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사람이 반달을 만나 행복을 완성한다
127. 사람이 반달을 만나 완전한 행복
루산은 레오파드라는 이름과 도안을 공짜로 사용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군용 간편식이 맛이 없어서 세간의 평가가 나빠진다면 가프 마법 연구소에 손해가 되겠지만, 바덴은 그렇게 허술하게 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의도대로 모든 장병과 모든 국민에 레오파드의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면 가프 마법 연구소에 훨씬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레오파드에 대한 인상이 좋아져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판매 향상으로 이어진다 해도 결국 루산과 바덴에게도 이익이기 때문에 굳이 홍보해 준 대가를 따로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사업을 하는 관계라지만,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모습은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간편식이 인기를 얻으면 결국 레오파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요.”
“이 제안을 한 사장님은 무상으로 사용할 권리를 달라고 했지만, 가프 마법 연구소에 큰 도움을 주신 만큼 가프에서도 사장님에게 도움을 준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레오파드에 대해 더 좋은 인상을 얻을 기회도 얻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루산은 바덴의 장원 별장 프로젝트를 설명해 주었다.
“노바에 귀족 자녀들이 방학 동안 많이 찾아오는 캠프 같은 곳이 있습니다. 체험, 휴식, 수련을 위한 곳이죠. 전시이니 역사 교육, 체력 단련, 검술 훈련 같은 것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검투용 멕 나이트를 도입할 생각이라고 하네요. 레이크 시티에서 보셨지요? 글라디아토르 말입니다.”
“네.”
지난번에 루산이 레이크 시티 검투장에 초청해 시연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 다 글라디아토르를 알고 있었다.
정비부장 바르통이 멕 나이트 부품을 구해 부하들과 만든 엉성한 조립품이었다.
“가프 쪽에서 그걸 만들어서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사실 저한테 글라디아토르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그것보다 레오파드 생김새를 그대로 따서 만들어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실물보다 더 가벼우면서 출력도 멕 워커 정도의 파워만 내고, 무기는 당연히 마나 진동 기능이 없는 것으로 말이에요. 군용이면 허가가 안 날 테니까요.”
“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 루산의 의도를 재빨리 알아채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산은 계속해서 그 효과를 설명했다.
“귀족 소년들이 레오파드를 가까이서 보고 더 나아가 체험도 해 보면서 꿈을 키우는 거죠. 5년, 10년 후에는 파일럿이 될 아이들이 아니겠어요? 레오파드는 이 소년들에게 꿈의 기체가 되는 거죠.”
“외형을 똑같이 만들어야겠군요? 뼈대는 그대로 하지만, 몸체 부품은 주물로 만들지 않고 판금으로. 외피에 장갑판을 붙이고, 엔진은 다운그레이드.”
칼리슈가 자신이 이해한 바를 확인했다.
“그렇죠. 군용 멕이라는 이유로 금지당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래도 외형이 멕 나이트와 똑같으니 가프 측에서 수도 군단이나 정부 관련 부서에 미리 허가를 얻어야 할 겁니다.”
루산은 바덴이 요청하는 것보다 멕 나이트를 제작해 제국군에 납품하는 마법 연구소에서 알아보는 것이 허가를 받는 데 더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전시에 소년들에게 애국심과 열정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기사님.”
가라로슈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말했다.
“기사님을 알게 된 것이 우리 가프 측에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군요! 아이언 워리어가 오늘날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200년이 걸렸는데, 지금 그 시간을 급격히 단축시키는 마법에 걸린 것만 같습니다!”
물론 200년 전 아이언 워리어는 현재 모델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만큼 세상의 인정을 받고 주류로 올라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군용 간편식 사업, 체험용 멕 나이트 사업으로 레오파드가 단숨에 주류가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루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느낌이 팍 왔다.
모든 국민에게 친숙한 기체,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체가 된다!
소년들에게 익숙한 기체, 소년들이 선망하는 기체가 된다!
소년들은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타고 파일럿을 꿈꾼다!
필센 제국으로서는 전시에 이러한 활동을 막을 까닭이 없었다. 오히려 반기고 더욱 장려할 것이다.
가라로슈에게 루산은 그냥 복덩이가 아니라 행운의 신이었다.
신에게 제물을 받치지 않고 복만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사실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기사님께서 타고 계시는 003을 이참에 기사님 소유로 이전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최초의 003.
001, 002보다 극단적으로 중량을 줄이라는 루산의 제안에 따라 만들어진 멕 나이트.
그 003 시제기를 루산에게 선물하겠다는 뜻이었다.
