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정당한 몫을 챙기는 것이죠
202. 정당한 몫을 챙기는 것이죠
비어슨은 루산 일행, 획득 멕 운반 부대와 함께 이스타드의 변경에서 이스타드 왕국을 지나 산악 국경을 넘어 필센 제국의 플라네그 지방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고민했지만,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정나미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변경 5구역은 그가 태어난 고향이고 이번에 길 안내 임무를 맡아 이스타드 변경에 가 보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삶의 터전을 바꾸기로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루산의 제안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루산이 자신을 데려가 정확히 무엇을 시키려는 것인지 몰랐지만, 이번에 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면 계속 외톨이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만 같았다.
인정받고 존중받는 삶을 잠깐이나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예전처럼 따돌림을 받고 무시당하며 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좀 더 고민해 볼게.”
“그렇게 해.”
루산은 변경 8구역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그것을 소중히 간직한 비어슨은 북방군 3군단의 통행증을 받아 변경 5구역으로 복귀했다.
북방군 3군단 멕 나이트 부대의 길 안내를 맡아 떠난 지 반년 만에 돌아온 비어슨.
그러나 가족들 외에는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다.
단장을 비롯한 그의 상관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군사 기밀이라 함부로 말하면 처벌한답니다.”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 비어슨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자 그에 대해서는 더 캐묻지 않았다.
최근에 북방군 3군단이 굴다크 공작이 지휘하는 아우로라 연합군을 대파하고 적을 추격해 다시 이스타드 왕국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은 그들도 들었기 때문에 대강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생명 구슬이 뭐 이리 많아?”
비어슨의 낡은 철제 배낭과 튼튼한 그물망 주머니에는 대형 괴수의 생명 구슬들이 가득했다.
필센 제국 변경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북방 괴수의 값비싼 부산물도 많았다.
다른 파일럿들과 부산물 수거, 감정 요원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리고 비어슨이 가져 온 부산물에 대한 평가 금액이 헐값으로 책정되었을 뿐 아니라 비어슨의 몫으로 돌아갈 분배 비율이 턱없이 낮게 매겨졌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뭐가?”
“이 생명 구슬 가격이 평소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게다가 왜 내 몫이 20퍼센트야? 단독 사냥이니까 80퍼센트 아니야? 지금까지 그래 왔잖아!”
“지금까지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러라는 법은 없지.”
“뭐라고?”
“지금까지 단독 사냥으로 처리한 건 널 특별히 봐줘서 그런 거지 사실 너도 엄연한 기동 전단 소속이잖아.”
“기동 전단 소속이라도 다른 멕 나이트와 지원 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부산물을 획득했으면 단독 사냥이지!”
“어디까지나 단장님 명령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획득한 거 아니야?”
“······!”
“그리고 네 기체도 군단 본부에 속해 있으니 분배 비율은 기본적으로 본부와 네가 8 대 2가 맞아. 멕 나이트를 멋대로 개조한 데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비어슨은 분노했다.
이런 핑계, 저런 구실을 붙여 말했지만, 결국은 뜯어먹겠다는 소리였다.
비어슨은 씩씩거리며 본부로 가서 항의를 했지만, 기동 전단장이나 회계 부장은 알아보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고, 기동 전단장과 회계 부장에게 일러바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그를 무작스럽게 두드려 팼다.
비어슨은 다시 한번 본부로 가서 항의했다.
그러나 그를 폭행한 동료들은 누구도 벌을 받지 않았다.
“이봐, 비어슨! 좀 더 둥글둥글하게 어울려 보는 게 어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란 말이야. 다 자네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기동 전단장의 말을 듣고 나서 비어슨은 뜨거운 분노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따돌림을 당하던 외톨이의 몫을 뜯어먹는다 해도 아무도 나서 주지 않았다.
북방군 3군단 6전단과 함께 원시의 땅을 통과할 때, 이스타드 변경에서 겨울나기를 준비하며 사냥에 나섰을 때 획득한 많은 생명 구슬과 고가의 부산물.
‘5구역에서는 그것을 빼앗으려 했지만, 루산은 모두 나에게 주었다!’
