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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76화 (176/450)

176. 변경 파일럿을 탓하지 마라

176. 변경 파일럿을 탓하지 마라

포렌시스는 필센 제국 중서부에 있는 도른하임 가문 저택을 방문했다.

“변호사께서 무슨 일이시오?”

최근에 사망한 도른하임 자작의 뒤를 이어 가주가 된 큰아들이 포렌시스를 맞이했다.

나이 50이 넘은 새 가주는 작년에 노바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그때 사망한 도른하임 자작을 모시고 노바로 와서 루산이 오베론 공작으로부터 받아낸 피해 보상금을 수령하고 주의 사항을 들을 때만 해도 갑자기 생겨난 거액의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지금은 늙고 무기력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렌시스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스텐커를 도와 사기 사건의 뒤를 캐는 일에 협조한 그의 둘째 아들 - 현 가주의 둘째 아들, 사망한 도른하임 자작의 손자 - 을 통해 꾸준히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약한 성품의 현 가주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피해 보상금 사용을 둘러싼 동생과 숙부들의 다툼에 진저리가 나 있었던 것이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가주는 일단 사람을 불러 차를 내오게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지 궁금하군요.”

“이 이야기는 가문의 다른 분들에게도 비밀입니다.”

포렌시스가 목소리를 낮추고 분위기를 잡자 가주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알았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보름스 자작님이 오베론 공작으로부터 피해 보상금을 받아 내어 각 가문에 돌려 드리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보름스 자작, 루산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억하오.”

가문의 재산을 되찾던 날의 일이라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재산으로 인해 재산 싸움이 예상된다. 오베론 공작도 그 돈을 어떤 식으로든 회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피닉스 제철에 투자를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죠.”

포렌시스가 굳이 확인을 시켜 주자 가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게도 재산 싸움이 현실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제 짐작에 최근에 잠깐 가문 내 다툼이 뜸해졌을 것 같은데, 맞나요?”

“음? 그걸 어떻게 아시오?”

가주가 놀람과 궁금증이 뒤섞인 눈으로 포렌시스를 쳐다보았다.

“아마 이 지역 공업 은행, 상업 은행 관계자들이 대거 교체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쪽과 교류하던 가문 분들이 혼란스러울 것이고요.”

“그렇소? 그런데 그런 일을 어찌 아시오?”

“얼마 전에 공업 은행, 상업 은행, 재무부의 수장과 고위 간부들이 대거 교체되었습니다. 감사가 진행 중이기도 하고요.”

가주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포렌시스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신문도 안 읽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동생께서는 상업 은행과 닿아 있고, 숙부들께서는 공업 은행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공업 은행, 상업 은행, 그리고 이 은행들을 감독하던 재무부까지 오베론 가문의 영향을 받고 있었죠.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피해 보상금을 받기 전까지 동생이나 숙부들께서 상업 은행, 공업 은행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을 겁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가문에 은행이 왜 접근해 오겠습니까? 두 은행은, 도른하임 가문의 피해 보상금을 회수하기 위한 오베론 공작 가문의 계략에 따라 움직인 것입니다.”

“······!”

“보름스 자작께서 그것을 파악하시고 정부 내 알력 다툼을 이용해 공업 은행, 상업 은행, 재무부 수장을 쳐내신 겁니다.”

“그게 정말이오?”

가주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졌다.

포렌시스는 무거운 표정을 풀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보름스 자작께서는 매우 불쾌해 하십니다. 피해 보상금을 찾아준 것도 자작님이시고, 또 다시 피해를 받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자작님이시죠.”

“흐음······.”

“분명 경고를 했음에도 가문 구성원을 다스리지 못해 비슷한 수법에 당할 뻔한 겁니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하신 것 아닙니까?”

포렌시스의 힐난에 가주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보름스 자작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은 없다고.”

“세 번은 없다? 흐음!”

“첫 번째 사기는 몰랐으니 당했다 치더라도 두 번째는 분명 경고를 했고 사기를 경험해 봤음에도 당할 뻔했죠. 계속 돕고 싶겠습니까?”

“끙!”

“보름스 자작께서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가문을 망하게 한 오베론 공작과 싸우고 계십니다. 도와주지도 않는 가문을 위해서 왜 홀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하아!”

“세 번은 없다. 이 말씀 전하고 돌아가겠습니다.”

포렌시스는 정말로 그 말만 다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보시오!”

