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반달 호수에 배를 띄워요?
207. 반달 호수에 배를 띄워요?
“여! 기동 전단장실이 으리으리하군요!”
루산이 본부 기동 전단장실의 문을 살짝 열고 머리만 들이밀며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트리어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이 방, 처음 와 보는 것도 아닌데 뭘 유난을 떨어? 얼른 들어와.”
트리어는 대수롭지 않은 척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으로 루산을 맞이했다.
“네 방도 공사에 들어갔으니 금방 만들어지겠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데도 참······. 세상이 얼마나 효율과 무관하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니까요.”
어차피 제2 기동 전단은 레이크 시티에 본부를 두게 된다.
본부에 전단장실을 따로 갖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끔 회의가 있을 때 쉴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너를 그만큼 신경 쓴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사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은 이런 사소한 데에 마음이 상하는 법이거든.”
트리어의 말에 루산은 어깨를 으쓱하고 넘어갔다.
오늘은 임명장을 받는 날.
임명장 수여식이 거행되기 전에 미리 만나 1전단과 2전단의 관할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던 것이다.
2전단은 기존의 3전대를 확대 개편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신설되다 보니 정해야 할 규칙이 많았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8구역의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2전단 이야기가 나온 건 제법 되었지. 반달 호수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이 지역 괴수를 점점 소탕해 나가면서 두 개의 목소리가 등장했어. 너도 알다시피 반달 호수 지역이 개발되면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델타 기지였지. 알파, 베타, 감마 기지 사람들이 불만이 많았어.”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달 호수 지역은 델타 기지와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이 지역 개발에 델타 기지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델타 기지 대장 호른은 반달 호수 지역 첫 번째 개척 기지인 레인보우 시티에 델타 기지 요원들과 자신의 재산을 대거 투입해 가장 큰 도시로 일군 것이다.
장차 세금 징수권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게 될 사람은 호른 영감이지만, 개척 과장에서 델타 기지 요원들은 사냥 수입 분배금과 루산이 나눠 준 개척 장려금으로 크게 한몫 챙겼다.
이후 루산이 델타 기지에서 나온 뒤에 세운 레이크 시티도 대부분 델타 기지 출신 요원들이 주축이 되어 개발했기 때문에 이들이 이주민이 늘수록 받게 되는 성과 보상금을 두둑이 챙겼다.
그렇다 보니 다른 전진 기지 대장이나 요원들이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본부는 반달 호수 북쪽 지역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본부에서 회의가 열릴 때 알파, 베타, 감마 기지 대장들이 늘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반달 호수 지역도 워낙 급격히 개발이 진행되고 단기간에 많은 괴수를 잡다 보니 새로운 사냥터와 개척 대상지가 필요하게 되었지.”
변경은 괴수 부산물로 경제가 돌아가는 곳이다.
괴수가 사라진 변경은 그저 오지에 불과하다.
오지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루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괴수가 없어도 경제가 돌아가도록 레이크 시티에 멕 나이트 생산 기지를 유치했지만, 레이크 시티도 근본적으로 괴수 부산물로 만드는 마나 연료 생산 기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괴수는 변경 사람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지만, 괴수가 사라진 변경은 매력이 없어진다.
“앞으로 2전단은 반달 호수 지역 전역을 보호하고, 이 지역 서쪽으로 사냥터와 개척 대상지를 탐색해 나가야 할 거야. 그리고 1전단은 반달 호수 지역을 제외한 8구역 전체를 관할하게 될 테고.”
“알파, 베타, 감마 기지 방향으로의 확장을 염두에 두면서 말이죠?”
“그렇지.”
“그런데 그쪽으로 뻗어 나가면 7구역과의 접촉이 문제되지 않겠어요?”
루산의 질문에 트리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 8구역은 애초에 7구역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7구역 남쪽을 개척해 나갔다.
전진 기지 알파, 베타, 감마는 델타 기지에 비해 7구역과 가까웠다.
그래서 8구역 본부는 7구역과의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델타 기지 방향에 있는 반달 호수 지역 개발에 집중한 측면도 있었다.
“만나면 만나는 거지 뭐. 원시의 땅에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트리어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변경 7구역은 필센 제국 8개 변경 구역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그러나 2년 전 반란 사건에 크게 연루되면서 200여 대의 멕 나이트를 잃고 정부 조사에 탈탈 털려 지금은 일상적인 순찰 업무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반면 8구역은 급속히 발전하여 루산이 비밀리에 획득해 아라드 변경에 두고 온 멕 나이트를 제외하고도 기체 수가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트리어에게는 루산과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 역시 반달 호수 지역을 개발할 때 본부 개척 기지를 건설하고 이 지역 괴수를 소탕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반달 호수 지역 개척을 말할 때 레인보우 시티와 레이크 시티를 건설한 루산을 이야기하지 트리어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루산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그 역시 욕심이 있었기에 젊은 나이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다.
