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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84화 (184/450)

184. 내 것도 아닌데, 뭐

184. 내 것도 아닌데, 뭐

루산은 작전의 취지를 파일럿들에게 수차례 설명했다.

“우리는 이렇게 보여야 합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이스타드 변경의 괴수 사냥꾼들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아우로라의 사냥꾼들을 우발적으로 공격하고, 그 사실이 알려져 보복을 받을 것이 두려워 힘을 합쳐 먼저 변경 본부를 쳐서 운 좋게 주둔군을 제압했습니다. 자신감이 차오른 이스타드 해방 전선은 아우로라 연합의 진압군에 당당하게 맞섰으나 막상 훈련이 잘된 아우로라 연합의 대규모 기동 부대를 보니 낡은 기체로 맞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겁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파일럿 한두 명이 먼저 저도 모르게 달아나기 시작하고 갑자기 대열이 확 무너집니다. 누가 봐도 겁을 잔뜩 먹고 달아나는 것처럼 보여야 하죠. 그래야 전과를 확대하기 위해 쫓아오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여 일 동안 지속적으로 훈련했다.

그 덕에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낡은 멕 나이트들은 겁을 먹고 마구잡이로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달아나는 것만으로는 적을 제대로 속일 수 없었다.

맨 뒤에서 달리던 루산이 마나 통신기로 지시했다.

[1단계 작전을 시작한다! 1조, 실시!]

[알겠습니다!]

멕 나이트 한 대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콰당!

평소 관절 상태가 좋지 않아 괴수를 사냥할 때에도 조심조심 움직이던 낡은 멕 나이트 한 대가 갑자기 무리해서 달리게 되자 관절에 미치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무릎이 고장 나 넘어진 것처럼 보였다.

해당 멕의 파일럿은 깜짝 놀라 얼른 상체만 일으킨 뒤 조종실 문을 열고 동화기에서 벗어나 멕 나이트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동안 나름 열심히 훈련했다지만, 실제로 하려니 겁이 났다.

어쨌든 파일럿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멕에서 뛰어 내렸다.

파일럿이 멕 나이트를 포기하고 긴급 이탈을 감행하자 바로 뒤에서 달리던 멕 나이트가 얼른 그 파일럿을 들어 어깨에 올리고 달렸다.

1조의 다른 멕 나이트는 긴급 이탈한 파일럿을 무사히 구조해 달릴 때까지 다른 멕들이 그 파일럿들 밟지 못하도록 뒤에서 보호해 주었다.

파일럿이 이탈해 버린 멕 나이트는 그대로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쿵!

마치 낙오한 병사가 지치고 병들어 쓰러진 모습 같았다.

다른 멕 나이트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진 멕 나이트를 피해 계속 달아났다.

[2조, 긴급 이탈 실시!]

[2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낡은 멕 나이트 한 대가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풀썩 쓰러졌다.

파일럿이 얼른 멕 나이트를 살짝 일으켜 조종실 문을 열고 동화기를 풀어 뛰어 내렸다.

뒤따라오던 다른 멕 나이트가 그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쥐어 어깨에 올린 뒤 계속해서 달렸다.

[3조, 긴급 이탈 실시!]

[알겠습니다!]

[4조, 긴급 이탈 실시!]

[4조, 시작합니다!]

멕 나이트들이 달리는 와중에 긴급 이탈을 감행하는 것은 파일럿에게 살 떨리는 일이었다.

자칫 자신의 멕 나이트에 깔려 죽을 수도 있고, 다른 멕 나이트에 밟히거나 발에 차인 돌 파편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루산은 무척 낡고 상태가 좋지 않은 멕 나이트를 사전에 골라, 해당 멕 나이트의 주인에게는 획득한 아우로라 사냥꾼들의 멕을 대신 주기로 약속하고, 무려 15대를 그런 식으로 길에 버렸다.

추격해 오던 굴다크 공작군 기동 부대는 군데군데 쓰러져 있는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을 살피느라 속도가 느려졌다.

[와! 이런 걸 타고 우리와 싸우려고 했단 말이야?]

