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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46화 (146/450)

146. 기다려, 밥 먹고 다시 올 테니

146. 기다려, 밥 먹고 다시 올 테니

모리츠는 시에나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마리노 공화국 군대의 멕 워커 파일럿으로 보급품을 운반하던 시에나는 바이크가 탑승한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쓰러뜨렸다.

멕 워커로 무기도 없이 멕 나이트를 쓰러뜨린 것이다.

무척 놀라기는 했지만, 여자에 대한 편견 탓에 바이크의 한심한 실력 때문이겠거니 생각한 자신과 달리 루산은 시에나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믿고 시에나는 필센 제국 변경 8구역까지 찾아왔고,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천재는 천재가 알아보는 것인가?’

어깨치기 사건 때에도 시에나는 거의 혼자서 1전대의 멕 나이트를 거의 다 쓰러뜨렸다고 했다.

변경 8군단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리츠는 그 당시 루산, 파비안과 함께 레오파드 획득 시험을 위해 노바로 떠나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머리로는 대단하다고 느꼈음에도 진심으로 놀랄 기회를 한 번 더 날려 버린 것이다.

‘그때에도 루산이 시에나를 믿고 어깨치기를 유도한 뒤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지.’

변경 7군단 반란 저지 사건에서도 루산이 지쳐 휴식을 위해 교대할 때 상대와 맞서 싸워 타격을 준 것은 시에나였다.

200대가 넘는 멕 나이트를 뒤에 달고 코부스까지 달아나는 동안 자신과 파비안, 파펜은 겨우 막고 있었고 바이크는 정찰하는 데 그쳤다면 시에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적을 상대하며 쓰러뜨리고 결국 살아남은 것이다.

아버지의 꿈을 물려받아 멕 나이트 파일럿을 꿈꾼 마리노 공화국 식민지 출신의 소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멕 나이트 대신 멕 워커를 배정받았다가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었다.

검술은 다섯 살 때부터 제대로 검을 익혀 온 귀족 출신 루산에 못 미치지만, 감각과 운동 신경만큼은 누구보다 발달한 시에나.

그동안 변경에서 괴수를 사냥하며 생명을 죽이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할 수 있겠나?]

[네! 할 수 있어요!]

001에 탄 시에나의 목소리가 마나 통신기로 전해졌다.

젊고 자신에 찬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모리츠는 자신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생각에 울적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힘차게 말했다.

[좋아! 간다!]

[네!]

시에나가 탑승한 001이 맨 앞으로 나섰고, 모리츠가 탑승한 005와 나머지 세 대의 레오파드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산악형 그레이 울프들은 통신 중계 기지 역할을 하느라 꼭꼭 숨어 있었는데, 이 기체와 챠콜 레인저들 덕분에 가프 용병단 파일럿들은 적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지형의 이점을 살리는 게 중요하네.]

[네.]

한참 동안 이동해 팔스테르 지방을 벗어난 001과 네 대의 레오파드는 적이 좁은 산길을 길게 행진하다 넓은 공터로 나오게 되는 입구에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마나 진동 투창을 소지한 일곱 대의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그 주변 산기슭에서 인내심 강한 승냥이처럼 매복하고 있었다.

***

루산에게도 지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쪽에 배정된 멕 나이트는 그가 탑승한 003과 파비안의 002, 단 두 대뿐이기 때문이었다.

003의 속도와 아트라스 대검의 길이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넓은 지역에서 싸워야 했다.

좁고 빽빽한 곳에서는 속도를 낼 수 없고 동작 범위가 좁아 그렇지 않아도 중량이 가벼운 003은 공격의 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루산도 좁은 산길을 지나다 나오는 넓은 공터를 전장으로 택했다.

남쪽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면 죽지는 않더라도 전장 이탈은 확실한 부채꼴 모양의 땅.

루산의 003은 그 부채꼴 모양의 공터 중간에 서 있었고, 파비안의 002는 다시 길이 좁아지는 길목을 막고 서 있었다.

그때 계곡 건너편 고지에서 통신 중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던 산악형 그레이 울프에게서 마나 통신이 들어왔다.

[서쪽에서 적 접근 중. 적이 막 산길을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골드 라이노 선두, 크고 작은 멕 나이트 50여 대. 잠시 후 그곳에서 보일 예정.]

[알았다. 아! 지금 보인다.]

루산이 멀리 작게 보이는 골드 라이노의 모습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산악형 그레이 울프 파일럿이 주저하다 정보 보고와 무관한 한마디를 무심한 듯 건넸다.

[조심하길······.]

루산이 홀로 수십 대의 멕 나이트를 상대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루산과 적으로 만났지만, 같은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서 존경심과 그동안 아라드에서 함께 싸우며 쌓인 전우애가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에게도 깃들지 않을 수 없었다.

루산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감돌았다.

[걱정 마.]

