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간편식을 먹으라고 하세요
198. 간편식을 먹으라고 하세요
[헉! 헉! 헉!]
바이크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와 함께 달리는 6전단 파일럿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굴다크 공작군이 북상하고 그에 맞서 이스타드 해방 전선도 진형을 갖춰 남하하여 양군이 충돌하기 직전, 가장 먼저 달려 나간 멕 나이트가 바로 그들이 타고 있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이었다.
레오파드 라이트닝 4대는 평원 외곽으로 크게 돌아 눈 덮인 산비탈을 달리다 평원으로 들어오는 남쪽 길로 빠져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굴다크 공작군의 보급 부대와 보급 부대를 지키는 멕 나이트 부대가 평원으로 들어오느라 길이 막혀 있었다.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일반형 멕 나이트에 비해 작고 가벼워 산악 이동이 가능하다 해도 아무렇지 않게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라드 왕국에서 산악 작전을 펼칠 때, 먼저 레인저들이 앞장서서 멕 나이트가 미끄러지지 않을 만한 길을 찾아 인도하면 조심스럽게 뒤따라가서 산을 넘을 수 있었다.
길잡이도 없이 멕 나이트만 타고 눈 덮인 산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렇게 천천히 길을 더듬어 나갈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북방군 3군단에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돌파할 겁니다!]
[알았소!]
레오파드 4대가 쏜살같이 달렸다.
굴다크 공작군 보급 부대 멕 워커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흩어졌다.
- 적이다!
- 피해!
허둥지둥 피하는 멕 워커의 등에 멘 철제 바구니에서 보급품이 우수수 떨어졌다.
보급 부대를 호위하던 헤비 스틸들이 방패를 들고 길을 막았다.
레오파드 라이트닝으로 헤비 스틸에 돌진하는 것은 자살행위!
[경사면을 타고 지나갈 겁니다!]
[음!]
바이크가 먼저 길 옆 경사면을 타고 헤비 스틸을 피해 지나가자 다른 레오파드 라이트닝들이 똑같이 따라했다.
찹찹찹찹-
그때 헤비 스틸이 그쪽으로 이동하며 대검을 휘두르자 마지막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대검에 걸리고 말았다.
가장 나중에 달리던 레오파드 라이트닝은 왼쪽 팔에 달린 작은 원형 방패로 막고 그대로 나아가려 했지만, 힘의 차이로 인해 결국 저지당해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멈추지 말고 달려!]
마지막 파일럿의 외침에 통과한 파일럿들은 입술을 깨물고 계속 달려갔다.
츠쿵츠쿵츠쿵-
이미 통과한 레오파드 라이트닝들을 붙잡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헤비 스틸들이 굴러떨어진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둘러싸고 짓밟았다.
끼이웅-
뒤에서 관절이 부러지고 몸체가 구겨지고 마나 진동 대검에 베이는 소리가 들려와도 통과한 레오파드 라이트닝들은 계속 달렸다.
한참 산길을 달리자 마침내 사방이 확 트이는 평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길옆에 굴다크 공작군의 임시 숙영지들이 보였다.
멕 나이트 대부분은 북쪽으로 이동했지만, 수리를 받던 기체와 경비를 서던 기체들이 몇 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보병들은 거의 다 남아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남하하자 비상을 걸고 통신을 보냈다.
[적의 경량 멕 3대가 남하한다! 전선을 지키는 부대는 적 기체를 붙잡아라!]
[알았다!]
전선을 지키던 전단에서 레오파드 라이트닝 3대가 접근한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멕 나이트를 대기시켰다.
다행이라면 남쪽을 향하고 있던 마나 포대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지 않아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틀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저 앞에 마나 포대가 있소.]
6전단 파일럿 하나가 바이크에게 경고를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바이크가 헐떡이는 와중에도 얼른 대답했다.
마나포는 아라드 왕국에서도 봤기 때문에 즉시 식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때 마나 포대를 지키던 멕 나이트들이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잡기 위해 달려왔다.
[하나로 뭉쳐 달리다 신호를 보내면 흩어져서 전선을 돌파합시다!]
[알겠습니다!]
레오파드 라이트닝들이 마주 달려오는 헤비 스틸을 향해 돌진했다.
찹찹찹찹-
그러다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 기사가 소리쳤다.
[흩어져!]
팟!
기사들이 탄 레오파드 라이트닝 두 대가 좌우로 갈라져 나가자 헤비 스틸들 역시 그것들을 잡기 위해 갈라져 나갔다.
바이크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네 대의 헤비 스틸들을 보고 그대로 달려가다 지그재그 몸을 틀었다.
파바바바팟!
헤비 스틸의 마나 진동 대검과 대형 강철 방패가 레오파드 라이트닝 몸체를 부수기 위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지만, 바이크의 멕은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들을 피하며 헤비 스틸을 피했다.
왼쪽으로 갈라져 나간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헤비 스틸의 대검에 맞아 날아갔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달려!]
