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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22화 (122/450)

122. 가진 놈들이 더하다

122. 가진 놈들이 더하다

아우로라 연합 본부가 있는 페르보 제국의 항구 도시 메르신.

페르보 제국의 젊은 공작 갈릭이 군함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자동 마차를 타고 이동해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아직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지 않아 각 나라에서 온 외교관과 장군들이 회의장 밖에서 인사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지간한 왕국보다 영토가 넓고 군사력이 강한 굴다크의 공작 갈릭을 보고 먼저 인사했다.

갈릭은 그들에게 고개만 살짝 까딱이며 답례하고 자국의 장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회의장 분위기는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페르보 제국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결국 페르보 제국이 수립한 필센 약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소. 15년의 시간을 벌어 주었다 이 말이오.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사과를 하고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책임을 져야죠. 이번 일을 어물쩍 넘어간다면 어찌 협력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연합국에 병력 파병을 요청하려면 이 문제를 먼저 제대로 짚고 나서 논의를 해야 할 겁니다.”

평소 페르보 제국이 연합의 의사 결정을 주도하던 것을 못마땅해 하던 루한 왕국, 시바스 왕국, 아르빌 왕국 등 강국들과 그 주변국들이었다.

페르보 제국 쪽 참석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젊은 굴다크 공작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고 말했다.

“뭔가 단단히 오해들을 하고 계신 것 같군요.”

30대 초반의 젊은 공작은 첫마디부터가 도발적이었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파병을 요청하려면 그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고요? 파병을 요청해요? 마치 이 전쟁이 우리 페르보 제국을 위한 전쟁인 듯 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아우로라 연합은 회원국 모두의 이익을 위한 단체이지 페르보 제국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억지로 가입하게 한 적 있습니까? 여러분은 페르보 제국을 위해 봉사하러 여기까지 온 건가요?”

공식적인 자리에 적절하지 않은 과격한 표현에 다른 나라 참석자들이 인상을 썼지만, 굴다크 공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원시의 땅을 차지해 괴수 부산물을 확보하는 것은 아우로라 대륙 모든 나라의 오랜 소망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필센 제국에 끌려가게 되고 국가 발전에 큰 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대전쟁에서 우리는 단합하지 못해 많은 피해를 입고 패했습니다. 연합국 중 어느 나라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까? 바로 우리 페르보 제국입니다. 필센 약화 계획 실패의 책임을 지라고요? 다들 찬성했던 일 아닙니까? 여기 참석하신 분들의 본국에서는 당시 전쟁을 주장했습니까? 모두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는 상태라 인적, 물적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전쟁 중단을 주장했지요. 그리하여 우리 제국이 나서서 장기 계획을 수립했고 모두가 승인했던 것 아닙니까?”

굴다크 공작은 대전쟁에 직접 참여한 세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처럼 대전쟁에 대해 잘 알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대전쟁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굴다크 가문의 이런 역사와 현 굴다크 공작이 남부 식민지 전쟁에서 보인 빼어난 전공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발하지 않고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실패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 또한 우리 제국입니다. 공들여 키워 온 요원들을 많이 잃었어요. 무슨 책임을 더 지라는 거죠?”

사람들이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굴다크 공작이 심호흡을 하더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분, 지난 15년 동안 시간을 번 것은 필센 제국만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피해를 복구하고 전비를 충실히 갖춰 왔습니다. 앞서 벌어진 대전쟁에서 우리는 왜 패했는가? 단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전철을 다시 밟으려 하십니까?”

“음!”

참석자들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 나왔다.

“단합하기만 하면 우리는 네 배 이상의 전력으로 오카수스 대륙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소모적인 책임론 대신 신속하고 효과적인 회의를 진행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페르보 제국은 연합군 총사령관 자리를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

페르보 제국의 책임 있는 태도에 결국 연합국 대표들은 필센 제국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는 계획에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더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페르보 제국을 믿고 연합국 총사령관을 페르보 제국에서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페르보 제국은 이를 수락하고 곧바로 작전 계획과 연합군 편제 회의에 들어갔다.

큰 전쟁이라 큰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리고 아우로라 연합군은 계속해서 전쟁 계획을 수립하고 작전을 가다듬어 왔기 때문에 참석자들 모두가 대강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첫째, 오베리 왕국에 상륙해 오카수스 북쪽을 뚫고 들어간다.

둘째, 아라드 왕국에 상륙해 오카수스 남쪽을 뚫고 들어간다.

셋째, 부르가스에 주둔해 있는 필센 제국 동방군을 저지하고 더 나아가 이를 섬멸하여 부르가스를 완전히 탈환한다.

