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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57화 (157/450)

157. 본부장 한번 해 보시죠

157. 본부장 한번 해 보시죠

루산은 단장을 거치지 않고 율리안과 일하는 것이 편했다.

단장은 개척 1세대라 주된 관심사가 생존과 발전인 반면 1세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율리안은 주민의 행복과 자긍심이었다.

변경 8구역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확장되기를 꿈꾸는 것은 같았지만, 지향점이 달랐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단장이 직위와 힘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라면 율리안은 대화하고 경청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점들이 아니더라도 루산은 자신을 믿어 주고 지지해 주고 대화가 통하는 율리안과 일하는 것이 좋았다.

아라드 변경 개발 건도 마찬가지, 율리안과 둘이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율리안이 단장에게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내가 전면에 나설 테지만, 단장님을 빼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어요. 이해하시죠, 부장님?”

“그럼요.”

루산은 그렇게 대답했다.

율리안의 처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위해 30년 이상 봉사하고, 아버지 사후 전권을 행사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사심 없이 후계자 교육을 해 온 단장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루산을 좋아하지만, 믿음의 무게는 아직까지 단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루산도 단장을 싫어하지 않았다.

워낙 고생을 많이 해 걱정이 많고 잔소리가 많고 고압적 태도가 살짝 거슬릴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정부 몰래 딴살림을 차린다는 것인가?”

단장은 율리안과 루산을 앞에 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를 낸다기보다 그야말로 깜짝 놀란 것이다.

전에 율리안으로부터 가프 마법 연구소와 손을 잡고 아라드 왕국에 레오파드 밀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때에도 화들짝 놀랐지만, 그래도 가프 마법 연구소의 뒤에 숨으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물량을 넘기면 그만둘 일이라 일시적으로 가외의 수입을 챙기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 몰래 아라드 왕국 변경을 운영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변경 운영은, 제국 정부가 따로 부서를 두어 챙길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제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멕 나이트 부대를 운용하고, 괴수 부산물을 확보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처럼 변경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이기에 특별법을 마련해 따로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점들을 이용해 반란 세력이 숨어들어 난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8구역 통치자가 정부에 알리지 않고 다른 나라 변경 개발에 깊숙이 뛰어든 사실이 알려지면 몰래 힘을 기르려 했다고 의심을 사지 않겠는가?

단장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루산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비밀리에 일을 진행해 나갈 겁니다. 정부가 알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설사 알아낸들 어쩌겠어요?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고?”

“가프 마법 연구소가 다른 나라 변경 개발권을 따낸 것은 제국으로서는 좋은 일이죠. 그런데 가프 마법 연구소는 변경을 다스려 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그게 큰 문제가 될까요?”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지 않은가?”

“압니다.”

루산은 율리안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율리안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루산은 이왕 단장이 알게 되었으니 철저히 협조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단장님, 작년 반란 사건의 내막을 아십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작년 반란 사건은 황제와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유도한 겁니다. 대전쟁에서 패한 아우로라 연합에서 우리 제국에 내분을 일으키려고 많은 공작을 벌였고, 그것을 알게 된 현 황제가 황태자 시절 아우로라 연합 첩자들과 귀족파 잔당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아우로라 연합을 안심시키기 위해 오베론 공작과 작당하고 반란을 유도한 거예요. 그래서 그토록 빠른 진압이 가능했던 겁니다.”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을 확보한 루산은 이제 배경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루산의 이야기를 들은 율리안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고, 단장은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라 얼른 이해하지 못해 눈만 껌뻑이다 마침내 입을 떡 벌렸다.

“지,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유도된 반란이라는 겁니다. 반대파를 쓸어버리고 아우로라 연합이 자기들 뜻대로 되어 간다고 안심시켜 시간을 벌기 위한······. 결국 황제의 뜻대로 되었고, 우리 제국은 내분 없이 아우로라 연합을 상대하게 되었죠.”