루산은 이미 003뿐 아니라 3전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레오파드 시제기 전체를 자신의 기체처럼 사용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넘겨준다는 말에는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형이 아닌 고출력의 특수 모델이라 60만 골드 안팎으로 가격이 책정될 것이다.
그런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탄생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수정되어 온 기체라 애착이 남달랐다.
그 003을 타고 무수히 많은 괴수들을 때려잡았을 뿐만 아니라 아라드 왕국 전쟁을 사실상 끝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귀족에게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런 걸 바라고 드린 말씀이 아닌데······.”
“알죠!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기사님께 받기만 하고 해 드리는 게 없다면 너무 염치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염치없는 사람들로 만들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기사님.”
“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무려 60만 골드짜리 선물이 오직 감사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루산이 선물을 받아들이자 가라로슈가 말했다.
“이런 뛰어난 아이디어들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감동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홍보 방법들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어찌 됐든 레오파드가 실제 전장에서 많은 활약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겉만 번지르르해서는 안 된다.
레오파드가 제국군에 채용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건은 아라드 왕국 전쟁에서의 활약이었다.
“칼리슈도 말씀을 드렸겠지만,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기사님께서 아라드 왕국에서 활약해 주신다면 크게는 필센 제국과 아라드 왕국의 승리에 기여할 것이며 작게는 우리 가프 마법 연구소에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루산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003과 엮지 않아도 어차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런 식으로 엮으니 선물에 대한 감동은 사라지고 대가 관계만 남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서로 밀접하게 얽힌 사이였다.
그리고 아라드 왕국에 많은 것을 투자한 가프 마법 연구소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레오파드 사업에 이어 아라드 왕국의 변경 개발권을 얻어낸다면 가프 마법 연구소는 필센 제국 변경을 무대로 활동하는 많은 마법 연구소들과 완전히 격차를 벌이고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칼리슈님에게도 이야기했듯이 제가 파일럿 몇 명 데리고 가 봐야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겁니다. 우리 제국도 아라드 왕국을 저대로 두지는 않을 테니, 먼저 제국군의 계획을 확인하고 나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사님!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국군의 계획을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라로슈가 조급해했지만, 루산은 굳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
레오파드 모델 이름이 이번에 확정되었다.
기존의 001, 003, 004, 005라는 명칭은 사실 레오파드 겉에 새겨진 일종의 일련번호일 뿐 특징이 부각되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덴이 군용 간편식의 종류로 예를 든 이름들이 레오파드의 특징을 잘 반영한 것 같아 채택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언 워리어와 동급의 엔진을 탑재한 004와 005는 무게에 따라, ‘레오파드 파워’와 ‘레오파드 스피드’로 정식 명명했다.
세르펜스의 생명 구슬을 점화기로 채택한 엔진을 탑재해 평소 아이언 워리어의 1.3배의 출력을 발휘하며 순간적으로 2배나 강력한 출력을 뿜어내는 001과 003은 무게에 따라, ‘레오파드 슈퍼 파워’와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로 이름 붙였다.
변경용으로 개발한, 작고 가벼운 레오파드 스피디는 번개처럼 빠르다는 의미로 ‘레오파드 라이트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체험용, 훈련용 멕 나이트는 뒤에 ‘트레이너’가 붙었다.
레오파드 파워 트레이너, 레오파드 스피드 트레이너, 레오파드 라이트닝 트레이너가 된 것이다.
루산을 비롯한 8구역 파일럿들은 여전히 001, 003, 005, 스피디, 하며 입에 익은 대로 불렀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다.
사실 모델 이름을 바꾼 것은 변경보다 바깥세상에서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일단 제국군 관계자들에게 레오파드의 특징을 간편하게 알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그보다 군용 간편식 사업을 하는 바덴에게 가장 중요했다.
“레오파드 파워와 레오파드 스피드는 맛이 달라야 해요. 레오파드 슈퍼 파워와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는 단지 양을 늘릴 것인지 맛에도 변화를 줄 것인지 생각해 봐야겠죠. 레오파드 라이트닝은 한입 크기로 만들어 급한 상황에서는 그것만 먹어도 힘을 내고 버틸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곡물, 견과류, 건과일, 시럽의 종류, 모양과 크기, 포장의 재질과 개봉 방식에 대해서는 사실 바덴이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이미 군대에 납품하고 있는 식품 회사 전문가들이 군대 납품 기준에 맞게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덴은 가장 중요한 조건을 걸어 그 전문가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최소 기준에 맞출 생각을 하지 말고, 최고로 좋은 제품을 만드세요.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맛있고, 가장 영양이 뛰어나고, 가장 간편하고, 잠을 자면서도 생각날 정도로 가장 기억에 남는 먹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그렇게 만들면 남는 게 없습니다.”
