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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87화 (187/450)

187. 다 자기 눈앞에 놓인 현실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187. 다 자기 눈앞에 놓인 현실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바덴은 아라드 왕국 광산의 대규모 개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통관 절차 간소화를 약속받았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에는 벤야민이 은근히 흘려주는 쏠쏠한 정보들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바덴의 몫이었다.

다음 날, 바덴은 붐붐 자동차의 포이어 바겐을 데리고 슈텐달 남작을 만났다.

“남작님, 상무대신으로부터 통관 절차 간소화를 약속받았습니다.”

“정말 잘됐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남작님께서 하셨죠.”

슈텐달 남작은 저렴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대전쟁의 와중에 아우로라 대륙에 있는 부르사 왕국에 들렀다가 곧바로 아라드로 넘어가 왕국의 고위 관계자와 협상을 하고 광산 개발 예정지를 수없이 방문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허허허! 내 사업을 하는 건데 고생이랄 게 있겠습니까.”

“어쨌든 아라드 왕국에서 원하는 물품의 종류와 수량, 광산 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자세히 뽑아 주세요.”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서 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그건 그렇고 혹시 중고 멕 거래는 문의해 보셨습니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상무부 관할이 아니고 군무부와 황제 폐하의 재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렇군요.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한다? 군부부에 문의를 해 보거나 아는 귀족들에게 물어볼까요?”

“제 생각에는 굳이 여러 곳에 알려지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기사님이 오시면 의논해 보겠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슈텐달 남작이 포이어 바겐을 흘낏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덴은 포이어를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재 그녀가 경영하는 사업체는 너무나 많았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포이어에게 경영을 가르치기 위해 데리고 있는 것이다.

포이어는 붐붐 자동차 사장의 아들이면서 기술자이지만, 경영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단순히 숫자 계산을 잘하고 못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느 것이 핵심인지, 무엇을 건드려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 사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포이어와 그의 아버지는 사기 당한 회사를 돌려주고 붐붐 자동차를 크게 성장시키기 위한 비전을 갖고 크게 투자해 준 바덴을 은인으로 여겼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까이 두고 일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기사님은 중고 멕 나이트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변경에서는 바깥세상과 달리 중고 멕 나이트 거래가 자유로운 편이었다.

우르사도 중고 멕 나이트를 구입해 조립한 것이었다.

“게다가 가프 마법 연구소와 무척 가까우시죠. 제가 알기로 가프 마법 연구소는 기사님께 상당히 의지하고 있어요. 의논해 보면 방법이 생길 거예요.”

“언제 기사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르겠어요. 북부 전선으로 가신다는 연락을 받은 게 몇 달 전이니까 다시 또 소식이 있겠죠.”

“으음······.”

“일단 남작님께서는 아라드 왕국과 부르사 국왕파 지역 광산 개발에 집중하시는 게 좋겠어요. 괜히 여기저기에 멕 나이트 구매를 타진하고 다녀서 눈길을 끄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전시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바덴은 슈텐달 남작의 아라드 왕국 개발 건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사실 슈텐달 남작은 굳이 광산 개발까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제철소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새로운 구매처를 확보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 광산 개발도 바덴이 담당해 주기를 바랐다.

바덴 역시 그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

특히 두 번째 문제는 해외 사업을 하는 데 굉장히 큰 지장이 있었다.

여자가 사회적으로 이만큼 활동할 수 있는 나라는 필센 제국이 유일했다.

사실 필센 제국에서도 바덴이 거의 유일했다.

다만 이전 황제가 귀족 세력을 누르고 평민을 우대하기 위해 평등을 강조 - 주된 내용은 귀족과 평민을 차별하지 않은 것이지만, 명목상 남녀 차별 금지도 들어 있었다 - 한 개혁 헌법의 덕을 부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광산 개발과 광석 운반은 피닉스 제철에서 담당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아라드 왕국에서 원하는 식량과 각종 재건 물자는 상사를 하나 설립해 제가 제공해 드릴게요.”

“정말입니까? 고슬라 사장님이 그렇게만 해 주셔도 큰 짐을 덜 겁니다.”

결국 바덴이 아라드 왕국으로 넘어가는 물자를 대고 슈텐달 남작이 아라드 왕국에서 광산을 개발해 광석을 가지고 넘어오는 일을 맡기로 했다.

