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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28화 (128/450)

128. 멕 나이트에는 핏발 선 눈으로 땀을 흘리는 파일럿이 들어 있다

128. 멕 나이트에는 핏발 선 눈으로 땀을 흘리는 파일럿이 들어 있다

줄리아는 바덴이 보낸 세 명의 화가에 포함되어 있었다.

바덴은 줄리아와 루산의 관계를 전혀 모른 채 오직 그림의 스타일만 보고 화가들을 골라 변경으로 갈 수 있는지 물었고, 줄리아는 변경 8구역으로 가는 출장이라는 말에 기꺼이 수락했던 것이다.

루산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루산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꼬박 3일을 타는 열차 여행은 무척 고되고 피곤했다.

날씨도 달라졌다.

변경 8구역이 노바보다 훨씬 남쪽에 있어 날이 점점 따뜻해지더니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여름옷을 챙겨가는 게 좋을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덥거든요. 그래도 긴팔은 꼭 필요해요. 벌레도 많으니까.”

바덴이 그렇게 말했을 때 줄리아의 기분은 야릇했다.

‘루산이 있는 변경에··· 다녀왔단 말이야?’

왜, 무엇 때문에, 얼마나···, 이런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어쨌든 친절한 바덴의 조언 덕분에 줄리아는 얇은 여름옷을 챙겨 왔고, 먼저 변경을 다녀와 여행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그녀의 배려로 혼자 침대칸을 쓸 수 있어서 편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코부스 역에서 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가프 측 사람의 안내를 받아 줄리아와 동료 화가 2명은 가프 마법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연구 마법사가 상세 도면과 정교한 모형을 보여 주며 레오파드의 특징과 제작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레오파드를 제작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하여 견학하고 스케치할 기회를 얻었다.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부디 멋지게 그려 주세요.”

친절히 대하라는 지시를 받은 마법사가 화가들에게 꽤 정교한 레오파드 모형을 선물해 주었다.

“일반 모델과 슈퍼 모델은 외형이 똑같습니다. 다만 재질이 약간 다른데요. 특히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는 무게를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해 몸통 부위를 제외하고는 팔다리에 장갑판도 덮지 않았어요. 그 대신 손상과 부식을 막기 위해 거대 괴수 세르펜스의 가죽을 덮었죠. 레오파드 슈퍼 파워는 방패에 세르펜스 가죽을 덮었습니다.”

마법사가 모형들의 부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래서 빛이 비추면 다양한 빛깔로 일렁입니다. 밖에서 보시면 오싹하고 소름이 돋을 수도 있어요. 모형에는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으니 실물을 직접 보고 느껴 보세요.”

세 사람은 두 뼘 정도 길이의 레오파드 파워, 레오파드 스피드, 레오파드 라이트닝, 3개의 모형을 기쁘게 받고 역으로 이동해 다음 열차를 타고 8구역으로 넘어갔다.

이미 철로가 레이크 시티까지 놓여 있었지만, 그들은 일정표에 따라 라돔 시에서 내려 <변경 투어>의 붐붐 수레를 타고 이동했다.

마침 변경으로 사업 여행을 온 관광객 9명과 동행하게 되었다.

이 역시 바덴이 의도한 것으로 쉽게 가 보기 어려운 변경까지 이왕 간 것, 다양한 모습을 보고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줄리아는 다른 화가 동료들, 귀족 사업가들과 함께 산더미처럼 큰 대형 수레의 지붕 위에 앉아 노바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원시의 나무와 낯선 풍경을 쉴 새 없이 스케치하며 이동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하다니, 이번에 여행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귀족 사업가들이 젊고 아름다운 줄리아를 두고 농을 던지기도 했으나 사람이 여럿이고 품위를 지키느라 선을 넘지는 않았다.

변경 투어의 사장 렌커가 관광객들이 들리지 않게 물었다.

“화가 선생님들은 관광객들과의 여행이 불편하시면 따로 모시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아요.”

“우리도 괜찮습니다.”

“혹시라도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네.”

그렇게 렌커의 배려를 받으며 관광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변경 8구역의 산과 들, 개척촌과 개척 도시를 돌아보고, 레인보우 시티로 들어가는 길에 케이블카와 경사 로프를 타고, 탐탐에 올라타고, 소형 괴수 사냥에 참관했다.