[우리한테 고철 처리를 대신 맡으라는 거야 뭐야?]

적의 움직임에 의구심을 갖던 파일럿들도 쓰러져 있는 멕 나이트의 더럽고 녹슨 장갑판과 부식이 심각한 몸체 부품, 헐거운 관절 상태를 보고 달아나는 이유를 수긍해 버렸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 2전단 파일럿들은 이스타드 변경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지만, 변경에서는 중고 멕 나이트를 사용한다는 것 정도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중고라도 꾸준히 정비를 받고 마모된 부품을 교체하면 기체 성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변경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는 어려웠다.

유지 보수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경의 중고 멕 나이트는 엔진 출력이 신품의 7, 80퍼센트만 되어도 양호한 것이고, 관절에서 소리만 나지 않아도 좋은 기체로 쳐 준다.

그런데 이곳의 멕 나이트들은 말로 들었던 변경의 중고 멕 나이트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이런 적을 상대로 주저하거나 극도의 조심성을 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

[놈들의 속도가 더욱 처진다! 추격하라!]

전단장이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파일럿들이 다시 속도를 높였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은 긴급 이탈을 감행한 동료 파일럿을 구하느라 속도가 떨어진 데다 원래 기체 상태가 좋지 않아 추격해 오는 적의 멕 나이트와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들이 원시의 숲 사이로 난 길로 들어갈 무렵 굴다크 공작군의 선두가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꼬리에 거의 닿았다.

- 잡았다, 요놈!

육중한 헤비 스틸이 아이언 워리어의 등판을 노리고 두꺼운 강철 방패를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나 그 아이언 워리에에 타고 있던 파일럿은 마치 뒤통수에 눈이 있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움직여 방패 강타 공격을 피했다.

- 헤! 너무 느려서 맞아 줄 수가 없구나.

후미를 지키고 있던 시에나가 놀리며 달아났다.

- 이놈!

헤비 스틸이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그때 굴다크 공작군의 지휘관이 거대한 원시의 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숲을 살피며 주의를 줬다.

[적이 매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조심하라!]

아니나 다를까, 숲 사이로 난 길 양쪽에서 멕 나이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나무 뒤에 붙어 있어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는 멕 나이트들이 무려 100여 대나 나타난 것이다.

[적이다!]

[흥! 그럴 줄 알았다. 이 생쥐 같은 놈들! 겁먹지 마라!]

매복해 있던 멕 나이트들이 나무 사이에서 달려들고 달아나던 멕 나이트들도 반전하여 덤벼들었다.

굴다크 공작군의 멕 나이트들은 두 배로 늘어난 적의 숫자에 살짝 놀랐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를 이뤄 대응했다.

길과 길 옆 숲에서 최초의 전투가 벌어졋다.

[2단계 작전을 시작한다!]

루산의 명령이 떨어지자 나무와 동료 멕 나이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낡은 멕 나이트에서 파일럿이 내려 동료 멕의 어깨에 타고, 파일럿이 내린 멕 나이트에 마나 진동 대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끄그그극!

[이 아까운 걸······.]

[시간이 없어! 빨리 해!]

루산이 봤을 때 멕 나이트를 상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의 멕들이었지만, 이스타드 변경 파일럿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멕 나이트였다.

그러나 역시 아우로라 사냥꾼들에게서 획득한, 더 상태가 좋은 멕을 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스타드 파일럿들은 서둘러 자신이 타던 멕 나이트를 파괴했다.

그러는 사이 숲속에서 양측이 맞붙은 최초의 싸움은 상당히 치열하게 이어졌다.

매복한 멕 나이트와 굴다크 공작군 멕 나이트는 숲속에서 밀고 밀리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나무 사이에 가려 동료들의 전투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각개격파의 우려가 있다!’

굴다크 공작군 지휘관이 소리쳤다.

[길로 나와 방어 대형을 형성하라!]

숲속에 들어가 싸우던 아우로라 멕들이 적을 떨치고 길로 나왔다.

그러자 매복해 있던 멕들과 달아나던 적들은 더 싸우지 않고 경계하며 서서히 물러났다.

