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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05화 (205/450)

205. 잠시 나가 계십시오

205. 잠시 나가 계십시오

“아!”

아라드 왕국으로 밀수할 레오파드 물량을 논의하기 위해 가라로슈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루산은 갑자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기사님?”

“북방에서 느낀 레오파드의 문제점을 말씀드린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어요.”

“뭡니까?”

레오파드의 문제점이라는 말에 가라로슈가 살짝 긴장하며 루산의 말에 집중했다.

“레오파드는 내구성이 좋습니다. 정비 없이 반년을 넘게 타도 큰 문제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내리니까 관절이나 장갑판 속으로 스며든 물기가 얼면서 유격이 크게 발생하더라고요. 눈길을 걸으면서 점점 심해져 결국 관절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는데, 그때가 전투가 한창일 때였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기체 탓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델도 그런지 레오파드만 그런지 몰라도 이 문제를 개선하면 추운 지방에서 유리한 컨디션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어서 레오파드의 장점이 하나 더 늘어날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개선해 보겠습니다.”

가라로슈가 무겁게 말했다.

사실 추운 지방에서 일어나는 수분 빙결로 인한 유격 문제는 모든 멕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쪽 지방에서는 정비 부대가 매일 멕 나이트의 수분을 닦아 내고 얼음을 제거했다.

반년 넘게 제대로 된 정비 없이 유격전을 치른 레오파드 전단이 무모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고 달려들 때 발전이 있는 법이지!’

가라로슈는 늦게 세상에 출현한 레오파드가 더 많은 장점을 지니고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기체가 되기를 원했기에 루산이 지적한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마법사들을 불러 루산의 말을 경청하게 하고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루산은 가라로슈의 태도에 감탄했고 자신의 말을 곧바로 수용해 주어 고마웠다.

다른 마법사들이 나가고 가라로슈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전에 기사님께서 주신 파워 아머가 있지 않습니까?”

“네. 그런데요?”

“연구는 마쳤는데, 왜 양산을 포기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수지가 맞지 않아요.”

루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라로슈의 말을 경청했다.

“멕 나이트는 기본적으로 동화기에 몸을 끼우고 파일럿의 동작대로 기체가 움직이는 것이잖습니까? 이때 동화기는 조절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체격이 다른 파일럿도,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자신의 신체에 맞춰 동화기를 조절해 멕을 움직일 수 있죠.”

동화기 조절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인 1멕으로 움직이는 곳에서 서브 파일럿은 메인 파일럿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뽑아 그 시간을 단축시킨다.

“그런데 파워 아머는 조절이 안 됩니다. 물론 공장에서는 조절이 가능하지만, 현장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용자 한 사람의 신체에 맞춰 생산할 수밖에 없어요. 철저한 1인용인 것이죠. 살이 쪄도 착용이 불가능합니다.”

루산은 자신이 살이 쪄 파워 아머를 착용하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잠깐 피식하다가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다.

“용도 면에서도 문제가 있어요. 파워 아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멕 나이트에 맞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요인 경호나 요인 암살 정도가 아니면 사실상 쓰임새가 없습니다. 등에 커다란 엔진 팩을 달고 있기 때문에 외관이 멋진 것도 아니어서 사실 요인 경호 행사에 등장시키기도 애매하지요.”

왕이나 황제에게 팔아먹기도 애매하다는 뜻.

이 세상에 왕이나 황제가 많은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팔지 못한다면 살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가라로슈는 필센 마법 연구소, 곧 필센 제국군에서 양산을 포기한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가프 마법 연구소 역시 이 파워 아머를 접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가프 마법 연구소는 레오파드 증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루산이 입수하여 건네준 반란군 기체 기가스와 로쿠스타, 아우로라 기체 헤비 스틸과 그레이 울프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들어온 블랙 드래곤 연구에도 마법사와 엔지니어를 투입했다.

아우로라 대륙의 평지 회전에 대비해 돌격형 멕 나이트도 연구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이 되지 않는 파워 아머 연구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 아이템을 넘겨준 루산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의 판단이 큰 틀에서는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파워 아머가 없었다면 기가스와 로쿠스타를 입수할 수 없었을 겁니다. 반란으로 인해 노바로 들어가는 길이 모두 막혔을 때 파워 아머 덕에 험한 산을 넘어 기가스, 로쿠스타 생산 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죠. 산악 지형을 이동할 때 레오파드 라이트닝보다 지형의 제약을 덜 받는다는 것이죠.”

가라로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작은 몸체에 비해 강력한 파워를 뿜어내는 파워 아머의 특징이 이대로 묻히는 것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당장 양산을 하지는 않더라도 몇 대만 더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하는 게 나을까요?”

“네. 레오파드도 시험 기체로 출발하지 않았습니까? 파워 아머도 계속 사용하다 보면 개선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용도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변경 정찰인데, 레오파드 라이트닝도 오르지 못하는 봉우리를 오를 수 있어서 원시의 땅으로 깊숙이 들어갔을 때 지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나 통신기를 달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가라로슈는 곰곰이 생각하다 루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나 통신기는 워낙 덩치가 있어서 파워 아머에 장착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애초에 루산이 가져온 물건이고 이대로 묻기에는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루산은 가프 마법 연구소에 보물 같은 존재,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혹여 파워 아머 시험 제작으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를 서운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기사님. 그런데 아시다시피 파워 아머는 현장에서 사이즈 조절이 안 됩니다. 1인용이에요. 기사님 것은 이미 있으니 다른 두 대는 사용자를 누구로 할까요?”

