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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192화 (192/450)

192. 대륙을 질주해 봐

192. 대륙을 질주해 봐

멕 나이트 450여 대가 격돌한 변경 본부는 처참했다.

담장과 거물은 허물어지고 거대한 강철 거인들이 빛의 칼에 찔리고 베여 바닥에 나뒹굴었다.

멕 나이트의 발밑에 깔려 즉사한 병사들은 행복한 편이었다.

신체의 일부만 깔린 병사들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미약한 신음에 이스타드 변경의 사냥꾼들은 승리의 함성을 지를 수가 없었다.

‘이게 전쟁인가!’

멕 나이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선명하게 그 광경을 보고 그 소리를 듣게 된 트라비는 몸을 떨었다.

다른 초보 파일럿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필센 제국 북방군 6군단 파일럿들은 이런 전장의 모습에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미 전선에서 굴다크 공작이 이끄는 아우로라 연합군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그들은 이런 참상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멕 나이트는 부대별로 정렬하라! 동쪽의 적을 마무리할 것이다!]

울젠 남작이 마나 통신기로 쩌렁쩌렁 명령을 내렸다.

[부대 정렬!]

[정신 차려! 3소대 이쪽으로 모여!]

[방패 부대! 본부 동쪽으로 정렬!]

지휘관들이 바쁘게 파일럿들을 독촉했다.

쿵쿵쿵쿵-

멕 나이트들이 자신이 속한 부대를 찾아 뛰어다녔다.

치열한 교전 과정에서 크게 파손된 30여 대의 멕 나이트가 빠지고 레오파드 전단 140여 대, 이스타드 해방 전선 230여 대. 총 370여 대의 멕 나이트가 정렬했다.

울젠 남작은 지난 몇 달 동안 루산이 제안한 계획과 작전에 따라 행군하고 전투를 치르며 레오파드의 속도를 이용한 전술을 어느 정도 깨우쳤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은 2개 전단으로 나눈다. 대열을 갖춰 적을 압박하라!]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들이 줄을 맞춰 행군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레오파드 전단도 두 부대로 나눈다. 2, 3전대와 4, 5전대. 이 두 부대는 교대로 적을 괴롭힌다! 철저히 교전을 피하면서 적이 휴식을 취할 수 없도록 하라!]

울젠 남작의 명령에 레오파드 전단이 둘로 나뉘어 교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달아나는 굴다크 공작군 4군단 3전단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 3전단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4배 가까이 되는 적의 멕 나이트 전력에 맞서 싸울 수는 없는 일.

재빨리 이 소식을 본대에 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퇴각해야 했다.

“대형을 갖추고 후퇴하라!”

각개격파를 피하기 위한 명령이었으나 이것이 파탄을 불러왔다.

적이 비슷한 기체였다면 결국 자신들을 붙잡기 위해 공격을 가했겠지만, 레오파드 전단은 결코 싸우지 않고 빠른 발을 이용해 빙 돌아 길을 막거나 옆에서 마나 진동 투창을 던졌다.

멕 나이트보다 속도가 느린 멕 워커가 먼저 잡히고, 기마 정찰병들은 뿔뿔이 흩어지다 말이 삼지창에 꿰이거나 투창에 맞아 쓰러졌다.

분노한 멕 나이트들이 달려들어 공격하려 했지만, 레오파드 라이트닝과 스피드는 결코 싸우지 않고 달아났다.

그러는 동안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들이 대열을 갖추고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멕 나이트만 남은 굴다크 공작군은 빠르게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교대로 휴식을 취한 레오파드 부대가 나타나 길을 막고 방해했다.

아무리 강한 파일럿들도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용변을 봐야 했다.

레오파드 부대는 끈질기게 그것을 방해했다.

식사를 위해, 용변을 위해, 휴식을 위해 잠깐 발걸음을 멈출 때면 레오파드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마나 진동 투창을 위협적으로 뿌려 댔다.

멕 나이트 방패로 막으면 별것 아닌 공격이고 설사 몸에 맞는다 해도 아주 재수가 없지 않은 한 크게 파손되는 일은 없으나 멈춰 있는 멕 나이트 사이로 날아와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보는 파일럿의 몸을 꿰뚫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는 번을 선다!]

지휘관이 피해를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굴다크 공작군 파일럿들은 제대로 먹을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스타드 해방 전선 파일럿들은 교대로 휴식을 취하며 꾸준히 다가왔다.

엄청난 압박감과 극심한 피로 속에서 굴다크 공작군은 이를 악물고 퇴각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새로운 공격이 가해졌다.

-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라. 머나먼 타국에서 이대로 눈 속에 파묻혀 죽을 텐가?

- 전쟁법에 의거하여 포로로 정중히 대해 줄 것을 약속한다! 가족을 생각하라!

[저 시끄러운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성난 지휘관이 부하들을 재촉해 멕 나이트 몇 대가 출동했지만, 레오파드의 날랜 걸음을 육중한 헤비 스틸로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는 여전히 똑같은 걸음으로 대열을 유지한 채 접근해 왔다.

피로는 점점 심해지고, 힘은 더욱 빠지고, 마음은 극심한 패배감으로 물들어 갔다.

이스타드 왕국.

북방의 추운 나라.

간간이 인간의 도시와 촌락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눈 쌓인 허허벌판과 어두운 숲의 나라.

변경과 가까운 땅에서는 인간의 흔적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추격하는 레오파드 부대도 적을 괴롭히느라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잤다.

굴다크 공작군은 죽을 맛이었다.

나흘이 지나자 낙오하는 멕 나이트가 나타났다.

닷새가 지나가 낙오하는 수가 더욱 늘어났다.

