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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72화 (172/450)

172. 사실의 힘은 무척 강합니다

172. 사실의 힘은 무척 강합니다

잠이 부족해 피곤한 얼굴로 깨작깨작 아침 식사를 하던 바덴이 클라크에게 말했다.

“오늘은 도서관까지 태워 드릴게요. 마침 약속 때문에 그쪽으로 가야 하거든요.”

“전 괜찮아요, 미스 고슬라.”

“날이 덥잖아요. 걸어가다 지치겠어요. 그렇게 힘을 빼면 어떻게 공부를 해요.”

“정말 괜찮은데······.”

그러자 바덴의 남동생 빈트가 냉큼 끼어들었다.

“누나, 나는? 내가 더위를 많이 타잖아. 아침에 걸어가면 지치고 피곤해서 공부를 못 하겠어.”

“넌 학교 가깝잖아. 방향도 반대거든?”

“나도 자동 마차 한번 타 보자! 친구들한테 자랑 좀 하게.”

“아함~ 나중에 네가 직접 돈 벌어서 사서 타든가.”

“치! 쩨쩨해.”

“힝! 이제 알았냐?”

티격태격하는 누나와 남동생의 모습에 클라크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바덴의 어머니가 나서서 사태를 진압했다.

“그만하고 밥들 먹어! 클라크처럼 잘 먹어야 차려 준 보람이 있지. 계속 이런 식이면 앞으로 밥 안 차린다!”

“먹어요, 엄마!”

바덴이 억지로 스프를 몇 번 뜨다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알았죠? 바로 준비해요.”

“···네, 알았어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덴의 쌍둥이 동생들이 먼저 등교를 했다.

클라크는 바덴이 출근 준비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다 함께 집을 나섰다.

운전기사와 비서가 인사를 해 오자 클라크도 그들에게 인사했다.

늘 바덴 옆에 앉아 일정을 브리핑하던 소피아가 조수석에 앉았다.

“바움 대학으로 먼저 가요.”

“네, 사장님.”

운전기사가 부드럽게 자동 마차를 출발시켰다.

“요즘 공부는 어때요? 학력 검정 시험이 얼마 안 남았죠?”

바덴의 의례적인 질문에도 클라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작은 것도 숨기지 않는 습관은 루산과 함께 살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루산은 똑똑하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고르느라 1년 동안 개척촌의 여러 아이들을 데려다 써 보고 바꾸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아이가 바로 클라크였던 것이다.

“그, 그게······.”

우물쭈물하는 클라크를 보고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요새 공부가 잘 안돼요? 무슨 고민이 있어요?”

“······.”

“말해 보세요. 이래 봬도 공부 쪽으로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으니까요.”

주저하던 클라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람은 평등한가요? 우리나라는 황제 독재 국가인가요? 우리나라 국민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나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바덴도 살짝 놀랐지만, 운전기사와 비서가 특히 당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뒷자리의 대화를 못 들은 척했다.

바덴은 운전기사와 비서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하느라 공부가 잘 안되나요?”

“네.”

바덴은 무슨 일인지 금방 파악했다.

대학 교정에는 열띤 토론을 벌이거나 연설을 하거나 캠페인을 벌이는 학생들이 늘 있었다.

과격한 이론과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나 바움 대학은 머리가 좋은 평민 출신 지방 학생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제국 아카데미, 노바 대학에 비해 그 열기가 매우 강한 곳이었다.

노바 대학을 나온 바덴도 학창 시절 인간의 권리와 새로운 정치사상에 심취해 여러 책을 보고 독서 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제국 아카데미는 황제파와 귀족파가 대립한다.

노바 대학은 귀족파와 평민파가 대립한다.

그런데 노바 대학은 공화파와 민주파가 대립한다.

죄다 평민 출신이기 때문에 황제파와 귀족파는 설 자리가 없었다.

괴수를 퇴치하고 삶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제일의 과제인 변경 출신 소년에게는 그 논쟁들이 얼마나 자극적일지 바덴은 충분히 이해했다.

젊은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 자유로운 발언, 멋진 이상 세계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덴이 고민하다 말했다.

“집사님, 저는 법을 배웠잖아요.”

“네, 미스 고슬라.”

“법을 배우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실과 당위를 구분하는 거예요. 사실의 문제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나눠야 해요. 평등한가의 문제와 평등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다른 거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또 이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요.”

클라크는 바덴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멋진 말이라는 느낌만 전해졌다.

그 낌새를 알아채고 바덴이 추가로 이야기했다.

“벽돌 하나를 나르는 사람에게 1코퍼를 준다고 해 봐요. 벽돌 열 개를 나르는 사람에게는 얼마를 줘야 할까요?”

“10코퍼요.”

“그렇죠? 그런데 하나를 나르든 열 개를 나르든 5코퍼씩 줘야 한다고 주장하면 옳은 걸까요?”

“옳지 않아요.”

“그렇죠. 하지만, 몸을 다쳐서 벽돌을 하나밖에 나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2코퍼는 받아야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해요. 1코퍼만 받으면 굶어 죽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어요. 그 사람에게 2코퍼를 주면 몸이 회복되고 가족들이 살 수 있죠. 그러면 벽돌을 한 개만 날랐어도 2코퍼는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사회적으로 그게 훨씬 낫죠.”

“그럴 것 같아요.”

