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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44화 (144/450)

144. 이렇게나 동료가 많은데 질 리가 없다

144. 이렇게나 동료가 많은데 질 리가 없다

루산이 탑승한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003)가 팔스테르 성문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츠쿵- 츠쿵- 츠쿵- 츠쿵-

말이 성문이지 열고 닫는 문짝은 달려 있지 않은, 출입을 확인하고 안과 밖을 구별하는 기능만 있는 넓은 통로였다.

멕 나이트 한 대는 너끈히 통과할 수 있는 통로를 향해 거대한 멕 나이트가 믿기 어려운 속도로 달려오자 감시병이 요란하게 경종을 울렸다.

땡땡땡땡땡!

종소리를 들은 파일럿들이 서둘러 멕 나이트로 달려가 올라타고 서문으로 달렸다.

그 사이 서문을 지키고 있던 헤비 스틸 한 대가 용맹한 수문장처럼 묵직한 방패를 들고 자세를 낮추었다.

척!

팔다리가 가녀린 003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강철 수문장이 성문 사이를 꽉 채우고 있었지만, 003은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 성문 앞에서 대지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

다른 것들에 비해 가볍다 해도 강철로 만든 멕 나이트가 이런 점프를 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003은 허공에서 아트라스 대검을 뒤로 크게 젖힌 뒤 앞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쓰릉!

아트라스의 대검 끝부분이 헤비 스틸의 두꺼운 강철 방패를 종잇장처럼 가르고 내려가다 방패를 들고 있던 왼팔마저 베어 버렸다.

왼팔이 방패 손잡이에 낀 채로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왼팔과 방패의 무게가 갑자기 사라져 헤비 스틸의 파일럿은 당황했지만, 오랜 훈련으로 오른팔에 든 대검을 본능적으로 내리쳤다.

쐐애액-!

헤비 스틸의 대검이 003의 왼쪽 어깨부터 가슴을 사선으로 가를 기세로 떨어졌다.

그러나 003은 어느새 아타라스 대검을 왼쪽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헤비 스틸의 대검을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챙!

마나의 충돌로 불꽃이 아름답게 흩어져 날렸다.

003은 상대의 묵직한 공격에 무릎이 살짝 굽혀졌으나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든 자세 그대로 발을 사선으로 크게 내딛으며 팔을 앞으로 쭉 잡아당겼다.

헤비 스틸의 검이 튕겨 올라가며 벌어진 가슴과 겨드랑이를 아트라스 대검이 깊게 베고 지나갔다.

쓰릉!

003은 가슴과 옆구리가 쩍 갈라진 헤비 스틸을 어깨로 밀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아!”

찰나의 순간 벌어진 결과에 성문 감시병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을 때, 아우로라 연합의 파일럿들이 멕 나이트에 탑승하고 달려왔다.

그러나 레오파드 13대가 003에 이어 팔스테르 성 안으로 곧바로 들어와 몇 대 되지 않는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둘러싸고 순식간에 부숴 버렸다.

호리아 평원을 차지한 뒤로 팔스테르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점령은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점령 그 자체가 아니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적군을 달아나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루산은 룬드 항이 있는 동쪽으로 달아나는 적을 지켜보다 명령을 내렸다.

[바이크, 룬드 항 방면은 이제 충분하니까 그쪽 길 막아!]

[예스, 커맨더!]

바이크가 레오파드 라이트닝 네 대를 이끌고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해 길을 막자 그쪽으로 달아나려던 아우로라 연합군 멕 워커들과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루산이 일부러 길을 터 준 서쪽 성문으로 달려갔다.

동쪽으로 달아난 적병은 룬드 항에, 서쪽으로 달아난 적병은 호리아 평원 동쪽에서 필센 제국 남방군과 대치하고 있는 아우로라 연합군에 팔스테르 점령 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시에나는 적의 멕을 수거해 숨기고 필요한 보급품 확보해.]

[네, 대장님!]

시에나가 레오파드 일반형과 멕 워커들을 이끌고 가 쓰러져 있는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와 파일럿이 달아난 멕 워커들을 깊은 골짜기로 옮겼다.