넷째, 네세베르를 막고 부르가스를 함께 공략한다.

다섯째, 해군으로 필센 제국군의 해상 운송을 저지한다.

여섯째, 필센 제국 본토 동쪽 해안에 상륙한다. 오베리 방면군, 아라드 방면군과 협력하여 세 방향에서 필센 제국을 공격한다.

“페르보 제국은 연합의 함선을 통할하여 필센의 해군을 견제하고 본토 상륙을 시도할 것입니다. 굴다크 공작은 굴다크와 연합의 북부 병력을 이끌고 오베리 방면을 공격합니다.”

연합군 총사령관이 된 페르보 제국의 코룸 공작이 정식으로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아라드 방면은 시바스 왕국이, 부르가스 방면은 아르빌 왕국이, 네세베르 방면은 루한 왕국이 사령을 맡아 연합군을 지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각국의 역할과 동원 병력 규모가 확정되었다.

이미 연합의 모든 나라들이 전쟁에 대비해 병력을 동원한 상태였지만, 그때에 비해 동원 규모가 3할 정도씩 추가되었다.

끝장을 보기로 한 것이다.

동원된 병력이 이동하고 추가된 병력을 소집하느라 아우로라 대륙의 모든 나라가 분주히 움직였다.

***

멕 나이트를 실은 대형 수송함들이 항구를 가득 메우고, 이들 호위하기 위한 전함들이 바다를 삼엄하게 경계했다.

굴다크의 공작 갈릭이 배에 올랐다.

“전체 차렷!”

착!

항구에 도열한 의장대와 군악대가 구령에 맞춰 꼼짝도 않고 섰다.

“경례!”

착!

의장대가 절도 있게 경례하고 군악대가 승리의 찬가를 힘차게 연주했다.

빰빰빰빠- 빰빠바바-

빠라빠라밤- 빰빠라라밤-

굴다크 공작 역시 경례로 답했다.

척!

굴다크의 기사들 역시 항구에 모여 있는 군인들과 백성들을 향해 경례했다.

척!

굴다크의 멕 나이트 600대와 2개 사단 병력을 실은 수송 함대가 항구를 떠났다.

그들은 먼바다에서 다른 나라 항구를 출발한 연합군 수송 함대 수십 척과 만나 규모를 점점 불리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수송 함대 규모는 어느새 150척을 넘었고 이를 호위하기 위한 군함도 무려 50여 척이나 되었다.

오베리 왕국 앞바다에서 적의 상륙을 감시하기 위해 오가던 필센 제국의 군함들이 적의 규모를 보고 감히 교전하지 못하고 멀리서 수만 헤아리다 물러났다.

오베리 왕국의 국왕이 친히 나와 아우로라 연합군을 환영했다.

그 순간 다른 전선에서도 아우로라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르가스, 네세베르 방면에서는 탐색전이 시작되었고, 아라드 방면으로는 시바스 왕국의 자라 공작이 이끄는 병력이 수송 함대를 타고 와 상륙했다.

시바스 왕국, 페르보 제국, 루한 왕국, 기타 연합에 속한 군소 왕국의 멕 나이트 300대와 2개 사단 병력을 내려놓은 수송 함대는 곧바로 2차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돌아갔다.

한편, 필센 제국의 넓은 동쪽 해안에서는 제국의 군함 300여 척이, 아우로라 대륙 서쪽 해안에는 연합군 함선 250여 척이 적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철저히 경계하고 있었다.

마침내 제2차 대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필센 제국에서 반란이 일어난 지 두 달 만이었다.

***

멀리서 전쟁 소식이 들려왔지만, 변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변경 사람들은 그저 흥미로운 싸움 이야기를 듣는 정도로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변경에 적응하고 정착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필센 제국이 설마 패하겠느냐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전쟁이 제국 본토가 아닌 주위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경각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칼리슈가 루산을 찾아왔다.

“기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칼리슈 님.”

“우르사의 수리가 생각보다 늦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님께서 허락만 하시면 새로운 시험을 해 보려고요.”

“무슨 시험을 하신다는 거죠?”

“기사님이 가져오신 기가스 엔진을 탑재해 볼까 하고요.”

루산이 봐렌 철골에서 빼돌린 미완성의 엔진.

다행히 아트라스 엔진과 뿌리가 같아 가라로슈가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미완성의 엔진을 완성해 내고도 새로운 몸체에 새로운 엔진을 적용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예상 출력이 2.8을 넘어가더라고요. 허실 없이 출력을 동작으로 옮기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아! 그거라면 저야 괜찮습니다. 오히려 성능을 높이는 일인데요.”

