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우리는 돈방석에 앉게 될 겁니다
204. 우리는 돈방석에 앉게 될 겁니다
레이크 시티로 들어온 화물 열차는 화차 한 량당 거대한 멕 나이트 한 대씩을 싣고 레오파드 생산 기지 내에 있는 수리 공장 건물 안까지 들어갔다.
멕 워커들이 달라붙어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놓은 쇠사슬을 풀고 대형 크레인으로 멕 나이트를 들어 작업대로 옮겼다.
그중 한 대가 특히 눈에 띄었다.
온 몸이 윤이 나는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고 장갑판 한 장, 한 장까지 장인의 손길이 닿은 듯 정교하게 세공돼 있는 기체.
지금은 오른팔이 잘려 나가고 온 몸이 찔려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세련미는 열차에 실려 온 그 어느 멕 나이트보다 뛰어났다.
블랙 드래곤!
굴다크 공작이 아끼는 두 명의 에이스 파일럿 중 하나인 시르나크가 타던 멕 나이트였다.
“이런 것도 고칠 수 있습니까?”
루산의 질문에 가라로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요.”
“역시 그렇겠죠?”
“네, 기사님. 블랙 드래곤은 당장 부품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헤비 스틸이라면 이번에 워낙 많이 들어온다 하니 못 쓰는 이쪽 기체의 부품을 떼어 다른 기체에 붙일 수 있겠지만, 블랙 드래곤은 이것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시간을 들여서 연구한다면 비슷한 부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정품 생산은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잘리고 뚫린 몸체 부품도 똑같이 만들기 어려워요. 사용하는 합금이 독특하니까 말이에요.”
“그럼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연구용으로 쓰시면 되겠네요.”
“어이쿠!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그러려고 가져온 건데요.”
루산의 말에 노 마법사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엔진 출력이 아이언 워리어의 두 배가 넘고, 움직임이 부드러워 기사의 능력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는 아우로라 대륙 최고의 기체.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명품 멕 나이트를 연구용으로 주겠다니, 자신이 탄생시킨 레오파드를 최고의 멕 나이트라고 생각하고 특별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기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기체를 레오파드 스피드로 쓰러뜨린 루산이 이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레오파드를 알리는 데 이만한 사건이 없었다.
‘역시 기사님을 레오파드 훈련 교관으로 보내길 잘했어.’
이런 일을 해 주었으니 보답으로 루산에게 상당한 선물을 주어야겠지만, 가라로슈는 지금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무거운 멕 나이트를 열차에서 내리는 일은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척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라로슈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멕 나이트 650여 대가 들어온다는 겁니까?”
“아우로라 연합의 기체만 대략 그 정도일 거예요. 이번 작전에 동원된 북방군 3군단 레오파드 전단의 기체도 절반 이상 수리가 필요하니까 700대를 훌쩍 넘길 수도 있습니다.”
6전단 레오파드들의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반년 넘게 제대로 정비를 받지 못한 채 원시의 땅을 행군하고 수많은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전투 때에는 아이언 워리어보다 무거운 아우로라 연합군의 헤비 스틸과 격렬한 싸움을 벌인 탓에 멀쩡한 기체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적 기체와 맞붙어 싸우지 않은 레오파드 라이트닝 일부만 북방군 3군단 정비창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이곳으로 올 예정이었다.
“레오파드야 수리에 드는 부품 값과 공임을 계산해서 군무부에 청구하면 되겠지만,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들은 어떻게 산정이 되는 겁니까, 기사님?”
“손상이 심한 기체 잔해는 가프 측에서 알아서 폐기하는 것으로 하고 온전한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재조립하거나 수리해 주시면 대당 3만 골드씩 쳐 주기로 북방군 3군단과 계약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대당 3천 골드는 변경 8구역 발전 기금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단기간에 워낙 많은 이주민이 들어와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루산이 민망한 기색도 없이 너무나 태연하게 요구했다.
“그럼요. 기꺼이 그래야죠.”
가라로슈는 이 정도 요구가 오히려 약하다고 생각했다.
변경 8구역이 아닌 루산 개인에게 따로 사례라도 할 판이었다.
“고맙습니다, 가라로슈 님. 그리고 북방군 3군단은 최대한 빠르게 재조립 멕 나이트를 전선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기간에 워낙 많은 멕 나이트가 수리 공장에 들어오게 될 예정이라 가프 측에서 모두 소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레오파드 증산에 투입할 인력도 부족한 형편이니까요.”
“그래서 세척과 재조립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들만 빠르게 조립해 내보내고 손상이 심한 것들은 나중으로 미뤄야겠죠.”
“흐음, 그렇겠지요.”
“그래도 인력이 부족하다면 상태가 안 좋은 기체와 부품들은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으로 넘겨주세요.”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으로요?”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
대전쟁이 발발하면 손상된 많은 멕 나이트가 밀려들어 올 것에 대비해 루산이 정비 부장 바르통에게 지시해서 세운 멕 정비 공장.
“그런데 과연 그곳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그건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요. 어떻게 하는 것이 가프 마법 연구소에 더 나은지를 생각해 봐야겠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가라로슈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프 마법 연구소가 레오파드 증산에 투입할 인력도 부족하다면 그쪽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겁니다. 재조립 3만 골드가 쏠쏠하기는 해도 재조립을 하려면 부품이 온전한지 분해하고 검사해야 하는데, 과연 그 일들이 레오파드 생산보다 수고가 덜 드는지도 알 수 없어요. 주력으로 밀고 있는 레오파드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죠.”
