다.

직원들이 자신을 본받아 저항하려 하자 바덴이 말렸다.

“다들 물러나고 포렌시스 변호사님, 지크프리트 판사님께 연락을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변호사와 판사의 이름이 나오자 경찰들이 행동을 멈추고 주눅 든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이 많은 경찰이 나서서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바덴에게 말했다.

“대단하시군요.”

“변호사거든요.”

“아, 정말입니까?”

바덴은 자신의 변호사 자격증을 보여 주었다.

“이반 황제 폐하께서는 평민과 여자에게도 길을 터 주셨죠. 여자에게 변호사가 될 길을 열어 주신 이반 황제께서 세운 법질서를 경찰이 무너뜨릴 줄은 몰랐어요. 경찰들도 이반 황제 폐하를 존경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에요.”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담······?”

나이 많은 경찰의 언행이 더욱 정중해졌다.

“미스 고슬라예요.”

“미스 고슬라.”

한참 동안 서류를 뒤지던 경찰들이 그것을 들고 자동 마차로 이동했다.

“같이 가시죠.”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 주셔야죠. 그래야 변호사님이 오실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이 든 경찰이 쓴웃음을 지으며 바덴과 지배인에게 자신들의 행선지를 알려 주었다.

“걱정 말아요. 금방 올 테니까.”

바덴은 지배인과 직원들을 안심시키고 경찰의 자동 마차에 올라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히 앉아 있었지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루산! 내게 용기를 줘요!’

변경에 있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

변경 1구역부터 6구역까지, 이미 사건이 발생한 7구역과 규모가 작은 8구역을 제외한 변경의 모든 구역에서 변고가 발생했다.

작은 구역에서는 파일럿 일부가 이탈해 열차를 탔고, 규모가 큰 5구역과 1구역에서는 상당수의 파일럿들이 본부를 장악하고 역을 점거한 뒤 화물차를 뜯어 멕 나이트를 싣고 출발했다.

어느 구역이든 목적지는 필센 제국의 수도인 노바였다.

제국의 황제와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단을 파견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 각 구역 변경 본부에서도 통제하지 못했다.

물론 변경부 특별 감찰단의 조사가 진행 중이기는 했지만, 7구역의 반란 소식을 듣기 전에 변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미 실패한 7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의도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을 가로막는 병력이 있었다.

- 정지! 정지하라! 명령을 거부하면 체포하겠다.

멕 나이트 부대가 육중한 바리케이드를 치고 마나 열차를 막아선 것이다.

- 무, 무슨 일입니까?

기관사가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다.

- 제국군 북방군 제3 기동 군단 소속이오. 변란을 대비해 승객을 조사해야겠소. 조사를 마칠 때까지 협조 바라오.

북방군 제3 기동 군단의 병사들이, 수도로부터 거사 일정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동하던 파일럿들을 체포했다.

그들은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검문에 잡힐 수밖에 없었다.

몇몇 파일럿들이 병사들을 밀치고 때리며 거세게 저항하거나 달아났지만, 열차 밖에는 많은 보병들뿐 아니라 멕 나이트들이 대기하고 있어 결국 전원 체포되거나 사망했다.

멕 나이트를 싣고 가던 변경 1군단과 5군단 반란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화차에 거대한 멕 나이트를 싣고 있어서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멕 나이트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기에 파일럿이 탑승할 시간도 없이 그들은 일거에 모두 잡히고 말았다.

오히려 이들을 체포한 북방군 제3 기동 군단 파일럿과 병사들이 놀랐다.

“군단장님은 변란이 일어날 것을 어찌 아시고 검문검색에 우리를 투입하신 거지?”

“우리 군단장님, 엄청난 능력자시라잖아. 동방군 시절에도 전공이 어마어마했고, 제국 기사 아카데미 교수 출신에, 비밀 임무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대! 당연히 남다른 정보통이 있으셨겠지.”

“와! 어쨌든 이거 이대로 노바까지 갔으면 난리 나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군단장님은 물론 우리도 포상이 상당하겠지?”

“그럼! 이 정도 전공이면 승진 가점은 당연히 붙어야지! 난 오늘부로 군단장님께 충성을 다하기로 했다!”

“난 이미 부임하실 때부터 충성하기로 했는데?”

“뭐라고? 하하하!”

변경 구역에서 일어난 반란 세력은 북방군 관할이 아닌 2구역과 6구역을 제외하고 모두 진압되었다.