멕 나이트가 등에 짊어진 통에 타고 거대한 폭포와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며 원시의 땅을 정찰하기도 하고, 검투용 멕 나이트 글라디아토르 시합과 탐탐 경주를 구경하기도 했다.

가프 마법 연구소 마나 연료 생산 시설을 보호하고 있는 거대 장벽에 앉아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다 갑자기 나타난 호수의 괴수들과 멕 나이트의 싸움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줄리아는 채혈기 바늘이 달린 긴 호스들을 끌고 가는 멕 워커들의 모습과 온몸에 호스를 단 채 쓰러져 피를 빨리는 거대 괴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피를 쭉 빨린 뒤에는 가죽이 벗겨지고, 이빨과 발톱을 뽑히고, 몸이 갈라지고, 뼈와 힘줄이 뽑히는 변경의 괴수들.

이 잔혹하고 파괴적인 광경은 그녀가 상상하던 변경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인간은 괴수들의 위협에 벌벌 떨며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괴수들이 불쌍해 보였다.

덩치가 크고 무시무시해 보였지만, 그보다 작은 멕 나이트들이 번쩍번쩍 검을 휘두르면 얼마 있지 않아 거대 괴수들은 땅을 울리며 쓰러지고 몸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빼앗겼다.

‘루산에게 물어보고 싶어, 변경이 이런 곳인지!’

그러나 루산은 원정 사냥을 나가고 없었다.

***

관광 일정이 모두 끝나 귀족 사업가들이 돌아간 뒤에도 세 명의 화가들은 레이크 시티에 머물며 정찰병의 안내를 받아 원하는 곳을 돌아보고 원하는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다.

멕 나이트 생산 기지 곳곳을 가프 마법 연구소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견학하다 생산 중인 레오파드를 그리기도 하고, 사냥하는 레오파드를 장벽 위에서 그리기도 했다.

가끔 레이크 시티 주위를 순찰하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에 올라타기도 하고, 중대형 괴수를 유인해 소탕하는 작전을 멀찍이서 구경하기도 했다.

타조처럼 달리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의 질주는 바람 같았다.

줄리아와 함께 온 화가들은 신이 나서 쉴 새 없이 스케치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줄리아는 그들 사이에 없었다.

이곳에 도착한 뒤부터 줄곧 머물고 있는 에밀리 집에 있었던 것이다.

에밀리는 루산의 당번병으로 아라드 왕국 출신인데, 아빠는 앞선 마리노 공화국 침략 때 죽고 엄마는 그때의 충격으로 몸이 좋지 않아 남들만큼 일하지 못했다.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셨어요.”

에밀리는 동생을 도맡아 돌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착한 소녀였다.

줄리아는 에밀리와 함께 아장아장 걷는 찰스의 손을 잡고, 에밀리의 일터 - 루산의 집과 사무실 - 로 함께 출근했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나면 끝이었다.

루산이 머무는 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치우고 빨 것도 없었던 것이다.

클라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밥을 먹고, 찰스를 데리고 마을을 돌았다.

레이크 시티의 주민들, 개척 요원들과 전투 요원들을 간간이 마주쳤다.

사람들은 누가 봐도 변경 사람 같지 않은 미모를 지닌 줄리아를 흘끔거렸고, 그때마다 에밀리와 클라크는 화가 선생님이라며 그녀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에밀리가 일을 마친 뒤 찰스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을 때 멀리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소년 소녀들이 젊은 남자와 여자를 둘러싸고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누나, 오늘은 뭐 잡았어?”

“누가 더 많이 잡았어?”

“당연히 시에나 누나가 더 많이 잡았겠지!”

소년들의 말에 젊은 남자 - 바이크가 발끈해 소리쳤다.

“이것들이! 괴수 사냥은 그런 게 아니거든! 누가 많이 잡았느냐 적게 잡았느냐가 아니라 협동이야. 팀워크! 몰이하는 역할, 유인하는 역할, 추격하는 역할, 직접 숨통을 끊은 역할, 다양한 역할이 있는 거란 말이야!”

“야, 뭘 발끈하고 그래? 애들이 하는 말 가지고.”

시에나가 바이크를 놀리기 위해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이 누나가 더 많이 잡았지. 이 누나는 여섯 마리! 바이크는 세 마리. 됐냐?”