사실 상사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거느리고 있는 많은 회사들이 필요한 물품과 자원을 개별적으로 구입하고 각자 거래처를 뚫는 것은 낭비적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업무를 한 회사로 모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바덴은 상사 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조선소로 가는 길에 바덴이 포이어에게 말했다.

“바겐 씨가 피닉스 제철이 요청하는 물자들을 구입해 대 주세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포이어가 깜짝 놀랐다.

“제가요?”

“뭘 그리 놀라세요? 직접 해 보세요. 그래야 깨닫죠.”

“하지만 저는 붐붐 자동차를······.”

“붐붐 자동차는 지금 신차 개발이 더욱 중요한 단계라서 경영 쪽으로는 신경 쓸 일이 많지 않아요. 붐붐 자동차 돌아가는 사정은 하루에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네!”

각오를 다지는 포이어에게 바덴이 넌지시 말했다.

“앞으로 제국 전역에 도로가 많이 건설될 겁니다. 흙과 바위, 건설 자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를 만들면 잘 팔릴 거예요.”

“······!”

“도로가 뚫린 뒤에는 온갖 상품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가 잘 나가겠죠? 붐붐 자동차 사장님께 말씀드리세요. 막연하게 신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어떤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 모를 수가 있잖아요. 참고하시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바덴은 포이어와 함께 조선소를 방문했다.

“멕 나이트를 많이 실어 나를 수 있는 화물선을 만들 겁니다.”

“네?”

“남부 전선, 그러니까 아라드 왕국에서 아우로라 연합군을 밀어내면 다음으로는 남방군 1군단이 배를 타고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갈 겁니다. 멕 나이트, 병사들, 군수품을 실어 나를 배가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그것도 한 번에 아주 많은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를 배가.”

“아!”

“북부 전선은 밀리고 있다고는 하는데, 아직 잘 버티고 있어요. 남부 전선에서 적을 밀어내면 필센 제국 예비 병력이 북부로 가서 적을 밀어내겠죠? 그런 뒤에는 남방군 1군단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아우로라 대륙으로 넘어갈 겁니다.”

“그렇군요!”

“한 번에 멕 나이트 50대 이상,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화물선을 연구해 보세요. 조만간 정부에서 공식 발표가 나오겠지만,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조선소 사장과 임원들이 잔뜩 긴장하며 바덴이 말하는 기준을 받아 적었다.

조선소를 나온 바덴은 이후에 다른 회사 사장들을 만나러 다녔다.

주로 건설, 토목 회사의 사장들로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회원들이었다.

바덴은 사장들에게 포이어를 소개한 뒤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사장님, 건설 장비를 미리 확보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슬라 사장?”

“대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건설, 토목 업체들이 건설 장비 확보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생각이 나서 말씀드린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우리도 알아보고 서둘러야겠군요! 고마워요, 고슬라 사장!”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회원들이 바덴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포이어가 바덴에게 물었다.

“사장님, 그런데 왜 도로 건설 정보를 직접 활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는 겁니까?”

바덴이 간단히 대답했다.

“나는 건설 회사가 없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덩치 큰 건설사도 구입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잖아도 이미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는 이용하려고 하고 있어요. 조선소, 자동차는 직접 이용하는 셈이죠. 하지만, 다 할 수는 없어요. 몸은 하난데, 지금도 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래도 아깝잖습니까? 회사를 사서 굴리면 회사에서 알아서 해 나갈 겁니다.”

바덴이 강행군으로 피곤한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아요. 나는 내 사업 계획을 믿고 맡긴 기사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고, 아인베크 남작님이 진솔한 조언을 해 주셨기에 첫 실패를 곧바로 성공으로 전환할 수 있었어요. 회원들이 입소문을 내 준 덕분에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의 회원들이 급격히 늘었고, 변경 투어 모집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죠. 그리고 슈텐달 남작님이 거액을 빌려주신 덕분에 크게 성장할 회사들에 적기에 투자해 많은 지분을 얻을 수 있었어요.”

바덴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여러 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된 건 장원 별장 사업을 할 때 만난 회원들을 정성으로 대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분들이 어려운 사정으로 회사를 넘겨야 했을 때 나에게 찾아와 싸게 회사를 넘겨주신 거죠.”

전후 사정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포이어는 바덴의 말을 이해했다.

