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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62화 (162/450)

162. 엉덩이가 너무 아파

162. 엉덩이가 너무 아파

스텐커는 오랜만에 온 루산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으음······.”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루트 오베론을 감시하고 있는 보르비스를 찾아갔다.

보르비스는 남방군 출신 변경 7군단 파일럿으로 반란에 실패한 뒤 붙잡혀 고문을 당한 일로 다리를 절룩여 변경 8군단 파일럿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노바에 남아 스텐커를 돕고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몸이 상해 8구역으로 들어가지 않은 파일럿들이 20여 명이나 됐는데, 그들 역시 노바에서 오베론 공작을 감시하거나 사기 사건에 개입한 정부 관리들을 추적하는 일을 했다.

스텐커로서는 비밀 노출의 위험이 없고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이 합류하여 상당한 도움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무척 껄끄러웠다.

귀족 출신이고, 반란에 가담했다가 루산에 의해 저지되었고, 과거 보름스 가문을 해친 자들과 같은 진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 껄끄러운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곳으로 합류한 경의 동지들 가족을 찾아가 편지와 생활비를 전달하라고 하십니다.”

“편지와 생활비를 전달하란 지시가 왔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여기······.”

스텐커가 주소 목록과 전달할 액수가 적힌 문서를 내밀었다.

보르비스는 그것을 받아 죽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아래쪽에 자신을 포함하여 노바에 남아 있는 동지들의 몫도 책정돼 있는 것이 아닌가!

보르비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우리도?”

“네. 기사님이 말씀하시길, 액수가 많은 기사들은 이번에 아라드 왕국 전쟁에 참가했다가 세운 공을 반영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노바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전투를 함께하지 않은 우리를 이렇게나 신경 써 준 것만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했다.

보르비스가 얼른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그런데 위험한 일 아니오?”

반란 가담자의 가족들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위험하지요. 그래서 감시하는 경찰들의 동태를 신중하게 지켜보면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반란 과정에서 싸우다 사망하거나 고문을 당해 죽은 사람을 빼면 변경에 있는 루산에게 합류한 사람은 총 70명이었다.

가족들이 다칠까 염려하여 이번에 편지와 송금을 거절한 사람이 절반가량.

노바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의중도 물어봐야겠지만, 가족들에게 편지와 생활비를 전해주는 일을 무려 4, 50건이나 해야 하는 것이다.

“생활비도 한꺼번에 주는 것은 곤란합니다. 최소 1천 골드인데, 갑자기 씀씀이가 헤퍼지면 의혹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눠 줘야 한다?”

“그렇지요.”

“한 번 접근하는 것도 보통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 여러 번 지속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흠······.”

보르비스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오만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물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에 적힌 액수만 해도 수만 골드는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조달이 가능한 것이오?”

“허허, 그건 걱정 마십시오.”

루산이 우편으로 수표나 현금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스텐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바덴에게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르비스에게 이런 것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보르비스 역시 묻지 않았다.

다만, 루산의 재력, 넓은 아량과 세심한 배려에 감탄할 뿐이었다.

“일단 동지들 가운데 인상이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좋겠군요. 목록에 적혀 있는 주소지를 찾아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뒤 상황에 맞게 접촉할 방법을 고민하는 겁니다.”

“알았소.”

***

노바 북부.

귀족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 중앙에 광장이 있고, 그곳에 신록으로 물든 오래된 나무들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신사가 신문을 읽다가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스텐커였다.

“곧 예배가 끝나겠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을 접어 옆구리에 끼고 신전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신호로 신전 앞에 있던 사람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추레한 몰골과 허름한 옷가지, 불편한 걸음걸이, 누가 봐도 거지였다.

그들이 신전으로 다가가자 경비들이 가로막았다.

잠시 후 예배가 끝난 신전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급 주택가이다 보니 나오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들 고급스러웠다.

그들은 환한 미소로 지인과 인사를 나무며 신전 근처, 광장 주변에 세워 놓은 마차와 자동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한 푼 줍쇼!”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공장에서 다쳐 직장을 잃었습니다! 아이가 굶고 있습니다, 나리!”

거지들이 달라붙자 귀족 남자들이 앞으로 나서서 부인과 아이들을 보호했다.