“와!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게 아니라 내 역할이 괴수 유인해 오는 거여서 그렇다니까!”

바이크가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오는 녀석들은 이 누나와 멕 나이트 파일럿 체조를 함께할 영광을 주겠다! 그러니 지금은 돌아가! 원정 사냥 마치고 방금 돌아와서 밥도 먹어야 하니까. 계속 귀찮게 굴면 앞으로 체조 수업에서 뺄 거야!”

“안 돼!”

“악!”

“꺄아아아!”

소년 소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씩씩거리던 바이크도 미소를 지으며 시에나와 함께 걸어왔다.

그러다 줄리아 일행을 만났다.

“와!”

바이크가 줄리아를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자 시에나가 바이크의 등짝을 후려쳤다.

짝!

“뭐가 와~ 냐고?”

“아야! 야! 함부로 사람 때리지 마! 나니까 봐주는 거야!”

“흥! 고맙네, 고마워. 헤벌쭉 해 가지고.”

시에나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 클라크. 에밀리, 찰스도 안녕?”

“안녕하세요, 누나.”

“안녕하세요, 언니.”

찰스는 인사 대신 클라크의 다리를 붙들고 뒤로 숨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시니?”

“노바에서 온 화가 선생님. 레오파드 그림을 그리러 오셨대요. 이쪽은 멕 나이트 파일럿이에요.”

클라크의 소개에 세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줄리아 아이젠이라고 해요.”

“시에나예요.”

“반갑습니다, 아가씨. 주로 레오파드 스피디를 타는 바이크라고 합니다. 레오파드를 그리실 생각이라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녀석도 005를 가끔 타기는 하지만, 잡다하게 여러 기체를 조종하기 때문에 숙련도가 많이 떨어지거든요. 하하하!”

시에나가 팔꿈치로 바이크의 옆구리를 푹 찍었다.

“윽!”

줄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젊은 여성분이 멕 나이트 조종사라니, 대단하세요.”

“대단하긴 하죠. 여자를 멕 나이트에 태워 주는 곳이 없으니까.”

시에나가 괜히 심통스럽게 대꾸했다.

“그런데 레오파드를 그리다니, 허락은 받은 거예요? 군사 기밀인가 뭔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자 클라크가 나섰다.

“가프와 본부에서 협조하라고 지시가 나왔대요.”

“아! 아니면 말고.”

줄리아는 여자들로부터 적대적인 시선을 받거나 동경 어린 시선을 받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시에나의 이런 태도에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레오파드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서 왜 일은 안 하고 애들이랑 놀고 있어요?”

“그건······.”

갑작스러운 질문에 줄리아는 갈등하다 대답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무슨 준비요?”

“레오파드, 아니 멕 나이트 그림을 왜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봐요.”

초면에 시에나의 태도는 분명 무례했지만, 줄리아는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편해 고민을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세노 식당 바깥, 나무 아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바이크, 시에나, 클라크, 그리고 놀아달라고 졸라대는 찰스를 어르고 달래며 안고 있는 에밀리가 줄리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변경의 멕 나이트는 개척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건 정말 대단하고 훌륭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괴수를 죽여 피를 뽑고 뼈를 바르고 있더군요. 거대한 괴수가 몸에 호스를 달고 피를 빨리며 순식간에 말라가는 모습을 보니 두렵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고······.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리려 한 건가 싶은 생각에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아!”

바이크가 공감하는 것처럼 탄성을 질렀다.

“야! 우리 일을 깔보는 아줌마 말에 감탄하다니, 밸도 없냐?”

시에나가 바이크에게 기어이 한 소리 했다.

“깔보는 게 아닌데······.”

줄리아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시에나가 줄리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요, 화가 선생님! 당신은 고기 안 먹어요? 열차 안 타요? 걸어 다닐 때 발밑에 있는 개미, 지렁이, 벌레들 안 밟아요? 모기 안 잡아요? 물론, 사람이라면 자비심, 동정심도 있어야겠죠.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조금은 그렇고.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

“우리 대장님이 고안한 장벽 생산 시설이 너무 놀라워서 기괴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죠.”

“맞아, 맞아.”

바이크가 맞장구를 치다 시에나의 눈총을 받았다.