바로 그가 바덴의 도움으로 덕을 본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는 걸 보세요. 상무대신이 나에게 말했는데, 회의에 참석한 다른 대신들은 지인들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대대적인 도로 공사 사업이 발표되더라도 대귀족들이 가장 많은 물량을 따낼 겁니다. 새로 인수한 업체로 그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죠. 그런 일을 잘하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왜 거기서 힘을 빼요?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네, 사장님.”

포이어는 감탄했다.

나이가 자기보다 조금 많은 젊은 여자가 이렇게 생각이 깊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존경스러웠다.

그때 바덴이 비서에게 물었다.

“소피아, 다음 일정은 뭐죠?”

“식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잠시 눈 좀 부칠게요.”

“네, 사장님.”

바덴은 바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포이어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로 맡은 상사 회사의 구조를 수립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바덴 옆에서 종이에 낙서처럼 이것저것 메모했다.

쓱쓱.

바덴은 듣기 좋은 연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

10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이스타드 변경의 공기가 확 달라졌다.

변경 8구역은 말할 것도 없었고 노바보다 훨씬 추웠다.

입과 코에서 허연 김이 용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덴이 사 준 외투라도 가지고 올걸.”

전에 바덴이 루산에게 선물한, 모자 달린 여행자 외투.

원정 사냥을 나가면 노숙을 오랫동안 한다는 클라크의 조언을 듣고 정장 대신 사 주었던 물건으로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답게 품질이 좋아 무척 따뜻했다.

바이크와 시에나는 추위에 대비해 배낭에 겨울옷을 준비해 왔고 6전단 파일럿들 역시 원정 준비를 해 왔는데, 맨몸으로 온 루산은 북방군 3군단 본부에서 얻은 방한용 야전복 한 벌이 전부였다.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루산이 보기에 딱했는지 보로츠의 아내가 방한용 의복을 지어 주었다.

토끼털 조끼에 토끼털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오리털을 넣은 외투를 입은 뒤 바람이 옷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토끼털 목도리로 목을 둘둘 감쌌다.

사슴 가죽 장갑을 끼면 완성!

10월인데 좀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낮을 제외하고는 입에서 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기 때문에 루산은 기꺼이 이스타드 변경 사냥꾼들의 복장을 하고 다녔다.

사실 모두가 루산에게 이렇게 친절한 것은 아니었다.

이스타드 변경 사람들 중에는 루산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참모님, 왜 아우로라 놈들을 놓아 준 것이오?”

굴다크 공작군 기동 부대를 수렁 늪지로 유인해 깔끔하게 항복을 받고 승리했음에도 보병 연대, 정찰 부대 병력을 모두 살려 보낸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놈들이 다시 올 것 아니오?”

루산은 속으로,

‘그럼 다 죽이는 것이 옳다는 말이오? 아니면 포로로 잡아 두었어야 옳다는 말이오? 포로로 잡으면 감시는 누가 하고 먹여 살리는 건 어떻게 감당할 것이오?’

하고 쏘아붙였지만, 굳이 이곳 토박이들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다 적전의 일부입니다.”

“작전의 일부라고요? 어떻게 그게 작전이라는 것이오?”

“두려움을 전염시키는 거죠.”

“두려움을 전염시킨다?”

“그렇습니다. 보병들은 전투 장면을 못 봤어요. 아군 기동 부대가 이스타드 해방 전선을 쫓아갔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들만 나타나 우리를 공격해서 달아났다! 아군 멕 나이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적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방법으로 공격했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적의 멕 나이트가 100대가 넘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리게 될 겁니다.”

“음!”

“이 전쟁은 변경을 지킨다고 끝나지 않아요. 이스타드 왕국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변경은 물자 공급이 끊길 겁니다. 따라서 이스타드를 점령하고 필센 제국과 싸우고 있는 적을 몰아내야 하는 겁니다. 두려움을 전염시키는 것은 그래서 무척 중요한 일이죠.”

사람들은 루산의 말을 이해했지만, 당장 변경으로 물자가 들어오지 않아 식량난이 현실이 되자 불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이것들은 구해 줘도 지랄이야!”

바이크가 다 들으라는 듯이 욕을 했다.

“그럴 것 없어. 다 자기 눈앞에 놓인 현실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그래도 그렇죠!”

“됐고, 식량난이나 해결하러 가자.”

“네?”

“사냥해야지.”

루산은 이스타드 변경의 괴수 사냥꾼들과 함께 사냥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에는 괴수가 아닌, 먹을 수 있는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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