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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09화 (109/450)

109. 파워 아머, 수리 다 됐나요?

109. 파워 아머, 수리 다 됐나요?

마법 연구소의 역사는 멕 나이트의 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전에도 마나의 법칙을 혼자서 또는 여럿이 함께 연구하는 마법사들이 존재해 왔으나 마나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대하고 복잡한 병기, 멕 나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모가 크고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300여 년 전 최초로 멕 나이트를 고안한 대마법사 하이네켄은 원시의 땅과 멀지 않으면서도 철광 산업이 발달한 르망 지방에 마법 연구소를 세웠고, 그곳에서 최초의 멕 나이트가 만들어졌다.

하이네켄 사후 그의 유산을 계승하고 정통성을 잇는 문제로 르망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은 여러 갈래로 찢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멕 나이트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들 마법 연구소는 점점 더 늘어났다.

원래 멕 나이트 제작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다른 분야를 연구할 때에도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마법 연구소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연구소 간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마법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멕 나이트와 작동 원리가 크게 다른 마나 열차, 마나 선박, 마나 자동 마차, 마나 공장이 등장했다.

물론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당장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놀라운 열매들이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멕 나이트와 각종 산업 시설을 확보하기 원하는 왕과 영주들이 마법 연구소 간의 경쟁과 갈등을 이용하지 않을 리 없었다.

유리한 조건과 각종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다른 마법 연구소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약속하여 마법 연구소들을 자신의 영토로 유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안을 받은 마법 연구소들은 권력자와 국가로부터 인정받았음을 자랑스러워하며 기꺼이 해당 지역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족쇄였다.

세속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왕과 영주를 위해 봉사하는 기술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법 연구소의 운명이 해당 왕과 영주의 운명에 좌우되는 처지가 되었다.

유서 깊은 마법 연구소도 해당 국가의 몰락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구속의 시대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 많은 마법 연구소의 대표들이 모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

“세속 권력과 결합하지 않은 자유로운 연구야말로 마법 연구의 본질이다!”

마법 연구소들끼리 경쟁하더라도 국가나 권력자들과 결탁하지 않기로 하는, 이른바 자유 연구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많은 마법 연구소들이 영주나 국가와 밀접하게 결합돼 있었고 그런 마법 연구소는 강력하고 힘이 센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선언은 실질적 구속력이 없는, 말 그대로 선언적 효과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선언 이후를 자유 선언 시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마법 연구소들과 무관하게 세상은 변해 갔다.

아우로라 연합군이 오카수스 대륙으로 쳐들어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뭉치고 합쳐져 필센 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여러 나라, 각 지방에 흩어져 있던 마법 연구소들은 자신들의 뜻과 무관하게 필센 제국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필센 제국 황제의 힘은 점점 강해지다 마침내 이반 황제 때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이반 황제는 제국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바 동부에 공업 지구를 조성하고 그 북쪽에 마법 연구 지구를 만들어 강제 이주 명령을 내렸다.

애초에 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마법 연구소들뿐 아니라 자유 연구 선언에 참가했던 마법 연구소들도 상당수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마법 연구소들은 강력한 이반 황제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었다.

자유 연구 선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간 연구소도 있고, 전쟁 중에 끌려간 마법사들도 있지만, 어쨌든 오카수스 대륙의 마법 연구소들은 이런 역사를 거쳐 왔지요.”

가라로슈의 말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산도 마법 연구소에 대해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세한 내용은 전혀 몰랐다.

장막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사님이 궁금해 하시는 툴롱 마법 연구소는 과거 여러 연구소의 마법사들을 모아 자유 연구 선언을 이끌어 낸 곳입니다.”

“······!”

“유명한 멕 나이트를 생산하여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마법 연구소는 아니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르망 마법 연구소의 한 갈래로서 유서 깊은 연구소이면서 자유 선언 연구소들의 구심점이죠.”

“아!”

루산은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느라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필센 제국에 대한 반란을 주도하거나,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기꺼이 도울 이유는 확실하군!’

루산이 물었다.

“전에 마법 연구소들끼리 교류하는지 질문했을 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셨죠. 이번 반란 사건과 관련하여, 자유 선언 연구소들이 힘을 합쳤을 가능성은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말씀 민망하지만, 우리는 노바 동부 공업 지구 조성 당시 이반 황제가 지정한 이주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거든요. 물론 우리는 변경에도 마법 연구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허허허!”

가프 마법 연구소는 다른 마법 연구소들과 교류가 거의 없어서 잘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일단 툴롱 마법 연구소가 여전히 다른 자유 선언 연구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루산은 생각했다.

마법사들과 마법 장비와 마법 기술을 많이 동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느슨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다.

그때 가라로슈가 말했다.

“툴롱 마법 연구소가 여전히 구심점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아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마법사들조차도 말입니다.”

“그게 뭡니까?”

“자코 왕국에서 만든 멕 나이트 아트라스를 아시지요?”

“당연하지요.”

7미터짜리 멕 나이트가 대세인 오늘날 무려 9미터나 되는 괴물을 만들어 낸 자코 왕국.