“7구역과 8구역 사이에 밀림 지대가 있어서 만날 일도 없겠지만, 만난다 해도 뭐 어쩌겠어? 인사나 나누고 헤어지는 거지.”
루산은 트리어의 자신감이 나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
평소 모습과 다르게 지나치게 들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 나이에 기동 전단장으로 승진한다면 누구나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반달 호수 지역에서 활동하던 1전단 멕들은 바로 빠지나요?”
“그러면 곤란하지 않겠어? 2전단이 편성되면 차차 인수인계하자.”
트리어는 이왕 2전단이 신설되고 자신이 지휘하는 1전단이 8구역 북부를 맡아 활동하게 되었으니 서둘러 그곳에서 자신이 구상한 계획을 실행해 나가고 싶었지만, 루산에게 야박하게 굴 수는 없었다.
“고마워요.”
“고맙기는, 우리가 남이야? 우리끼리 그런 말은 하지 마.”
“네.”
트리어는 루산과 인수인계 순서와 규모, 시기에 대해 대략적인 윤곽을 잡고 나서 화제를 돌렸다.
“예전에는 알파, 베타, 감마 기지에서 괴수 부산물을 본부까지 운반했지만, 지금은 가프 마법 연구소가 취급하는 품목은 전부 레이크 시티로 운반하잖아.”
“그렇죠.”
“레이크 시티까지 철로를 까는 건 어때?”
“어디서부터요?”
“베타 기지가 적당하지 않겠어?”
루산이 곰곰이 생각하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중에 북쪽에 커지면 모를까 지금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지 않겠어요? 철로를 부설하려면 원시림을 뚫어야 하는데, 공사도 어렵고 관리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부산물의 양이 많다면 모를까 공사비나 관리비, 화물 하역 역사 건설비 등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아요.”
트리어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초기 비용은 많이 들어도 그런 기반이 갖춰지면 알파, 베타, 감마 기지의 수익성이 더 좋아지고 1전단도 더 공격적인 사냥을 해 나갈 수 있지 않겠어?”
“그야 그렇지만, 수지 타산을 따져 봐야죠.”
“끙!”
“그런데 그건 본부 개척부나 회계부, 통치자님과 상의할 일이지 않아요?”
“그야 네가 말 한마디 해 주면 쉽게 승인이 날 것 같으니까 그렇지.”
“······.”
루산은 순간적으로 난감함과 불쾌함을 느꼈다.
자신의 관할도 아닌 일에 자신의 위세를 이용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리어는 함께 갈 사람이었다.
이런 일로 정색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머리를 쥐어짜던 루산이 말했다.
“호수에 배를 띄우는 건 어때요?”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반달 호수 남쪽 레이크 시티에 선착장을 짓는 거예요. 북쪽에도 선착장을 짓고 화물 창고를 짓는 거죠. 창고에 괴수 체액 드럼통이 쌓이면 바지선에 싣고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겠어요?”
“오!”
트리어가 찌푸렸던 인상을 펴며 탄성을 질렀다.
“철로를 깔아도 크게 빙 돌아서 와야 하니까 배를 이용하는 게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더 나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반달 호수 북쪽은 산지잖아.”
“야트막한 봉우리 산허리를 돌아 길을 내면 되죠.”
“호수 괴수가 공격하는 일은 없을까?”
“괴수 숫자가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화물선을 크고 튼튼하게 만들면 되죠.”
“음!”
“선착장 건설비나 바지선 건조비는 레이크 시티에서 댈 테니까 북쪽 산에 도로 뚫는 건 전단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그 정도는 해야지. 알았다! 고맙다!”
“우리끼리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똑같이 돌려주기 있냐?”
“하하하!”
“하하하!”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사실 레이크 시티에 선착장을 건설하고 반달 호수에 배를 띄운다는 계획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변경 투어의 코스 중 하나로 반달 호수에 유람선을 띄워 풍경을 구경하면서 낚시로 수중 괴수를 잡는 아이템을 구상해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호수에 괴수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고, 관광객의 안전을 고려할 때 배도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다.
유람선이다 보니 미관도 수려해야 했다.
그렇게 비용과 안전을 고려하여 잠정 보류하다 전쟁이 벌어지고 변경 관광객이 끊기면서 사실상 묻힌 계획이었다.
화물선, 그것도 바지선이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배를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고 화려할 필요도 없었다.
예전에 비해 호수에 사는 괴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전문가를 부르고 선박 엔진을 구입해 레이크 시티에서 조립하면 될 것 같았다.
‘화물선을 먼저 띄워 본 다음에 변경 투어가 재개되면 관광객들을 태우는 거야.’
루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루산과 트리어는 멕 나이트 수급과 관리, 전투 요원 편제와 비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전단이 갈라져 나가는 셈이라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었지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여 임명장 수여식 전에 대강의 논의를 마칠 수 있었다.
임명장 수여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통치자, 본부의 간부와 요원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그런 뒤 통치자, 간부들과 첫 회의를 가졌다.