가주가 불러도 멈추지 않고 집을 나가 타고 온 자동 마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가주는 망연자실하여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찌해야 좋을지 자식들을 불렀다.

가문 내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음에도 우유부단한 그는 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동생과 숙부에게는 말하지 못해도 자식들에게만은 상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전에 포렌시스와 상의를 한 둘째 아들이 최근 신문들을 모아 보여 주었다.

공업 은행장, 상업 은행장, 은행 고위 임원들 체포.

공업 은행장의 사기에 당한 사장들의 기자 회견.

재무대신 해임.

정부의 대책.

“이 일을 정말 보름스 자작이 했단 말이냐?”

“그럼 누가 하겠습니까, 아버지? 이 시국에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났겠어요?”

“흐음!”

“아버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가주로서 단호하게 식솔들을 다스리십시오. 가문이 망했을 때 숙부와 작은할아버지들이 무슨 도움을 줬습니까? 그분들에게 무슨 결정권이 있습니까? 정 안타까우시면 조금씩 나눠 주고 단호하게 끊으십시오.”

“그건 그렇다 치고 오베론 공작이 또 재산을 빼앗으려 하면 어떡하느냐?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그것을 막겠느냐?”

둘째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혹시 사업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전혀 없다. 그 머리 아픈 일을 왜 하겠느냐?”

“그러면 전에 보름스 자작께서 말씀하신 대로 피닉스 제철에 투자하십시오. 집에 돈이 없으니 오베론 공작에게 당할 일도 없고, 피닉스 제철의 슈텐달 남작은 보름스 자작과 함께 우리의 동지입니다. 우리도 기꺼이 협력한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신문 기사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보름스 자작은 오베론 공작에 맞설 힘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에요.”

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피닉스 제철은, 지금 잘 나갑니다. 단기간에 제4공장 건립 계획까지 확정했어요. 철강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죠. 피닉스 제철에 투자해서 받는 배당 수익만으로도 잃어버린 땅을 조금씩 사 들일 수 있습니다. 사업을 안 하실 거라면 이게 가장 낫다고 봅니다.”

도른하임 자작 가문의 가주는 자신의 둘째 아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피닉스 제철이 제4공장을 지었다는 걸 어찌 아느냐?”

“신문에 나오잖습니까? 신문도 좀 보고 사세요, 아버지.”

아들의 타박에도 가주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든든한 자식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체감했다.

둘째 아들을 필두로 한 아들들의 성원과 뒷받침에 힘입어 도른하임의 가주는 동생과 숙부들에게 5천 골드씩 떼 주고 - 너무 많이 준다고 둘째 아들에게 혼이 났지만, 혈육에 대한 정이 남달라 어쩔 수 없었다 - 남은 피해 보상금 전액을 피닉스 제철에 투자했다.

무려 150만 골드나 되는 거액이었다.

오베론 가문으로부터 매년 분할해 받기로 한 140만 골드도 아직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피닉스 제철의 사업 상황을 지켜보고 투자할 생각이었다.

포렌시스는 전국을 돌며 피해 보상금을 받은 가문들을 방문했다.

모든 가문이 뜻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강한 압박은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단번에 제3공장까지 건설을 서두르는 바람에 잠시 자금난에 허덕이던 피닉스 제철은 단비 같은 투자를 받아 숨통이 트였다.

***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기를 당한 귀족 가문 사람들에게 오베론 공작의 흉계를 분쇄하고 재차 사기를 당할 뻔한 위기에서 구해준 영웅으로 떠오른 루산.

그는 노바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이스타드 왕국 변경을 아우로라 연합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다.

“굳이 당장 레오파드를 노출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루산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그러자 볼프강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레오파드 150대면 상당히 규모가 큰 부대입니다. 이스타드 변경을 통제하고 있는 굴다크 공작의 멕 나이트보다 훨씬 많아요.”

보로츠에 따르면 이스타드 변경을 통제하는 역할 - 필센 제국으로 치면 변경 군단 본부에 해당하는 임무 - 은 현재 굴다크 공작 휘하의 4군단 1전단이 맡고 있었다.

이스타드 왕국 변경에서 태어나 8년을 정찰병으로, 11년을 사냥 팀에 고용된 파일럿으로, 7년을 사냥 팀의 리더로 살아온 보로츠는 이 땅의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2개 전단 규모의 멕 나이트 부대와 2개 보병 사단이 들어왔다고 했다.

