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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64화 (164/450)

164. 왜 자꾸 늪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지?

164. 왜 자꾸 늪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지?

눈매가 날카로운 5군단의 단장이 바이크를 탐색하듯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다고?”

변경 군단의 단장이라면 평소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사람이라 바이크는 오금이 저렸다.

‘우리 단장님도 아닌데 왜 주눅이 들어? 어깨 펴!’

바이크는 자기 암시를 걸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루산이었다.

루산은 두 번이나 아라드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고, 겨우 여섯 대의 멕 나이트로 반란군 멕 나이트 2백여 대에 맞서 싸웠다.

바이크는 그 순간마다 루산과 늘 함께해 왔다.

‘그런 내가 고작 변경 5군단의 단장과 마주 앉아 있다고 해서 주눅들 수는 없지. 나는 3전대 넘버 투야!’

바이크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단장님. 바이크 마이어입니다. 북방군 3군단장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직접 확인할 것도 아닌데 누구의 지시라고 한들 어떤가?

임무를 완수하는 데는 가프 용병단장보다 북방군 3군단장을 언급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단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세를 바로 하고 말투가 공손해졌다.

“군단장님께서 무슨 일로······?”

“변경 5구역 인근의 지리를 잘 아는 요원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음?”

단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나눈 대화는 군사 비밀입니다. 절대 밖으로 새 나가면 안 됩니다.”

바이크가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자 변경 5군단 단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이를 말이겠소.”

바이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더욱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스타드 왕국 변경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고자 하십니다.”

“이스타드 변경?”

“네. 원시의 땅을 통과해 이스타드 변경으로 들어가서 아우로라 놈들을 공격하실 생각이십니다.”

루산은 변경 5구역에 가서 인근 지역 지리에 가장 밝은 사람을 찾아오라고 말했을 뿐이지만, 바이크는 루산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변경 5군단 단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흐음······! 그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오. 원시의 땅을 통과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지.”

“그걸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알고 계신단 말이오?”

“그럼요. 이 또한 비밀이지만······.”

바이크가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목소리를 낮추자 단장 또한 덩달아 긴장했다.

“우리 군단장님은 이미 원시의 땅을 통과해 보신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병력을 이끌고 원시의 땅을 지나 아라드 왕국을 도우신 적이 있죠.”

“······!”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변경 지리에 밝은 요원을 불러 주십시오.”

“그렇다면··· 알겠소.”

단장은 한 사람을 떠올리고 부하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지금 바로 비어슨을 데려오게!”

“네, 알겠습니다.”

***

루산은 아이젠 자작을 찾아갔다.

“변경 5구역에서 원시의 땅을 거쳐 이스타드 왕국 변경을 공격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이젠 자작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변경을 이용해 아라드 왕국을 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생각해 본 작전이었다.

“아라드 때와는 달라. 아라드의 변경은 우리를 막는 병력이 없었다. 반면 이스타드 변경에는 적의 멕 나이트가 가득하지. 그런 곳을 뚫으려면 상당한 병력을 동원해야 할 텐데, 원시의 땅을 지나는 동안 상당한 손해를 볼 것이고 설사 원시의 땅을 무사히 통과한다 해도 변경에서 막히면 적의 원군에 의해 결국 소탕될 가능성이 높아. 굴다크 공작의 병력에 타격을 주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채 끝날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폐기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루산의 생각은 달랐다.

“변경의 적을 모두 무찌르고 굴다크 공작을 쳐서 적의 병력에 큰 피해를 입히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네. 변경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변경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손해가 뒤따른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변경을 차지하려다 입은 손해가 막심하면 결국은 포기하게 되겠죠. 포기하면 변경에서의 이익을 바라고 병력과 물자를 투입한 나라들은 결국 철수하게 될 겁니다.”

적의 군사력을 꺾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을 악화시켜 물러나게 만든다.

결국 굴다크 공작이 원래 지휘하던 병력만 남게 될 것이다.

“변경은 전선과 다릅니다.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군이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할 괴수를 찾아 넓은 지역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유격전을 벌이면 당하는 쪽에서는 무척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 멕 나이트뿐 아니라 괴수도 상대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생산 시설을 지켜야 하죠. 레오파드의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전장이 되는 겁니다.”