지겨운 휴가를 늘어지게 즐기던 바이크와 시에나가 불려왔다.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이 그들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했다.

“뭐 하는 거예요! 어딜 만져요!”

시에나가 뾰족하게 소리를 지르자 마법사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루산을 쳐다보았다.

“파워 아머를 만들 거야. 1인용이지. 싫으면 다른 사람 부를까?”

1인용 파워 아머?

그 말은 곧 자신만을 위한 파워 아머가 생긴다는 뜻이 아닌가!

전에 루산이 착용한 파워 아머에 매달려 산을 넘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입을 떡 벌렸다.

“와! 얼른 재요, 얼른! 닳는 것도 아닌데!”

바이크가 시에나에게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시에나가 입술을 깨물고 눈을 꼭 감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왕 하는 거, 빨리 끝내 주세요.”

***

변경 8구역으로 돌아온 루산이 그동안 쌓인 일을 결재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지내는 동안 북방군 3군단은 증편된 수도 군단 일부, 이스타드 왕국군, 이스타드 해방 전선과 함께 북상하여 이스타드 왕국을 완전히 탈환했다.

그리고 그에 발맞춰 북방군 1군단과 2군단이 일제히 반격을 시작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큰 눈이 내려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이던 북방군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

그 소식을 접한 율리안이 루산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자 루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남쪽에 살아서 다행이에요. 북방은 참 춥더군요. 한겨울에는 눈이 지붕까지 쌓인다는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하하, 우리 부장님은 가끔 영감님 같은 말씀을 하신다니까.”

율리안이 놀리자 루산은 싱긋 웃어넘겼다.

율리안이 말했다.

“어쨌든 전쟁은 사람 뜻대로 되는 게 아닌가 봐요.”

“그렇죠. 지형, 날씨, 내외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래도 봄이 오면 결국은 북방군이 아우로라 연합군을 몰아내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따로 정보통이 있으신가요?”

“하하, 제게 그런 정보통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이번에 겪어 보니 북방군 파일럿들의 기세가 약하지 않았어요. 1년 넘게 수세에 몰려 있었는데도 말이죠. 공세로 전환된 상황에서 그들은 더욱 힘을 낼 겁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 증편 체제가 완비된 것 같아요. 후방에 머물던 수도 군단이 증편을 마무리했다는 것은 전방의 증편 계획은 더 먼저 끝났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전쟁 발발 2년 만에 우리 제국은 전시 증편이 끝났어요. 2년 전에 비해 전력이 두 배로 늘었다는 뜻이죠.”

북방군 3군단이 레오파드 150대를 별동대로 돌리고도 굴다크 공작군의 강력한 공격에 맞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이젠 자작의 뛰어난 지휘력과 병사들의 강인한 의지 덕분이었으나 그것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동방군을 밀어 주느라 증편이 다소 늦어지기는 했지만, 필센 제국의 전쟁 물자 전시 생산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멕 나이트를 비롯한 전쟁 자원이 북방군에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도 이제 레오파드 한 달 생산 능력이 40대를 넘어섰으니 모르긴 몰라도 아이언 워리어는 그보다 몇 배씩 찍혀 나오겠죠.”

“와!”

율리안이 제국의 무시무시한 역량에 입을 떡 벌렸다.

“과거 대전쟁에서 승리한 뒤로도 무려 15년 전부터 이번 전쟁을 준비한 이반 황제와 프리드리히 황제의 노력이 마침내 빛을 보는 것이겠죠.”

루산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이런 거대한 의지들에 휘말린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감정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채로.

율리안이 말없이 루산의 말을 음미했다.

황제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황족으로 태어났지만 황제와는 거리가 먼 그의 뇌리에 한동안 맴돌았던 것이다.

그때 루산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아! 그게··· 오늘은 내가 부른 게 아니고 단장님이 찾으신 거예요.”

“단장님께서 저를요?”

“네.”

“무슨 일로······?”

“글쎄요. 말씀을 안 하셔서 저도 모르겠네요. 사실 최근에 몸이 안 좋으셔서 출근을 안 하고 계세요.”

그 이야기는 루산도 들은 적이 있었다.

2년 전 반란 사건 이후 업무를 율리안에게 거의 넘긴 상태라서 출근을 하지 않아도 8구역 운영에 별지장은 없었다.

아라드 왕국으로, 이스타드 왕국으로 남북을 오가며 전쟁을 치르느라 8구역에 머문 날이 거의 없었기에 루산은 단장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율리안이 루산을 데리고 본부를 벗어나 단장의 집으로 갔다.

단장은 워낙 성마른 성격이라 원래 깡마르고 늘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보다 훨씬 더 말라 뼈 위에 거죽을 덮어 놓은 것 같았다.

루산은 단장의 모습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왔느냐?”

날카로운 음성은 여전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네, 단장님!”

단장이 율리안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잠시 나가 계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율리안이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변경 8구역의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떨던 최고 권력자가 병석에 누워 루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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