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그건 대장님 스타일이 아니야
185. 그건 대장님 스타일이 아니야
굴다크 공작의 기동 부대를 목적지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적 기동 부대가 붉은 바위산 앞을 막 통과함.]
붉은 바위산 위에서 몸을 숨긴 채 적을 감시하고 있던 레오파드 라이트닝 파일럿이 중계 기지 역할을 하는 다른 레오파드 라이트닝들을 거쳐 마나 통신을 보내 왔다.
붉은 바위산은 이스타드 해방 전선 후미 멕 나이트가 조금 전에 지나온 곳이라 금방 따라잡힐 것 같았다.
‘목표 지점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기체 성능이 들쭉날쭉한 데다 이스타드 변경 파일럿들의 체력과 멕 나이트 조종 실력이 기체 성능만큼이나 천차만별이어서 가장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이동하다 보니 금방 따라잡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속도가 처지는 파일럿들을 낙오시키고 작전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레오파드 전단 파일럿들만으로 작전을 성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이스타드 변경 파일럿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는데,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작전을 진행하면 협조할 리가 없었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 레오파드 전단 파일럿들은 이스타드 변경 파일럿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야 했다.
[놈들이 옵니다. 6전단 파일럿들은 전투에 대비합니다.]
[알겠소!]
[긴급 이탈조도 준비하세요.]
[또? 후유, 그럽시다.]
계속된 추격으로 굴다크 공작군도 전열이 살짝 흐트러져 멕 나이트 세 대가 본대와 살짝 떨어져 돌출돼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볼프강이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야! 들이받아!]
[네!]
쾅!
쿠쿵!
볼프강이 지휘하는 6전단 1전대 파일럿들이 후미에서 몸을 돌려 갑자기 굴다크 공작군 멕 나이트에 달려들었다.
멕 나이트 세 대가 한 조를 이뤄 한 대가 적의 방패를 막고 다른 한 대가 대검을 방어하는 사이, 나머지 한 대가 텅 빈 적의 가슴에 마나 진동 대검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오랫동안 훈련해 온 전선 파일럿들의 강한 합동 공격!
끼기긱!
소름끼치는 금속 마찰음이 몇 번이나 울려 퍼졌다.
그러는 사이,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낡은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전투 현장 바로 옆에서 긴급 이탈을 감행했다.
쓰러진 멕 나이트의 몸에 다른 멕 나이트들이 마나 진동 대검으로 험악한 칼질을 했다.
짧은 시간의 교전 이후, 이스타드 해방 전선 멕 나이트들은 다시 부르나케 달아났고 굴다크 공작군 본대는 허둥지둥 현장에 도착했다.
[음!]
전단장이 아군의 피해를 확인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군 세 대, 기동 불능입니다! 적은 여덟 대가 쓰러져 있습니다!]
다행히 아군의 압도적인 승리!
멀리서 봤을 때 분명 훨씬 많은 적의 멕 나이트가 소수의 아군 멕 나이트를 에워쌌는데, 적이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놈들이 더 깊이 달아나기 전에 끝을 낸다! 추격하라! ]
[네, 전단장님!]
[각 전단은 돌출하는 기체가 없도록 신경을 쓰도록!]
[알겠습니다!]
멕 나이트 90여 대, 멕 워커 20여 대가 추격을 계속했다.
낡은 기체로 허둥지둥 달아나는 적들이 저 앞에 보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적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들은 다시 깊고 울창한 숲으로 들어갔다.
마른 나뭇가지와 잎들이 바닥에 잔뜩 쌓여 걸을 때마다 버스럭버스럭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더 들어가자 낙엽 밑에 있던 물기가 멕 나이트 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늪지가 시작된 것이다.
찹찹찹-
찹찹찹-
얕게 고인 물을 밟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더니 어느 틈에 물소리가 바뀌었다.
첨벙첨벙-
물이 좀 더 깊어진 것이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 파일럿들은 그 변화를 알고 있었지만, 뒤를 쫓는 굴다크 공작군 파일럿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눈앞에 달아나는 적에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던 데다가 워낙 늪지대가 넓었고 수심의 변화가 미미해 물소리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지휘관 역할을 맡고 있던 보로츠가 마나 통신기로 말했다.