부인과 아이들은 깜짝 놀라 눈살을 찌푸리거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동전을 꺼내 거지의 손에 떨어뜨려 주었다.

신전의 경비들이 그 광경을 보고 달려와 거지들을 야단치고 쫓아버렸다.

“뭐 하는 짓이야?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지체 높은 분들이 다니는 신전이란 말이야! 썩 꺼지라고!”

팔다리가 불편한 거지들이, 우람한 경비들이 신분 높은 신자들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옆으로 밀려나는 가운데, 신전에서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들 사이에는 옷차림이 남들보다 덜 화려하지만 기품이 있고, 주변 사람들이 멀리하는 노부인이 있었다.

인파 속에서 홀로 외딴 섬처럼 움직이는 노부인을 알아본 거지 하나가 경비의 눈을 피해 빠르게 접근했다.

“부인, 한 푼만 주세요.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어머!”

깜짝 놀란 노부인이 가슴을 부여잡고 주춤 물러섰다.

그러다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미, 미안합니다. 하필 지금 가지고 있는 동전이 없어서······.”

“그러지 마시고 한 푼만 주세요! 애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저, 정말이에요. 다, 다음에는 꼭 줄 테니 그만 가 주세요.”

동전 하나가 없다는 노부인.

주위 사람들 모두 그 부인의 정체를 아는 듯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안타까운 눈빛 또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돕지 않았다.

그때 한 신사 - 스텐커가 다가와 거지에게 은화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은 이걸 받고 돌아가시오. 부인께서 놀라지 않소!”

그 엄격한 태도에 거지는 차마 더 버티지 못하고 은화를 꼭 쥔 채 다리를 절룩이며 달아났다.

스텐커는 놀란 노부인의 어깨를 부축하는 척 몸을 가까이 붙이며 작고 빠르게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엔도르프 부인?”

“나, 나를 아십니까?”

“아드님의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내일 아침, 댁에서 가까운 제든 빵집에 부인 이름으로 빵을 주문해 놓을 테니 찾아가서 집에서 살펴보세요.”

엔도르프 자작 부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스텐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스텐커가 다시 말했다.

“지금은 사람이 많아 괜찮지만, 경찰이 보고 있으니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댁으로 돌아가세요. 내일 아침, 잊지 마시고요.”

“아, 알겠어요.”

노부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휴일 정오에 아주 작은 해프닝이 일어났던 신전 앞은 거지들도 사라지고 신도들도 모두 떠났다.

멀리서 지켜보던 경찰 역시 평소처럼 하품을 하고 사라졌다.

엔도르프 자작 부인은 다음 날 아침 빵집을 찾아갔다.

신사의 말대로 자신의 이름으로 주문해 놓은 빵이 있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경찰이 슥 쳐다보았으나 이삼일에 한 번은 빵집에 가서 빵을 구입했기 때문에 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노부인은 집으로 들어가 문을 꼭 잠그고 빵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았다.

봉투 하나가 나왔다.

봉투에는 편지와 지폐가 들어 있었다.

‘20골드!’

남편과 자식 둘을 잃기 전에는 신경도 쓴 적 없는 소액이었지만, 지금은 몇 달을 살고도 남을 만한 거액이었다.

노부인은 지폐를 고이 봉투에 다시 넣고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꺼냈다.

<어머니, 포르스트입니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엔도르프 자작 부인은 눈물이 핑 돌았다.

막내아들의 필체가 확실했다.

***

레오파드를 싣고 레이크 시티를 출발한 마나 열차는 변경 7구역을 지나 코부스를 통과해 동쪽으로 가다가 동북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노바 인근에서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 북서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한참을 그대로 달리던 열차는 서쪽으로 변경 5구역, 북쪽으로 이스타드 왕국과 접해 있는, 필센 제국의 북서쪽 변두리 지방 플라네그에 도착했다.

바로 이곳에 이스타드 왕국에서 물러난 북방군 3군단이 주둔해 적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갸갸갸갸!”

5일 동안의 열차 여행에 질려 버린 바이크가 기지개를 크게 켜며 열차에서 내렸다.

그 뒤로 두툼한 배낭을 껴안은 시에나가 내리고, 맨 마지막에 루산이 가방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내렸다.

바이크가 중얼거렸다.

“별로 안 춥네?”