아트라스는, 물량에는 장사 없다는 교훈을 남기고 퇴장했지만, 상당한 충격을 준 멕 나이트였다.

우르사가 사용하는, 연비는 나쁘지만 강력한 엔진, 9미터나 되는 대검이 바로 아트라스가 사용했던 것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자코 왕국이 망하고 아트라스를 만든 마법사와 엔지니어 상당수가 툴롱 마법 연구소로 갔습니다.”

“······!”

루산의 놀라움은 툴롱 마법 연구소가 자유 선언 연구소들의 중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반란 세력이 보름스 가문의 땅 깊숙한 곳에서 시설을 짓고 무슨 일을 꾸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멕 나이트 반입이 어려운 노바의 특성상 안에서 제작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왔었는데, 멕 나이트라는 것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 역시 아트라스 제작에 참여한 마법사였으니까요. 그때 뿔뿔이 흩어졌는데, 다시는 국가와 엮이지 말자는 생각으로 저는 변경에 있는 가프로 들어왔고 다른 동료들은 자유 선언 연구소의 핵심인 툴롱으로 들어간 것이죠.”

“아!”

가라로슈의 놀라운 이야기에 루산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칼리슈마저 입을 떡 벌렸다.

칼리슈는 스승이 아트라스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야기는 아예 몰랐다.

가라로슈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굳이 할 필요가 없었고, 워낙 바쁘게 지내 오느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변경에서 마나 연료나 추출하고 윤활유나 만들던 마법 연구소에서 뜬금없이 고성능 멕 나이트를 만들더라니! 가라로슈가 아트라스 제작에 참여한 마법사였구나!’

그러고 보면 우르사와 레오파드, 자신과 가프 마법 연구소는 처음부터 특별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가롭게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툴롱 마법 연구소가 멕 나이트 생산 능력을 갖췄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가프에서는 저에게 충분한 자금과 시간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툴롱에서는 어쨌는지 모르지요. 그럼에도 인력으로만 보면 가능하지요.”

루산은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이 변경 7군단을 막았고 나머지 변경 구역은 아이젠 자작이 막아 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외부의 위협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내부는 그리 힘을 쓰지 못하리라 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닐지도 몰라!’

분명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이 노바 안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강력한 멕 나이트로 노바 안쪽에서 관문 요새를 파괴하면 남방군이 - 여전히 남방군이 반란에 가담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 쉽게 노바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받아 본 스텐커의 편지에 의하면 율리안의 외숙 밤베르크 백작은 군대가 아닌 경찰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력으로 과연 충분할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변경 7군단 반란 사건이 터지고, 그 소식이 노바로 전달되어 다른 조치들이 취해졌겠지만, 멀리 떨어져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없으니 불안했다.

“가라로슈 님.”

“네, 보름스 기사님.”

“혹시 전에 제가 드린 파워 아머, 수리 다 됐나요?”

“그거야 오래전에 수리가 끝났지요. 다만, 해당 부서에서 연구 중이라 분해 상태일 겁니다.”

“조립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가라로슈는 대답 대신 루산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기사님, 노바는 기사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쪽에서 알아서 손을 쓰고 있겠지요. 기사님께서는 이미 엄청난 일을 해내셨으니 묵묵히 참고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제가 손도 쓰지 못한 채 예측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어 반란이 성공한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흐음···,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라로슈 님!”

파워 아머 연구 부서에서 빠르게 조립을 마치고 마나 연료봉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칼리슈가 루산에게 당부했다.

“유의하실 점은 파워 아머용 대검은 마나 진동 기능을 쓸 수 없다는 겁니다.”

마나 진동 기능을 갖춘 무기를 소형으로 만드는 기술은 아직까지 없었다.

“어색하나마 멕 나이트 진동 단검에 손잡이를 붙여 만들어 봤습니다. 단검이라지만, 멕 워커나 멕 나이트가 사용하는 것이라 무척 길고 두꺼워 무게 중심이 맞지 않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가는 동안 익숙해져 볼게요.”

“사용하실 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칼리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산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저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코부스 역에서 변경 방면 철로는 아직도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노바 방향 철로는 이미 복구가 끝나 열차가 다녔다.

파워 아머는 무게가 상당하여 혼자 들거나 착용하기가 까다로웠다.

사람이 더 필요했다.

“시에나, 바이크, 노바로 출장이다.”

“야호!”

“전대장님, 이거 무단이탈 아닌가요?”

“어차피 8구역으로 가는 철로, 복구 덜 됐잖아. 걸어서 돌아갈 거야? 우리만 얘기 안 하면 누가 알아?”

“모리츠, 파비안, 그리고 파펜······.”

“그럴 사람들 아니야.”

바이크는 착실한 파일럿인 척 괜히 한번 따져 본 것이었다.

변경 8구역에서 루산 보름스가 무단이탈을 했다고 문제 삼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시에나와 함께 노바로 가는 여행, 재밌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알겠습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커다란 나무 상자에 파워 아머와 개조된 마나 진동 단검을 넣어 화물칸에 실었다.

루산은 바이크, 시에나와 함께 열차에 올랐다.

칼리슈가 플랫폼에서 손을 흔들자 루산 역시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노바행 열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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