보고를 받은 북방군 3군단장 아이젠 자작은 즉시 노바에 보고했다.

그리고 루산에게 편지를 보냈다.

<네가 보낸 편지 덕분에 변경 구역의 변란을 막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작전의 성격과 신규 멕 나이트 테스트라는 비밀스러운 요소로 인해 공적에 너를 제외했다만, 이번에는 포함시켜 보고를 올렸다.>

아이젠 자작은 아직까지 루산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제국군으로 데려와 크게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이 정도 공적이라면 군에서도 크게 쓰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편, 변경 2구역과 6구역은 멕 나이트를 운반하지 못하고 파일럿들만 노바로 떠났는데, 강화된 검문검색으로 인해 노바 관문에서 모조리 체포되었다.

15년을 준비한 노력치고는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반란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

“변경 7군단 사건 이후 표적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나중에 후회할지 모릅니다. 다 체포하시죠!”

“음!”

율리안의 말에 밤베르크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7구역 반란 사건이 터진 뒤에는 노바 경찰청장으로부터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들이 현재 눈여겨보고 있는 장소로 대거 이동했다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경 7구역 반란 사건 이후로는 경찰에서도 청결한 새벽 작전이 개혁 헌법 수립 60주년 기념식을 방해하려는 공화주의자들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란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지방 귀족들.

아마도 대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파일럿들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매일 드나드는 인원이 중복이 거의 없다면 수백 명에 달했다.

반란 세력이 그들 각자에게 멕 나이트를 공급할 정도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예상의 반의반만 되더라도 과연 경찰 기동 타격대로 진압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중이었다.

가장 극적인 상황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율리안을 황위와 가까운 위치로 올릴 생각이었는데, 이러다 모두 날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던 차였다.

“알겠네, 조카님. 청결한 새벽 작전을 마무리하도록 하지.”

밤베르크 백작은 곧바로 노바 경찰청장 에르젠 자작을 방문했다.

곧이어 노바 모든 경찰서로 명령이 전달되고 그동안 감시하고 있던 목표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찰 기동 타격대 멕 나이트들이 이동했다.

시간은 새벽, 목적지는 보름스 가문의 옛 장원 깊숙한 땅으로 현재 봐렌 철골이라는 회사가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

반란 세력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위한 청결한 새벽 작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군무부 감찰관 오스카와 수도 군단 4전단의 연락관이 작전에 함께하여 경찰 기동 타격대의 멕 나이트가 겨울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루산은 칼리슈의 안내로 가프 마법 연구소를 방문했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 부문 총책임자 가라로슈가 자신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보름스 기사님.”

“네, 가라로슈 님.”

“우르사는 책임지고 저희가 고쳐드리겠습니다. 혹시 바라시는 바가 있다면 반영해 드리지요.”

“몸체는 신화 공업사 부품으로 해 주세요.”

루산은 이 와중에도 신화 공업사의 우수성을 강조하려 했다.

“허허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대형 철퇴에 세르펜스 가죽을 여러 겹 덧바를 수 있을까요?”

“설마 멕 나이트 대전에 사용하실 요량이십니까?”

세르펜스 가죽은 마나 진동 대검으로도 잘 베이지 않는다.

물론 안 베이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수고가 많이 들었다.

마나 진동 대검과 정면으로 맞부딪칠 경우의 파손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경우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세르펜스 가죽의 높은 가격을 생각하면 손해일지도 몰랐다.

루산은 자신의 속셈을 들켜 민망했다.

우르사로 대검을 휘두르는 것도 물론 위력적이지만, 대형 철퇴를 사용할 때 우르사의 장점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벼랑길에서 적 멕 나이트와 싸울 때 적의 마나 진동 대검에 베이지 않는 대형 철퇴가 있다면 힘으로 다 쓸어서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굳이 전장이 아니어도 대형 철퇴의 내구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어 좋지 않겠는가.

루산은 미소를 짓고 넘어갔지만, 가라로슈는 루산의 뜻을 이미 짐작했다.

“후후, 기사님의 의도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고민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가라로슈가 루산을 이곳으로 부른 진짜 용건을 꺼냈다.

“사실 전에 약속한 대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기사님도 아시다시피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겨 틈이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일단 툴롱 마법 연구소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루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야기를 해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 사건이 끝나기 전이니 지금이라도 들려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마법 연구소의 폐쇄성은 워낙 유명했고, 약속을 엄격히 해석하면 아직까지 레오파드가 팔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프 마법 연구소는 자신을 도와줄 의무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루산은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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