아군 유격 부대를 소탕하기 위해 아우로라 연합군이 변경에 병력을 투입한다면 그 역시 나쁠 게 없었다.

전선에서 병력이 빠지면 아군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어들고, 변경에서 레오파드 유격 부대를 소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으음!”

아이젠 자작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에 도착한 레오파드 없이도 막아 내고 있었다. 안 받은 셈 칠 테니, 아우로라 녀석들에게 변경을 차지하기 위한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톡톡히 알려 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

츠쿵- 츠쿵- 츠쿵- 츠쿵-

“어딜 가는 겨?”

“몰러.”

“북쪽으로 가야지 왜 남쪽으로 내려가는 겨?”

“모른다니께!”

북방군 3군단 병사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레오파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철수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소문이 들려왔다.

“기동 훈련을 하러 변경으로 간다더구먼. 아무래도 여기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께.”

“아하! 그렇구먼.”

그제야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충분히 훈련을 받기 위해 변경으로 간다는 말이 왠지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규 멕 나이트를 대거 뒤로 뺄 정도로 이쪽 전선은 한가롭지 않았다.

“물건에 하자가 있는 거 아닌가 몰러. 수리하러 후방으로 빠진 거 아니여? 그렇지 않다믄 한 번도 전장에 투입되지 않고 빠진다는 게 말이 되남?”

“그런 소리 말어! 레오파드는 그런 멕 나이트가 아니여!”

“왜 화를 내고 그랴? 그냥 해 본 소리여.”

어쨌든 이런저런 소문과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레오파드는 전원 빠져나갔다.

150대나 되는 레오파드는 플라네그 역에서 차례로 열차에 실려 변경 5구역으로 들어갔고, 도착하자마자 지체 없이 변경 5구역 깊숙이 이동을 시작했다.

레오파드는 원래 북방군 3군단에 신설될 6전단에 100대를 배정하고 나머지는 그동안 전투로 결손이 생긴 다른 전단에 나누어 줄 예정이었으나 지휘의 통일성을 위해 모두 6전단 소속으로 했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젠 자작은 6전단의 전단장과 전대장들을 불러 작전의 취지를 설명한 뒤 특별히 당부했다.

“가프 용병단장은 단지 레오파드 조종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그는 레오파드를 타고 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니 지휘관들은 그의 조언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귀담아듣기를 바란다.”

용병으로 소개된 루산에게 6전대의 지휘권을 줄 수는 없었다.

당당한 필센 제국군 파일럿으로서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루산 역시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감정적으로 무시하거나 배척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루산은 아이젠 자작의 특명으로 레오파드 훈련 교관 겸 6전단의 객원 작전 참모로 대우를 받으며 이스타드 변경 작전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와 시에나, 바이크도 이번 작전에 한해 레오파드를 각각 한 대씩 배정받았다.

이것만으로도 루산은 아이젠 자작에게 감사했다.

***

비어슨은 나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 많았다.

[열다섯 살 때부터 멕 워커를 탔지. 아버지가 멕 워커 파일럿이었거든.]

중고 아이언 워리어를 타고 길을 안내하는 비어슨은 한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물론 마나 통신은 루산 일행에만 연결돼 있었다. 제국군 파일럿보다는 용병 파일럿에게 좀 더 편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어느 영주에게서 도망쳐 이 땅에 들어온 뒤에 아버지를 낳았고, 아버지는 처음부터 변경에서 나고 자란 이주 2세대인 셈이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변경에서 멕 워커 파일럿이 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다만, 인정받기가 어렵지. 변경에는 도둑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조금만 감시가 소홀해도 뒤로 빼돌리려는 놈들 천지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럼! 변경에는 도둑놈이 많지.]

며칠 사이에 죽이 맞은 바이크가 냉큼 대꾸해 주었다.

그러자 비어슨은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하하하, 맞아. 더럽게 많지. 도둑놈이 많다는 것은 성실하게 노력하려는 놈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야. 도둑질하면 되는데 왜 노력하겠어? 그런데 내 아버지는 그 몇 안 되는 성실파였단 말이지. 그래서 남들이 다 빼돌릴 때에도 바보 같이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 왔던 거야. 그 덕에 실력이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거기에 더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을 얻었다네.]

