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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36화 (136/450)

136.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돼 주면 좋겠다

136.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돼 주면 좋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신문을 읽고 있던 루산이 갑자기 클라크를 불렀다.

“이리 와 봐.”

“네, 기사님.”

설거지를 하던 클라크가 얼른 물기를 닦고 뛰듯이 걸어왔다.

“앉아.”

“네.”

클라크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루산 앞에 앉았다.

“넌 어느 과목에 가장 관심이 많니?”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질문을 받으면 답하는 것이 예의이므로 클라크는 잠시 생각한 뒤 또박또박 대답했다.

“역사가 제일 재밌어요.”

“오! 멋지구나.”

“헤헤.”

클라크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루산이 말했다.

“당분간 오래 집을 비울 거야. 가끔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장담하기 어려워.”

“···네.”

클라크는 알고 있었다.

입이 무겁다 뿐이지 루산과 가장 가까이 생활해 왔기 때문에 직접 말해 주지 않아도 루산이 만난 사람, 대화 시간, 만남 이후의 표정, 편지의 발신인, 어깨 너머로 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대강의 일들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전에 루산이 미리 알려 주는 경우가 많았다.

루산의 행적을 모르면 그가 부재중일 때 일 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클라크는 레오파드를 아라드 왕국에 밀거래한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라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만한 비밀이지만,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집사로 살아온 소년은 자신이 지켜야 할 규칙과 생활 태도가 몸에 배 있었다.

“내가 없으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날 테니, 시험 준비를 하는 게 어떠니?”

“네? 무슨 시험을요?”

“대학 입학시험.”

클라크가 놀란 사슴처럼 눈을 크게 떴다.

“대학···이오?”

“응, 대학. 제국 아카데미는 신분 때문에 어렵겠지만, 노바 대학이나 바움 대학 같은 곳은 평민도 갈 수 있으니까.”

필센 제국 3대 대학을 루산은 아무렇지 않게 거론했다.

클라크는 간신히 놀란 정신을 붙잡았다.

“대학에 가면 몇 년 동안은 집안일을 못 할 텐데요?”

루산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집안일이 문제야? 말했잖아. 상당히 오랫동안, 어쩌면 몇 년 동안 비우게 될 것 같다고.”

“그래도 그 일이 빨리 끝날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뭐, 집안일은 에밀리가 하면 되고 힘쓰는 일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도 되지.”

“그, 그럼 저는··· 해고되는 건가요?”

클라크가 겁먹은 송아지처럼 울먹였다.

“뭐라는 거야? 대학에 보내 준다니까 무슨 해고? 대학에 못 가면 해고를 고려해 볼지 모르지.”

“네?”

“너도 알겠지만, 이제 나는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던 가난한 변경 기사가 아니야. 변경에서의 수입도 크게 늘었고, 관리해야 할 사람도 많아졌어. 미스 고슬라가 하는 사업도 한둘이 아니지.”

장원 별장

반달 그룹

용감한 나라

정직한 기계 그룹

아직 묶지 않은 사업체들도 많았다.

“그 외에도 노바에서 중요한 연락이 종종 오게 될 거야. 그런데 나는 가만히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아. 앞으로도 자주 자리를 비우게 될 거거든. 그러면 아주 곤란한 일들이 생길 거야.”

클라크는 루산의 말을 완전히 집중해 들었다.

“나 대신 일을 봐 줄 사람이 필요해. 청소, 빨래, 그런 거 말고.”

“아!”

“이런 일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겠어?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데?”

클라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기사님이 자신을 미스 고슬라의 집에 맡겨 놓고 갈 때는 무척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말 민망하다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 바로 너야. 이제 나에게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돼 주면 좋겠다.”

루산의 말이 클라크의 가슴을 강하게 흔들었다.

클라크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기사님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클라크는 최선을 다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면 기사님, 역사학 말고 회계학이나 경제학을 배워 볼까요?”

