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황제의 핏줄이니라
111. 황제의 핏줄이니라
기가스 3대와 로쿠스타 300여 대로 이루어진 대규모 기동 병력은 옛 보름스 가문의 땅을 가로질러 북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그곳에는 노바 서쪽 관문이 있었다.
서쪽 관문을 지키는 수도 군단 3전단.
북방군 제3 기동 군단장으로 승진 이동한 아이젠 자작이 전임 전단장이었던 이 부대는, 반란군의 규모를 보고 희생을 줄이기 위해 멕 나이트 킬러라 불리는 마나포를 떼어 옮기며 물러났다.
반란군은 3전단 병력을 무찌르지는 못했지만, 관문을 장악하고 멕 나이트 킬러 포대를 제거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이제 변경에서 고생한 동지들이 피해 없이 노바로 들어올 수 있소!”
“변경 군단 병력과 남방군 그리고 우리, 이 정도면 확실히 노바를 장악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이오!”
변경 7군단 반란군이 진압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들 역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변경 구역의 동지들이 훨씬 많았기에 변경 병력이 합류하면 남방군이 없더라도 수도 군단과 근위대를 충분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변경의 동지들은 언제 도착하는 것이오?”
“글쎄요. 워낙 거리가 멀고 구역마다 형편이 달라서 시간이 차이가 날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노바에 도착해 대기한 시간이 벌써 여러 날인데, 변경의 동지들은 아직 한 사람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 좀······.”
남방군에 이어 변경 군단에 잠입해 있던 동지들도 소식이 없자 노바에 잠입해 있던 남방군 파일럿들과 지방 귀족들은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어쨌든 남쪽 관문, 서쪽 관문, 두 곳을 차지하여 강력한 원군이 무사히 합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그들은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힘을 내기로 했다.
누구 말마따나 기가스 세 대가 앞에서 지키고 로쿠스타 300대가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하면 어떤 병력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문을 다시 탈취당하지 않도록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이제 병력을 둘로 나눠 한 쪽은 북쪽 관문을 차지하고 다른 한쪽은 궁전으로 가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요!”
남쪽과 서쪽 관문을 차지한 이유가 아군의 진입을 돕기 위해서라면 북쪽 관문을 장악하려는 까닭은 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북방군이 들어오면 거사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북쪽 관문을 일단 막고 수도 군단, 근위대를 빠르게 처리해 반정을 성공시킨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반란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 북쪽 관문 방면과 황궁 방면으로 이동했다.
서쪽 관문에서 북쪽 관문으로 이동하는 길은 노바 외곽이라 인적이 드물었지만, 황궁 방면은 사람과 마차, 자동 마차가 도로를 꽉 채우고 있는 길이었다.
그런 곳에 갑자기 멕 나이트 150여 대가 움직이니 도시는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마차를 버리고 달아나며 비명을 질렀다.
- 노바 시민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황제의 전횡을 막고 필센 제국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나선 정의로운 군대입니다.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 잠시 큰 도로를 피해 있으면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입니다.
선두의 멕 나이트가 외부 확성기로 외쳤지만, 노바 시민들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대로가 갑자기 마비가 되었다.
[이거야 원, 내가 악당이 된 것 같군.]
그 모습을 지켜본 지방 귀족 출신 파일럿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이 밀려왔으나 결국 거사에 성공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궁 방면으로 이동하던 반란군 부대는 동지들과 아군 멕 나이트를 실은 열차가 곧바로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노바 역을 확보하고 이곳을 지키기 위해 빌딩과 빌딩 사이에 방어선을 펼쳤다.
말은 자신들로 황궁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떠벌렸지만, 근위대를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남쪽 관문, 서쪽 관문을 제압하고 노바 역을 확보해 방어선을 펼쳐 아군의 빠른 도착을 기다리는 것은 아주 오래된 계획이었다.
그들은 계획에 따라 착착 움직여 온 것이다.
어쨌든 거병한 이후 연이어 승리한 것은 사실이었고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노바 안에 있는 귀족파 동지들의 행동을 촉구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노바의 귀족들 일부가 거사에 가담하기도 하고 음식과 의복을 보내 주기도 했다.
