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공업 은행장, 상업 은행장 그리고 재무대신
168. 공업 은행장, 상업 은행장 그리고 재무대신
바다와 닿아 있는 피닉스 제철 하역장으로 철광석을 가득 실은 벌크선 다섯 척이 들어와 하역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부들이 크레인에 달린 거대한 하역 장비를 작동시키고 컨베이어 벨트를 연결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마침내 첫 번째 화물선에서 하역 작업 준비가 끝나고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철광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슈텐달 남작님, 아인베크 남작님.”
바다 건너 부르사 왕국의 철광석이 처음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행사에 참석한 바덴이 환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허허, 다 고슬라 사장님과 아인베크 남작님 덕이지요.”
“그런 말씀을 들으니 민망합니다. 고슬라 사장님과 슈텐달 남작님 덕이지 무슨 제 덕입니까? 하하하.”
피닉스 제철에 부르사 왕국의 값싼 철광석을 들여오는 일을 주도한 것은 바덴이었다.
슈텐달 남작은 든든한 우군이었고 아인베크 남작은 장원 별장 사업이 성공하도록 조언해 준 은인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의 사업을 도와줄 우호 세력을 구축할 뿐 아니라 인수한 조선소의 활로를 개척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허허, 민망한 말씀은 그만하시고 축하의 의미로 건배합시다.”
슈텐달 남작의 제안에 바덴과 아인베크 남작이 앞에 준비돼 있던 테이블에서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슈텐달 남작이 먼저 축사했다.
“아인베크 해운은 사고 없이 더 많은 화물을 운반하여 세계 최고의 해운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바덴 사장님은 하시는 모든 사업이 번창하길 바랍니다!”
“하하하, 바덴 사장님의 사업이 모두 번창하면 이 세상의 부를 독차지할 텐데요?”
“허허, 그게 그렇게 됩니까? 그럼 우리 몫은 남겨 두고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기분 좋은 농담에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과 잔을 부딪쳤다.
사실 조선소는 반란에 연루된 가문들의 요청으로 많은 기업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인수하다 보니 함께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식도 없고 경험도 전무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두 회사에 도움을 주면서 조선소도 살릴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뿌듯했다.
전쟁 발발로 인해 조선소에 수리를 맡긴 화물선을 찾아가지 못하는 선주들이 늘어나면서 중고 화물선을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철강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철광석 수요도 더욱 증가할 것이므로 중고 화물선을 수리해 빌려주거나 판매하는 사업은 꾸준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 해군에서 발주한 함선도 건조하고 있고, 철광석 운반 물량이 더 늘어나면 새로운 화물선도 건조하게 될 테니 조선소에 대해서는 한시름 덜게 되었다.
“피닉스 제철의 제2공장 착공도 축하드려요, 남작님.”
“허허, 모두 고슬라 사장님과··· 사장님 덕분이지요.”
슈텐달 남작이 루산을 언급할 뻔했으나 아인베크 남작이 옆에 있어 얼른 말을 삼키고 화제를 돌렸다.
“사실 제2공장 옆에 제3공장도 들어설 예정입니다.”
“벌써요?”
화들짝 놀라는 아인베크 남작의 모습에 슈텐달 남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속도로는 제4공장도 지어야 할 판인데, 공단 부지가 부족할 지경이어서 고민하고 있지요.”
“그렇습니까? 대단하십니다.”
“다 아인베크 남작님께서 철광석을 운반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허허허.”
