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마나포 방향을 뒤로 돌려
191. 마나포 방향을 뒤로 돌려
4군단 참모들이 격론을 벌였다.
“놈들이 이스타드 왕국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당장 추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기동 부대를 빼서 추격하면 서쪽에 있는 대규모 멕 나이트 부대가 변경 본부를 공격해 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변경이 뚫리고 우리 기동 부대가 양쪽으로 포위됩니다!”
“본부를 지키는 마나포 80문이 있지 않소! 멕 나이트 30대, 아니 20대만 있어도 그것들로 사각을 지키면서 마나포로 충분히 막을 수 있소!”
“250대나 되는 멕 나이트가 야간에 공격해 와도 막을 수 있다는 겁니까? 멕 나이트 저지용 방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막습니까? 방어선 안으로 몇 대만 들어와도 임시로 지어 놓은 포대는 허물어질 겁니다.”
부하들의 논쟁을 들으며 고민하던 4군단장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3전단은 동쪽으로 이동하는 적을 전속력으로 추격하라!”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남쪽 산줄기를 넘어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멕 나이트 부대에는 경량 멕이 많았다.
빠르기는 해도 일반형 멕에 비해 전투력이 높지 않을 것이고 군수 물자를 실은 멕 워커가 따라붙지 않았으니 작전 지속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3전단의 멕 나이트 100대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설사 적의 속도가 빨라 따라잡는 데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쫓아간다면, 적이 아군을 칠 때 뒤에서 덮치거나 달아날 길을 막아 적의 멕 나이트 150대를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군단장은 그렇게 판단했다.
“나는 이곳에서 적의 공세를 막을 것이다! 적의 멕 나이트가 아무리 많아도 마나포 80문으로 지키고 있는 이 지역을 결코 뚫지 못할 것이다!”
4군단장은 마나포와 1전단의 남은 멕 나이트 40대를 믿고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 250대를 막기로 했다.
그가 생각할 때 이것이 최선이었다.
***
[변경 본부에서 멕 나이트 100여 대가 빠져나와 동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물자를 짊어진 멕 워커가 약 20대, 기마 정찰병 약 30기도 함께 이동합니다.]
6전단은 남쪽 산줄기를 넘어가면서 요소요소에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남겨 두었다.
그 파일럿들이 마나 통신기로 소식을 전해 왔다.
아라드 왕국에서 획득한 아우로라 연합군 산악형 멕 나이트를 통신 중계 기지로 사용해 큰 덕을 본 루산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참모는 어떻게 보시오?]
볼프강이 물었다.
그는 6전단과 함께하지 않고 이스타드 해방 전선에 남아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굴다크 공작군 4군단이 변경 본부 서쪽을 공격한다면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 250여 대는 허수아비처럼 쓰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적 멕 나이트를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전투 파일럿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볼프강이 필센 제국 파일럿 50명을 이끌고 레오파드 대신 이곳에서 획득한 멕 나이트를 타고 있었다.
동쪽으로 이동하는 150여 대의 레오파드 가운데 50대에는 이스타드 사냥꾼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레오파드의 운반을 맡고 있는 셈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는군요.]
루산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 범위 안에 들어 있던 반응이었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크게 셋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거나,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병력을 나누어 일부는 움직이고 일부는 머물러 있는 것.
세 번째를 선택할 경우 병력을 어느 정도 나누는지가 문제였으나 3분의 2가량의 멕 나이트를 움직여 레오파드 전단을 추격하는 것을 확인했다.
예상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은 그에 따른 작전도 다 생각해 두었다는 뜻.
이미 6전단과 이스타드 해방 전선 지휘부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볼프강이 루산에게 물은 까닭은, 본격적으로 작전에 돌입하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루산은 그동안 6전단과 함께하는 동안 깊은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이번 작전은 오늘 안으로 끝날 겁니다. 적의 이목을 서쪽으로 집중시키도록 하죠.]
[알았소.]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는 모두 변경 본부 서쪽에 집결해 있었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의 마나포 80문과 멕 나이트 40대도 이쪽을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루산은 적이 다른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도록 온 신경을 서쪽으로 집중시키겠다는 말이었다.
[방패 부대 전진합니다.]
루산의 말에 보로츠가 구령을 내렸다.
[방패 부대, 방패~ 들어!]
척!
가장 앞에 정렬해 있는 헤비 스틸들이 방패 세 개를 겹쳐 만든 묵직한 방패를 들어 올렸다.
[방패 부대~ 전진! 왼발, 왼발, 왼발~]
느리지만 통일된 발걸음.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방패 부대 헤비 스틸들은 변경 본부를 향해 나아갔다.
이미 마나포의 유효 사정거리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본부로 더욱 다가가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발사하라!”
슝!
슝!
슈슝!
슈슈슈슈슈슝!
거대한 마나 진동 화살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갔다.