[지금부터 조심해! 앞선 기체가 밟고 가는 길만 디뎌야 해!]
수차례 주의를 준 내용이었다.
6전단 파일럿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알겠소!]
옛날 이스타드 변경을 개발하던 초기에는 무시무시한 거대 늪지 괴수가 살던 원시의 숲.
지금은 변경 본부와 그리 멀지 않고 오랜 세월 계속된 사냥으로 괴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지금도 물길을 따라 중형 늪지 괴수들이 간간이 흘러들어 와 이곳에서 사냥하는 사냥 팀도 있었다.
수심이 깊지 않은 넓은 늪지가 낙엽으로 덮여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가다 갑자기 수심이 깊은 곳을 만나면 곤죽이 된 진흙탕에 허우적대다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무거운 멕 나이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발이 물속 진흙에 빠지면 꺼내기가 어려웠다.
이곳에서 주로 사냥하는 괴수 사냥꾼들을 제외하면 이스타드 변경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도 들리지 않는 수렁 늪지.
바로 여기가 이 작전의 최종 목적지였다.
[가자!]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들이 서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우르르 몰려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일곱 대의 멕 나이트가 선두에 서서 무리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일곱 줄의 멕 나이트 대열은 직선이 아니라 꼬불꼬불 뱀처럼 돌아갔다.
물이 조금 빠졌다면 웅덩이 가장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딛고 가는 모습처럼 보였을 테지만, 썩은 낙엽이 늪지를 온통 덮고 있어 그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
추격해 오던 굴다크 공작군 멕 나이트 부대는 이스타드 해방 전선 멕 나이트의 움직임에서 왠지 이상함을 느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숲에 물이 옅게 차오른 늪지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수심이 깊지도 않았다.
설사 수심이 제법 깊더라도 멕 나이트의 신장은 무려 7미터에 달했다.
이런 얕은 물에 빠져 사고가 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눈앞의 적이 이 숲을 지나 원시의 땅으로 더 깊이 들어가 뿔뿔이 흩어져 버리면 잡기도 더욱 어려워진다.
지금 해치우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럼에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 전단장이 현명하게 지시를 내렸다.
[적이 가는 길을 따라가라!]
[알겠습니다!]
전단장과 비슷하게 거리낌을 느끼던 파일럿들이 달아나는 이스타드 사냥꾼들의 멕 나이트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그들이 밟고 지나간 길을 따라갔다.
첨벙첨벙-
첨벙첨벙-
그것이 오히려 화를 키울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꺼번에 직선으로 쫓아갔다면 먼저 깊은 늪에 빠진 동료 멕 나이트를 보고 추격을 멈추었을 텐데, 이스타드 해방 전선 멕 나이트들이 지나간 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뒤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깊은 늪지대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 데다 낙엽이 잔뜩 덮인 썩은 물에서 적이 달아난 길을 똑같이 밟으며 추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발을 잘못 디뎌 진흙에 발이 깊이 빠지는 멕 나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심하십시오! 진흙에 빠집니다!]
[이쪽은 제법 수심이 깊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큰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을 빼기 위해 힘을 주면 다른 발이 더 깊이 빠지고, 그런 멕 나이트들이 속출하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 조심하라! 선두는 적이 반전하여 공격할 것을 대비해 방어 태세를 갖추어라! 그동안 늪에 빠진 아군을 구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 2전단장이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현명한 조치를 명령했지만, 적은 그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굴다크 공작군 선두 멕 나이트들이 늪지에 빠져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음에도 반전하여 공격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뱀처럼 굽이굽이 돌면서 늪지를 빠져나갔다.
전단장은 갑자기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나 통신기에 불이 났다.
[큰일 났습니다! 왔던 길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늪에 빠져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올 때는 그래도 앞서 가는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를 눈으로 보고 따라올 수 있었지만, 돌아갈 때는 보고 따라할 멕 나이트가 없었다.
수면에 발자국이 남는 것도 아니고, 멕 나이트가 밟을 때 출렁거리고 잠깐 흩어졌던 낙엽들은 다시 빈 수면을 채웠다.
나가는 길을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멕 나이트는 엄청나게 무거웠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으면 물에 흐물흐물해진 땅이 버티지 못했다.