“그 말씀이 맞다 하더라도 우리가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으로 물량을 넘기면 거기서 과연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요? 제국과 맺은 계약 아닙니까?”
가라로슈는 루산이 대당 3만 골드의 수입을 탐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루산이 여유롭게 말했다.
“중고 부품을 구입하고 부족한 부품은 제작을 의뢰해서 우르사를 조립해 낸 사람이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 책임자입니다.”
“바르통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그리고 재작년 반란 사건 때 우리 제국의 거의 모든 변경 구역에서 파일럿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7구역 같은 경우는 멕 나이트 수가 아예 확 줄었죠.”
가라로슈는 루산이 왜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루산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운용하는 멕 나이트가 줄어들면 정비 요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반란 사건에 엮이지 않은 우리 8구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아!”
그제야 루산의 말을 알아들은 가라로슈가 탄성을 토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올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은 규모만 크게 지은 게 아닙니다. 정비 요원의 수가 상당하죠. 그리고 그들은 중고 부품을 들여와 검투용 멕 나이트나 우르사 같은 조립 멕 나이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 수리 공장만큼의 실력은 안 되겠지만, 가프 연구소가 중점으로 두고 있는 레오파드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겁니다.”
“흐음!”
가라로슈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쩐지 레오파드 생산 기지 남쪽에 대규모 정비 공장을 짓더라니!’
레이크 시티가 커지고 루산이 지휘하는 멕 나이트 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그 정도 규모의 정비 공장을 짓는 것은 지나치다 생각했다.
어쨌든 수리 공장으로 들어온 모든 멕을 넘기라는 것도 아니고 레오파드 생산에 집중하느라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을 넘기라는 것이니 가프 마법 연구소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에 보석 같은 존재!
남쪽 아라드 전쟁에 이어 북쪽 전선에서 레오파드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알겠습니다, 기사님. 어차피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이 이번 일에 함께하게 된다면 차라리 철로를 거기까지 연결하도록 하지요. 들어서 나르는 것도 일이니까요.”
가라로슈가 전향적으로 루산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곧장 레오파드 생산 기지 수리 공장의 남쪽 담벼락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 북쪽 담장을 허물고 철로 부설 공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파손된 멕 나이트를 실은 화물 열차는 가프 마법 연구소 수리 공장에서 손상 정도가 경미한 기체를 내린 뒤 곧바로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으로 이동해 나머지를 몽땅 내렸다.
델타 기지 정비 부장에서 레이크 시티 정비 부장으로, 그리고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 사장이 된 바르통은 가슴이 벅차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멕 나이트를 한꺼번에 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루산이 말했다.
“바르통 사장님, 300년 전 기체인 우르사도 재현해 내지 않았습니까? 손상이 심한 기체는 폐기한다고 했지만, 가능한 한 싹 다 고쳐 주세요. 없는 부품은 주문 생산을 해서라도 고쳐야 합니다. 성능은 다소 떨어져도 괜찮아요. 성능이 떨어지는 기체는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니까.”
“네? 전쟁터로 가지 않는다고요?”
“변경에서 쓸 겁니다.”
“하지만, 아우로라의 기체를 허락 없이 변경에서 사용하다 들키면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아라드 변경으로 보낼 테니 걱정 말아요.”
“······!”
“이번 물량을 재조립하면서 정비 요원들과 정비 공장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놓으세요. 전쟁은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습니다. 북방 전선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동방 전선에서 수리가 필요한 멕 나이트들이 끝없이 밀려들어 올 거예요.”
회전 한 번으로 수백 대의 멕 나이트가 파손된다.
지금도 모든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남방 전선에 이어 북방 전선에서도 아우로라 연합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전장이 아우로라 대륙으로 바뀌게 되면 아우로라 연합국들은 생존을 위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서로 눈치를 보느라 아끼던 병력도 적이 자기 집 앞마당까지 쳐들어오면 모두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이 격화되고 파손된 멕 나이트는 더욱 늘어난다.
레오파드 생산 기지가 들어선 레이크 시티에는 가프 마법 연구소뿐 아니라 레오파드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 업체들은 레오파드 부품을 생산해 납품하지만, 과거 우르사를 조립할 때 신화 공업사에 몸체 부품을 주문했던 것처럼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부품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은 이러한 입지에 힘입어 전시에 멕 나이트 수리로 막대한 수입을 올릴 것이며 군대와 정부가 포기한 멕 나이트도 고쳐서 빼돌릴 것이다.
그리고 빼돌린 멕 나이트는 아라드 변경에 투입해 그곳에서 제국이 모르는 힘을 기를 것이다.
루산은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복수.
그 대상이 오베론 공작에 한정될지 그보다 위로 갈지는 아직 확실히 정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가문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인생을 변경으로 틀어 버린 자들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원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데 15년이 걸릴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그보다 힘이 약한 자신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변경 1구역부터 7구역까지 반란에 연루된 파일럿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괴수 부산물 생산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더군요. 이때 아라드 변경에 멕 나이트 수를 확 늘리는 거죠. 우리는 돈방석에 앉게 될 겁니다.”
“아!”
바르통이 눈을 반짝였다.
루산의 말은 변경 사람들이 볼 때 통이 크기는 해도 확실히 변경적 사고방식이었다.
평소 루산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은밀하게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