육중한 멕 나이트가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마나 진동 화살은 조준이 어긋난 것들을 제외하면 변경 본부와 그 주위 개척촌들에 설치돼 있던 마나포에서 길게 방패벽을 만들고 전진하는 헤비 스틸 방패 부대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와 꽂혔다.
쿵-
쿵-
쿠쿵-
쿠쿠쿠쿠쿠쿵-
방패를 꿰뚫으며 발생하는 강렬한 진동이 조종실로 그대로 전해지자 초보 파일럿들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훈련 때 우수한 모습을 보였고, 이번 작전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알고 있었다 해도 무시무시한 마나 진동 화살이 방패를 뚫고 날아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초보 파일럿들이 쉽게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트라비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초보 파일럿들도 걸음을 멈추거나 뒷걸음질을 쳤다.
마나 진동 화살은 그 와중에도 무시무시하게 꽂혔다.
슈슈슈슈슈슝!
슈슈슈슈슈슝!
쿠쿠쿠쿠쿠쿵-
쿠쿠쿠쿠쿠쿵-
방패 부대의 대열이 완전히 흐트러지기 직전, 트라비 옆에서 방패 부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던 바이크가 소리쳤다.
[어이! 이스타드 변경 친구들! 쫄았냐? 잘 봐! 이 거리에서는 삼중 방패를 뚫지 못해!]
[······!]
[······!]
슈슈슈슈슈슝!
슈슈슈슈슈슝!
마나 진동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와 강력한 힘으로 방패를 뚫고 멕 나이트에 진동을 일으켰다.
쿠쿠쿠쿠쿠쿵-
쿠쿠쿠쿠쿠쿵-
[봐! 멀쩡하지?]
[그, 그렇네!]
[트라비, 멕 나이트 파일럿이 되고 싶다며?]
[어? 응!]
바이크가 우쭐하며 말했다.
[이게 진짜 멕 나이트 파일럿이야.]
쿵!
트라비는 충격을 느꼈다.
이번 진동은 바깥에서 느낀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무기와 맞닥뜨리고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물러날 수 없었다.
이게 바로 진짜 멕 나이트 파일럿!
[젠장!]
트라비는 흐트러지려던 방패를 추슬려 다시 들었다.
다른 초보 파일럿들도 입술을 깨물고 방패벽을 다시 세웠다.
겁쟁이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좌우로 정렬!]
보로츠가 지시를 내리자 방패벽은 흐트러지지 않고 줄을 맞췄다.
[방패 부대~ 전진! 왼발, 왼발, 왼발~]
슈슈슈슈슈슝!
슈슈슈슈슈슝!
전열을 정비하고 전진을 계속하는 헤비 스틸들에 놀란 마나포 부대가 계속해서 마나 진동 화살을 발사했다.
화살을 계속 맞자 방패가 깨지기도 했지만, 세 겹으로 되어 있어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마나 진동 화살이 세 겹의 방패를 모두 꿰뚫고 몸통 장갑판까지 구멍을 냈다.
[대장님, 더는 못 가요!]
바이크가 루산에게 즉시 마나 통신을 보냈다.
그러자 루산이 지시했다.
[방패 부대, 뒤로 물러나!]
보로츠가 구령을 내리고 방패 부대는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슈슈슈슈슈슝!
슈슈슈슈슈슝!
적을 한 놈이라도 쓰러뜨리기 위해 마나 진동 화살이 끈질기게 날아왔다.
그 결과 방패 부대의 삼중 방패에는 적의 마나 진동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꽂혀 있었다.
방패에 구멍이 많이 뚫렸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을 많이 받아 깨지고 부서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적의 눈에는 자신들을 농락한 것처럼 보였다.
“마나 진동 화살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겁을 먹고 마구잡이로 쏘면 어찌하겠다는 말이냐!”
방패에 마나 진동 화살을 잔뜩 꽂힌 채 돌아가는 적 - 게다가 헤비 스틸은 원래 자신들의 기체였다 - 의 모습에 4군단장이 길길이 날뛰었다.
한편, 루산은 원래 있던 위치까지 돌아온 방패 부대 파일럿들이 식은땀을 닦고 잠시 마구 뛰는 심장이 평온을 되찾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출동시켰다.
[방패 부대 전진!]
이번에는 그 뒤로 대검 부대 일부도 바싹 붙여 이동하도록 했다.
약 100여 대의 멕 나이트가 다가가자 굴다크 공작군은 군단장의 질책에도 마나 진동 화살을 아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슈슈슈슈슈슝!
슈슈슈슈슈슝!