“그럼 벽돌을 나르는 사람과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르게 보상해야 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바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이렇게 어려운 거예요, 평등이라는 게. 평등 하나만으로 엄청난 논의가 있죠.”

“음!”

변경 출신 소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렬한 구호, 멋진 표어, 열정적인 말들에 현혹되지 마세요.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해요. 어떤 사실들이 있었기에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건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하죠. 역사를 공부하고 경제를 공부하고 사회를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하고 자연을 공부하고 수를 공부하고···, 그 기초 위에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느낌이 다를 거예요.”

“네!”

큰 소리로 대답한 클라크도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바덴도 각자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자동 마차는 바움 대학 정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내려서 걸어갈게요.”

“알았어요.”

바덴은 도서관 앞까지 태워 주고 싶었지만, 괜히 시선을 끌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순순히 받아들였다.

클라크가 문을 열기 직전, 바덴이 말했다.

“사실의 힘은 무척 강합니다. 구호로 바뀌지 않아요. 그러나 정말로 옳다고 믿고 사실을 바꾸려고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언젠가는 사실이 바뀔지도 모르죠. 역사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죠.”

“네, 미스 고슬라.”

“공부 열심히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클라크는 바덴, 그녀의 비서와 운전기사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바움 대학 정문으로 들어갔다.

“공부 장소를 바꿔야 하나?”

바덴은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클라크는 워낙 진중하기 때문에 쉽게 휩쓸리지는 않으리라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가죠.”

“네, 사장님.”

***

클라크를 내려 준 뒤 바덴은 광고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필센 데일리를>을 방문했다.

미리 약속을 잡아 놓았기에 노바 신문의 사장과 영업 이사가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바덴은 몇 년 전부터 노바 신문을 비롯하여 필센 데일리, 파르나 신문, 경마 신문 등에 꾸준히 개척민 모집 광고를 내왔다.

그러나 그것은 엽서 크기의 작은 광고였다.

그런데 이번에 계약을 체결하는 광고는 사이즈가 크고 기간이 길었다.

<반달 그룹>, <용감한 나라> 광고를 1면 하단과 맨 뒷면에 통째로 싣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광고를 크게 싣기로 한 이유는 <반달 그룹> 식품 사업과 <용감한 나라> 장난감 사업을 본격적으로 제국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레오파드 간편식 외에도 반달 밀가루, 반달 통조림을 비롯한 반달 그룹 식품 제품군을 갖추었고, 용감한 나라 장난감 생산 공장과 다양한 디자인을 확보했던 것이다.

줄리아가 디자인한 친근하고 다정한 캐릭터들을 배경으로 한 광고는 정보 전달 위주의 기존 광고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광고는 재무대신을 쳐내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크게 성장한 기업들도 있지만, 소비 위축과 교역 차단으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신문들도 광고 수입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바덴의 광고는 신문사들에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바덴은 <필센 데일리>의 경영진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광고 계약을 체결하고 나왔다.

<필센 데일리>에 이어 <노바 신문>과 <파르나 타임즈>, <제국의 아침> 등과도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바덴은 작년에 귀족 가문 사기 사건을 다뤄 준 기자들을 불렀다.

이미 신문 변경 섹션을 함께 다루고 있었기에 친분이 있는 기자들이 많았다.

“공업 은행장 안스탈이 풀려난 것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런 범죄자가 다시 돌아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계의 크나큰 수치입니다. 상공인들이 어찌 은행을 믿고 사업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는 밖으로 크나큰 적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안에서 이런 썩은 자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덴은 과격한 언어를 아끼지 않으며 그동안 모은 자료를 내밀었다.

안스탈이 고객 돈과 은행 돈을 빼돌린 사건, 귀족 가문 사기 사건을 모방하여 자체적으로 벌인 기업 대상 사기 사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게다가 안스탈을 풀어주는 데 기여한 검사와 판사에 대한 정보까지 나와 있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어찌 이런 자를 풀어 주었단 말입니까?”

바덴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대출 사기로 회사를 빼앗긴 사장님들이 기자 회견을 열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날짜가 정해지면 다시 알려 드리죠.”

기자들은 바덴이 넘겨준 - 스텐커와 포렌시스가 열심히 조사해 작성한 - 자료를 소중하게 품고 돌아갔다.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에 바덴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는 데스크와 경영진을 무사히 통과해 신문에 실릴 것이다.

권력자나 고위 귀족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고, 데스크나 경영진이 볼 때 조금 거슬리는 내용이 있다 해도 바덴이 집행한 광고비가 위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덴은 이러한 일 처리 방식이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옳지 않은 쪽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사실의 힘을 기꺼이 사용하기로 했다.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고 원망이나 구호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노바 대학 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서 2등을 했음에도 일을 구하기 어려워 바닥을 박박 기는 동안 절절히 깨달았던 것이다.

기사가 대대적으로 나고 공업 은행장 안스탈은 다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바덴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스텐커를 만났다.

“이제 재무대신과 오베론 공작 쪽에서 안스탈을 공격한 배후를 파고들 거예요. 저들이 우리 쪽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재무대신을 쳐야 해요.”

사기 보상금을 불법적으로 회수하려는 오베론 공작의 계획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쌓아 올린 사업들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바덴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했다.

“재무대신을 공격할 확실한 자료가 있나요?”

“있습니다.”

스텐커가 봉투를 내밀었다.

바덴은 그것을 열고 안에 든 자료를 읽어 보았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바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걸로는 부족해요. 더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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