“그럼! 여름인데 춥겠어? 다만, 여름이 짧고, 겨울이 무척 춥고 아주 긴 편이지.”

루산이 핀잔을 주자 바이크가 입술을 삐죽이다 역공을 했다.

“그런데 대장님, 짐을 하나도 안 챙기셨으면 속옷은요?”

“상상에 맡길게.”

“으으으!”

바이크가 냄새난다는 듯 과장되게 눈살을 찌푸리자 루산은 씩 웃어넘겼다.

사실 여행을 다니거나 원정 사냥을 갈 때면 클라크가 챙겨 주었는데, 클라크가 없어 그냥 온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깜박했다.

“밖에 나가서 몇 벌 사지, 뭐.”

“네, 대장님.”

그러나 그들은 역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3군단 군인들이 레오파드를 인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의 설명으로 레오파드 훈련 교관의 존재를 인지한 3군단 장교들이 루산 일행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시오. 북방군 제3 기동 군단 신설 전단 6전단 1전대장을 맡고 있는 볼프강 베거라 하오.”

볼크강 베거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덩치가 크면서도 무척 단단해 보이는 장교였다.

제국군 홍보 책자에 나올 법한 강렬한 인상의 파일럿이었으나 루산 뒤에 있던 시에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른 생각을 했다.

‘이름 앞에 소개말이 너무 길어.’

그때 루산이 말했다.

“가프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루산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

루산은 오랜만에 악수를 하다 손아귀에 통증을 느꼈다.

기색을 보니 상대가 일부러 힘을 준 것 같지는 않았다.

볼프강은 손바닥도 무척 거칠었다.

검을 오래 수련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굳은살.

마치 필센 제국의 진정한 군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증명하는 사람 같았다.

루산이 질 수 없어 손아귀에 힘을 꽉 주려는 찰나, 볼프강이 먼저 손을 놓고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도착한 기체부터 옮기기로 합시다. 역에서 전선까지 거리가 상당하니까.”

“그러죠.”

“훈련과 적응을 위해 곧바로 우리 파일럿들을 태우려 하는데 괜찮겠소?”

“상관없습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가 인수인계 절차를 밟자마자 3군단 파일럿들이 누워 있는 기체에 탑승해 조심스럽게 화차에서 레오파드를 일으켰다.

볼프강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상태로 입을 열었다.

“군단장님 말씀에 따르면······.”

아이젠 자작을 말하는 것이다.

“상당한 실력자라고 하던데······. 아라드 왕국에서 세운 전공도 상당하고 말이오.”

루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죠.”

“그 운을 북부 전선에도 나눠 주면 좋겠소.”

“사람 뜻대로 된다면 운이라고 하지 않겠죠.”

“훗! 그것도 그렇소.”

“어쨌든 도움이 되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좋소.”

일어난 레오파드들이 줄지어 북쪽으로 이동했다.

루산 일행은 커다란 짐칸이 달린 군용 화물 자동 마차를 타고 그 뒤를 따라갔다.

승차감이 좋지 않아 엉덩이가 무척 아팠다.

“윽! 차라리 멕 나이트 어깨에 앉아서 가는 게 더 편하겠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

바이크가 투덜댔다.

시에나는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머리를 써서 배낭을 풀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 엉덩이 밑에 깔았다.

그러고는 좋아했다.

“히히히!”

“나도!”

“넌 네 것 깔면 되잖아!”

“치사해!”

바이크가 자신의 배낭에서 외투를 꺼내 엉덩이 밑에 깔았다.

그때 시에나가 다른 외투 하나를 루산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장님, 하나 깔고 앉으세요.”

루산이 별생각 없이 받으려 할 때 바이크가 훼방을 놓았다.

“대장님은 속옷 안 갈아입었다.”

그 말에 루산과 시에나의 눈동자가 동시에 떨렸다.

루산이 먼저 말했다.

“난 됐다.”

“···네.”

시에나는 갈 곳을 잃은 외투를 주섬주섬 배낭에 다시 넣었고, 루산은 바이크를 노려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속옷을 못 샀구나!’

열차에서 내려 곧바로 이동했기 때문에 역 밖으로 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군용 화물 자동 마차는 비포장도로를 덜컹덜컹 달렸다.

전선까지는 무척 멀었고, 루산은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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