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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75화 (175/450)

175. 세상을 바꾸는 누군가가 우리가 되는 것도 괜찮다

175. 세상을 바꾸는 누군가가 우리가 되는 것도 괜찮다

공업 은행 대형 비리 사건이 피해자 기자 회견 내용을 포함하여 조간신문 1면에 크게 실렸다.

황궁과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재상인 오베론 공작은 각부 대신들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었으나 상무대신은 참석하지 않고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했다.

“······.”

보고를 다 들은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짓으로 상무대신을 내보냈다.

잠시 후 황제가 비서에게 명령했다.

“재상과 재무대신을 불러오라.”

“네, 폐하!”

정부 청사에서 회의를 하던 재상 오베론 공작과 재무대신 플라나 백작은 부리나케 황궁으로 달려왔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황제가 재상에 이어 재무대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침에 신문을 도배한 은행 비리 사건이 있지 않소?”

“네, 폐하!”

그때 오베론 공작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와 관련하여 회의를 하던 중······.”

황제가 손을 들어 재상의 말을 끊었다.

“그 은행장으로부터 규모가 상당한 회사를 받았다더군. 그 회사에서 재무대신한테 매달 꾸준히 현금을 보냈다고?”

재상과 재무대신이 화들짝 놀랐다.

“누가 그런······!”

“아니란 말이오? 코끼리 자동 마차.”

“······!”

재무대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재무대신.”

“네? 네! 폐하!”

“거지예요? 돈 없어요? 돈 줄까요?”

모욕적인 말이었다.

재무대신은 말할 것도 없고 오베론 공작은 마치 황제가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상무대신한테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걸로 우리 제국 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기를 바라오. 재무대신은 은행 감독 소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재상은 상무대신과 협의해 은행 감독 강화 방안과 피해자 구제 대책을 마련하시오.”

재상은 황제의 지시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은행 감독 업무는 재무부에서 상무부로 이관될 것이오.”

“······!”

오베론 공작에게는 뼈아픈 조치였다.

이것은 오래전에 자신이 개정을 주도했던 은행법이 철회됨을 뜻하는 것이고, 황제가 마치 자신이 그동안 반란 제어 작전을 빌미로 은행을 사적으로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 함부로 날뛰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

“제국이 존망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자기 주머니를 챙기려는 자가 있다? 허허, 기가 차서 원.”

황제는 꼴 보기도 싫다는 듯 손짓으로 두 사람을 내보냈다.

밖으로 나온 오베론 공작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소, 송구합니다, 재상 각하!”

재무대신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오베론 공작은 한숨이 나왔지만, 나무라지 않고 감싸 주기로 했다.

“그럴 것 없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겪는 법이야.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아무나 믿어서는 안 되고 아무 돈이나 받아서도 안 되는 게야.”

“네, 재상 각하!”

“더 안 좋은 일을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게. 그동안 받은 거 다 내놓고, 재산을 크게 떼어 전쟁 기금으로 내게.”

“그리하겠습니다!”

적의 적은 동지.

황제로부터 밉보인 사람을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상무대신이 증거를 갖고 있다고 내게 말해 준 건 무슨 뜻인가? 상무대신과 드잡이하라고? 허허! 그 장난에 놀아날 수는 없지 않겠소? 격이 맞아야지.’

황제는 이번 일을 자신을 찍어 누를 계기로 삼으려는 것 같지만, 그대로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상무대신과 드잡이하게 되면 그야말로 일개 신료 중 하나일 뿐이다.

오베론 공작은 곧바로 상무대신을 찾아갔다.

재무대신도 아니고 재상이 이렇게나 빨리, 게다가 직접 찾아올 줄 몰랐던 벤야민은 깜짝 놀랐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요? 큰일이 터졌으니 수습해야지요. 폐하께서 경과 의논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재무대신을 감옥에 보낸다는 것은 애초에 수습 내용에 들어 있지 않았다.

액수가 크고 죄질이 나쁘지는 하지만, 황제가 임명한 인물에 그런 죄를 씌우면 황제를 욕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재무대신을 끌어내린 것에 만족했다.

장부가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이 장부는 사용하는 것보다 들고 있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재상 각하, 은행 감독 권한을 상무부로 돌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이번에 대대적으로 은행 감사를 벌여 그동안 벌어진 비위를 모두 밝혀내겠습니다. 그래야 새로이 출발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세요.”

“불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은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부족한 부분은 정부에서 지원하여 정부가 국민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오베론 공작은 상무대신이 제시한 내용을 모두 수용했다. 논의하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 전향적 태도에 상무대신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상무대신의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오베론 공작이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재상 각하!”

“의욕이 넘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일을 할 때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는 필센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일합니다.”

“그렇지요.”

“말하자면 각자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국을 위해 협력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고자 다른 신료의 약점을 쥐고 황제 폐하께 고자질한다? 효과는 빠를지 몰라도 그런 방식의 일 처리가 과연 정부와 제국에 도움이 될까요? 자신에게는 이익이 될까요? 자신이 한 짓과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겠어요?”

벤야민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베론 공작은 그런 벤야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요. 황제 폐하한테도 먼지는 나옵니다.”

“······!”

공작의 불경스러운 말에 벤야민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오베론 공작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빌헬름 공한테 아우로라 연합의 첩자가 달라붙었다는 것을 과연 폐하께서 모르고 계셨을까요?”

