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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30화 (130/450)

130. 이제 자작님이 되시는 건가요?

130. 이제 자작님이 되시는 건가요?

용감한 나라(Brave Land)의 사업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장난감.

놀이 체험 공원(수련원) 브레이브 랜드.

장난감 사업 계획을 듣고 감탄하던 직원들도 실제 레오파드와 똑같은 외형을 지닌 훈련용 멕 나이트를 운영하는 놀이 체험 공원을 전국 주요 도시에 건설하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장난감 사업은 간편식과 엮을 때 충분히 상승 작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놀이 체험 공원은 규모가 너무 크고 자금 역시 장난감 사업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군용 멕 나이트가 아닌 멕 워커의 일종으로 보고 정부에서 허락해 준다고 해도 브레이브 랜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평소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는 회의에 익숙한 기획 팀의 직원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접근성 때문에 농촌 지역이 아닌 대도시에 건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작나무숲 장원처럼 최소한 도시 근교에는 지어야겠죠. 게다가 멕 나이트가 뛰어다니려면 꽤 넓어야 할 겁니다. 넓은 도시 근교의 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그 막대한 비용은 어떻게 조달합니까?”

그러나 바덴은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

“브레이브 랜드 부지는,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의 토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어요.”

반란 가담자들의 토지는, 사업체를 넘기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들의 토지도 당연히 욕심내는 사람들이 많아, 끊임없이 시달리던 반란 가담자의 가족들은 결국 그 토지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토지가 여러 사람에게 갈가리 찢겨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분쟁 중에 있는 토지 또한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 발생한 사태로 인해 이 토지 분쟁이 일대 전환을 맞았다.

“북부 전선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반란 가담자의 토지를 욕심내던 사람들이 관망이나 포기로 돌아섰거든요.”

“아!”

땅값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른다.

괜히 샀다가 계속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니 필센 제국이 패하기라도 하면 어떡할 것인가?

이 나라가 아우로라 연합에 점령돼 저들이 승자의 권리로 나눠 갖기라도 하면 소유권은 날아가고 토지 구매에 들인 돈은 허공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땅값이 많이 내려갔어요. 물론 기다리면 더 내려갈지도 몰라요. 돈 많은 귀족이나 사업가들이 국내 재산을 처분하고 외국으로 떠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도 이보다 더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반란 가담자의 토지를 중심으로 그 인근 토지를 매수하고 브레이브 랜드를 세워 나갈 겁니다. 우리 사업 계획을 들으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거예요.”

북부 전선 패배 이야기에 줄리아가 몸을 떨었다.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이젠 자작이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오기는 했지만.

다른 직원들도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다른 사업가들이 토지 구매를 포기하는 시점인데 우리가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사업의 대전제는 필센 제국이 패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면 다 날아가는 거죠. 뭐가 남겠어요?”

바덴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지 않을 거예요. 북부 전선으로 남방군 2개 군단이 이동하게 됐거든요.”

원래 남방군 1개 군단은 네세베르 공략군으로 편성되어 동방으로 가기로 돼 있었는데, 북부 전선의 상황이 예상보다 급하게 돌아가 그 군단 또한 북부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자작나무숲 장원 회원들을 통해 바덴은 그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아!”

그제야 줄리아를 포함한 직원들이 안도했다.

“자금은 걱정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자금이 아니에요. 이 시기에 어떻게 판단하고 움직일 것인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움츠릴 건가요? 관망할 건가요? 나는 우리나라와 여러분을 믿고, 주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기로 했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 움직여 주세요. 전쟁이 났다고 삶을 포기할 건 아니잖아요? 이 전쟁 중에 우리는 크게 도약할 겁니다.”

바덴의 말은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줄리아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어쩌면 저렇게 침착하고 대범할 수 있을까?’

줄리아의 마음속에는 바덴에 대한 질투와 미움이 깊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누를 정도의 존경심과 호기심이 강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

바덴은 줄리아를 따로 불렀다.

“괜찮다면 용감한 나라의 캐릭터 인형 도안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요?”

“네?”

“용감한 나라의 캐릭터 디자인 총책임자, 디자인 실장을 맡아 달라는 말이에요. 미스 아이젠의 그림은 친근하고 인간적이에요. 감정이 살아 있어요. 장난감 그 자체는 물론이고 우리 간편식 사업의 성장과 레오파드의 인기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당연히 도안 사용료와 성과 보상금을 약속할게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줄리아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기쁘고 설레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그녀의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람의 언덕 장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수업을 할 때에도 분명 인기가 있었고 다른 화가들보다 많은 그림을 팔았지만, 순수하게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기보다는 여자 화가라는 희소성과 미모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디자인 실장이 된다고?’

장난감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바덴의 설명대로라면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던 줄리아는 결국 거절했다.

“제안해 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캐릭터 도안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부서의 총책임자라면 그 일에 강하게 매여 있게 될 텐데, 그러면 그림을 그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아!”

바덴이 아쉬움을 토했다.

그때 줄리아가 역으로 제안했다.

“허락해 주신다면 좀 더 자유로운 위치에서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하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말인가요?”

“자유롭게 다니며 많은 그림을 그리게 해 주세요. 당연히 그중에는 레오파드 그림, 괴수 그림, 다른 멕 나이트 그림, 변경의 풍경이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도 있을 테고 단순한 스케치도 있을 테고 우화적인 그림도 있을 텐데, 그런 그림들 가운데 캐릭터 인형에 적합하다 싶은 걸 선정해 주시면 그 그림을 디자인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참여할게요. 가능할까요?”

