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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08화 (208/450)

208. 부인의 안목이 대단하세요

208. 부인의 안목이 대단하세요

희끗희끗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자동 마차 한 대가 경찰청 맞은편 도로 옆에 서 있었다.

“올겨울에는 지겹게 내리는군.”

자동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울름 남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다 녹았다 싶더니 다시 또 오는군요.”

“적당히 내리다 그쳐야 노바 관리들이 눈 치우느라 고생하지 않을 텐데.”

잠시 나라 걱정, 관리들 걱정을 하던 그는 이내 눈을 감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던 그의 부하들이 윗사람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소리도 내지 않고 경찰청 정문을 주시했다.

다행히 눈은 펑펑 내리지 않고 가루처럼 조금씩 흩어져 내렸다.

날이 저물고 거리에 가로등이 밝혀졌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울름 남작의 부하가 입을 열었다.

“나옵니다!”

“으음!”

울름 남작이 눈을 뜨고 부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출발해.”

“네!”

자동 마차는 직진하다 경찰청 쪽으로 유턴하여 방금 나온 사람을 뒤쫓았다.

퇴근길이라 마차와 자동 마차들이 적지 않았지만, 겨울이라 빙판길을 걱정한 탓에 아주 많지도 않았다.

적당히 느리게 달리던 울름 남작의 자동 마차는 경찰청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목표를 따라잡았다.

차가 멈추고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이 경찰청에서 나온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리마 씨 맞습니까?”

추운 날씨에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걷고 있던 그리마가 인상을 더욱 쓰며 말했다.

“누구지?”

경찰 생활 20년을 훌쩍 넘은 그는 범죄자들로부터 위협을 당한 적도 많았기에 이미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상대를 쏘아보았다.

그때 울름 남작이 창문을 내리고 손짓으로 그리마를 불렀다.

그리마는 잠깐 멈칫했으나 자동 마차와 상대의 차림새를 보고 신분이 상당하다는 생각에 이내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마 과장, 나는 울름 남작일세. 제국 재상이신 오베론 공작님을 모시고 있지.”

상대방의 정체를 듣고 그리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찰청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은 피차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어.”

“무슨 일로······?”

“재작년 브레머 앞바다에서 항구를 떠나 아우로라 대륙으로 가던 배를 정선시키고 누군가를 체포한 적이 있지 않나?”

그리마는 깜짝 놀랐다.

그 일은 브레머 경찰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은밀히 처리했기 때문이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면서 등줄기가 찌릿찌릿했다.

“자네에게 죄가 있다면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더 있겠나? 하지만, 자식을 잃은 아버지로서는 시킨 놈이나 실행한 놈이나 그놈이 그놈이지.”

“자식 잃은··· 아버지?”

“자네가 붙잡은 사람은 바로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이야.”

“······!”

그리마는 순간적으로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자동 마차의 지붕을 짚고 있어서 쓰러지지 않았다.

“배후가 누군지 말하게. 안 그러면 자네의 두 아들과 막내딸도 똑같은 일을 겪게 될 거야.”

그리마는 몸을 떨었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야!’

울름 남작에게서 진한 피 냄새를 느꼈다.

이런 일을 많이 해 본 것 같았다.

가루눈도 저녁이 되어 내리자 거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울름 남작이 타고 있는 자동 마차 지붕에도, 석상처럼 굳은 채 그 옆에 서 있는 그리마의 모자와 외투 어깨에도 눈이 쌓였다.

눈을 피해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그리마와 자동 마차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

노바 역도 전에 비하면 확실히 한산했다.

‘전쟁의 여파인가?’

루산은 그런 생각을 하다 역사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노바의 겨울은 제법 추웠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에 바덴이 기다리거나 배웅할 때 항상 자동 마차를 대는 광장 남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자동 마차가 서 있었다.

루산은 3일 동안의 기차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다 씻기는 듯한 반가움을 느꼈다.

루산이 일행을 데리고 그쪽으로 걸어가자 차문이 열리고 세련된 코트를 입은 한 여성이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기사님!”

바덴의 목소리가 반가운 듯 살짝 떨렸다.

“미스 고슬라, 오랜만이군요.”

“그러니까요. 잘 지내셨나요?”

“여기 저기 바쁘게 다녔지만, 보시다시피 몸은 멀쩡합니다.”