로쿠스타에 탑승한 지방 귀족들이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남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아군 병력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민들이 버리고 떠난 마차와 자동 마차가 가득한 도로 위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
“흐음······!”
경찰 기동 타격대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생존자로부터 전해 들은 밤베르크 백작은 신음을 흘렸다.
반란군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놀랐고, 율리안의 말을 들었더라면 미리 차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경찰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선 것이다.
이후 수도 군단 4전단의 패배와 남쪽 관문 함락 소식, 수도 군단 3전단의 후퇴와 서쪽 관문 함락 소식이 연달아 들려왔다.
반란군이 병력을 쪼개 북쪽 관문을 공격하고 노바 역에 방어선을 구축했다는 소식까지 들었을 때는, 밤베르크 백작은 놀라움을 넘어 의혹이 일었다.
“이건 너무 순식간에, 비정상적으로 밀리는 건데?”
“네? 뭐가 비정상이라는 말씀인가요?”
반란 음모를 파악했음에도 결국 막지 못한 데 대해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율리안이 외숙에게 되물었다.
밤베르크 백작이 말했다.
“다름 아닌 필센 제국의 심장부가 이렇게 쉽게 뚫리다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야.”
“몰래 그렇게나 많은 멕 나이트를 만들고 또 많은 파일럿들이 가세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밤베르크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군이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었어. 그 전에는 몰랐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변경 7군단 반란 사건이 터지고 진압이 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온 뒤에도 제국군이 한 일이라고는 노바로 들어오는 검문검색을 강화한 것밖에 없단 말이지. 물론 변경 군단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계획되어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소극적으로 움직인다고? 무려 반란 사건인데?”
“듣고 보니 그렇군요!”
“게다가 반란 세력 감시를 위해 경찰을 그렇게나 많이 동원했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개입이 없었다는 것도 이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지. 필센 제국의 황제, 정부, 군대가 그렇게나 무능한가? 아닌 것 같은데······.”
“음!”
율리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밤베르크 백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아! 어쩌면 조카님 말씀이 맞는지도 모르겠군. 황제 폐하를 뵈어야겠어.”
“하지만, 외숙! 이제 와서 황제 폐하를 뵙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조카님, 나는 필센 제국의 신하라네. 어쨌든 우리나라에 변란이 일어났으니 할 일이 있는지 도움 될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도와야지.”
“아!”
율리안은 진정한 신하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러마 밤베르크 백작이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로 알아보고 싶네. 조카님의 예상대로 황제 폐하께서 그런 분이신지.’
오랜 친구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무지막지한 방법을 쓸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황제가 무능해서 이렇게 당한 것과 오히려 그 반대인 것, 어느 쪽이 더 안 좋은 쪽인지 밤베르크 백작은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밤베르크 백작은 궁전으로 출발했다.
***
오베론 공작은 뒷짐을 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령관님.”
오베론 공작의 첫째 아들 바트였다.
40대 후반인 그는 현재 남방군의 제1 기동 군단장직을 맡고 있었다.
오베론 공작이 몸을 돌렸다.
“왔느냐?”
“네. 1군단, 2군단, 출동 준비 완료했습니다.”
“음! 가자!”
“그런데 아버지!”
집 밖에서는 좀처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공과 사가 확실한 아들이 사령관 집무실에서 아버지라고 부르자 오베론 공작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 정녕 루트의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까?”
루트는 오베론 가문의 둘째 아들이었다.
“저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오베론 공작이 콧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방 귀족들, 오랫동안 준비해 온 변경 병력으로도 수도 군단과 근위대를 제압할 만합니다. 거기에 우리까지 가세하면 거사는 확정적이지 않습니까? 그동안 쌓아 올린 평판이 있습니다. 많은 귀족들이 우리를 지지할 겁니다.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무엇이 두렵냐고?”
“네!”
“황제가 두렵다.”
바트는 놀랐다.