“다행이네요.”

루산이 기쁘게 승낙하자 칼리슈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루산이 우르사로 얼마나 많은 실적을 올렸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대형 멕 나이트가 나오겠군요?”

“하하하!”

칼리슈가 멋쩍게 웃었다.

우르사에 아트라스 엔진과 기가스 엔진을 탑재해 연구하면서 기존의 멕보다 훨씬 큰 멕 나이트를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철소 비용을 줄여 주는 연구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습니까?”

루산은 생각난 김에 물었다.

“빠르면 금년 후반, 늦어도 내년까지는 연구가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아! 네.”

“연구가 끝나는 대로 피닉스 제철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아라드 왕국이 교전을 피하고 내륙과 산으로 피해 전력을 보존하고 있답니다.”

루산은 아라드 왕국 전황을 들을 수 있는 소식통이 없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수긍했다.

여러 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필센 제국은 당장 아라드 왕국을 구원하러 가지 않을 것이다.

전쟁 상황을 보고 나서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때까지 아라드 왕국은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마리노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얻은 경험이 있다면 강세인 적을 상대로 싸우지 말고 산으로 피하라는 것이다.

비록 마리노 공화국으로부터 노획한 멕 나이트의 수가 상당하다지만, 모두 수리를 마친 것도 아니고 노획한 멕의 절반가량을 필센 제국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여전히 아우로라 연합군에 맞설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산악형 멕 나이트를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 충돌을 피한다!

아라드 왕국으로서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왕국의 해안 지방부터 차근차근 점령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다시 피란민이 들어오겠구나!’

루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칼리슈가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생산 설비 증설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리고 생산 공정을 갖춘 시설부터 레오파드 제조를 시작했죠. 그렇게 해서 현재 005 모델 여섯 대를 만들었습니다.”

루산은 깜짝 놀랐다.

레이크 시티 생산 설비가 완공될 때까지 최소 2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완성된 구간은 생산을 시작하고 있었을 줄 몰랐던 것이다.

‘가프 쪽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말 악착같이 하는구나!’

당장 멕 나이트 한두 대 못 팔아도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엄청나게 부유한 마법 연구소라 이렇게나 억척스럽게 한 대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진 놈들이 더하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어.’

루산은 저절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라드 쪽에서 일단 만든 것만이라도 보내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부스에서 만든 003 모델 한 대, 스피디 두 대, 레이크 시티에서 만든 005 여섯 대, 총 아홉 대를 운반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

결국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루산은 고민하는 척하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이틀 뒤 새벽에 출고장에서 뵙죠.”

루산은 율리안과 트리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멀리 원정 사냥을 떠납니다. 한 달 넘게 걸릴 거예요.”

“음! 드디어!”

트리어가 2전대 사냥 팀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부장님.”

율리안은 나쁜 짓을 처음 해 보는 소년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숨기고 루산을 걱정해 주었다.

“걱정 마세요.”

출발 당일 새벽.

루산은 은빛 사자 메달과 은빛 사자 검을 챙겼다.

눈을 비비고 나와 식사를 차려 준 클라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까지 대검을 가져가신 적이 없지 않아요?”

멕 나이트 파일럿이 맨몸으로 싸울 일은 없었다. 그때는 이미 불행한 상황인 것이다.

“이번에는 필요할 것 같아서.”

루산이 빙긋 웃으며 대답해 주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클라크의 배웅을 받고 집을 나와 003을 타고 레오파드 생산 단지 출고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상당히 많은 파일럿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루산, 바이크, 시에나, 모리츠, 파비안, 레보르크.

기존 3전대 파일럿 6명은 자신이 타던 멕 나이트를 타고 왔고, 오토를 비롯한 신규 대원 9명은 맨몸이었다.

9명의 신규 파일럿이 새로운 레오파드를 탔다.

새로 만든 레오파드는 등짐을 지고 있었는데, 마나 연료봉과 윤활유를 비롯한 각종 멕 나이트 소모품을 잔뜩 싣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추가 비용을 받기로 한 밀수품이었다.

루산은 칼리슈, 켐니츠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003에 올랐다.

[출발한다!]

츠쿵- 츠쿵- 츠쿵- 츠쿵-

루산의 003을 필두로 전조등을 켠 멕 나이트 15대가 새벽의 어둠을 뚫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아라드 왕국에는 희망을, 루산과 변경 파일럿들에게는 큰 수입을 안겨 줄 레오파드 밀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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