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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11화 (211/450)

211. 승리하여 가치를 증명하라

211. 승리하여 가치를 증명하라

“여기 앉아도 되니?”

도서관 식당에 다른 빈자리가 많았음에도 사라는 클라크가 앉은 자리 앞으로 와서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아, 그게···, 네.”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클라크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침착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허둥댔는지, 부끄러웠다.

어쨌든 그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 마주보고 식사를 했다.

“넌 왜 늘 혼자 밥을 먹어?”

“저를 아세요?”

“그럼! 너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바움 대학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유명하잖아!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면서 말이야. 점심시간 외에는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던데, 정말이니?”

사라가 풋풋한 들장미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클라크는 다시 또 얼굴이 빨개졌다.

“점심시간에는 교정을 산책하며 멀리서 자유 발언대에 오른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돌아가잖아. 나랑도 몇 번 눈이 마주치지 않았니?”

클라크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는 이미 바움 대학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문예과 2학년.

바움 대학의 민주파 세력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라는 ‘행동하는 청년 그룹’의 정책 위원.

점심때면 거의 항상 자유 발언대에 올라 현실의 부조리를 알리며 민주 헌법 운동의 당위성을 설파했고, 자유 발언대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날에는 학교 밖에서 노동자 연대 활동을 했다.

“그냥 갑자기 용기를 내 본 거야, 나도. 늘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네가 보여서 말이야. 그래도 멀리서나마 서로 몇 번 본 사이라 친근한 생각도 들고. 괜찮지?”

“아! 네.”

사라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유 발언대 위에서는 너무나 똑똑하고, 너무나 논리적이고, 너무나 열정적이고, 너무나 투쟁적이어서 살짝 무섭다고 생각해 왔는데, 혼자 있는 모습이 걸려 먼저 말을 건네 온 것이다.

그렇게 클라크는 사라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식당에서 만나면 같이 식사를 하고, 자유 발언대 앞에서도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사라의 친구들과도 어느새 함께 밥을 먹고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사라와 친구들은 이제 겨우 학력 검정 시험을 준비하는 클라크를 자신들이 하고 있는 활동에 끌어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동생 같은 클라크가 매일 대학 도서관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했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기특해 귀여워해 주었다.

클라크는 점심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그들의 활동, 그들의 목표를 듣게 되었다.

공화파와 민주파, 군주정과 민주정, 전쟁과 정치의 상관관계, 노동조합 운동, 민주 헌법 제정 운동에 대해서 저절로 알아 가게 되었다.

“이반 황제가 만든 헌법은 가짜야. 백성들의 재산과 권리를 보장한다지만 정치 참여의 길이 막혀 있거든. 통치 체제에 대한 혁명적인 전환 없이는 백성들은 헌법적 권리를 진정으로 누릴 수 없어. 황제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놀아날 뿐이야.”

“결국 이 전쟁은 황제와 자산가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 줄 뿐이야. 백성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지는 거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학생들은 더없이 진지했고, 열정이 가득했다.

클라크는 그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사라와 그녀의 친구들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어려움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는 영웅,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 같았다.

어느 날 클라크는 사라에게 물었다.

“누나.”

“응?”

“무섭지 않아요?”

“무섭지.”

사라는 숨기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근데 왜······?”

사라가 미소를 지으며 클라크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얼마나 굴욕적이니?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거든.”

클라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점심시간만 할애하던 그들과의 시간이 점점 늘어 어느 순간 독서 토론회에 나가더니 급기야 거리에서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게 되었다.

***

클라크와 루산이 마주 보았다.

방구석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클라크가 루산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겁이 났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가슴을 쫙 폈다.

“아!”

시에나가 작게 탄성을 토하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루산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얼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루산은 클라크의 말에 감동하지 않았다.

“그런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 대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 그래서 대학은 가겠다는 거야?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지?”

클라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루산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리라 마음먹었으나 막상 직접 대면하고 나니 머릿속으로 생각해 둔 것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만 것이다.