“회계학, 경제학도 아니?”

루산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신문을 꾸준히 구독해 연구하고, 노바에 갈 때마다 교재를 구입해 온 보람이 있었다.

“대강 무엇을 하는지 정도만 알아요.”

클라크가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네가 좋아하는 역사를 전공해. 미스 고슬라는 상업 관련 학문을 배워서 사업을 잘하니? 법대를 나왔지.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폭넓은 교양과 올바른 판단 능력이야. 뭐, 장부를 볼 줄 알 정도의 회계 지식을 갖추면 좋기는 하겠지만.”

“네, 기사님!”

“대입에 필요한 책은 미스 고슬라에게 부탁해 보내 달라고 할게. 대입 준비에 노바가 유리하다면 가는 것도 생각해 보고.”

이야기를 끝낸 루산은 신문을 다시 펼쳐 들었다.

멋지게 폼을 잡았지만, 경마 신문에 연재된 블랑카의 소설 ‘변경의 대물 기사’를 가장 먼저 훑고 있었다.

“네, 기사님.”

공손하게 대답한 클라크는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마저 했다.

‘내가 대학에 간다고?’

그릇을 씻으면서도 소년은 가슴이 벅찼다.

‘노바 대학에 입학하면 미스 고슬라의 후배가 되는 건가?’

변경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젊은 멕 나이트 파일럿의 집에 고용되어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클라크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가끔은 깐깐하고 엄격하며 인색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하고 자상한 기사님.

기사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흥분과 기쁨은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진정으로 소년의 것이 된다.

루산이 언급한 노바 대학, 바움 대학은 필센 제국 3대 대학에 들 만큼 뛰어난 학생들이 가는 곳.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소년은 아직 알지 못했다.

***

“우리가 왜 아라드 왕국에서 싸워야 하지? 필센 제국에 좋은 일 시켜 줄 생각은 없는데?”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의 반발에 루산은 간단히 말했다.

“내가 거기로 가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당신들을 아직 못 믿어. 내가 없을 때 정신 못 차리고 난리를 치면 어떡해?”

“그럴 리가 없잖아! 사고를 치려고 변경으로 다시 기어들어 왔겠어?”

“글쎄, 그걸 믿을 수 없단 말이야. 믿음이라는 게 말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 당신들도 겪어 봤잖아?”

“······!”

오랜 믿음을 배신당한 반란군 파일럿들은 루산을 노려보기만 할 뿐 반박하지 못했다.

어쨌든 현재 그들이 기댈 사람은 루산뿐이었다.

루산이 밀고하면 그들 모두는 죽은 목숨인 것이다.

루산이 말했다.

“그리고 분명히 하는 게 좋아. 당신들이 복수할 대상은 황제와 공작이지 이 나라가 아니라는 걸. 당신들이 회복하고 싶어 하는 명예와 재산은 이 나라가 줄 수 있는 거야. 아우로라 연합이 아니라고.”

아우로라 연합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리고 겸사겸사 실력도 좀 기르는 게 좋지 않겠어? 오랫동안 변경에서 괴수만 잡아 와서 그런가? 실력이 영······.”

루산의 도발에 반란군 파일럿들이 일제히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박하지 못했다.

200대가 넘는 멕 나이트가 루산에게 막혀 노바로 가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잡혔다가 그에 의해 풀려났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반란군 파일럿들에게 루산은 채찍뿐 아니라 당근도 제시했다.

“우리는 군대가 아니야.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아라드 왕국을 돕기 위해 고용한 용병으로 투입될 거야. 아라드 왕국과 따로 약속하겠지만, 우리의 단독 작전으로 얻은 전리품은 우리가 모두 갖고 협동 작전으로 획득한 것은 일정한 비율로 나누기로 할 거야.”

“흥!”

반란군 파일럿들이 코웃음을 쳤다. 전리품 따위, 관심 없었다.