마나 진동 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쿠쿠쿠쿠쿠쿵-
쿠쿠쿠쿠쿠쿵-
삼중 방패를 들고 동료들과 함께 전진하는 초보 파일럿들은 마나 진동 화살이 방패를 관통할 때마다 몸을 떨었지만, 이제는 거리에 따라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에 처음보다 두렵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의 등 뒤에 있는 아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 아군이 함께하고 있다는 든든함이 새롭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한참 동안 전진하던 방패 부대와 대검 부대는 루산의 지시에 따라 다시 뒤로 물러났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 병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마나 진동 화살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군단장뿐 아니라 병사들도 자신들이 어떤 위기에 놓여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굴다크 공작군 병사들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제는 절대로 함부로 쏘면 안 된다! 확실하게 저 두꺼운 방패를 뚫고 멕 나이트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할 때만 쏴야 한다!”
“알겠습니다!”
***
[대장님, 마나 진동 화살만 팔아도 한평생 놀고먹겠는데요?]
바이크가 긴장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농담을 걸어왔다.
이스타드 변경의 초보 파일럿들 앞에서는 우쭐거렸지만, 그 역시 마나 진동 화살을 직접 겪어 보는 것이 처음이라 간이 콩알만큼 쪼그라들었던 것이다.
방패를 꿰뚫고 조종실을 관통해 자신의 몸을 짓이길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산이 말했다.
[잘했다, 바이크.]
루산의 칭찬에 바이크는 괜히 울컥했다.
눈물일 찔끔 나올 뻔했다.
[헤헤,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루산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나 진동 화살 뽑을까요?]
[아니야. 그러다가 괜히 방패나 화살이 상하게 될 거야.]
그때 중계 기지 역할을 하던 레오파드 라이트닝 파일럿 하나가 마나 통신을 보내왔다.
[6전단이 돌아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루산은 온몸이 짜릿해짐을 느꼈다.
방패 부대를 접근시켰다가 물러나게 한 이유는 적의 마나 진동 화살을 줄이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본부에 남아 있는 굴다크 공작군의 이목을 전부 서쪽으로 끌기 위해서였다.
적은 레오파드라는 기체를 처음 보았다.
남쪽 산줄기를 넘는 것을 보고 가벼워 빠를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게다가 곧바로 변경 본부를 포위하지 않고 동쪽으로 떠났다고 생각해 추격 부대를 보냈다.
변경 본부 동쪽은 방어 태세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 정렬! 방패 부대 전진!]
루산의 지시에 헤비 스틸들이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초보 파일럿들은 고슴도치처럼 변한 방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두려움을 떨쳐내고 힘차게 전진했다.
[대검 부대 전진!]
그 뒤로 6전단 파일럿들이 탑승한 진짜 전투 부대가 바싹 붙어 따라갔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 모든 멕 나이트, 전진!]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250대의 멕 나이트가 본부 서쪽 평원을 뒤흔들며 나아갔다.
굴다크 공작군은 마침내 적들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지만, 멕 나이트 40대와 마나포 80문이 있었다.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쏘지 마라!”
“두려워 마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각 조는 마나포를 지키는 데 집중하라.]
[알겠습니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의 지휘관, 파일럿, 병사들은 고슴도치 같은 방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다가오는 서쪽을, 눈도 깜박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쿵쿵쿵쿵-
멕 나이트 250대의 발소리에 심장이 쿵쾅쿵쾅 마구 뛰었다.
바로 그때 변경 본부 동쪽에서 레오파드 라이트닝 30대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찹찹찹찹-
달릴 때마다 바닥에 쌓여 있던 눈이 흩날렸다.
추격해 오는 적 4군단 3전단을 크게 돌아 달려오느라 파일럿들은 몹시 지쳤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라이트닝에 뒤처지지 마라!]
그 뒤로 레오파드 스피드들이 맹렬하게 달려왔다.
레오파드 파워는 그보다 뒤처져 뛰어왔다.
레오파드 전단의 거리와 달려오는 속도를 마나 통신으로 전달받은 루산이 명령을 내렸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 속도를 높인다. 왼발, 왼발, 왼발~]
방패 부대가 지금까지 멈춘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다가오자 굴다크 공작군은 깜짝 놀랐다.
지휘관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기다려! 쏘지 마! 마나 진동 화살을 아낀다!”
그 순간, 뒤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적이다!”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변경 본부 동쪽에서 담을 넘어 서쪽으로 번개처럼 달려왔다.
그 뒤로 스피드, 파워들이 몰려왔다.
“마나포 방향을 뒤로 돌려!”
그러나 대응하기에는 늦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레오파드 라이트닝들이 마나 진동 투창을 던져 마나포를 부쉈고, 몸을 던져 포대 자체를 밀어버렸다.
포대를 지키기 위해 굴다크 공작군 멕 나이트들이 달려왔다.
스피드와 파워가 적의 멕 나이트들과 맞붙었다.
그리고 그때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 250대가 본부 인근 개척촌 방어 시설을 짓밟으며 들어와 성난 파도처럼 본부를 휩쓸어 버렸다.
레오파드 전단을 추격하던 굴다크 공작군 4군단 3전단이 뒤늦게 도착했지만, 그때는 상황이 모두 끝나고 병사들만 개미 떼처럼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