사실 피닉스 제철의 성장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필센 제국의 철강 수요가 전체적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 단가를 낮춰 주는 공정을 도입하고 부르사 왕국에서 저렴한 철광석을 수입해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었기 때문에 지금도 구입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피닉스 제철이 이처럼 단기간에 급성장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레오파드 생산 기지와 정직한 기계 그룹에 속한 회사들이 피닉스 제철에서 생산하는 철강 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레오파드 생산 기지와 정직한 기계 그룹이 성장하는 한 피닉스 제철도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지금이야 레오파드 생산에도 정신이 없지만, 레오파드 생산 설비가 충분히 확충되고 나면 멕 워커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멕 나이트보다 멕 워커의 숫자가 몇 배는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닉스 제철의 급성장을 막을 요인은 당분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인베크 남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야 물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부르사 왕국의 철광석을 들여오겠으나 전쟁이라는 게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다른 철광석 공급처도 확보해 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슈텐달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국 중부와 남부에 있는 철광 주산지는 이미 기존 제철 회사들이 꽉 잡고 있어서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중부에 철광 하나를 잡고 있기는 한데, 매장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철광석 비축량을 늘릴 생각이니까요. 공급이 끊겨도 제3공장까지 2년 간 돌릴 수 있는 원료를 비축할 예정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전쟁으로 인해 부르사 공급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가능할 때 대량으로 저장해 놓아야죠.”
아인베크 남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씀은 계약 물량을 늘리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바덴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다섯 척 분량인데 제3공장이 완공되는 시점에는 스무 척 분량으로 늘릴 생각이십니다. 배는 걱정하지 마세요. 꾸준히 확보해서 넘겨드리겠습니다.”
“오, 저야 감사한 일이지요.”
현재 다른 운송 사업이 거의 막혀 있는 상황에서 철광석 운송 사업이 네 배나 늘어나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었다.
슈텐달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다른 철광석 공급처를 알아 봐야죠. 북부 전선은 당분간 어찌 될는지 불투명하지만, 남쪽 아라드 왕국은 적어도 내륙 지방은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하니 아라드 철광을 개발해 볼 생각입니다.”
“산지가 많아 운반이 어려울 텐데요?”
“철로를 놓든 산을 깎고 도로를 포장하든 해 봐야지요, 허허. 그 사이 해안까지 완전히 수복된다면 아인베크 남작님께서 남쪽 노선도 맡아주셔야 할 겁니다. 바다로 나르는 게 훨씬 싸게 먹힐 테니까요.”
“하하, 그렇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변경 8구역에서도 철광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발견한 철광산이 있기는 한데 품위가 낮아서 계속해서 찾고 있지요. 거기에도 제철 공장을 지을 생각입니다.”
“그러시군요.”
피닉스 제철은 변경 8구역에도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슈텐달 공단의 위치는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하거나 노바 동부 공업 지구와 해안가 다른 공업 단지에 제품을 판매할 때는 유리하지만, 레오파드 생산 기지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제국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자리하여 운반비가 많이 들었던 것이다.
원료의 품위가 낮아 비용이 다소 증가하더라도 운반비 절감액이 훨씬 큰 것으로 계산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가프 마법 연구소와 멕 나이트 제작에 필요한 특수강을 연구·생산하기로 하는 협약도 체결해 두었다.
“고슬라 사장도 8구역에 상당히 큰 식품 공장을 짓고 있어요. 일단 세금 조건이 괜찮아요. 철로도 다 놓여 있고, 노동력 구하기도 어렵지 않지요. 아인베크 남작님도 사업을 다변화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전쟁 시기에 해운업 하나만 해 나가기는 조금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불안하지요.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철광석 운반을 새로 시작했으니 당분간 이 일에 매진해 볼 생각입니다. 피닉스 제철의 성장과 함께할 수 있다면 보람도 클 것 같고 말입니다.”
“이런!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허허허!”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던 대화는 전쟁과 그로 인해 망한 주변 사업가들 이야기로 조금 무거워지다 이 시기에 적합한 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열기를 띠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슈텐달 남작이 배웅하며 말했다.
“강력한 외부 요인에 의해 언제든 쓸려 나갈지 모르는 시기입니다. 앞으로도 협력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핵심은 협력이었다.
바덴은 슈텐달 남작, 아인베크 남작과 협력을 약속하고 피닉스 제철을 떠났다.
