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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53화 (153/450)

153. 폐하의 관심이 지대하십니다

153. 폐하의 관심이 지대하십니다

군무부 군수 조달국장과의 만남 이후 바덴은 황궁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아인베크 남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의 첫 번째 손님으로 바덴과 인연을 맺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여 예약 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떠나려던 아인베크 남작은 솔직히 충고해 주었고, 그 덕에 문제를 깨달은 바덴은 절치부심해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의 1호 회원이면서 입소문을 내어 다른 회원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 고마운 사람이었다.

“남작님, 제가 좀 늦었나요?”

“아닙니다. 제가 약속 시간보다 빨리 왔어요.”

아인베크 남작이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나고 북부 전선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리면서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 뒤에 시작되었다.

“우리 필센 제국 해군이 본토 영해와 부르가스로 가는 동방 항로는 꽉 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 말인가요, 남작님?”

“그렇습니다, 미스 고슬라. 그걸 확보하지 못하면 이 전쟁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지요.”

본토 앞바다를 꽉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우로라 연합군이 필센 제국 본토로 상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가스로 가는 항로를 장악하고 있기에 그곳으로 병력과 물자를 무사히 실어 나를 수 있었다.

필센 제국 해군이 모든 바다를 장악하지는 못해도 이 두 가지는 해내고 있기 때문에 아우로라 연합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본토와 부르가스를 오가는 항로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해군에 미리 신청하면 민간 상선도 동행시켜 보호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맞습니다. 이왕 오가는 선단, 민간 상선 몇 척 추가된다고 보호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인베크 남작은 선대부터 해운업을 해 왔기에 이쪽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남작님께 부탁을 드리려 해요.”

“무슨 부탁입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부르사 왕국의 철광석을 피닉스 제철까지 운반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으음!”

아인베크 남작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말이 부탁이지 사업 제안이었다.

바덴은 차분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부르사 왕국에 피닉스 제철의 광산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동안은 피닉스 제철의 설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데다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바다 건너에서 철광석을 운반해 오기가 어려웠어요.”

“아무래도 그랬겠죠.”

“네. 그런데 우리 해군의 제해권이 확인되었기에 본토와 부르가스 항로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봐요. 문제는 부르가스에서 부르사 왕국 연안을 오갈 때의 안전이죠. 아우로라 연합의 해군이 부르사 왕국 앞바다를 감시하고 있다면 위험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인베크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사 왕국은 부르가스 북쪽에 붙어 있다.

아우로라 연합의 해군이 부르가스 쪽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충분히 함선을 보낼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철광석이라는 전략 자원을 운반하는 적국의 함선이라면 격침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아우로라 연합의 군함이 부르사 연안을 반드시 감시하고 있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끌리는 제안이기는 한데······.’

아인베크 남작은 고심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로 사업이 말이 아니었다.

해운업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국에 교역품을 실어 나르는 일인데, 여기서 말하는 타국은 거의 다 아우로라 대륙에 있는 국가들이었다.

대전쟁으로 아인베크 남작의 배들은 들어갈 항구를 잃고 사실상 긴 휴식기에 접어든 상태였던 것이다.

선박의 일부는 병력과 물자를 부르가스까지 운반하는 계약을 제국군과 체결했으나 절대적인 운송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곧 파산하거나 규모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덴의 제안은, 비록 위험하기는 하지만,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고심하는 아인베크 남작을 보고 바덴이 말했다.

“위험을 줄일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요, 부르사 왕국 항구까지 우리 해군이 호위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는 안 해 줄 겁니다.”

이 시기에 군함이 민간 상선 한 대를 호위해 줄 리 없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철광석 수요가 급증했어요. 멕 나이트, 멕 워커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하니까요. 군함도 만들어야 하고, 공장도 지어야 하고, 철도도 깔아야 하고··· 여하튼 수요가 끝이 없죠. 철광석을 수입해 오는 배를 보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건 그렇지만, 해군이 화물선 한 척을 호위해 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 척이 아니면 되죠. 사실 군무부에 문의를 해 봤더니 대형 벌크선 다섯 척 이상으로 구성된 선단이면 기꺼이 호위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본토에서 부르사 왕국까지 호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부르가스에서 부르사까지를 말합니다.”

아인베크 남작은 바덴의 철저함에 감탄했다.

“그것까지 알아보셨습니까?”

“그럼요!”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슈텐달 남작님의 피닉스 제철 부지는 무척 넓어요. 한꺼번에 철광석 다섯 척 분량을 하역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넓기는 넓더군요.”

아인베크 남작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의 다른 회원들과 함께 피닉스 제철이 건설되는 슈텐달 공단 설명회에 참석했었다.

“그리고 마침 벌크선도 전쟁 이후 매물이 많이 나와서 몇 척 봐 둔 게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저렴하게 넘겨드릴게요.”

아인베크 남작은 감탄했다.

“이런! 벌크선도 미리 봐 두셨습니까?”

“우리 조선소에 수리를 맡긴 뒤에 배를 안 찾아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려운 시기에 서로 얼굴을 붉힐 수야 없는 일이죠.”

아인베크 남작은 바덴이 반란에 참가한 귀족들의 사업체를 많이 인수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조선소도 가지고 있구나!’