“대체 이게 무슨······.”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황족이 몇 명이나 당했을까요? 황제 폐하의 동생, 변경 구역의 통치자들이 거의 다 날아갔어요. 물론 반란 세력과 얽히기는 했죠. 그러나 황제 폐하와 오베론 공작은 알고 있으면서도 사전에 막지 않았다는 겁니다.”

“으음!”

“황제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황족, 어느 귀족이든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놈! 불경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그러나 루산은 차분함을 잃지 않고 율리안을 쳐다보았다.

“불경한 소리가 아니라 이건 다 사실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맞습니다, 단장님.”

율리안이 작년에 수도로 가서 반란 진압과 관련하여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율리안이 하는 이야기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루산이 말했다.

“이 일은 그런 겁니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부수려 할 때 순순히 당하지 않기 위해 대비하는 거죠. 그래서 다른 곳에다 약간의 힘을 비축해 두는 겁니다.”

“으흠······!”

“말씀드렸다시피 들킨다 해도 가프 마법 연구소의 부탁으로 조금 도와준 것이라고 하면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지만,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진행할 거예요.”

단장은 고심했으나 루산과 율리안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이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험이었다.

“어떻게 들키지 않는단 말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했는데?”

“아라드 왕국을 오가는 사람을 선정할 때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분리해야죠. 아라드 변경에 따로 본부를 만들고, 그것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만 믿을 수 있는 8구역 인원을 동원하고, 그 뒤에는 따로 관리하는 거죠.”

“그것이 가능하겠어? 인력뿐 아니라 장비도 다 관리하고 있는데?”

“가능합니다. 우리는 원정 사냥을 나가면 몇 달씩 원시의 땅에 머물고는 하니까요. 그리고 아라드 변경에서 사용할 신규 레오파드는 출고 번호 없이 빼달라고 해서 넘기면 됩니다. 가프 쪽에서 그 정도는 해 줄 거예요.”

“허허!”

단장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8구역을 통치하면서 이런 불법적인 일들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논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라드 쪽에 당장 멕 나이트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아라드 전쟁에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상당수 노획했습니다. 수리가 필요한 기체들이 있지만, 어쨌든 30대 이상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멕 워커도 110대 정도는 확보했고요. 그러니 당장 멕 자원의 부족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

“······!”

단장뿐 아니라 율리안도 깜짝 놀랐다.

멕 나이트, 멕 워커가 아이들 장난감도 아닌데 수십 대, 100여 대를 이렇게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인가?

“전투 요원은 일단 8구역에서 신분 증명을 제출하지 않은 사람들 위주로 동원하다 점차 아라드 왕국과 그 남쪽에서 활동하는 용병들을 채용할 생각이고, 개척 건설 요원은 레이크 시티의 베테랑 요원들을 데려가 몇 년 활용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현지에서도 쓸 만한 사람들을 발굴하거나 키울 수 있겠죠.”

“변경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게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닌데 전투 요원, 건설 요원 몇 명 동원한다고 되겠어?”

“그래서 변경 운영에 잔뼈가 굵은 사람을 하나 앉힐 생각입니다.”

“누구를?”

“델타 기지 대장 호른이 어떨까 합니다.”

“아!”

율리안이 탄성을 터뜨렸다.

“아니, 오늘 새벽에 도착했다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호른이라, 으음······.”

단장도 내심 감탄했다.

호른이 전진 기지 대장들 가운데 발군이기는 하지만, 8구역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은 아니다.

변경 8구역은 이미 체계가 잘 잡혀 있어 사람이 바뀌어도 잘 굴러갔고, 호른은 나이도 많고 욕심이 많아 탐나는 인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경험과 안목, 친화력과 통솔력은 아직 제대로 체계가 서지 않은 아라드 변경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가 많고 욕심이 많은 게 흠인데······.”

“그리고 본인이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 않아요?”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설득해 봐야죠. 원래는 켐니츠나 트리어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아트민도 괜찮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야기를 듣고 호른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욕심이 많은 거야 잘 알지만, 지금까지 본부 몫을 횡령한 일이 없고 다 자기 권한과 재산으로 욕심을 낸 것이고, 나이가 많은 건···, 운명에 맡겨야죠.”