어차피 신경 쓸 여유도 없었지만, 바이크는 유언 같은 그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찹찹찹찹-
라이트닝이 대지를 박차고 쭉쭉 뻗어나갈 때마다 쌓인 눈이 파바박 튀었다.
마침내 바이크와 또 다른 기사가 탄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플라네그 열차 역 방어선을 겨누고 던 마나 포대 전선을 돌파했다.
슈슈슈슝-!
레오파드 라이트닝의 등을 향해 마나 진동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그때 오른쪽에서 달리던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마나 진동 화살에 관통되어 쓰러졌다.
콰당!
질주하던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거칠게 눈밭을 굴렀다.
[가!]
마지막 기사의 목소리가 고막을 비수처럼 파고 들었다.
바이크는 작은 언덕과 건물, 야산 비탈로 몸을 피하며 계속해서 달렸다.
슈슈슈슈슈슝-!
바이크의 레오파드 라이트닝 주위로 거대한 마나 진동 화살들이 번개처럼 꽂혔다.
[헉! 헉! 헉!]
바이크는 거짓말처럼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들을 피하며 질주했다.
양쪽 군인들이 그 모습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다.
마침내 레오파드 라이트닝은 북방군 3군단 방어선에 거의 도착했다.
그때 마나 포대에서도 마지막 집중 공격을 가했다.
슈슈슈슈슈슝-!
쓰웅!
마나 진동 화살 한 발이 레오파드 라이트닝의 오른쪽 뒷다리를 관통해 동력 전달 장치를 부쉈다.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땅바닥을 거칠게 굴렀다.
“와아아아!”
지켜보던 굴다크 공작군 포병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아!”
반면 북방군 3군단 병사들은 탄식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레오파드 라이트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도록!]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멕 나이트 전대장이 명령을 내리자 삼중 방패를 든 북방군 아이언 워리어들이 목숨을 걸고 방어선을 나와 쓰러진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향해 달려갔다.
슈슈슈슈슈슝!
퍽버버버벅!
굴다크 공작군이 발사한 마나 진동 화살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방패에 꽂혔지만, 북방군 3군단 멕 나이트들은 계속 달려가 일부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방패로 가리고 일부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의 두 팔을 잡고 달렸다.
슈슈슈슈슈슝!
퍽버버버벅!
바이크는 질질 끌려가는 레오파드 라이트닝 안에서 마나 진동 화살이 날아와 방패를 관통하는 엄청난 굉음을 들으면서도 안도했다.
[6전단 별동대가 북쪽으로 내려와 싸우고 있습니다!]
바이크가 마나 통신기로 소리쳤지만, 전장에서 아군 통신 암호는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북방군 멕 나이트들은 바이크의 통신을 듣지 못했다.
아무 반응이 없자 바이크는 외부 확성기로 소리쳤다.
- 3군단 6전단 별동대가 북쪽에서 내려왔습니다.
- 그게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그 소식은 마나 통신기로 사령부까지 순식간에 전해졌다.
레오파드 라이트닝은 아이언 워리어들의 구조로 방어선 방벽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바이크가 조종실을 열고 나왔다.
그의 몸은 김이 뭉클뭉클 피어올랐고, 얼굴에는 땀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이젠 자작이 달려와 물었다.
“6전단이 북쪽에 와 있다고?”
“네!”
“오! 신이시여!”
반년 전에 떠난 6전단이 북쪽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그는 몸을 떨었다.
이미 반 이상 포기하고 있던 부대가 아닌가!
“그래, 보고해 보게.”
“네. 6전단 레오파드 부대와 이스타드 변경 사냥꾼들이 적의 멕 나이트를 노획하여 약 350대의 멕 나이트로 굴다크 군의 배후를 공격하며 내려왔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굴다크 공작군은 우리를 물리치기 위해 700대 정도 되는 멕을 동원해 북쪽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전선에 남아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마지막 말은 바이크에게 묻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여 명령을 내렸다.
“모든 멕 나이트는 즉시 전투 준비!”
“하지만, 군단장님! 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군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럴 시간이 없다! 하늘이 주신 기회다!”
“설사 사실이라 해도 적의 마나 포대를 뚫고 가다가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겁니다!”
“열차 차량에 당장 눈을 채워라! 멕 워커들이 그걸 밀고 나가고 멕 나이트가 그 뒤를 따라간다! 전선을 돌파해 굴다크 공작군을 남과 북에서 포위해 무찌를 것이다!”
아이젠 자작의 단호하게 명령했다.
계속 수세에 몰려 열차 역을 지키기에 급급하던 북방군 3군단이 바쁘게 움직였다.
모든 병사들과 멕 워커들이 눈을 모아 객차에 채우고, 그 객차를 들어 전선으로 옮겼다.
마침내 멕 워커들이 몸을 최대한 숙이며 열차의 차량을 밀고 나갔다.