빌헬름은 작년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유폐된 황제의 동생이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지요.”

“······!”

벤야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지켜보면서 연루시켜서 쳐냈다는 뜻이 아닌가!

“먼지는 재무대신뿐 아니라 폐하한테도 있고 나한테도 있지요. 우리는 서로 다 압니다. 그럼에도 어울려 살아가고 제국을 위해 일하는 거예요. 그런데 누군가가 마치 자신은 먼지가 없는 양 약점을 틀어쥐고 공격한다? 한번 털어 볼까요? 먼지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군요.”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을 나무라고 야단치는 줄 알고 반발심이 일었지만, 황제의 먼지도 태연하게 언급하는 오베론 공작 앞에서 벤야민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고 오베론 공작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미리 상의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요?”

“······.”

“바쁘실 테니 이만 갑니다.”

공작이 일어나자 벤야민도 얼른 따라서 일어났다.

문밖까지 공작을 배웅하고 돌아온 뒤에도 벤야민은 한동안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

정부의 발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재무대신은 은행 감독 소홀로 물러나는 데 그쳤고,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3만 골드의 전쟁 기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책임을 대신했다.

앞서 공업 은행장을 풀어 주는 데 기여한 검사나 판사에 대한 징계도 없었다.

바덴과 그의 동료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라도 이루어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은행 관할이 상무부로 이관되면서 상무부에서 대대적인 은행 감사를 벌였고, 그동안 부정행위와 관련된 은행 임원과 지점장들이 줄줄이 체포되거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약속대로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이 마련되었다.

공업 은행장 안스탈에게 사기를 당한 업체의 사장들은 판을 깔아 준 은인에게 고마워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정작 그 은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안전을 위해 최대한 정체를 숨겼기 때문이다.

씽씽 자동 마차의 포이어 바겐과 그의 아버지 트로이어 바겐만이 바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면 좋겠습니까, 고슬라 사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바겐 사장님.”

바덴은 눈물을 흘리는 트로이어의 손을 잡아 주며 위로했다.

평생 자동 마차를 만져 왔기 때문에 그의 손은 무척 거칠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러웠다.

바덴이 트로이어와 포이어에게 말했다.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으니 새 이름으로 시작하죠. 회사 이름을 붐붐 자동차로 바꾸는 건 어떤가요?”

“붐붐 자동차요?”

“네. 집채만 한 수레를 끄는 거대한 변경 괴수 세로스를 그곳 사람들은 붐붐이라고 부르거든요. 붐붐 소리를 낸다고. 힘이 굉장하죠. 붐붐 하고 소리 낼 때 울리는 느낌도 좋고. 가슴을 울리잖아요! 게다가 누구나 기억하기 쉽고.”

“붐붐-.”

“붐붐-.”

트로이어와 포이어가 소리를 내 보았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은인이 제시한 이름을 반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정말로 가슴이 울렸다.

“앞으로 붐붐 자동차에서 출시한 대형 화물차는 웅장한 소리를 내며 힘차게 대륙을 질주할 겁니다.”

바덴이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왜 회사 이름이 자동 마차가 아니라 자동차인가요?”

“말이 끄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기존의 관행을 꼭 따를 필요가 있나요? 세상은 바뀌는 겁니다. 그 말은 누군가가 바꾼다는 것이죠.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세상을 바꾼다!

자동 마차와 자동차.

단지 글자 하나 차이지만, 여기에 담겨 있는 바덴의 자신감이 부자의 가슴을 흔들었다.

“앞으로 화물차 수요가 더욱 늘어날 테니 당분간 화물차에 집중하겠지만, 승용차 개발도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덴은 <코끼리 자동 마차>를 <붐붐 자동차>로 바꾸고 바겐 부자와 지분 50퍼센트씩 나눠 갖는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했다.

트로이어 바겐은 연구와 생산을 담당하고, 바덴은 영업과 홍보, 자금 조달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트로이어 바겐의 아들 포이어 바겐은 바덴에게 자동차 전반에 대해 조언해 주면서 바덴으로부터 경영을 배우기로 했다.

포이어 역시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만져 왔지만, 바덴은 붐붐 자동차를 작은 공업사가 아닌 거대 회사로 키울 생각이었기 때문에 믿을 수 있고 회사를 제대로 경영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바덴이 볼 때 포이어는 충분히 자질이 있었다.

그렇게 <붐붐 자동차>가 출발했다.

***

바겐 부자와 함께 있을 때 줄곧 미소를 잃지 않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던 바덴은 포렌시스, 스텐커를 만난 자리에서 냉정하게 말했다.

“이것은 옳지 않아요.”

“······.”

“······.”

“그들에게 피해 보상금을 받아낸 것도 기사님이고, 그들이 다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애를 쓴 것도 우리들이에요.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한 건 기사님과 우리인데, 그들은 아무 것도 한 게 없이 누리고 있단 말이에요. 심지어 이번에 우리가 자기들을 도운 것도 모르지 않나요?”

사기 피해를 당한 귀족 가문들을 말하는 것이다.

“뭐 어쩌겠어?”

포렌시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바덴이 단호히 말했다.

“누구 덕인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줘야죠. 속없이 재산 분쟁이나 벌이고 있을 수 있는 게 누구의 덕인지 분명히 일깨워 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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