루산은 단지 재물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몫을 가질 만큼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해 준 것이다.
“세상에는 자네의 능력을 알아보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어.”
비어슨은 루산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비열한 고향보다 낯설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는 루산에게 편지를 썼다.
<거기에 내 자리가 있을까?>
이스타드 왕국으로 가는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느라 변경 5구역으로 들어오는 우편물이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에 답장은 한참 후에 왔다.
<당연히 있지.>
루산의 편지를 읽은 뒤 그는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변경 5구역을 떠나기로 했다.
어디를 가든 5구역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어쩌면 풀기 어려워 포기한 채 살아온 이곳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루산을 만나 촉발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 때 변경 5구역으로 들어온 뒤로 이미 정부의 지원금을 모두 갚았기 때문에 떠나는 데 지장이 없었다.
이웃들이 걱정을 하고 동료들이 비웃음을 던졌다.
“변경 사람이 변경을 떠나서 어떻게 살려고?”
“변경을 떠난 놈 치고 잘된 놈이 있나? 여기서도 도망치면 갈 데가 있겠어?”
비어슨도 여전히 두려웠지만, 그는 용기를 내 웃었다.
“히히히!”
***
큰 눈이 내려 온 세상이 눈에 덮여 있었지만, 철로는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느라 잘 관리되어 열차들이 쉼 없이 달렸다.
여러 날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눈이 점점 줄어들다 아예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루산 일행은 필센 제국 남서부 코부스 지방을 통과해 변경 8구역에 들어섰다.
그런데 라돔 시의 풍경이 왠지 익숙한 듯하면서도 많이 낯설었다.
“북적북적하네요.”
바이크의 말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돔 역에서 내려 8구역 본부로 가는 길에도 확실히 사람과 건물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는 빈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라돔 시 전체가 꽉 찬 느낌이었다.
율리안을 만난 뒤에야 루산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북쪽 지방에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부장님이 북쪽으로 떠나기 전부터 신문 광고를 보고 유입되는 이주민이 점점 늘어나더니 전쟁이 격화되면서 어마어마하게 밀려들었어요. 개척민 모집 정책이 전쟁과 겹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 것이죠.”
율리안은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이주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루산은 살짝 통통하고 늘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전의 모습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진지하고 사려 깊은 통치자의 풍모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북쪽은 어떻게 된 겁니까? 듣자 하니 비밀 임무에 투입되었다던데?”
루산이 간단히 설명했다.
“북방군 레오파드 부대와 함께 원시의 땅을 크게 돌아 이스타드 왕국으로 들어가서 아우로라 연합군을 남북으로 에워싸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
“대대적인 역습이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큰 눈이 내려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말이죠.”
“정말 잘됐군요! 그럼 남쪽에 이어 북쪽 전선에서도 아우로라 연합군을 모두 몰아내는 겁니까?”
“오면서 보니까 멕 나이트가 열차에 실려 북쪽 전선으로 계속 이동하더군요. 아우로라 연합에서 증원군을 대규모로 보내온다면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승리하게 될 것 같습니다.”
루산은 대전쟁에 대해 남들이 아는 수준밖에 알지 못했다.
아우로라 연합이나 필센 제국의 전략, 병력, 물자, 작전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이나 북방군 3군단 파일럿들의 자신감을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정말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북부 사람들도 평온을 되찾고, 우리 8구역으로 밀려오는 인파도 줄어들 테니까요.”
율리안이 피곤한 얼굴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루산도 미소를 짓다가 물었다.
“우리 8구역은 아라드 왕국 피란민 유입 때부터 이주민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일을 종종 겪어 왔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이번에 얼마나 많이 들어온 겁니까?”
“아휴, 말도 마세요. 기존 개척촌들도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어났고 반달 호수 지역에 있는 도시들은 어마어마하게 커졌어요. 레인보우 시티는 세 배, 레이크 시티는 정확히 가늠은 안 되지만, 최소 다섯 배는 커졌을 겁니다.”
루산이 입을 떡 벌렸다.
루산을 놀라게 한 것이 만족스러웠던지 율리안이 오랜만에 흐뭇하게 웃었다.