루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바덴도 마주보고 웃었다.

일을 할 때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환한 얼굴이라 그녀의 비서 소피아는 특별한 눈으로 바덴과 루산을 쳐다보았다.

“뭐지, 두 사람?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은데, 나만 느끼는 건가?”

“닥쳐!”

시에나가 날카롭게 말하며 바이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었다.

“윽!”

바이크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숙였다.

그때 렌커가 바덴에게 아는 체하며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고슬라 사장님. 레이크 시티를 방문하셨을 때가 3년 전인가 4년 전인가 그렇죠?”

바덴이 변경 투어 관광객들을 모집해 렌커에게 편지로 전해 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업무적으로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러다 바덴이 슈텐달 남작과 함께 레오파드 부품 납품 회사들에 투자하고 변경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8구역에 들어왔을 때 렌커가 직접 안내를 했다.

“아! 렌커 사장님. 여기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그렇군요. 참,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노바 역 광장은 칼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바덴이 즉시 상황 정리를 했다.

“자동차가 한 대니까 소피아는 손님들을 파라다이스 호텔로 모시고 가서 체크인하고 식사를 대접하세요. 나는 기사님을 모시고 리베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거예요.”

리베 레스토랑은 노바 역 근처에 있는 고급 식당으로 바덴이 사업상 다른 사장들과 종종 만나는 곳이었다.

“나중에 차만 보내면 됩니다. 렌커 사장님과는 나중에 뵙기로 해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소피아가 손님들을 차로 데려갔다.

바이크와 시에나가 엄마 개를 보는 강아지처럼 자꾸 고개를 돌려 루산을 쳐다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렌커와 함께 바덴의 차를 타고 떠났다.

바덴이 루산에게 말했다.

“기사님은 여전하시네요.”

“뭐가요?”

“옷차림이 변하지 않으세요. 일단 같이 가요.”

“네? 어디로요?”

“따뜻하게 입으셔야죠. 감기 걸려요.”

“괜찮아요. 북방의 추위도 견뎌 냈는데 노바의 추위쯤이야.”

루산이 대수롭지 않은 척 허세를 부렸지만, 바덴은 양보하지 않았다.

“제가 안 괜찮아요.”

바덴은 노바 역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으로 루산을 기어이 끌고 갔다.

그곳에서 고급스러운 신사 정장과 모직 외투, 목도리와 장갑을 골라 바로 갈아입게 했다.

루산은 얼마 전까지 토끼털, 오리털, 사슴 가죽으로 만든 의류를 걸친 북방의 변경 사냥꾼 모습을 하다가 노바의 세련된 신사 차림으로 바뀌었다.

워낙 몸이 좋아서 누가 봐도 근사해 보였다.

루산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사흘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거뭇거뭇했지만, 그것이 더욱 남성적이고 강한 인상을 주어 세련되고 이지적인 느낌과 강한 야성미를 동시에 풍겼다.

바덴은 루산의 모습에 뿌듯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어때요?”

“뭐···, 나쁘지 않군요.”

루산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지켜보던 여자 점원이 호들갑을 떨며 끼어들었다.

“아무나 소화하지 못하는 건데, 사장님이 워낙 체형이 좋으시네요. 깜짝 놀랐어요. 부인의 안목도 대단하시고······. 두 분이 거리로 나가시면 두 분만 환하게 빛이 날 것 같아요.”

점원의 말에 바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루산도 민망했지만,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계산대에서 가격을 듣자 루산은 입을 떡 벌리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덴을 바라보았다.

바덴이 고개를 저으며 눈으로 애원했다.

‘아무 말도 마세요!’

루산은 바덴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으며 그녀가 계산하는 광경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바덴은 그 모습이 참 귀여워 보였다.

“어쩜 집사나 주인이나 똑같을까.”

바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낡은 옷을 넣은 쇼핑 봉투를 들고 루산에게 다가갔다.

루산이 쇼핑 봉투를 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전보다 한산하다 해도 역 근처라 사람이 많았다.

식당까지 멀지 않았지만, 오가는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이 부딪쳤다.

루산은 인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바덴과 떨어지지 않도록 살짝 어깨를 감쌌다.

손으로 꽉 껴안은 것은 아니어도 사람들에 밀리다 보니 저절로 루산과 바덴의 몸이 살짝살짝 부딪쳤다.