나중에 회수할 수 있을 때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레보르크는 팔스테르 안에 남아 있는 적과 물자를 수색하세요.]

[예스, 커맨더.]

레보르크가 멕 나이트와 챠콜 레인저들을 데리고 아우로라 연합이 본부로 사용하던 관청과 창고를 뒤지고 백성들의 협조를 받아 숨어 있는 적병을 찾아 나섰다.

붙잡은 포로들은 오래 끌 것도 없이 바로 팔스테르 밖으로 데리고 가다 잠시 한눈을 파는 척하며 풀어 주었다.

적에게 잡힌 순간 죽었다고 생각한 포로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부리나케 달아났다.

가프 용병단과 챠콜 레인저 3중대는 바쁘게 움직였다.

적을 팔스테르 밖으로 쫒아 버린 것으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밤이 오자 서쪽 길을 통해 멕 나이트들이 전조등을 밝히고 팔스테르 성 안으로 들어왔다.

쓰쿵- 쓰쿵- 쓰쿵- 쓰쿵-

산악 거점을 급습하거나 수송대를 처치하고 획득한 산악형 그레이 울프들이었다.

낮에 벌어진 전투로 인해 백성들은 모두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고, 적들은 이미 룬드 항 방면으로 달아난 상태.

산악형 그레이 울프의 이동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혹시 백성들 가운데 목격자가 있다 하더라도 어두운 밤에 움직이는 거대한 멕 나이트가 어떤 모델인지 구별하기는 어려웠다.

루산은 자신들이 산악형 그레이 울프를 탈취해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그동안 단 한 번도 이 녀석들을 전투에 동원한 적이 없었다.

팔스테르 성 안으로 들어온 그레이 울프들은 그대로 동쪽 성문을 통과해 멀어져 갔다.

[그레이 울프, 3대를 제외하고 모두 이동 완료!]

[오케이! 예정된 지점에 자리 잡아요.]

[알겠습니다!]

비밀리에 팔스테르 성을 통과한 산악형 그레이 울프들은 계속 동쪽으로 이동했다.

***

팔스테르 점령 소식에 아우로라 연합 아라드 방면군은 발칵 뒤집혔다.

후방에서 준동하는 적 산악 기동 부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팔스테르를 점령하는 과감한 움직임을 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막겠다는 뜻인가?”

자라 공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팔스테르 주위는 산세가 험해 아무리 산악형 멕 나이트라 해도 산을 넘어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로를 막고 우리를 완전히 소탕할 생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자라 공작은 팔스테르 점령을 해당 부대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필센 제국 남방군과 아라드 왕국군이 세운 작전 계획의 일부분이라고 본 것이다.

그것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적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악형 멕 나이트 십여 대. 그것도 크기가 작은 경량 멕을 빼면 열 대도 안 된다는데, 고작 그 수로 퇴로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참모 하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한테 물을 일이 아니라 퇴로를 막은 녀석들과 호리아 평원을 차지한 놈들한테 물을 일이지.”

자라 공작이 휘하 장군들과 참모들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얼 했느냐는 질책의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아우로라 연합 장군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보급 물자가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 소식이 알려지면 우리 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야.”

“그렇습니다.”

“이번 기회에 배후로 침투한 적 유격 부대를 모조리 소탕하고 보급로를 깨끗이 정돈할 필요가 있어. 노다르 백작.”

“네, 사령관님.”

자라 공작의 부름에 30대 후반의 기사가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일을 맡아 주시오.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팔스테르를 쓸어버리고, 호리아 평원 동쪽으로 넘어온 적의 산악 부대를 모조리 소탕하시오.”

“휘하 병력 전부 말입니까? 너무 과한 투입이 아닙니까?”

노다르 백작이 이끌고 온 병력은 멕 나이트 70대.

그중 절반이 산악형 멕 나이트였다.

그런데 그것은 이번 전쟁을 위해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노다르는 페르보 제국의 남동쪽에 위치한 국경 지방으로 오랫동안 루한 왕국과 대치하고 있었다.