“반달 호수에 배를 띄워요? 신선하군요!”
레이크 시티와 반달 호수 북쪽에 선착장을 짓고 화물선으로 괴수 부산물을 나른다는 계획은 그 자리에서 승인되었다.
***
2전단이 신설되고 루산이 전단장이 되었다는 이야기, 루산이 20년 동안 징세권을 갖는 레이크 시티의 시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8구역이 시끌시끌했다.
어디서나 그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기존 3전대 파일럿들이 가장 들썩거렸다.
아무래도 전대에서 전단으로 확대되면 승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전대장이 된다면 내가 아니겠어? 이 중에 나보다 먼저 8구역에 들어온 사람 있냐고? 전대장님, 아니 전단장님을 가까이서 보좌해 온 것도 나잖아! 안 그래?”
하릴없이 지겨운 휴가를 보내고 있던 바이크가 굳이 출근할 필요도 없는 병영으로 나와 동료들을 붙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 파일럿들은 그에 동조해 비위를 맞춰 주었고 몇몇 파일럿들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3전대 파일럿 모두가 바이크보다 경력이 짧은 것은 분명했기에 2전단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승진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근데 승진이 되면 뭐가 달라져?”
시에나가 바이크에게 물었다.
“승진이 되면 부하가 생기는 거지! 직책 수당도 나오고!”
“직책 수당이야 사냥 많이 해서 받는 성과 보상금에 비하면 얼마 안 되잖아. 그리고 변경 파일럿이 딱히 상명하복 관계도 아니고.”
“그래도 상관의 말을 안 들을 수가 있어?”
“일에 대한 지시는 들어야지. 그건 당연한 거잖아.”
“나 참! 말이 안 통하네. 넌 남자들의 세계를 몰라서 그런 거야.”
“할 말이 없으니까 남자들의 세계라네. 별것도 아닌 직책 가지고 으스대는 게 남자들의 세계냐?”
온종일 들떠서 어쩔 줄 모르는 바이크를 한심하게 - 가끔은 안타깝게 - 바라보는 시에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2전단 신설과 승진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마침내 루산이 개편안을 발표했다.
“켐니츠를 2전단 부전단장으로 임명한다.”
다들 예상했던 일이지만, 가차 없이 잘라 버리는 켐니츠가 2전단의 부단장이 되었다.
“아······!”
파일럿들의 힘없는 탄성에 왠지 모를 아쉬움과 거부감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나머지 파일럿들은 기존 3전대 때의 체제를 유지한다.”
“어?”
“앞으로 보이는 능력과 실적에 따라 직책을 결정할 것이다.”
“아!”
파일럿들은 잠시 서운함과 상실감에 휩싸였지만, 루산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경력이 다들 짧아 전대장으로 임명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루산은 변경 7구역에서 일해 온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이 승진하기에 충분한 능력과 경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공식 직위에 앉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일럿들이 더욱 분발하여 일하기를 기대하며 승진과 편성을 나중으로 미룬 것이다.
‘이럴 수가!’
루산의 발표가 끝났음에도 바이크는 상실감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시에나가 그런 바이크를 놀리기 직전, 루산이 추가 내용을 발표했다.
“아! 깜박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었네.”
“······?”
“바이크와 시에나를 전단장 직속 특임 전대 소속으로 둔다.”
그 말을 들은 바이크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들었어? 들었지? 역시 전단장님은 나를 특별히 생각하신다니까!”
시에나는 그런 바이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 전에도 우리는 대장님 직속의 1소대 소속이었잖아. 뭐가 달라진 건데?’
그러나 좋아하는 바이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그녀 역시 루산 직속의 특임 전대에 포함되었다는 말에 기분이 살짝 좋았던 것이다.
루산은 특임 전대 소속에게 임무 수당을 추가해 주었고 바이크는 그 사실을 뿌듯하게 여겼다.
“편제 작업은 고심할 게 많아 뒤로 미루지만, 1전단으로부터 인수인계는 먼저 해야 해요. 그러니 켐니츠, 내가 없는 동안 1전단 담당 구역을 차근차근 넘겨받고 근무 편성을 짜서 운영하세요.”
“응? 어디 또 가는 거야?”
“노바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남쪽 아라드 왕국에 이어 북쪽 이스타드 왕국에 갔다 오느라 2년 가까이 노바에 다녀오지 못했다. 그동안 편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노바에서 직접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많았다.
루산은 휴가 기간에도 할 일이 없어 병영을 기웃거리는 바이크와 심심해 어쩔 줄 모르는 시에나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특별 출장비 지급할게. 놀아도 노바에서 노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좋아요!”
두 사람은 기꺼이 동행했다.
이번 노바행에는 렌커도 합류했다.
화물 운송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루산을 따라 이미 노바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바이크, 시에나와 달리 노바에 처음 가 보는 렌커는 차창 밖으로 빠르게 변하는 풍경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