아버지가 황제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반 황제가 살아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 기회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이반 황제의 핏줄이니라. 어쩌면 너희가 말하는 그 선택을 내가 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
“너는 고작 재상의 자리를 받고자 남방군을 바치느냐고 말할지 모르나 이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선택지는 없었다. 선택지가 있다고 착각했을 뿐. 심지어 나 역시도 그랬지. 혹시나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무수히 많은 밤을 고민했다.”
“······.”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남방군, 변경, 지방 귀족들을 다 합쳐도 황제파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야.”
“······!”
“이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나와 우리 가문에 기회를 준 것이다. 살아남을 기회를.”
“정녕, 프리드리히 황제가 그리 대단합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이반 황제의 핏줄이라고.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야.”
바트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리가 가지 않아도 어차피 반란군은 끝장이다. 이제 제국에 귀족파는 남아 있지 않을 거야. 그리고 프리드리히 황제는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일치단결한 국민을 데리고 대전쟁을 치르게 되겠지. 나는 얼마간 손가락질을 받겠지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제국의 영광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천재도 늙으면 머리가 흐려지고, 위대한 왕도 권력 맛에 취하면 스스로 허물어지는 법이니까. 내가 이루지 못해도 너에게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토대를 마련해 놓을 것이야.”
바트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러나 한 가지가 걸렸다.
“루트는 어떻게 됩니까?”
“살려야지.”
오베론 공작이 짧게 대답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바트가 절도 있게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멕 나이트 수십 대를 싣고 있는 특별 수송 열차에 올랐다.
마침내 남방군 멕 나이트와 파일럿 그리고 병력을 실은 열차가 출발했다.
열차는 그 한 대로 끝나지 않았다.
차량 기지와 철로 저 뒤쪽에도 멕 나이트를 실은 특별 수송 열차가 무려 열 대나 대기하고 있다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따라붙었던 것이다.
오베론 공작은 뒤로 휙휙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결심을 했다고 복잡한 마음이 깨끗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파든 황제파든 배신자,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조롱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15년 전.
이반 황제가 본격적으로 국정에 참여하고 있던 황태자 프리드리히와 자신을 불렀을 때가 떠올랐다.
“오베론 공작, 프리드리히가 할 말이 있다는군.”
“제게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공작님.”
“말씀하시지요.”
“아우로라 연합은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들이 어떤 일을 했을 때 우리 제국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될까요?”
“글쎄요.”
“내분을 유도하는 것이죠.”
“······!”
“이미 많은 간첩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상당수를 파악하고 있지만, 당연히 우리가 모르는 자들도 암약하고 있을 겁니다.”
“흐음······.”
“그자들을 내버려 둘 생각입니다.”
“아니 왜······?”
“그래야 우리가 자기들 뜻대로 되어 간다고 아우로라 연합을 안심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은 전쟁을 안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내전이 일어나 우리가 피폐해지고 서로 미워하고 혼란스러울 때 치려고 하겠죠. 그래야 자기들도 피해가 줄어들 테니까요. 그동안 우리도 시간을 버는 겁니다.”
“아!”
“하지만, 저들의 계획대로 끌려 다녀서는 곤란하죠. 우리가 은밀하게 끌고 갈 필요가 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공작께서 악역을 좀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
오베론 공작은 늙은 괴물과 젊은 괴물, 두 괴물 앞에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계획은 자연스럽게 귀족파를 쓸어버리고 황제의 권력을 더욱더 강화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간파했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두 괴물의 의도를 역이용해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파를 등에 업고 그동안 변경에 뿌려 놓은 힘과 아우로라 연합의 조력을 받아 대사를 도모해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프리드리히의 정보력과 막강한 황제의 힘 앞에서는 부질없음을 깨닫고 그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이 계획을 수행해 온 것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오베론 공작은 창밖을 보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남방군 기동 군단을 실은 열차들이 줄지어 북쪽으로 달렸다.
그 시각, 북방군 제1 기동 군단의 멕 나이트와 파일럿을 실은 열차들도 남하하고 있었다.
노바 인근의 지방군 병력 역시 접근하고 있었다.
수도 군단과 근위대 또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전쟁을 앞두고 그 제물로 마지막 남은 귀족파를 일거에 소탕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