“사회 운동을 하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건가? 경찰들과 싸우면 되는 거야?”

루산이 나무라는 투로 말하자 클라크는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냈다.

“경찰과 싸우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마찰이에요. 지금의 경찰은 기득권을 보호하는 무력이라 이 충돌은 필연적이지만, 백성들이 우리를 지지하여 힘의 균형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면 황제를 수호하던 경찰도 결국 백성을 지키는 경찰이 될 거예요!”

멀찍이 떨어져 듣고 있던 바이크가 시에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와! 클라크, 말 잘하네. 내가 알던 녀석 맞아? 잘 교육받은 불순분자 같지 않아?”

“좀 닥쳐! 분위기 파악 좀 해!”

시에나가 작은 목소리로 뾰족하게 윽박질렀다.

그때 다시 루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백성들이 지지한다고? 흥!”

루산이 코웃음을 쳤다.

“백성들은 이반 황제와 같은 영웅적 통치자를 지지하지 민주파 운동 세력을 지지하지 않아. 이미 프리드리히 황제의 권위는 굳건해. 제국군, 경찰뿐 아니라 대다수의 백성들이 황제를 떠받들어. 반란을 일으킨 구귀족파나 일부 공화파, 민주파 운동 세력을 제외한 모든 백성들이 황제를 떠받든단 말이야. 왜 그런 줄 알아?”

루산은 클라크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가슴에서 열불이 나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에게 땅과 재산을 가질 수 있게 해 주고, 필센 제국을 아우로라 연합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고, 필센 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 준 것이 바로 황제이기 때문이야. 물질적인 풍요, 강력한 군사력,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 그런 대단한 황제를 두고 백성들이 누굴 지지해? 착각도 야무지구나!”

루산은 스스로 차분함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목소리와 눈빛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 분노가 지난 세월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내왔고 누구보다 믿고 있던 클라크를 향한 것인지, 클라크를 물들인 바움 대학의 학생들을 향한 것인지는 그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클라크는 루산의 분노 앞에 두려움을 느꼈으나 오히려 이제야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황제가 평민의 지위를 끌어올린 것은 당시 필요에 의한 것이지 결코 평민들 스스로가 획득한 것이 아니잖아요! 언제든 황제의 필요에 따라 평민의 지위는 다시 곤두박질칠지도 모르죠. 지금도 전시 임금 동결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은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않으면 언제든 이렇게 불행해질 수 있는 거라고요!”

물러서지 않는 클라크의 논쟁적 태도는 루산과 그 일행을 당황시켰다. 그들이 알고 있던, 순종적이고 성실한 소년 집사가 아니었다.

루산은 클라크와 사안별로 토론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 백성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선거로 통치자를 뽑는 세상 말이냐?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될까?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투표로 결정된다고? 현명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인기를 끌기 위한 광대, 남을 모함하는 협잡꾼만 날뛰게 되겠지.”

“그걸 방지하기 위해 권력 기관이 서로 견제하고······.”

“그만.”

루산의 짧은 한마디에 클라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클라크뿐 아니라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몸을 움츠릴 정도로 위압감이 엄청났다.

“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다. 내가 바라고 네가 동의한 삶을 충실히 살아 준다면 말이야. 그런데 그 민주 헌법 운동인지 뭔지를 하면서 내가 기대하는 집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루산은 단순히 집안 살림이나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변경 소년을 대학까지 보내려 한 것이 아니었다.

바쁜 자신을 대신해 막대한 재산을 관리하고, 수많은 사업들을 파악하며, 전쟁이나 원정 사냥으로 장시간 부재중일 때 노바로부터 오는 중요한 연락을 받아 판단하고 처리하는 일까지 맡기려 했던 것이다.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사기를 당해 가문이 폭삭 망한 터라 사람을 믿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가족보다 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산은 이 기대와 믿음을 저버린 클라크에게 크게 실망했다.