***

눈 쌓인 언덕 위에 레오파드 파워와 레오파드 스피드 한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멕 나이트에서 내려 동쪽으로 비틀비틀 달아나는 멕 나이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오파드는 정말 대단한 기체요.”

울젠 남작이 감탄하며 말했다.

계속된 추격으로 인해 눈에 핏발이 선 울젠 남작은 두꺼운 북방군 동계 야전 외투를 입고 있었다.

말하고 숨을 쉴 때마다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전장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험상 쓸모 있는 기체라고 확신합니다.”

루산이 대꾸했다.

그는 토끼털 조끼에 토끼털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오리털을 넣은 외투를 살짝 걸치고 있었다.

조종실로 들어가 동화기에 몸을 넣을 때 외투를 벗어야 했기 때문에 단단히 여미지는 않은 것이다.

그 역시 말할 때마다 허연 입김이 새 나왔다.

레오파드가 모든 전쟁터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정면으로 맞붙는 싸움에서는 중량이 많이 나가는 헤비 스틸이 훨씬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병력으로 적을 포위하거나 후방을 교란하거나 보급을 끊거나, 이렇게 후퇴하는 적을 괴롭힐 때는 레오파드만 한 기체가 없었다.

기동력을 발휘해 싸우지 않고 이긴다!

“아우로라 대륙으로 전장이 바뀌어도 충분히 통할 것이오.”

울젠 남작의 말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파드는 산악 지형에서만 유용한 기체는 아니었다.

평야가 많은 아우로라 대륙에서도 활약할 만했다.

“가프 용병단은 레오파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오?”

울젠 남작이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목적도 있겠죠.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이미 홍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 같아서 말이오. 아라드 왕국에서의 활약은 말로만 들었기 때문에 사실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소.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직접 타고 겪어 보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소?”

이스타드 변경에 도착한 뒤부터 지금까지 해치우거나 획득한 적의 멕 나이트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 달아나고 있는, 곧 붙잡힐 멕들을 포함하면 무려 500대에 육박했다.

누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전선에서 적과 맞붙어 멕 나이트 한 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아군도 똑같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피해를 입은 아군 레오파드는 몇 대 되지 않았다.

이런 놀라운 전과를 기록한 것은 레오파드 덕이었다.

그러나 레오파드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빛을 발하는 법이지!’

전장 환경에 맞게 레오파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작전을 수립한 객원 작전 참모의 힘이 크다는 것을 울젠 남작은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내가 볼 때 작전 참모가 굳이 레오파드 훈련 교관으로 나서지 않아도 앞으로 우리 제국은 레오파드를 많이 구입하게 될 것이오.”

루산에게는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울젠 남작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이미 우리 군은 북부 전선에 대한 증원을 미루고 동방군을 증원하고 있소. 그럼에도 북쪽 전선이 선전을 해서 적을 물리친다? 남쪽 아라드 왕국에서 활동을 했다니 알고 있겠지만, 남쪽 전선에 이어 북쪽 전선에서까지 우리 군이 승리를 하게 된다면 이제 전장은 아우로라 대륙으로 확실히 넘어가게 될 것이오.”

“그렇겠죠.”

“아우로라 대륙은 넓소. 많은 강대국들이 우리 제국보다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지요. 우리 제국은 더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소. 그리고 전쟁터에서 인재는 금세 두각을 드러내지. 어떻소? 내가 볼 때 참모는 레오파드 홍보보다 아우로라 대륙에서 제국의 멕 나이트 부대를 호령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였다.

“내 비록 높은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기꺼이 힘을 써서 참모를 천거하겠소. 정 안 되면 일단 내 휘하에서 정식 참모가 돼 주지 않겠소? 시간이 지나 내가 군단장이 되면 전단장에, 군 사령관이 된다면 군단장에 반드시 앉혀 주겠소.”

아우로라 대륙을 질주하는 필센 제국 멕 나이트 부대 지휘관!

루산은 울젠 남작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을 높게 보고 자리를 제안한 사람은 여럿이었다.

황제, 아이젠 자작, 밤베르크 백작, 코부스 지방군 사령관.

그러나 그중에서 울젠 남작의 제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제안한 사람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상당 기간을 함께 보내며 순수하게 능력만 보고 제안했다는 점에서 가장 진실 되게 느껴진 것이다.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신 점,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작전이 끝난 뒤에도 필센 제국군과 함께할 수 있다면 바로 장군의 부대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소?”

“네.”

“아쉽군.”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역시 아쉽군요.”

“허허.”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울젠 남작과 루산은 달아나는 적을 모두 붙잡았다.

굴다크 공작군 4군단 3전대는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시원하게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여러 날을 쫓기다 결국 소탕되었다.

최후까지 저항한 멕 나이트 10여 대를 제외하고는 싸울 힘이 없어 항복하고 말았다.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이동한다.”

울젠 남작이 명령을 내렸다.

6전단과 이스타드 해방 전선 파일럿들은 오랜만에 그야말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눈이 쌓여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모르니 곧바로 이동하여 굴다크 공작군의 배후를 친다!”

“알겠습니다!”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 20대는 포로들을 변경 본부로 데려가고 전리품을 정리하기 위해 뒤에 남았다.

레오파드 전단 140대.

이스타드 해방 전선 210대.

총 350대의 멕 나이트 부대가 눈 덮인 대지를 가르며 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즈음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는 모두 아우로라 대륙에서 생산된 헤비 스틸과 그레이 울프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우리 대장님이 어떤 작전을 펼칠지 알 것 같아!]

[나도!]

[치! 똑같이 따라하지 마.]

[뭘 따라한다는 거야?]

[그럼 말해 봐!]

[너부터 말해 봐!]

바이크와 시에나가 티격태격하면서 수백 대의 멕 나이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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