그 뒤로 삼중 방패를 든 아이언 워리어들이 따라갔다.
방패 부대 뒤로는 북방군 3군단과 최근에 수도에서 파견된 수도 군단 일부의 멕 나이트 400여 대가 나아갔다.
그동안 복수의 날만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던 북방군 3군단이 마침내 떨치고 일어나 북쪽을 향해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
굴다크 공작은 중군의 혼란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군에는 무능한 지휘관들뿐이란 말인가! 절반도 안 되는 적을 상대로 이 무슨 추태인가! 본진은 당장 앞으로 나아가라!]
[진정하십시오, 주군! 잠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전투를 벌이고 있는 병력만으로도 적보다 훨씬 많습니다. 굳이 주군께서 직접 손을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후크가 공작을 말렸다.
[적들 가운데에는 실력이 상당한 파일럿이 있습니다. 만에 하나 난전 중에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다후크의 차분한 진언이 오히려 젊은 공작의 분노를 부추겼다.
[무어라? 고작 적 파일럿 하나가 두려워 후방에서 움츠리고 있으란 말인가?]
[그것이 아니오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 그건 신중한 게 아니라 승기를 놓치는 것이야.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적을 쓸어버리려면 대장이 강하게 군대를 휘어잡아야 한다! 가자!]
굴다크 공작의 명령을 더는 거역할 수가 없었다.
후방에 머물러 있던 1군단 1전단, 2전단이 마침내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전방으로 이동했다.
마나 통신이 가능한 지점에 도착했을 때 굴다크 공작이 마나 통신으로 모든 병력에 호통을 쳤다.
[적이 숨어들었다고? 똑같은 아우로라의 멕 나이트를 타고 있어서 식별이 어렵다고? 모두 돌대가리들만 모여 있느냐?]
공작의 쩌렁쩌렁한 호통에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와중에도 굴다크 공작군 파일럿들이 움찔했다.
[군단 마크가 다르지 않은가!]
[아!]
파일럿들이 그제야 깨닫고 탄성을 질렀다.
[1군단, 2군단, 3군단이 아군이다! 4군단 마크를 달고 있거나, 마크가 없는 멕은 적이다! 피아를 식별하면서 살짝 뒤로 빠져라!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밀어붙인다!]
[알겠습니다!]
현명하고 용맹한 총사령관의 등장에 굴다크 공작군 파일럿들이 사기충천하여 소리쳤다.
굴다크 공작군 멕 나이트들은 6전단 파일럿들이 타고 있던 헤비 스틸을 공격하며 뒤로 빠지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6전단장 울젠 남작은 암울함을 느꼈다.
좀 더 혼란을 지속시키면서 외곽의 적을 더 많이 쓰러뜨렸어야 했는데, 적이 금세 혼란을 수습해 버렸기 때문이다.
수적 우위에 더해 총사령관의 합류에 사기가 오른 굴다크 공작군 쪽으로 승기가 넘어갔다.
[우리도 전열을 정비한다! 서서히 뒤로 물러나라!]
울젠 남작의 명령에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와 6전단의 레오파드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이제 어쩌면 좋겠소?]
볼프강이 루산에게 물었다.
[쉴 수 있을 때 쉬고 다시 싸워야죠.]
뻔한 대답에 볼프강이 살짝 실망하던 찰나, 루산의 다음 말이 들려왔다.
[잠시나마 교대로 동화기에서 나와 간편식을 먹으라고 하십시오. 적은 아마도 이 싸움을 완전히 끝내고 먹으려 하겠죠. 멕 나이트 안에서는 먹을 수도 없을 테니까요.]
[알았소!]
볼프강이 큰 소리로 대답하고 전 병력에 명령했다.
6전단 파일럿들과 이스타드 해방 전선 파일럿들은 교대로 동화기를 풀고 나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간편식 레오파드의 종이 포장지를 벗겼다.
가져온 지 반년이 넘어 바짝 마르고 딱딱했지만, 추운 지방이라 변질되지는 않았다.
파일럿들은 두려운 가운데에도 자신만의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식사를 했다.
아그작!
견과류의 고소한 느낌, 말린 과일의 달콤하고 향긋한 느낌이 살짝 남아 혀와 코와 입, 그리고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지치고 두려운 그들의 몸과 마음에서 힘이 솟아났다.
[적이 온다! 서둘러 동화를 마치고 전투 준비!]
이스타드 해방 전선 파일럿들은 간편식 레오파드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쑤셔 넣고 서둘러 동화기에 몸을 끼웠다.
[외부 확성기 켜고 함성 질러!]
- 와아아아아아!
- 와아아아아아!
- 와아아아아아!
이스타드 해방 전선과 6전단 파일럿들이 지른 함성이 외부 확성지에 증폭되어 평원을 뒤흔들었다.
[가자!]
- 야아아아아!
굴다크 공작군과 이스타드 해방 전선의 멕 나이트가 다시 격렬하게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