광활한 산맥이 국경을 형성하고 있어서 전부터 경량 멕을 만들어 드넓은 산지를 감시하는 데 활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라드 방면군을 편성할 때 당연히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병력을 차출했고, 노다르 백작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한 왕국의 병력을 같은 비율로 연합군에 동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소집에 기꺼이 응했다.

오카수스 대륙을 정벌하는 것은 아우로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숙원인 데다 노다르 지방의 자랑인 산악형 멕 나이트 ‘와일드 고우트’의 성능을 널리 알릴 기회였기 때문이다.

거칠고 빠르게 산악 지대를 누비는 이 ‘야생 산양’을 선보여 주변국 - 특히 국경을 맞대고 종종 분쟁이 일어나는 루한 왕국 - 에 페르보 제국과 노다르 백작의 힘을 과시하면서 함부로 설치지 못하게 억누르고, 또 이것을 타국에 수출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라드 방면군의 수장이 시바스 왕국의 자라 공작으로 결정되면서 와일드 고우트가 활약할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시바스 왕국에서 만든 멕 나이트 그레이 울트의 변형 모델을 산악 임무에 투입하고 와일드 고우트는 사실상 주력 부대의 정찰 임무만 맡겼기 때문이다.

속셈이야 빤한 일, 자국의 산악형 그레이 울프를 널리 판매할 속셈으로 공을 세울 기회를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불만에 차 있었는데, 적의 산악 부대에 의해 후방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고 나서야 투입한다 하니 쉽게 응해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라 공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1개 전단 정도를 더 동원해 후방을 깨끗이 치워 버리고 싶소. 누구도 마리노 공화국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오?”

“음!”

지휘관과 참모들이 신음을 흘렸다.

전선에서 대치하는 사이, 후방 보급 기지를 털려 전원 포로가 되었던 최악의 전쟁.

그런 치욕을 자신이 당할 수는 없었다.

사령관이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노다르 백작도 더 버티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노다르 백작은 와일드 고우트 36대를 포함한 멕 나이트 70대, 보급품을 실은 멕 워커 30대, 산악군 1개 대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떠났다.

후방을 교란하는 적 유격 부대를 해치우는 임무라 노라드 장병들의 마음은 무거웠지만, 와일드 고우트의 발걸음은 무척 경쾌했다.

한편 룬드 항에 주둔하고 있던 아우로라 연합군도 팔스테르로 병력을 파견했다.

호리아 평원의 자라 공작과 연락을 주고받을 시간이 없었다. 팔스테르가 차단된 채로 보급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원대를 포함한 멕 나이트 30대, 1개 전대 규모였다.

동쪽과 서쪽에서 총 100대의 멕 나이트가 팔스테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루산과 가프 용병단은 아우로라 연합군이 보낼 병력의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물러나 산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기회를 보는 게 어떻소?”

모리츠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루산은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평지라면 이런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겠죠. 여기로 오는 길은 딱 두 갈래뿐입니다. 7군단 반란을 저지할 때와 똑같아요. 맨 앞에 선 적만 해치우면 되는 거죠.”

“그래도 그때는 물러나면서 싸우기라도 했지. 여기는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구조가 아니오?”

루산은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민망한 표정을 짓다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승산 없는 싸움은 해 본 적이 없어요.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주위에는 모리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레오파드를 타는 파일럿과 서브 파일럿, 챠콜 레인저 대원들이 루산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 어떤 뜨거운 것이 몸에서 들끓는 것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시에나와 그 다음으로 어린 바이크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가누지 못했다.

누가 이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을 해도 비웃음을 사지 않고 오히려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또 있겠는가?

적진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실력과 말 한마디로 동료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믿음.

그들 역시 루산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루산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네 명일 때에도 이겼고, 여섯 명일 때에도 이겼어요. 지금은 파일럿만 41명, 레인저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넘어요. 이렇게나 동료가 많은데 질 리가 없잖아요.”

“그럼요! 질 리가 없죠!”

시에나가 격동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승리의 기운에 전염되어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루산의 동료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승리는 말과 의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루산과 그의 동료들은 승리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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