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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52화 (152/450)

152. 진심이니까 통한 거예요

152. 진심이니까 통한 거예요

“회사 그만두면 안 되겠니? 이 피부 푸석푸석해진 것 좀 봐. 결혼 생각도 해야지.”

“그건 네 엄마 말이 맞다. 갈수록 얼굴 보기가 어려워지고 늘 피곤해 하니 차라리 관두고 쉬어라. 내 자식은 내가 충분히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았니?”

바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힘겹게 일어나는 딸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이런 잔소리는 처음이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바덴을 설득했다.

그만큼 얼굴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딸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은,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결혼했다.

바덴이 서른이 되려면 아직 몇 년 남았다지만,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나 머리가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일밖에 모르고 살고 있으니 부모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아함~ 또 그 이야기! 집에서는 맘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바덴은 부모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욕탕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귀 기울여 듣다가 화를 내는 단계로 바뀌었으나 이제는 구렁이처럼 슬그머니 넘어가고 말았다.

바덴의 부모는 딸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경영하는지 모른다.

운전기사를 고용해 자동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장원 별장 사업과 그와 병행한 변경 개척민 모집 사업, 변경 투어 사업이 잘되나 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바덴은 굳이 자세히 말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빵집을 해서 자식들을 반듯하게 기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예전 집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반달 그룹

용감한 나라

정직한 기계 그룹

이 외에도 조선소를 비롯한 여러 사업체를 경영하는 대단한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된다면, 분명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할 테지만, 그에 못지않게 걱정하게 될 테고, 지금까지의 일상과 크게 달라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느 대귀족의 첩이라느니, 사업가 아무개가 뒷배를 봐준다느니 하는 소문을 듣는 것은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분명 성취감과 명예심을 충족시켜 주지만, 그런 것들이 반드시 행복감을 높여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바덴은 이제 깨달았다.

언젠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부모님이 제대로 알게 되는 날이 올지라도 그 전까지는 지금처럼 지낼 생각이었다.

“아함~”

바덴은 다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잠을 깨기 위해 차가운 물로 세수한 뒤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한테 생활비를 넉넉하게 주는 덕에 식탁은 많은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으나 바덴은 늘 먹던 대로 버섯 수프와 샐러드, 계란 토스트, 사과 주스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먹지 않고?”

“중요한 약속이 있어요.”

“그놈의 중요한 약속은 어째 매번 있을까?”

어머니가 투덜거리자 쌍둥이 가운데 여자아이가 고기를 오물거리며 언니 편을 들어 주었다.

“그야 언니가 중요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덴은 여동생에게 윙크를 찡긋하고 방으로 가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갔다 올게요. 못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 다 큰 처녀가 외박이 잦으면 어떡하니?”

“노력해 볼게요.”

바덴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자동 마차가 이미 대기해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함께 다니기 시작한 여자 비서가 얼른 자동 마차에서 내려 차문을 잡아 주었다.

비서의 이름은 소피아.

대학 출신은 아니었다.

3년 전에 자작나무숲 장원에 들어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는데 일하는 것이 야무지고 머리가 좋고 예의가 발라 비서 업무를 조금씩 맡기다 아예 앉힌 것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잘 잤어요, 소피아?”

“네, 사장님.”

소피아가 차문을 닫고 얼른 반대편으로 돌아 바덴의 옆자리에 앉았다.

부웅-!

운전기사가 흔들리지 않게 자동 마차를 출발시켰다.

소피아가 오늘 스케줄을 브리핑했다.

“아홉 시에 반달 그룹 긴급회의가 있고, 열한 시에 군수 조달국장과 미팅이 있습니다. 오후 한 시에는 아인베크 남작과 점심 식사 약속이 있고, 세 시에는 브레이브 랜드와 필센 소년 캠프 간의 경쟁전에 참석하시기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여섯 시에는······.”

“잠깐만요!”

“네.”

“경쟁전이 오늘이었나요?”

“네, 사장님.”

바덴이 고운 이마를 찡그렸다.

가장 싫어하는 행사였던 것이다.

소피아가 바덴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적절히 핑계를 대고 오늘 참석하지 못하신다고 할까요?”

“그럴 수는 없죠, 황제 폐하께서 아이디어를 내셔서 생긴 행사인데. 고관, 장군들도 많이 오고.”

“네, 사장님. 계속하겠습니다. 저녁 여섯 시에는 슈미트 은행장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고, 여덟 시에는 자작나무숲 장원 회원들 초청 행사가 있습니다.”