“워낙 이주민이 많아 정부에서 정착 지원금, 개척 장려금을 지급을 중단했어요. 감당이 안 된다면서. 사실 전쟁이 계속되면 예산이 그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죠.”
심각한 이야기였다.
정착 지원금과 개척 장려금이 없으면 이주민이 변경에 완전히 정착하는 일이 년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자금을 온전히 본부가 감당해야 했다.
“그 이야기를 왜 웃으면서 하십니까?”
“다행히 감당할 만하니까요.”
“네?”
“가프 마법 연구소와 관련 업체들이 설비를 계속 증설하고 있어요. 거기서 많이 고용하고 있죠. 게다가 우리 8구역에 새로운 사업체들도 많이 들어왔어요. 대규모 식품 공장, 광산, 제재소, 제철소, 석회석 공장, 가구 공장, 의류 공장, 군납 장비 생산 공장 등등에서 많이 고용해 주어서 주택 건설, 치안 유지 외에는 사실상 돈 들어갈 데가 없어요.”
율리안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문서를 루산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8구역에 들어온 업체들과 고용 현황 자료였다.
목록 위쪽에 가프 마법 연구소 관련 공장들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반달 그룹, 정직한 기계 그룹 공장들이 보였다.
피닉스 제철이 보유한 광산과 제철소 이름도 있었다.
그 아래로도 크고 작은 회사들이 많이 있었다.
‘바덴!’
루산은 저절로 그녀를 떠올렸다.
가프 마법 연구소를 제외하면 사실상 바덴의 영향을 받아 들어온 회사들일 것이다.
북부 사람들이 머나먼 남쪽에 있는 변경 8구역까지 이주를 한 것도, 많은 회사들이 변경 8구역으로 들어온 것도 바덴의 공이 틀림없었다.
몇 년 전, 바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는 빵집 앞에서 변경 8구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봄날의 밤이 떠올랐다.
‘그때 참 즐거웠지. 나도, 그녀도······.’
그때 율리안이 상념에 빠진 루산을 깨웠다.
“레인보우 시티에 가 보면 놀라실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와 함께 걱정이 됩니다.”
“기대는 알겠는데, 걱정은 뭡니까?”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반년 넘게 떠나 있다가 이제 왔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루산의 말에 율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루산은 반년 전에 비해 몇 배나 커진 레이크 시티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할 일도 많지만, 결실도 모두 그의 몫인 것이다.
루산은 북부에서 획득한 멕 나이트 수리 계약과 아우로라 출신 사냥꾼들에 대해서도 율리안에게 보고했다.
율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650대라고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 될 겁니다. 모두 수리가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고요. 어쨌든 수리를 마쳐 북방군 3군단에 공급할 때마다 대당 몇만 골드씩 우리에게 이익이 남겠죠. 그리고 50대에서 100대 정도는 우리 몫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율리안은 너무 놀라 한참 후에야 겨우 말을 꺼냈다.
“···제국군 몰래 빼돌린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정당한 몫을 챙기는 것이죠. 승리와 함께 몇백 대나 되는 적의 멕 나이트를 안겨 주었으니까 그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허!”
“들킬 일도 없습니다. 손상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수리가 가능한지 제국군은 정확히 모릅니다. 여기 신경 쓸 여력이 없죠. 북부에서 아우로라 연합군을 몰아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우리가 멕 나이트를 수리해서 보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겁니다.”
“그래도······.”
“그리고 수리를 마친 아우로라의 멕 나이트와 아우로라 출신 사냥꾼들을 모두 아라드 변경으로 보낼 테니 들킬 염려가 없습니다.”
율리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장에서 획득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 100대와 이스타드에서 붙잡은 아우로라 출신 사냥꾼들을 아라드 변경으로 빼돌린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일들은 단지 변경 개발권을 이용해 부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았다.
들킨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도 알았다.
알지만, 거부하기 힘들 만큼 유혹적이었다.
“조심스럽게 진행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루산은 율리안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겨울이라 라돔 시의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이 도시의 햇살은 북방과 비교할 수 없이 따사로웠다.
루산은 바이크, 시에나와 함께 변경 투어로 가서 렌커의 마차를 타고 레이크 시티를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