시에나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에요. 괴수를 잡아야 우리가 사는 터전이 안전해지고 여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가 있단 말이에요. 멕 나이트로 괴수를 잡지 않으면 에밀리나 찰스, 클라크가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어요? 그리고 괴수를 잡아 마나 연료를 추출하고 뼈를 발라내고 각종 부산물을 얻지 않으면 멕 나이트를 만들 수도 없고, 멕 나이트, 마나 열차, 자동 마차, 배도 움직일 수 없고, 공장도 안 돌아가요. 노바에 가로등이 안 켜진다고 생각해 봐요. 그 암흑 속에서 살 거예요? 수백만 명이 사는 도시가 암흑천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줄리아는 시에나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닫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다.

한편, 시에나는 말을 하고 나서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과 다르게 우락부락 근육이 있는 것도 아닌, 날씬하고 피부도 곱고 얼굴도 예쁜 언니에게 질투심이 확 들어 공연히 공격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곤해서 이만 갈게요. 초면에 미안해요, 언니.”

“아, 아니에요. 고마워요.”

자리에서 일어난 시에나가 바이크를 쏘아보았다.

“야, 안 가?”

“응? 나도?”

“그럼 나 혼자 간다!”

바이크가 잠시 눈치를 보다 줄리아에게 서둘러 말했다.

“시간 나면 멋진 그림 그리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헤헤!”

바이크가 시에나에게 달려가자 시에나가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요란스럽게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줄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클라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줄리아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에나 누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선생님의 고민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응? 무슨 이야기니?”

“그러니까 시에나 누나는, 인간은 고기도 먹고 괴수도 잡고, 나무도 베고, 터전을 넓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 파괴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잖아요. 사실 맞는 말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나 에밀리나 살 곳이 없었을 테니까요.”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에요.”

클라크가 손사래를 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해서 고기를 먹고 나무를 베고 괴수를 죽여 인간의 터전을 넓히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시의 땅이 무지무지 넓다지만, 인간의 터전이 계속해서 확대되면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사냥할 괴수가 없어지니 마나 연료도 추출하지 못하고, 결국 인간의 문명은 정지하게 되고, 엄청나게 늘어난 인간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살다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

놀라운 통찰력과 소년다운 감수성이 만난 인간 종말론에 줄리아는 깜짝 놀랐다.

인간 삶의 방식에 존재하는 모순적 상황, 바로 이것이 바로 그녀가 장벽 너머에서 괴수를 죽이는 멕 나이트를 보고 느낀 두려움이었다.

“오빠, 무서워! 어려운 말 하지 마!”

“으앙!”

에밀리가 찰스를 꼭 껴안자 찰스가 울었다.

“미안, 미안! 이리 와.”

클라크가 찰스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안아 들고 얼렀다.

그때 멀리서 루산이 다가왔다.

원정 사냥을 마치고 괴수 부산물을 넘긴 뒤 정비소에 들렀다가 레이크 시티 본부에서 간단히 보고를 듣고 오는 길이었다.

줄리아는 기다리던 루산을 보게 되어 반가웠지만, 방금 나눴던 대화들에 집중하던 마음이 쉬이 돌아오지 않아 어정쩡한 표정으로 루산과 아이들을 번갈아 보았다.

“줄리아,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줄리아는 자신이 장원 별장에서 화가로 일하다 출장을 왔다는 이야기와 여기 와서 생긴 자신의 고민, 그리고 시에나와 클라크의 이야기를 빠르게 들려주었다.

‘줄리아가 바덴 밑에서 일한다고!’

루산은 너무나 놀라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그 사실을 외면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레오파드를 그리는 일에 그런 심오한 고민이 필요할 줄은 몰랐어.”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줄리아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여러 날 원정 사냥을 나가 깎지 못한 수염, 잠을 편하게 자지 못해 충혈된 눈, 구겨지고 냄새 나는 옷···, 레오파드를 타는 루산은 이렇게 몸으로 수고를 증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고민한다는 핑계로 멀쩡하구나.’

여전히 멕 나이트의 존재와 인간의 의의, 혹은 멕 나이트가 인간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레오파드 안에는 핏발 선 눈으로 땀을 흘리는 파일럿이 들어 있는 거야!’

줄리아는 자신이 그릴 그림의 방향을 그렇게 설정하기로 했다.

기계적인 모습이 아닌 사람의 땀과 의지가 반영된 레오파드를 그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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