[상황을 보고하라!]

굴다크 공작군 4군단 2전단장의 지시에 전대들이 피해 상황을 파악하여 보고했다.

[총 6대가 기동 불능입니다! 12대는 장갑판이 일부 떨어져 나갔지만, 전투에 지장이 없습니다!]

[음?]

생각보다 피해가 커서 전단장은 깜짝 놀랐다.

적의 기체 상태가 형편없었고, 겨우 괴수나 사냥하던 파일럿들과의 싸움에서 이렇게나 많은 피해를 입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 중에서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멕 나이트에는 필센 제국 북방군 3군단 6전단 파일럿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과감히 협공을 펼쳐 아우로라 멕 나이트를 쓰러뜨렸다.

[적의 피해는 어떠한가?]

[전단장님, 이 주변에 쓰러져 있는 적의 멕이 무려 30대가 넘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야말로 대승이 아닌가!

두 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무려 다섯 배가 넘는 피해를 입혔다.

달아나서 고장이 나서 버리고 간 적의 멕까지 합치면 예닐곱 배는 족히 되는 성과를 얻은 것이다.

북방군 3군단과의 답답한 전투만 해 오던 굴다크 공작군으로서는 오랜만에 거둔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낡은 멕도 멕은 멕이니까!’

4군단 2전단장은 살짝 꺼림칙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추격을 늦추지 마라!]

[하지만, 전단장님! 지원 부대 병력과 너무 떨어져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좀 더 면밀히 살피며 추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하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다 놈들이 깊이 숨어 버리면 어떻게 잡으려고 하느냐? 변경은 무척 넓고 우리는 이곳 지리를 잘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놈들이 만용을 부려 우리 앞에 나타나 주었을 때 해치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변경 땅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헤매야 할지 모른다.]

부하들이 전단장의 말에 수긍했다.

[공작 각하께서 최대한 빠르게 저항 세력을 짓밟으라 하셨다!]

굴다크 공작은 괴수 부산물 생산에 지장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변경을 차지하는 것은 아우로라 대륙의 염원이었다.

이스타드 변경을 차지했기 때문에 아우로라 대륙의 많은 세력이 지원군을 보내와 북방 전선에서 필센 제국군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이스타드 변경이 적의 유격 활동으로 괴수 부산물 생산이 중단된다면 아우로라 대륙에서의 지원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곧 겨울이 온다. 그 전에 끝을 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보병대와 정찰대는 인근 개척촌을 장악하고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색출하라 지시하고, 우리는 멕 워커 보급대를 이끌고 서둘러 놈들을 뒤쫓는다. 놈들이 숨기 전에 잡아야 한다! 서둘러라!]

[네, 전단장님!]

잠깐의 추격전과 교전으로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확인했다.

이스타드 변경에 존재하는 멕 나이트 총수는 약 300대.

3분의 2가량을 이미 확인한 상황, 나머지 3분의 1은 이스타드 해방 전선이 아우로라 사냥 팀과 주둔군과 싸울 때 파손되었겠지만, 설사 그대로 나타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기체의 성능 차이와 파일럿의 실력 차이로 압도할 수 있었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 2전단장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100대의 멕 나이트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려 40여 대의 멕 나이트를 던져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합리적이었다.

아무리 낡은 멕이라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루산은 기꺼이 낡은 멕 나이트 40대를 미끼로 던졌다.

‘내 것도 아닌데, 뭐.’

낡은 멕 나이트의 주인들에게 보상으로 주기로 한 아우로라의 멕 나이트 역시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설사 이 낡은 멕의 주인이 자신이었다 해도 루산은 기꺼이 미끼로 썼을 것이다.

왜냐하면 낡은 멕 40대를 미끼로 굴다크 공작군이 사용하던 군용 멕 100대를 얻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것, 그리고 그 100대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왕 북방까지 오게 된 것, 루산은 아무 큰 사냥감을 낚아 볼 생각이었다.

내 것이 아닌 미끼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상황은 그의 부담감을 크게 덜어 주었다.

[3단계 작전으로 들어간다!]

루산이 마나 통신기로 힘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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