집사가 아닌 다른 직업, 역사학이 아닌 다른 전공이 좋아졌다고 말하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클라크가 택한 길이라는 것은 모호하고 막연할 뿐 아니라 그동안 자신과 쌓아온 관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위태롭게 만드는 배신행위였다.

“너와의 고용 관계를 끝내겠다. 이제 내 집사가 아니니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하고 살아.”

루산의 통보에 클라크는 충격을 받고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루산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잘하면 충분히 이해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루산은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다 입을 떡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바이크와 시에나를 발견하고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부터 일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다친 몸 상태를 묻는 것이었다.

“네? 네, 그럼요.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하하!”

바이크가 과장되게 웃으며 붕대를 감은 자신의 머리통을 툭툭 쳤다.

그때마다 피가 찍찍 배어 나왔지만, 루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쿵!

문이 닫히자마자 바덴이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클라크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집사님이 다쳐서 화가 나서 저러시는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나 클라크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클라크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작게 말했다.

“다쳐서 화가 나신 건 아니지.”

“그럼 뭣 때문인데?”

시에나가 묻자 클라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기대에 어긋나서지. 내 아버지도 그랬거든. 내가 노바에 있는 기사 아카데미를 죄다 떨어지고 나서 술 먹고 사고 치고 다니니까 집을 나가라고 하더라고.”

“야! 그거랑 이거랑 같아?”

“뭐, 똑같지는 않지만 결국 비슷한 거야.”

“아휴~ 말을 말자.”

“대장님도 충격을 받은 거야. 자식이 이럴 줄은 몰랐던 아버지처럼. 화를 삭이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거지.”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시에나는 멍하니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클라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브레이브 랜드와 필센 소년 캠프 간의 경쟁전은 총 세 종목으로 치러졌다.

레오파드 트레이너가 완전히 보급되지 않았을 때에는 훨씬 종목이 많았지만, 적어도 노바에 이 훈련용 멕 나이트가 모두 보급된 뒤에는 경쟁전 종목도 이것을 타고 싸우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집단 장애물 달리기, 회전, 깃발 쟁탈전. 이 세 가지야.”

“대장님, 개인전은 없어요?”

“없어.”

시에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고의 기사, 최고의 파일럿이 되는 것은 멕 나이트 파일럿과 이를 지망하는 모든 소년들의 꿈이다.

그런데 개인전이 없다니!

“필센 소년 캠프는 평민들 중에서 특히 자질이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 가르치는 곳이야. 필센 제국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셈이어서 재능만 놓고 보면 브레이브 랜드보다 뛰어난 아이들이 많아. 하지만, 브레이브 랜드의 귀족 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검을 수련해 왔기 때문에 일대일 대결에서는 수련 기간이 짧은 평민 소년들보다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브레이브 랜드에 유리한 종목을 뺐다는 거네요?”

시에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브레이브 랜드의 교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 짐작일 뿐이야. 그리고 실제 전쟁에서도 개인의 능력보다 집단 전투력이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고.”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뛰어난 영웅 한 명을 보유한 군대보다 조직력이 뛰어난 군대가 승리하게 된다.

이반 황제의 개혁 이후 평민 출신 파일럿들이 필센 제국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제는 필센 제국군의 전력이 떨어졌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군대는 세상의 변화와 발맞추어 꾸준히 변하고 있었고, 브레이브 랜드와 필센 소년단 간의 경쟁전은 그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쪽에 유리한 종목을 빼 버렸다고 탓하는 건 의미가 없어. 승리하여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거야.”

비단 브레이브 랜드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변화된 환경에 항의해 봐야 무의미한 일. 귀족도, 사업도, 우리의 인생도, 승리하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다.

루산의 말에 시에나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클라크는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애들 이기게 만들면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응.”

세 사람은 바덴이 보내 준 자동차를 타고 보름스 장원 북쪽에 있는 브레이브 랜드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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