저녁 여덟 시 행사가 공식 일정의 마지막이었다. 몇 시에 끝날지는 알 수 없었다.

스케줄 브리핑에 이어 조간신문 주요 기사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다음에는 회사 내 행사와 일정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바덴이 자신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행사인지, 특별히 지시할 내용이 있는지 판단해서 알려 주면 소피아가 메모했다.

바덴의 업무는 공식 행사가 전부가 아니었다.

공식 행사 사이사이에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결재하고, 직접 찾아온 각 사업장 책임자들의 보고를 받고, 몇 군데 사업장을 방문해 둘러보았다.

최고 경영자가 직접 가지 않고도 제대로 돌아가는 사업장은 결코 흔치 않다는 것을 지난 몇 년 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덴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사업장 방문을 결코 빼먹지 않았다.

‘사람이 더 필요해.’

바덴은 그렇게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한 달에 50만 상자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한 상자에 32개가 들어가니 낱개로 150만 개 이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지금 공장에서는 매달 10만 상자 분을 공급하고 있으니 네 배 더 큰 규모의 공장을 바로 옆에 지을 계획입니다.”

“매달 50만 상자 분량을 만들기 위해 새로 공장을 짓겠다는 거죠?”

“네, 사장님.”

반달 그룹 사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쉽게 상하지 않고 영양가가 충분하며 맛도 있고 질리지 않는 군용 간편식.

군용 간편식으로는 이익을 남길 생각이 전혀 없다!

비용을 아끼지 말고 좋은 재료로 영양을 듬뿍 담아 훌륭한 간편식을 만들어라!

처음 바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이렇게 빨리 자리 잡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으나 판매량이 많다 보니 이익도 점점 늘어났다.

박리다매의 전형을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사장과 달리 바덴은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매달 50만 상자가 아닙니다.”

“네?”

“최소 150만 상자죠.”

“······!”

필센 제국의 모든 장병을 합친 수에 동맹군 병력까지 감안한 숫자였다.

“피란민도 있지 않나요? 남쪽, 북쪽 모두 피란민이 대량으로 발생했어요.”

“피란민들이 우리 제품을 돈을 내고 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미 여러 번 말하지 않았나요? 간편식 레오파드로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고 말이에요. 좋은 이미지를 얻는 것이 목적이에요. 돈은 다른 제품으로 벌 겁니다. 식품 종류가 한둘이 아니잖아요. 밀가루, 곡물류, 견과류, 과일류, 유가공품 등 온갖 식재료, 조미료, 식용유, 과자··· 반달 그룹 제품들은 이런 제품들로 크게 부상할 거예요. 그러니 크게 보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공장은 제국 전역에 분산해서 지으세요.”

“그러면 품질 관리가 어려워질 텐데요?”

동일한 맛과 영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나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북부 전선에서 우리 제국이 질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잖아요.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달아나서 공장 가동이 멈추면 어떡할 거예요?”

“아!”

“그런 일은 없겠지만, 전쟁 통이니 비상사태에 대비해야죠.”

“알겠습니다, 사장님.”

“공장은 매달 150만 상자를 만들 수 있도록 제국 전역에 흩어져 짓되 생산 설비는 50만 상자에 맞춰 놓으세요. 나중을 150만 상자를 만들게 되었을 때를 미리 대비해 공장 건물은 먼저 지어 놓고 설비는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갖추자는 말이에요.”

“네!”

“제국 전역에 분산해서 짓되, 재료는 동일 성분, 동일 분량이 들어가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장 하나는 변경 8구역에 건설할 겁니다.”

바덴은 이 와중에도 레이크 시티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네? 변경 구역에 공장을 지으면 전선과 너무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열차가 8구역 안까지 들어가 있어요. 재료와 제품 수송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래도 굳이······.”

“8구역에 멕 나이트 레오파드 생산 기지가 있습니다. 남방군 관할 지역과도 가깝죠. 완성된 간편식을 가까운 부대에 납품하면 여러 모로 낭비를 줄이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덴은 이왕 회의가 열린 김에 그동안 식품과 관련해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간편식 레오파드는 말하자면 조리하지 않고 먹는 차가운 식품입니다. 전쟁터에서는 더없이 유용하겠죠. 하지만, 아무리 맛있게, 여러 가지 맛으로 질리지 않게 만들어도 사람은 따뜻한 음식이 그립지 않겠어요? 그러니 따뜻한 간편식을 군용으로 만들어 보세요.”