짧게 대답을 마친 루산은 굽은 계곡 길을 걸어오느라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나타나는 노다르 백작군 멕 나이트들을 지켜보며 기체 상태를 점검했다.

변경 8구역을 떠난 그동안 기체 정비를 한 번도 받지 않고 아라드의 산을 넘고 여러 차례 전투를 치러 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크게 고장 난 곳은 없었다.

탄생 이후 줄곧 험한 변경 땅을 누비며 괴수를 사냥하고 오물을 뒤집어쓰는 열악한 환경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계속해서 개선해 왔기 때문이다.

신축성이 좋고 질긴 세르펜스 피부로 몸체와 관절을 감싼 것도 기체 보호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좋은 기체야.’

루산이 003을 점검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을 때 노다르 백작군이 마침내 계곡 옆 부채꼴 모양 공터로 진입했다.

노다르 백작 가문의 최고 기사 모스타르는 003이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공터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다.

상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첫 번째 교전으로 파악했음에도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 자신감이 지나치지 않은가?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루산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 그쪽을 경험해 보니 없던 자신감도 생기겠더군.

- 뭐라고!

노다르 백작이 분에 못 이겨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주군, 참으십시오. 혹시 모르니 기사들을 믿고 뒤에 계십시오.]

노다르 백작은 모스타르의 말을 옳다 여기고 화를 억누르며 물러났다.

모스타르가 파일럿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상대하는 사이 공터로 진입해 놈을 포위하라!]

[알겠습니다, 모스타르 경!]

골드 라이노가 공터로 진입했다.

루산은 아트라스 대검의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아트라스 대검이 금빛으로 일렁거렸다.

골드 라이노 역시 푸르스름한 빛을 일렁이는 대검을 들고 육중한 방패를 가슴까지 끌어올린 뒤 루산에게 달려갔다.

쿵쿵쿵쿵!

지축을 울리는 묵직한 진동음.

루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마주 달려갔다.

츠쿵츠쿵츠쿵츠쿵!

넓은 공터라지만, 좁은 산길에 비해 넓다는 뜻이지 드넓은 평지가 아니었다.

거대한 멕 나이트들이 몇 초 만에 만날 만한 거리였다.

003은 골드 라이노의 방패 쪽 방향 대신 대검을 든 오른손 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검을 사선으로 그으며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골드 라이노는 003의 움직임을 읽고 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날아오는 대검을 자신의 광폭검으로 쳐냈다.

촹!

그 묵직한 공격에 밀려 아트라스 대검이 뒤로 튕기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골드 라이노가 오른쪽 어깨로 003의 열린 가슴을 들이받았다.

그러나 003은 아트라스 대검을 양손으로 쥐고 있다 급하게 왼손을 풀고 앞으로 쭉 뻗어 골드 라이노의 어깨를 잡고 녀석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오히려 잡아당기며 발을 걸었다.

달리던 방향 그대로 나아가다 갑자기 발에 걸린 골드 라이노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러나 003 역시 골드 라이노와의 충돌을 완전히 피하지 못해 몸체가 반대로 빙글 회전하며 쓰러졌다.

콰쾅!

이 모든 움직임들이 순식간에 일어나 실력이 없는 파일럿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돌가루와 흙먼지가 흩어져 날리는 가운데 두 기체는 재빨리 일어나 서로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

후웅!

골드 라이노가, 003이 맞으면 멀찍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묵직한 방패를 강하게 휘두르자 003은 급하게 스파이크로 바닥을 찍고 방향을 틀어 방패 강타를 피했다.

그런 뒤 몸이 절반이나 돌아간 골드 라이노의 등에 아트라스 대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쐐애액!

그러나 거리를 벌리며 휘두른 공격이라 장갑판을 완전히 뚫지 못해 몸체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장갑판에 촥 박히는 대검 소리가 모스타르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둘이 엄청난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노다르 백작군의 멕 나이트들이 공터로 들어와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포위망이 공터 절반을 넘어가기 전, 루산은 일부러 골드 라이노의 방패 강타를 허용했다.

쾅!

팔로 교차하여 막아 충격을 완화하기는 했으나 조종실이 흔들리고 003이 허수아비처럼 날아갔다.

‘이런!’

내장 부품에도 큰 충격이 있을 것 같았다.

루산은 다시는 일부러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착지 장소를 지나던 헤비 스틸의 가슴팍을 강하게 찔렀다.

쓰릉!

조종사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헤비 스틸이 팔다리를 앞으로 오므리며 축 늘어졌다.

조종실 안의 상태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003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강하게 잡아당겨 헤비 스틸에 박힌 아트라스 대검을 뽑았다.

스릉!

헤비 스틸이 쿵 하고 넘어지기 전에 003은 그 옆을 지나던 와일드 고우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와일드 고우트 파일럿이 놀라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경량 멕의 방패는 골드 라이노나 헤비 스틸에 비하면 무척 얇아 003은 방패를 그대로 베고 가슴까지 자르고 지나갔다.