줄리아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분명하게 말했다.

파혼으로 인한 충격과 좌절감,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부모님이 바람과 반대로 행동하던 때가 있었으나 이번 결정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화가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도피처, 숨통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화가여야만 하는 확고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삶을, 분명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했다.

캐릭터 도안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계 수단을 마련하지만, 생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직접 부딪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 것이다.

레오파드 그림도 작품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겠으나 거기에만 한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줄리아의 확고한 의사를 들은 바덴은 아쉬워하면서도 그녀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새를 새장에 가둬 두면 나는 법을 잊어버리듯이 예술가 또한 완전히 구속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알겠어요, 줄리아. 어쨌든 간편식에 넣을 마스코트 도안 작업이 급하니까 일단 그것부터 서둘러 주세요.”

“네.”

바덴은 줄리아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자작나무숲 장원에서 그녀의 작품 활동을 후원하기로 하고, 판매되는 그림의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누기로 했다. 이제 자작나무숲 장원에 고용되어 일하는 화가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그녀의 그림이 캐릭터 인형의 도안으로 채택되면 사용 대가와 성과 보상금을 받고 디자인 작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줄리아는 자작나무숲 장원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후원하는 첫 번째 화가가 되었다.

시간이 촉박한 레오파드 캐릭터 인형 제작을 위해 도안을 다듬고 점토와 나무, 밀랍과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견본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줄리아는,

자유롭고 행복했다.

***

루산이 두 번째 레오파드 밀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노바에서 온 중요한 편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님, 사기 당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오베론 공작 측에서 접촉해 왔는데, 기사님과 의논했으면 합니다. 직접 오실 수 있으면 좋겠군요.>

스텐커가 보낸 편지였다.

루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일단 가문의 재산을 되찾을 수 있다면 이 어려운 일을 많이 이겨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루산은 율리안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휴가를 냈다.

“부디 잘 처리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루산은 클라크와 함께 노바행 열차를 탔다.

“기사님, 그럼 이제 자작님이 되시는 건가요?”

클라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산은 큭!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대답했다.

“글쎄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네 생각에는 어떠니? 어울려?”

“보름스 기사님. 보름스 자작님. 음······, 자작님! 하고 부르면 왠지 늙으신 것 같아서 어감상으로는 기사님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계속 기사님이라고 불러.”

루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마음속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법적으로 작위가 말소되지는 않았으나 땅이 없는 작위란 공허한 것이었다.

물론 사업을 하는 귀족들이 토지 귀족들보다 더 큰 부자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모든 땅을 완전히 처분하지는 않았다.

가문의 봉토에 해당하는 땅의 일부 - 저택이나 성을 중심으로 한 상당히 넓은 지역(전체 면적의 약 5분의 1)을 여전히 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었고 나머지 땅을 농민에게 매각할 의무를 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 역시 자기 성(姓)의 뿌리가 되는 땅을 차지하고 있는 토지 귀족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 완전한 상인 출신 사업가들과는 달랐다.

보름스 가문 역시 과거에는 사기 당한 땅보다 다섯 배 정도 넓은 땅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류에 밀려 약 80퍼센트의 땅을 농민들에게 장기로 유상 매각하고, 그 판매 금액과 남은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통한 자금으로 본격적인 낙농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보름스 가문은 해운업이나 건설업, 철강업에 뛰어든 사업가들처럼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바는 300만 명이 사는 거대 도시라 가까운 곳에서 우유와 치즈를 만들어 팔아 과거 보유하고 있던 5분의 4의 땅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 버릴 만큼의 재산은 쌓을 수 있었다.

그 덕에 루산은 돈이라는 개념 자체를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사기를 당해 400만 골드라는 막대한 빚을 지기 전까지는.

이제 보름스 자작 가문의 뿌리인 그 땅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보인 것이다.

‘보름스 자작이라······, 확실히 노티가 나는 호칭이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루산은 보름스 자작이라는 호칭이 싫지 않았다.

***

노바에 도착한 루산은 클라크를 바덴의 집으로 데려다 준 뒤 곧바로 스텐커의 사무실로 갔다.

“편지를 읽기는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네, 기사님.”

변호사 포렌시스가 먼저 나섰다.

“재판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스텐커 씨가 막혀 있는 부분을 뚫어 주었습니다. 피고인들에게 입을 맞추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증인을 신청해도 들어주지 않도록 힘을 행사하는 그 실체를 알아낸 겁니다.”

루산이 스텐커를 쳐다보자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몰래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나중에······.’

포렌시스에게도 비밀이라는 뜻이었다.

포렌시스가 신을 내며 말했다.

“그래서 재판에서 이걸 거론했더니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오베론 공작 쪽에서!”

“음!”

“기사님이 오시면 약속을 잡으려고 핑계를 대고 차일피일 미뤄 왔습니다. 저쪽은 후끈 달아 있을 겁니다.”

이 어려운 사건을 맡아 이만큼 진전을 본 것이 놀라워 포렌시스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럼 의논을 해 보죠.”

“네, 기사님.”

세 사람은 오베론 공작 측에 정확히 무엇을 요구할지, 이쪽이 가진 패를 얼마나 공개할지, 만약 이쪽 요구를 거부한다면 어떤 방법을 택할지에 대해 밤늦게까지 의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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