바덴과의 대화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제 생각에 철광석 수입 규모는 계속 늘어날 거예요. 대전쟁으로 부르사 왕국의 사정이 무척 나빠졌거든요. 원자재 수출이 막혀 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우리가 꾸준히 구입해 준다고 하면 크게 환영할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우리 제국은 철강 수요가 계속 늘어 철광석 가격이 오르는 형편이라 저렴하게 들여오는 철광석의 인기는 더욱 올라갈 거예요. 시작은 벌크선 다섯 척이지만, 한꺼번에 더 많은 물량을 운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피닉스 제철은 시작부터 거대한 규모로 계획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가프 연구소가 툴롱 마법 연구소의 신개념 제철 공정을 연구해 생산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설비 변경 공사를 시작했다.

수요도 걱정 없었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멕 나이트 생산 설비를 빠르게 증설하고 있었고, 정직한 기계 그룹에서도 변경 8구역과 아라드 왕국 변경에 들어갈 생산 설비를 계속해서 제작해야 했다.

피닉스 제철은 일단 이곳에 철강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춰 머지않아 필센 제국에서 손꼽히는 철강 회사로 자리 잡을 것이다.

루산은 전에 부르사의 철광석을 수입하고 해운업에 뛰어들겠다는 바덴의 계획에 반대했었다. 아우로라 해군에 의해 격침될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바덴은, 그 위험을 해소할 방안을 기어이 찾아냈다.

이 일로 루산과 바덴에게 직접적으로 떨어지는 이익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피닉스 제철이 성장하고 아인베크 남작의 숨통이 트인다면 장기적으로 든든한 우군을 확보할 뿐 아니라 레오파드 납품 업체들의 수익성이 개선되어 배당금이 늘어나고, 정직한 기계 그룹의 비용이 줄어들고, 조선소가 새로운 고객을 찾게 될 것이다.

아인베크 남작이 묵직하게 말했다.

“그 일, 해 보겠습니다!”

바덴이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남작님.”

“제가 고맙죠. 미스 고슬라를 만난 것이 제게는 큰 행운이었군요. 어떻게 이 고마움을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남작님이야말로 제게 은인이세요. 그러니 그런 말씀은 마세요. 우리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는 사이니까요.”

바덴은 서류 봉투에서 조선소에 들어 있는 중고 벌크선들의 적재 능력, 속도에 관한 자료와 해군에 호위를 요청하는 방법을 적은 서류를 보여 주며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용선 계약과 화물 운송 계약의 내용에 대해 협의했다.

“화물 운송 계약은 나중에 슈텐달 남작님과 만나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미스 고슬라.”

바덴은 아인베크 남작과의 만남을 마치고 서둘러 남쪽으로 이동했다.

가장 싫어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

노바 남쪽 외곽에 있는 수도 군단 제4 기동 전단 멕 나이트 훈련장.

오늘은 이곳에서 브레이브 랜드와 필센 소년 캠프 간의 경쟁전이 벌어졌다.

브레이브 랜드는 바덴이 설립한 민간 사업체로 귀족들로부터 고가의 비용을 받고 자녀들을 맡아 놀이와 수련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용감한 나라의 모든 장난감 - 레오파드의 다양한 모영과 변경 괴수 모형 등 - 을 구경할 수 있고, 역사와 검술을 배우고, 퇴역 파일럿으로부터 레오파드와 똑같은 외형을 지닌 훈련용 멕 나이트 - 레오파드 트레이너 조종법을 교육받는다.

전쟁 시기에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어 적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애국 마케팅에 바탕을 둔 사업이지만, 바덴은 놀이 요소와 전쟁 요소를 반씩 할당하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반면, 필센 소년 캠프는 브레이브 랜드 아이디어를 접한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려 설립한 조직으로 평민 소년들 가운데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 교육시켰다.

평민 소년들은 브레이브 랜드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간다. 파일럿이 되고 싶어도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 황제가 귀족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접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바덴은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러나 교육 내용과 그 결과물은 충격적이었다.

필센 소년 캠프에는 놀이 요소가 거의 없었다.

전쟁과 승리, 파일럿이 될 기회를 준 황제에 대한 충성의 메시지가 교육 기간 내내 소년들에게 주입되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용인되었고, 패배하는 아이는 비난을 받았다.

소년들은 캠프에서 제공되는 식사, 잠자리, 교육 기회, 승리의 영광도 모두 황제의 덕이라고 외쳤다.

무수히 많은 평민 소년들 가운데 선발된 소년들이기에 필센 소년 캠프의 단원들은 체격도 좋고 머리도 좋았다.

그 뛰어난 소년들이 이렇게 맹목적이고 잔인한 전쟁 기계로 길러지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바덴은 브레이브 랜드라는 사업 아이디어에 만족했지만, 필센 소년 캠프를 보고 나서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녀가 의도한 브레이브 랜드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 끔찍한 것을 떠올린 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루산과 다른 이유로 바덴은 황제를 원망하게 되었다.

“미스 고슬라,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의 장군이 미소를 지으며 바덴에게 인사했다.

슐라우 남작.

근위대의 교육훈련부장으로 필센 소년 캠프의 구체적인 운용 방법과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한 인물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태도로 인해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인상임에도 바덴은 그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마치 뱀이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슐라우 남작님.”

“미스 고슬라의 염려 덕에 늘 잘 지냅니다, 하하!”

바덴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폐하의 관심이 지대하십니다. 그러니 충심으로 오늘의 경쟁전을 참관하면서 보완하고 다듬을 점은 없는지 살펴보시죠.”

“···네.”

바덴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브레이브 랜드와 필센 소년 캠프 간의 경쟁전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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