식품 회사 간부들이 바덴의 요구를 초심자의 욕심으로 치부하며 반대했다.
“나는 군대에 납품하는 레오파드 시리즈로 이익을 남길 생각이 전혀 없어요.”
“네?”
회사가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니?
“간편식 레오파드의 인기가 올라가 민간용을 만들게 되면 그때부터 이익을 남길 생각이에요. 그때도 마진을 높게 잡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레오파드는 필센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찾는 맛, 즐기는 맛이 되어야 해요. 국민 간편식, 국민 과자, 국민 간식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바덴의 당찬 포부에 군용 간편식을 만들기 위해 참석한 식품 회사, 제분 회사, 제지 회사, 통조림 회사 관계자들이 입을 떡 벌렸다.
“현재 밀가루 점유율이 10퍼센트 내외 아닙니까?”
“그, 그렇습니다.”
제분 회사 간부가 대답했다.
“레오파드의 인기가 밀가루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회사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를 제고해 주력 상품 판매를 높인다는 뜻입니다.”
“···네.”
“식품 회사도 마찬가지, 레오파드로 인지도와 이미지를 끌어올릴 겁니다. 다른 제품들로 수익을 올릴 거예요. 제지 회사와 통조림 회사는 이 제품들 판매량이 늘면 저절로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겠죠.”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그게 쉽겠습니까?”
참석자들은 전혀 이 분야에 대해 모르는, 젊은 여자 사장의 발언을 여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바덴은 인상을 쓰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분이 의문을 갖는 건 당연합니다. 각자 다른 제품을 생산하던 회사들이 모여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그것으로 인지도와 이미지를 끌어올린다고 하니 얼른 와 닿지 않겠죠. 그래서 중대 발표를 할까 합니다.”
참석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반란에 연루된 전 주인 대신 회사를 인수한 새 주인이 말하는 중대 발표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품 관련 회사들은 이름을 통일합니다. 그렇게 하면 간편식 레오파드의 인기를 모든 회사들이 누릴 수 있겠죠.”
“······!”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단순한 협업으로 생각했지 회사 이름을 통째로 바꿀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바덴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란과 연루되어 있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공통 사명은 반달입니다. 반달 식품, 반달 제분, 반달 통조림이 되는 거죠. 사람이 반쪽, 우리가 반쪽. 사람과 우리가 만나 보름달, 즉 행복을 완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제품을 만나면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거죠.”
바덴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루산이 개척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변경 8구역의 반달 호수 지역이 떠올라 지은 이름이었지만,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식품 회사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의미를 부여했다.
“반달 그룹은 군용 간편식 레오파드 시리즈에 사활을 겁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익을 남길 생각이 없어요. 최고의 간편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반달 그룹 모든 회사는 필센 제국 최고의 회사가 될 겁니다. 당연히 여러분 또한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되겠죠.”
참석자들은 전율을 느꼈다.
자신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업 방식으로 철저한 계산 하에 이루어졌다는 느낌과 이 시도가 성공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에 의한 떨림이었다.
그렇게 바덴은 반달(Halfmoon) 그룹을 출범시켰다.
사람과 반달 그룹 제품이 합쳐져 완전한 행복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았다.
반란이라는 말과 행복이라는 말은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어쩌다 보니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로부터 인수한 회사들 가운데 식품 관련 업체들이 반달 그룹으로 묶였다.
첫 번째 사업은 군용 간편식 레오파드 시리즈.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인수한 나머지 회사들로 어떻게 상승효과를 낼지 그녀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샘처럼 솟아났다.
‘기사님이 가프 마법 연구소에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만들게 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성과야!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 기회에 장원 별장을 전국 대도시에 개장해서······.’
‘레오파드 모형 장난감을 만들면 식품과 상승효과가 날지 몰라. 아이들은 먹을 것과 장난감을 좋아하니까. 아이뿐이 아니지. 예술 작품 수준으로 정교하게 만들면 소년들, 성인들의 마음도 끌 수 있을 거야. 변경에서 괴수와 싸우는 레오파드 시리즈를 만들어도 흥미롭지 않을까?’
다음 일정 때문에 밖으로 나온 바덴은 자동 마차 뒷자리에 앉자마자 연필로 종이에 끄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출발하겠습니다, 사장님.”
“네.”
바덴이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운전기사는 바덴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자동 마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