탄탄한 루산의 어깨가 자신을 보호하자 바덴은 가슴이 두근거렸고, 가녀린 바덴의 몸이 어깨 안으로 쏙 들어오자 루산은 볼이 화끈거렸다.

오직 두 사람에게만, 리베 레스토랑까지 가는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후유~”

레스토랑 앞에 도착하자 바덴이 안도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서 루산 역시 소리 없이 심호흡을 했다.

***

리베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괜찮았다.

사실 두 사람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좋은 요리를 루산과, 바덴과 함께한다는 것이 기쁠 뿐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사랑의 밀어가 아닌 사업 이야기였다.

그게 두 사람에게는 더 자연스러웠다.

“슈텐달 남작께서는 지금 아라드 왕국에 상주하다시피 하세요. 가끔 들어와 피닉스 제철을 챙기시죠.”

“그런가요?”

“네. 이제 피닉스 제철의 철강재가 워낙 소문이 나서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라 굳이 슈탄델 남작님이 새로 판로를 개척할 필요가 없거든요. 가끔 들어오시는 것도 공장 신축 현황을 살피러 오시는 거죠. 중요한 건 원자재예요.”

“보내 주신 편지로 대강의 내용은 압니다. 아라드 왕국에서 광산 개발을 하신다고······.”

“네. 아무래도 직접 상주하시면서 챙기면 아라드 왕국 관리들이나 현지 고용인들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나중에 아라드에 가게 되면 신경을 써야겠네요. 아라드 왕국군 사령관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고 나름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줄 겁니다.”

아라드 왕국군 사령관과 연이 있다는 말에 바덴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호리아 평원 이용 건도 말씀 좀 해 주세요.”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도 편지로 이미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그러죠. 어차피 아라드 왕국은 호리아 평원을 재건할 여력이 없을 테니까 대가만 적절하면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협상이 쉽지 않은가 봐요.”

“어째서 쉽지 않다는 겁니까?”

“아라드 왕국 일각에서 필센 제국의 책임론을 들고 나온다고 해요. 필센 제국이 좀 더 빨리 지원을 해 주었다면 아라드 왕국이 그처럼 피해를 입지 않고 적을 물리쳤을 수 있을 텐데, 자국의 피해를 막으려고 아라드 왕국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는 거죠.”

“음!”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아라드 땅을 필센 제국의 자금이 들어와 차지하려는 데 대한 반감이 크다나 봐요.”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전력을 확인하고 아라드 왕국군이 어느 정도 버티며 상대의 진을 뺀 뒤 필센 제국군이 들이쳐 승리하는 것.

전략적으로 분명 그런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런 전략을 일부러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필센 제국은 전선이 세 개나 되었다.

모든 전선을 홀로 감당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택한 전략이지 아라드 왕국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 아닌 것이다.

“전쟁을 치르면 책임론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분노만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는 없죠. 결국은 돈과 식량이 필요할 겁니다. 아라드 왕국에 가게 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죠.”

“알겠습니다, 기사님.”

“슈텐달 남작님이 철광 문제로 부르사 왕국에 갔다 오셨다던데, 그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바덴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매우 중요하거나 군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비밀스러운 내용은 편지로 보내지 않았다.

루산이 편지를 통해 반란 사건의 배후를 파헤쳤듯이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심각한 내용은 빼거나 완곡하게 표현해 보냈던 것이다.

바덴이 잠시 식당 안을 돌아본 뒤 나직이 말했다.

“부르사 왕의 조카가 멕 나이트를 대금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루산이 눈을 부릅떴다.

“사실 아라드 왕국 광산 개발은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부르사 왕국 철광석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죠. 왕질이 다스리는 지역의 철광석만 들여올 수 있다면 피닉스 제철은 단숨에 필센 제국 제철 산업을 석권하게 될 겁니다.”

루산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오베론 공단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그리고 그로 인해 오베론 공작이 당장 쓰러지지는 않겠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입게 될 것이다.

대전쟁 시기에 철강재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루산이 바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부르사 왕의 조카가 원하는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 말에 바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루산의 입김이 귀를 간질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멕 나이트를 충분히 댈 수 있다는 루산의 자신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바덴 역시 루산의 귀에 대고 복수하듯 속삭였다.

“최대한 빠르게 알아볼게요, 기사님.”

루산은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신음이 나오려는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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