“하하하! 맞습니다. 젊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변경인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경험이 많으니 더 조심하고 더 오래 살지도 몰라요. 잘 설득해 보세요.”

율리안이 그렇게 나오자 단장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아라드 변경에 본부를 두어 운영하기로 하고 세부 사항을 의논해 나갔다.

변경 8구역은 가프 마법 연구소와의 비밀 계약으로 아라드 왕국 변경에 통치 본부를 설치한다.

본부장은 호른, 전투 단장은 루산으로 한다.

본부장과 단장은 협력 관계이지 상하 관계가 아니다.

본부장과 단장의 의견이 충돌할 때는 변경 8구역 본부에서 최종 결정한다.

변경 8구역은 필요한 인력을 보내 아라드 변경의 원활한 정착과 안전 확보, 발전을 돕는다.

최초 3년 동안의 변경 개발 자금은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지원한다.

그 외에도 많은 항목들에 대해 기준을 마련하고 규칙을 세웠다.

아라드 왕국 변경의 본부장과 단장은 상하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라고 했지만, 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충돌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른은 영리한 사람이라 힘의 우위가 명확한 상황에서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루산이 아라드 왕국에서 획득한 전리품은, 동원한 레오파드와 파일럿에 대한 반년 동안의 사용 대가를 8구역에 지불하고 모두 루산의 소유로 하기로 했다.

이로써 아라드 변경 본부 전투단은 사실상 루산의 멕 나이트와 멕 워커로 채워지게 되었다.

필센 제국 변경에서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에 따르면 앞으로 이것들을 사용해 일을 하면 파일럿들은 멕 나이트 사용료로 사냥 수익의 8할을 루산에게 지급해야 한다.

물론 그 금액이 모두 루산의 몫이 되는 것이 아니라 멕 나이트 유지 보수 비용, 정비 요원을 포함한 본부 요원 성과 보상금으로 나가게 되겠지만, 루산의 몫이 가장 커지게 될 것이다.

멕 워커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루산은 8구역에서 맡은 직책과 권한도 그대로였다.

레이크 시티 개척단 단장, 신사업부 부장, 3전대장.

루산이 나가고 나서 단장은 우려했다.

“루산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율리안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능력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 몫을 받아야죠. 무리해서 빼앗으려 하면 안 됩니다. 인정해 주면 아무 문제가 안 생겨요.”

“흐음······.”

“루산에게 직위를 주고 권한을 주어서 우리 8구역에 손해가 되었나요? 전에 비할 수 없이 커지고 발전했습니다. 아라드 변경도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단장님.”

반란 사건에 맞서 함께 손을 잡고 움직인 뒤로 루산에 대한 율리안의 믿음은 더욱 공고해졌다.

황제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황족이라도 - 심지어 동생마저 - 날려 버리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루산 같이 든든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단장은 걱정과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

본부에서 나온 루산은 곧바로 호른을 만나기 위해 레인보우 시티로 향했다.

열차 시간이 맞지 않아 렌커에게 부탁해 마차를 타고 갔다.

철로와 함께 포장도로도 제대로 깔려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랐다.

“8구역이 점점 변해가는군요.”

“그럼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렌커의 대답에도 루산은 왠지 아쉬웠다.

호른 영감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루산을 반겨 주었다.

그러나 확실히 전보다 늙어 보였고 미소 아래에 그늘이 보였다.

“어이쿠! 오랜만입니다, 전대장님. 어디서 무얼 하시기에 이리도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까?”

“바쁘게 지냈죠.”

“허허, 물론 그러셨겠죠.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뵈러 오셨습니까?”

호른이 영악하게 루산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루산은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전진 기지 대장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오래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게 무슨!”

호른은 루산이 자신을 확실히 내치려는 편에 선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산이 그렇게 밀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때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본부장 한번 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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