자동 마차를 타고 노바로 가는 길에 비서인 소피아가 말했다.
“다음 일정은 유제품 생산 공장 증설 현장 참관입니다, 사장님. 현황 보고와 업체 보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네?”
“곧바로 자작나무숲 장원으로 가세요. 그리고 소피아가 직접 보름스 가문으로 가서 오늘 일정 취소한다고 알리세요. 보고는 내일 이 시간에 듣기로 하죠.”
“내일 이 시간에는 개척민 모집과 이주 현황에 관해 미팅이 있습니다.”
“모레는요?”
“모레 이 시간에는 바람의 언덕 장원 개선 보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럼 언제 시간이 비죠?”
소피아가 얼른 수첩을 펼치고 일정을 확인한 뒤 대답했다.
“내일 오후 다섯 시에 시간이 빕니다.”
“알았어요. 그럼 그때 보름스 장원으로 가기로 해요. 내가 없어도 공사가 멈추는 것은 아닐 테니까.”
“알겠습니다. 유제품 공장 관련 일정은 내일 오후 다섯 시로 하겠습니다.”
“네.”
바덴은 짧게 대답하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
자작나무숲 장원에 도착하니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덴은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사실 사업이 점점 바빠지면서 두 사람을 볼 시간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친교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잠시 인사를 나눈 뒤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기 사건이 재현될 상황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미스 고슬라. 도른하임 자작 가문은 이미 설계가 끝났어요. 가주가 사망하면서 내분이 심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쪽이 이기든 은행을 등에 업고 대규모 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전처럼 사업이 날아가고 빚을 지게 되겠죠.”
“오베론 공작 가문은 사기 보상금으로 내준 금액을 은행을 통해 다시 뜯어낸다는 거죠?”
“그렇게 될 겁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바덴이 물었다.
“도른하임 자작 가문에만 벌어진 일인가요?”
“아닙니다. 확인해 본 결과 다섯 개 가문에 작업이 들어왔어요. 물론 도른하임 가문만큼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가문들도 서서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봐야죠. 원래 이런 작업은 시간이 걸립니다.”
무려 2,800만 골드에 달하는 사기 피해 보상금.
오베론 가문이 사기를 치고 자기들이 다시 보상금을 지불했다가 또다시 빼앗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루산은 보름스 가문의 장원과 저택을 현물로 돌려받았고 재산 다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원래 기사님께 보고한 뒤에 일을 진행하는데, 기사님이 한동안 자리를 비우신다고 하셨어요. 마냥 기다리다가는 시기를 놓칠 겁니다.”
바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자신을 찾아온 까닭을 몰랐다.
사기 사건, 반란 사건과 관련해서는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도맡아왔고 그녀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루산을 만나 사기 사건에 대해 들은 직후에는 신경을 쓰려고도 했지만, 사업이 점점 바빠져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었고 루산도 바덴에게 사업에만 집중하라고 했기 때문에 사건 조사와 관련된 비용을 지급하는 일 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 처리와 관련해서 대강만 알 뿐 전모를 알지도 못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바덴의 질문에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포렌시스가 말했다.
“스텐커 탐정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 사람을 치면 이 일을 막거나 최소한 늦출 수가 있어.”
“세 사람이오?”
“응.”
“누군데요?”
포렌시스는 괜히 한번 주위를 돌아본 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업 은행장, 상업 은행장 그리고··· 재무대신.”
“······!”
두 은행장을 언급한 것도 놀라운데 마지막에 말한 재무대신은 충격적이었다.
바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지, 진심이에요?”
“우리를 드러내지 않고 사태 진행을 막으려면 이게 최선이더라고.”
“하, 하지만······.”
“알아.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네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 볼만 해.”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바덴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온 것이다.
바덴은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이미 한배를 탄 사람들이라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루산과 관련된 일이 아닌가.
“후우!”
그녀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했다.
“자세히 말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