그러나 루산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분배한다. 당신들 하는 거 봐서 분배 비율을 정할 거야. 그리고 당신들에게 분배된 몫은, 원한다면 가족들에게 보내 주지.”

“······!”

이번에는 파일럿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란 가담자의 가족은 모두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인가? 그게 가능해?”

“설마 우리 처지를 이용해 중간에서 가로채고 생색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이번에는 루산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야 두고 보면 알겠지.”

반란군 파일럿들도 루산이 중간에서 가로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8구역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금전적으로 부당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밀수 운송비도 처음에 말한 몫을 정확히 나눠 주었다.

다만, 그들은 놀랐던 것이다.

반란에 가담한 일은 후회하지 않으나 가족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너무나 커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편지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변경에서 번 수입을 가족들에게 보내 준다 하니, 너무나 놀랍고 반가웠던 것이다.

루산에 대한 반감이 크게 누그러졌다.

8구역에 들어온 반란군 파일럿은 현재까지 37여 명.

루산은 이후에 들어올 반란군 파일럿을 관리할 사람으로 오토를 남겨 두고 나머지 36명 전원을 데리고 떠났다.

바이크, 시에나, 모리츠, 파비안, 그리고 루산까지, 멕 나이트 파일럿은 총 41명이었다.

레오파드는 아라드 왕국에 넘겨줄 11대를 제외하고 3전대의 기체가 14대였다.

레오파드 슈퍼 파워(옛 명칭 001) 2대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003) 1대

레오파드 파워(004) 2대

레오파드 스피드(005) 2대

레오파드 라이트닝(스피디) 7대

라이트닝의 비율이 절반이나 되는 것은 변경용으로 우선 납품해 달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원정대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법사, 정비 요원, 멕 워커 15대로 이루어진 지원 팀을 가프 마법 연구소가 꾸린 것이다.

이들은 칼리슈가 이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그가 직접 가는 이유는 단지 레오파드 정비, 수리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아라드 왕국에 정비 공장을 건설하고, 변경 개발권을 곧바로 행사해 마나 연료, 윤활유 생산 시설을 확보할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새벽, 레오파드 출고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멕 워커들이 분주히 오가며 짐을 싣고 있었다.

레오파드 생산 단지가 레이크 시티와 떨어져 있어 주민들에게 들킬 일은 없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총 25대의 레오파드와 15대의 멕 워커 등에는 연료와 윤활유, 각종 소모품과 교체용 장갑판이 잔뜩 실렸다.

칼리슈가 타고 갈 8족 반구형 산악 운반차에도 고가의 내장 부품과 멕 나이트 무기가 알차게 실려 있었다.

워낙 중요한 일이다 보니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 가라로슈와 변경 8구역 통치자 율리안이 배웅을 위해 직접 나와 있었다.

루산과 비밀을 공유하고 뒷일을 맡아 줄 트리어와 켐니츠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화물 적재 작업이 모두 끝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루산이 율리안, 가라로슈 그리고 트리어와 켐니츠에게 말했다.

“다치지 마세요, 부장님!”

“꼭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기사님!”

“조만간 또 보자고.”

“뒷일은 걱정하지 마.”

조금씩 다른 인사말에 루산은 희미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자신의 멕 나이트 조종실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파일럿들도 멕 나이트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바이크와 시에나 역시 멕 나이트 다리에 붙어 있는 디딤 사다리를 잡고 빠르게 올라갔다.

시에나가 움직일 때마다 목에 걸고 있던 레오파드 스피드 마스코트 인형 - 며칠 전 클라크가 선물로 준 것 - 이 춤을 추듯 경쾌하게 흔들렸다.

- 작업자는 모두 물러나세요. 이동합니다. 선두부터 출발!

외부 확성기로 들리는 루산의 목소리에 출고장에 있던 사람들이 부리나케 물러나고 멕 나이트와 멕 워커들이 전조등을 켠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밝은 빛들이 뱀처럼 길게 꼬리를 물고 서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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