변경 군단과 이곳에서 활동하는 민간 사냥꾼들의 멕 나이트를 빠르고 신속하게 제압하고 모든 시설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아우로라 연합의 많은 나라와 유력 귀족들이 변경의 괴수 부산물을 차지하기 위해 이 땅으로 병력과 물자를 투입하고 그 규모가 점점 늘어나자 굴다크 공작은 휘하의 병력을 점점 줄여 나갔다.

전선이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점점 병력을 줄여 현재 이곳 변경에는 굴다크 공작의 4군단 1전단 가운데에도 2개 전대가 통제와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아우로라 연합에서 보내 온 사냥 팀은 약 30여 개. 규모가 제각각이어서 작은 곳은 멕 나이트 3대와 약간의 지원 팀, 큰 곳은 멕 나이트 40대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대략 200대 이상의 멕 나이트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 땅에서 활동하던 사냥꾼들을 길잡이로 삼아 괴수를 잡다가 지리와 사냥에 익숙해지자 자체적으로 활동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좋은 사냥터를 차지하면서 기존에 이 땅에서 살아가던 괴수 사냥꾼들은 점점 더 원시의 땅 깊숙이 쫓겨났다.

그래도 이스타드 변경 군단과 민간 사냥 팀의 멕 나이트는 여전히 100대 이상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괴수 부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한 아우로라 연합은 항복한 변경 사냥꾼들의 활동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가격을 크게 후려치기는 했지만.

“현재 이 땅에서 규율이 제대로 잡혀 있는 부대는 굴다크 공작 휘하의 2개 전대뿐입니다. 그조차 여러 전진 기지에 흩어져 있죠. 나머지 아우로라 대륙에서 온 사냥 팀은 흩어져 사냥만 할 뿐입니다. 이스타드의 드넓은 변경 땅에 200여 대가 흩어져 있다면 서로 연락도 잘 안 될 겁니다. 충분히 각개격파가 가능합니다.”

“레오파드를 등장시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어떻게 각개격파를 한다는 말이오?”

“이스타드 변경 파일럿들이 저항하는 것으로 하죠. 변경 군단 파일럿과 민간 사냥 팀 파일럿들을 규합해 이 땅에 들어와 있는 이스타드 세력을 다 쓸어버리는 겁니다.”

“······!”

“······!”

볼프강과 보로츠가 놀란 눈으로 루산을 쳐다보았다.

“레오파드 150대가 나타나면 아우로라 놈들은 경각심을 갖게 될 겁니다. 최소 2개 군단 이상을 출동시키게 되겠죠. 우리는 유격전을 벌이겠지만, 그러면 오랫동안 이 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래 그것이 계획이었잖소?”

“그랬는데, 이곳에 와서 사정을 알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정체를 드러내지 말고 이스타드의 변경 파일럿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 정책과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난 것으로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저들은 처음부터 대규모 진압 부대를 동원하지 않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정도의 부대만 파견하게 될 테고, 그러는 족족 우리가 잡아먹으면 됩니다. 저들이 실제로 입은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겁니다.”

“흐음!”

확실히 좋은 방법이었다.

단,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볼프강이 보로츠를 흘낏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변경 파일럿들이 우리를 도와 아우로라 놈들과 싸우겠소? 애초에 이들이 100대가 넘는 멕 나이트로 변경 땅에서 적을 귀찮게 하기만 했어도 북부 전선이 이토록 어렵게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오. 돈만 알고 괴수나 잡는 자들이라 두려워 싸우지 않고 항복해 버린 거지.”

볼프강의 비난에 보로츠는 분노했지만, 항의하지 못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루산이 볼프강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변경 파일럿들이 왜 싸워야 하죠?”

“왜 싸워야 하냐니? 나라가 침략을 당했으니 맞서 싸우는 건 당연한 일 아니오?”

“침략을 당해 백성들이 고초를 겪지 않도록 나라가 막아 줘야죠!”

“음?”

“변경 파일럿은 군인이 아닙니다. 괴수 부산물 생산과 변경의 안전에 기여하는 민간인이죠. 왕과 기사들이, 평소 많은 걸 누리는 그들이, 이들이 편안하게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막아 줘야죠. 그걸 하지 못한 무능을 탓해야지 왜 이들을 탓합니까?”

갑작스러운 루산의 공격에 볼프강은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여 성난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루산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보로츠는 루산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 같아 고마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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