“따뜻한 군용 간편식이라고요?”

“우리는 통조림 회사가 있잖아요. 복잡하게 요리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히 통조림을 잔불에 올려 데우기만 해도 맛있는 음식. 그런 걸 만들어 보란 말이에요.”

“음······!”

바덴은 구체적인 것은 몰랐다.

그것은 식품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 자신은 아이디어만 제공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반달 그룹의 이름을 걸고 출시할 제품군을 점검하고 부족한 목록을 채우는 일도 했다.

“생산량이 늘어났다고 해서 절대 맛이나 품질이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도 조잡하지 않게 신경을 쓰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회의를 마치고 바덴은 반달 그룹 사장과 함께 군수 조달국장을 만나기 위해 군무부로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는 반달 그룹 사장이 대표로 나섰고 바덴은 투자자 겸 간편식 아이디어 제공자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간편식 레오파드의 인기가 정말 높아요. 좋은 음식을 장병들에게 제공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군수 조달국장은 간편식 레오파드를 칭찬한 뒤 증산을 독촉하며 언제까지 증산된 물량을 제공할 수 있는지 기한을 확실히 요구했다.

반달 그룹 사장은 좀 전의 회의에서 나온 대로 기한을 이야기했고 군수 조달국장은 만족했다.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의 인기가 무척 높습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죽지 않는다면서 몸에 꼭 간직한다고들 하더군요. 문제는 잘 안 나온다고 불만이 많답니다. 그래서 말인데, 간편식 막대를 한두 개 줄이더라도 모든 상자에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을 넣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예상하지 못한 요청에 반달 그룹 사장은 얼른 대응하지 못하고 바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바덴이 군수 조달국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딱 자르는 말에 국장은 불쾌함을 느꼈다.

“안 된다고요? 장병들의 염원, 기원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바덴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흔한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장병들이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을 왜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까? 모든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귀하니까 가치가 있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죠. 흔하면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은 버려질 거예요.”

“으음······.”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을 제공하는 비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전선의 장병들이 마음을 의지할 대상 하나를 잃어버릴 것이 안타까워 그렇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군수 조달국장은 바덴의 말에 감동했다.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미스 고슬라.”

군수 조달국장과의 미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반달 그룹 사장이 존경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저는 식은땀이 나서 아무 말도 못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조달국장을 휘어잡으시다니요. 모든 상자에 레오파드 마스코트를 넣으면 비용이 초과될 뻔했는데, 덕분에 적자 생산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딴에는 바덴을 치켜세우려는 말이었으나 바덴은 기뻐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었다.

“사장님.”

바덴이 착 가라앉음 목소리로 불렀다.

“네!”

반달 그룹 사장이 바덴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잔뜩 긴장하며 대답했다.

“제가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간편식으로 이익을 볼 생각이 없다고요.”

“그건···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아뇨!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는 사장님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더 큰 그림을 보고 결정한 방향이에요. 간편식 레오파드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상품입니다. 그 성격이 하나라도 훼손되면 가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

“그 상품으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가치를 유지하면 우리는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매우 복합적으로 매우 큰 이익을 거두게 되죠.”

반달 그룹 사장은 미동도 못하고 바덴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청했다.

“그리고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을 제공하는 비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전선의 장병들이 마음을 의지할 대상 하나를 잃어버릴 것이 안타까워 희소성을 유지하겠다고 한 것은 진심이에요. 물론 상품성을 고려한 측면이 있지만, 비용 낭비를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진심이니까 통한 거예요. 말발로 속여 넘긴 것이 아니라.”

“···네!”

“제 방침과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계속 함께 가실 수 있지 않겠어요?”

바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걸어갔다.

백발이 성성한 반달 그룹 사장은 자신의 딸뻘밖에 되지 않는 바덴에게 압도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심이니까 통한 거라고?’

다른 사업가가 이런 말을 했으면 최근에 들어 본 가장 재밌는 농담이라며 껄껄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덴의 말은 가슴을 흔들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바덴의 아이디어에 감탄해 지시한 대로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바덴을 일부만 파악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엄청난 돈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는 젊은 여자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음을 흔드는 큰 사업가가 아닌가!

“사장님, 같이 가시죠!”

반달 그룹 사장은 바덴과 앞으로도 함께 가기 위해 백발을 휘날리며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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