천천히 발이 진흙 바닥으로 파고 들어갔다.
놀란 파일럿이 벗어나려고 발을 잘못 디디다 멕 나이트가 깊은 늪에 빠지고 말았다.
맨 뒤에서 보급품을 싣고 따라오던 멕 워커 20대는 깊은 수렁 가장자리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들어가면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이고 그렇다고 멕 나이트만 놔두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바로 그때 뒤에서 찰박찰박 얕은 물을 밟고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 이런! 적이다!
그들이 이미 지나온 뒤쪽에서 수십 대의 멕 나이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나 무려 100여 대나 되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솟아 있는 원시의 숲 늪지대로 레오파드들이 포위망을 형성한 채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는 멕 워커의 외부 확성기 소리에 굴다크 공작군 멕 나이트들은 더욱 당황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럴수록 무거운 멕 나이트는 진흙에 발이 깊이 박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미 가 버린 줄 알았던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150여 대가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동쪽에는 새로 나타난 멕 나이트 100여 대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굴다크 공작군은 절망했다.
멕 나이트가 가슴까지 잠긴 파일럿들은 이미 조종실을 열고 밖으로 나와 자신의 헤비 스틸 어깨에 올라와 있었다.
동료 멕 나이트를 도와주려다 함께 늪에 빠진 파일럿은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물에 빠진 썩은 나뭇가지를 잡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울젠 남작은 소름이 돋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낡은 멕 50여 대를 던져 주고 아우로라 연합군 멕 나이트 전단을 통째로 함정에 빠뜨리다니!’
처음 계획을 들었을 때만 해도 과감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가프 용병단의 단장이라고 했던가?’
원시의 땅을 헤치고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능력을 인정했고, 이스타드 변경 사냥꾼을 동원해 아우로라 사냥꾼들을 제압하는 작전을 마련할 때 내심 감탄했다.
그래서 이 작전을 허락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자신의 눈으로 이토록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때 루산으로부터 마나 통신이 왔다.
[전단장님, 항복을 권유하시죠. 할 일이 많습니다.]
[아! 알았소!]
울젠 남작이 외부 확성기로 외쳤다.
-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항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늪에 빠진 멕 나이트의 파일럿들은 항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늪지대 한가운데, 깊지 않은 땅에 우두커니 서 있던 굴다크 공작군 4군단 2전단장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항복하겠다. 부디 전쟁법에 따라 포로 대우를 해 주기를 바란다.
전단장의 항복 선언에 파일럿들이 멕 나이트에서 나와 늪 가장자리로 나왔다.
그들은 진창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이었다.
바이크를 포함한 이스타드 변경 정찰병들이 신타르를 타고 나타나 그들을 묶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는 다시 본부 쪽으로 이동해 보병대와 정찰대를 쫓아버리고, 지원 팀 멕 워커를 노획합니다!]
[알겠소!]
보로츠가 이스타드 사냥꾼들을 이끌고 늪지를 돌아 이동했다.
[아우로라의 멕들은 어떻게 꺼낼 것이오?]
울젠 남작이 물었다.
[지금은 그냥 둘 겁니다.]
루산이 대답했다.
[이스타드 사냥꾼들에게 들으니 가뭄이 심해지는 계절이라고 하더군요. 늪의 수위가 낮아지고 땅이 굳어진답니다. 그때 꺼내면 수고가 줄어들 겁니다. 어차피 지금 꺼내도 제대로 세척하지 않으면 탈 수가 없으니까요.]
[알았소.]
이스타드 해방 전선 기동 부대와 레오파드 전대가 포로들을 데리고 모두 빠져 나갔다.
적의 멕 워커 20대는 이스타드 사냥꾼들이 끌고 갔지만, 100대 가까운 멕 나이트는 수렁 늪지에 기괴하게 남아 있었다.
바이크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대장님, 이 많은 멕 나이트를 설마 북방군이 몽땅 차지하는 건 아니겠죠?”
바이크의 질문에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루산은 다시 중고 아이언 워리어에 올라탔고, 바이크는 신타르를 타며 중얼거렸다.
“다 갖다 바치는 건 대장님 스타일이 아니지. 가자!”
까까아-
신타르가 늪지를 찹찹찹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