[대단한 분이시군!]

이번에도 바이크가 대꾸했다.

[대단하긴 대단하지. 어쨌든 멕 워커 파일럿으로 일하면 변경에서는 나름 괜찮거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살았다네. 아버지도 멕 워커 파일럿이 되면 식구들 굶기지 않고 번듯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나를 멕 워커 파일럿으로 만드셨지. 어릴 때부터 멕 워커 조종법을 배우다 열다섯 살에 정식으로 변경 5군단의 멕 워커 파일럿이 되었어.]

[와! 대단한데?]

[히히! 그런가? 그런데 아버지랑 같이 지원을 나가면서 못 볼 꼴을 많이 보게 되었어. 멕 나이트 파일럿이라는 놈들의 행패가 보통 심한 게 아니더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 건 예사고 사람을 패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우리는 한번 사냥을 나가면 며칠은 기본이고 몇십 일도 나가거든. 그런데 사냥 캠프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어디에나 그런 쓰레기들이 있지.]

[맞아. 그런데 내 아버지한테 유독 더 그러더군. 왜 그런가 보니까 아버지가 뒤로 빼돌리기에 동참을 안 하니까 짜증이 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바이크는 당연히 알아들었다.

고가의 괴수 부산물을 뒤도 빼돌리고 싶은데, 한 사람이 동참을 안 하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은 사실 8구역에서도 종종 일어났다.

그러나 흔하지는 않았다.

8구역은 규율이 엄격했고, 특히 루산의 실력과 켐니츠의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3전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루산은 성과 보상금을 아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켐니츠가 엄격하게 규율을 다잡으면 루산이 공에 따라 성과 보상금을 넉넉하게 지급하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뒤로 빼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분했겠어? 아버지는 참으라고 했지만, 그 새끼들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음!]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었지. 사냥한 괴수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던 도중에 주위를 경계해야 하는 멕 나이트가 경계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괴수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는데, 아버지가 탄 멕 워커가 놈들에게 둘러싸였지. 그때 멕 나이트들이 괴수를 처치한답시고 마나 진동 대검을 마구 휘둘러 버린 거야. 그때 마나 진동 대검이 종잇장 같은 멕 워커 몸체를 뚫고 조종실로 파고들어 아버지 팔이 잘려 버렸다네.]

[······!]

[······!]

바이크뿐 아니라 루산과 시에나도 깜짝 놀랐다.

그런 실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괴수에 둘러싸여 아버지의 멕 워커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지.]

[으음······.]

[그날로 나는 멕 나이트를 타기로 했다네. 멕 워커 파일럿으로 비루한 취급을 받는 것도 싫었지만, 그 개새끼들을 용서할 수가 있어야지.]

변경에서는 멕 워커 파일럿이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괴수를 상대하는 데 정밀한 검술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검술을 수련하고 신체를 단련해 온 멕 나이트 파일럿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리 대우가 좋지는 않았다.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었지만, 그런 이력이 있어서인지 다른 파일럿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어. 그래서 혼자 사냥을 많이 다니게 되었네. 돈 되는 괴수를 찾아 멀리멀리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지리를 잘 알게 되었지.]

비어슨이 타고 있는 중고 아이언 워리어의 등에는 멕 워커들이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하는 배낭 같은 구조물이 달려 있었다.

[실력을 기르게 되면 언젠가는 그 새끼들 다 죽여 버릴 거야.]

[······.]

[물론 아직은 멀었지. 히히히!]

비어슨은 그동안 말할 사람이 없어 답답했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속사정을 낯선 동료들에게 쉽게도 풀어 놓았다.

바이크와 시에나는 왠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루산이 말했다.

[좋은 각오야. 그런데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지?]

[응? 그럼!]

[그런데 왜 자꾸 늪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지?]

[잉? 이런! 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잘못 들어왔군그래. 미안! 미안!]

비어슨은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얼른 사과하며 늪지에서 빠져나와 다시 길을 잡았다.

루산은 첫걸음부터 작전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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