쓰릉!

아직 첫 번째 헤비 스틸이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003은 두 번째 헤비 스틸을 향해 쇄도했다.

헤비 스틸이 대검을 휘둘렀으나 003은 무릎을 굽혔다가 힘차게 튕기며 대검을 쳐올려 녀석의 가슴을 열고 그대로 다시 내리 그었다.

아트라스 대검이 두 번째 헤비 스틸의 오른쪽 겨드랑이부터 가슴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촤릉!

그때 첫 번째 헤비 스틸이 쓰러졌다.

쿵!

‘세상에! 순식간에 멕 나이트 세 대를······!’

아군에게는 기적, 적에게는 공포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물러나라! 내가 상대할 테니 길목 입구를 막고 주군을 지켜라!]

모스타르는 공터로 들어와 003을 포위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취소하고 서둘러 003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루산은 노다르 백작가의 멕 나이트들을 방패로 삼아 골드 라이노의 육중한 공격을 막으며, 두 멕 나이트 사이에 끼어 어쩔 줄 모르는 헤비 스틸과 와일드 고우트를 유린해 나갔다.

긴 아트라스 대검을 몸 가까이 붙여 벌이는 무시무시한 공방일체의 검술에 와일드 고우트의 가슴과 헤비 스틸의 두툼한 팔다리가 베어져 나갔다.

[끄억!]

쓰릉!

- 이 비겁한 놈! 나랑 붙자!

노다르 백작 가문의 최강 기사 모스타르의 평정심이 깨지고 그의 눈에는 003만 보였다.

003을 두드려 부수기 위해 골드 라이노가 육중한 방패를 강하게 휘둘렀다.

후웅-!

그 무시무시한 방패 강타에 맞은 와일드 고우트 한 대가 허공에 높이 떠올라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쾅!

헤비 스틸도 골드 라이노의 방패 강타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떠밀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

그그그그극!

거체가 바위 절벽을 긁으며 내려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노다르 백작군이 얼어붙었다.

“······!”

“······!”

[지, 지금 뭘 하는 건가! 모스타르 경! 정신을 차려라!]

[아!]

모스타르의 머릿속도 순간적으로 백지 상태가 돼 버렸다.

노다르 백작군이 아닌 루산은 계속해서 공터로 들어온 적의 멕 나이트 사이를 휘저으며 한 대씩, 한 대씩 유린해 나갔다.

[헤비 스틸, 모스타르 경 앞에 방벽을 치고 나머지는 물러나라! 서둘러!]

노다르 백작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헤비 스틸과 와일드 고우트들이 방벽을 치며 물러나자 루산은 더는 추격하지 않았다.

“후유······.”

이런 움직임은 엄청난 힘을 쏟는 일이라 그도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였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대장님! 괘, 괜찮습니까?]

파비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에이스 파일럿이 보통의 파일럿과 다른 존재라는 것은 알지만, 눈앞에서 목격한 놀라운 일을 해내리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그냥 에이스 파일럿이 아니었다.

[후우우우~ 하아아아~ 후우우우~ 하아아아~]

루산은 숨을 가쁘게 고르느라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제가 갈까요?]

[안 돼요! 내가, 후우우~ 하아아~ 힘이 빠졌다는 것을, 후우우~ 하아아~ 알면 공격해 올 거예요.]

파비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되면 루산도 끝이고 가프 용병단도 끝장이었다.

003은 오연하게 적을 노려보다 숨을 가다듬고 나자 외부 확성기로 말했다.

- 밥 먹고 또 싸우자고.

- 이놈!

모스타르가 발작적으로 소리치고 골드 라이노가 달려오려 했다.

그러자 노다르 백작이 말렸다.

[말려라! 모스타르 경을 붙잡아라!]

헤비 스틸들이 달라붙어 골드 라이노를 붙들었다.

한참을 들썩이다 골드 라이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루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노다르 백작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 이러고도 네놈이 멀쩡할 성 싶으냐?

- 난 멀쩡할 것 같은데? 당신 목숨이나 걱정하라니까. 기다려. 밥 먹고 다시 올 테니.

루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노다르 백작과 그의 부하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003은 천천히 몸을 돌려 유유히 동쪽으로 멀어져 갔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 천천히 걷는 것이었으나 노다르 백작은 결코 추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순식간에 멕 나이트 아홉 대가 부서졌고, 흥분한 부하에 의해 아군 멕 두 대가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번처럼 멕 나이트들의 손상이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하나같이 치명상을 입어 움직이지 못했다.

- 야아아아아아아!

노다르 백작은 고함을 지르는 것 외에는 분을 풀 길이 없었다.

멕 나이트 외부 확성기를 통해 터져 나온 노다르 백작의 괴성이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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