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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15화 (215/450)

215. 대비는 해도 먼저 칠 수는 없다

215. 대비는 해도 먼저 칠 수는 없다

바덴은 루산을 구석으로 끌고 가 상무대신에게 들은 이야기와 클라크를 찾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산이 잠시 침묵하다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요?”

“네?”

루산의 반응에 놀란 바덴이 눈을 껌벅이며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날 듣지 않았나요? 고용 계약은 끝났습니다. 내게 어쩌라는 거죠?”

바덴은 루산의 말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다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뭐가 너무하다는 겁니까?”

루산도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화난 바덴만큼은 아니었다.

“당연히 걱정부터 해야죠! 기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도 걱정하는 게 사람인데 하물며 8년 이상 같은 집에서 산 사람이, 그것도 노바에 온 지 1년도 되지 않은 소년이 집을 나가고 위험에 처했다는데 그게 할 말인가요!”

바덴은 폭풍처럼 쉬지 않고 몰아쳤다.

“그날은 화가 나서 그랬나 보다 이해하고 넘어가더라도 이건 아니죠! 8년 간 맺은 인연이 단 몇 분으로 끝이 나나요? 정말 너무하세요! 인간이 정교한 언어를 교육받는 이유는 문제를 대화로 풀어보라는 뜻이 아니겠어요? 어린애예요? 기사님을 만난 이후로 가장 실망스럽고 화가 나네요!”

바덴은 분을 삭이지 못해 루산을 매섭게 쏘아보며 씩씩거렸다.

루산도 바덴을 노려보았으나 이내 눈길을 거두었다.

바덴의 책망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어른스럽지 못했다.

8구역을 떠난 뒤 그동안 노바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충분히 대화를 나눈다고 설득하거나 설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이해해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마음속에 치미는 분노를 터뜨렸다.

8년 세월이 무색하게.

루산은 감정의 관성을 이기지 못해 표정과 말투를 단번에 바꾸지는 못했지만,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자신의 성숙하지 못한 말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스텐커 씨를 찾아가 보세요.”

“네?”

바덴이 얼른 이해하지 못하자 루산은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당신과 함께 간다 해서 클라크를 찾을 수 있겠어요? 사람 찾는 일은 스텐커 씨가 전문이니 가서 사정을 말하고 찾아 달라고 하세요. 경찰 쪽과도 연락이 닿을 테니 혹시나 클라크가 경찰에 잡히더라도 빨리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

바덴은 스텐커를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타박하며 탄성을 토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겠어요. 그래야 서로 엇갈리지 않을 테니까. 스텐커 씨에게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자금을 모두 투입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클라크 소식을 파악하자마자 내게 연락하세요.”

“그럴게요, 기사님.”

바덴이 급한 마음에 서둘러 차를 향해 달려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다시 일어나 고개를 돌려 루산에게 소리쳤다.

“나는 괜찮아요!”

그러고는 다시 달려 차에 타고 떠났다.

루산은 폭풍이 지나간 것 마냥 정신이 없었다.

‘클라크, 대체 어디로 간 거냐?’

여전히 클라크에게 화가 났지만, 루산의 마음에 분노보다 걱정이 더 크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대장님, 무슨 일이에요?”

시에나가 멀어지는 바덴의 자동차를 바라보며 루산에게 다가와 물었다.

“클라크가 집에 안 들어왔대.”

“네?”

“경찰이 불순 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인다고 한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니에요?”

바이크가 호들갑을 떨었다.

“찾겠지.”

“누가요?”

“전문가가.”

“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 일을 한다.”

“···네.”

루산은 복잡한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서둘러 레오파드 트레이너에 올라 전술 훈련을 시작했다.

- 내가 에이스 역할을 맡는다. 전열, 방패벽 세우고 후열, 돌격 준비! 하인즈, 잘 보도록!

- 네, 알겠습니다!

레오파드 트레이너는 원래 모든 모델별로 - 스피드, 파워, 라이트닝 각각 -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가프 마법 연구소가 워낙 바빠 스피드만 우선적으로 생산해 공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레이브 랜드나 필센 소년 캠프 모두 레오파드 스피드와 외형이 똑같은 레오파드 트레이너로 훈련하는 중이었다.

외형은 똑같으나 민간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전투용인 멕 나이트가 아니라 산업용 멕 워커로 등록하기 위해 무게도 훨씬 가볍고 엔진 출력도 크게 떨어졌다.

대검에 마나 진동 기능도 없었다.

그럼에도 루산이 탑승한 레오파드 트레이너는 수련생들이 타고 있는 기체들 사이로 파고들어 순식간에 진형을 헤집어 놓고 반대쪽으로 빠져 나왔다.

“분명 동일한 기체인데······!”

지켜보던 늙은 교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당하는 수련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루산은 수비 측 진형을 바꾸어 가면서 때로는 정면에서, 때로는 측면으로, 때로는 끌어들이다 되치는 방식으로 홀로 수련생들의 진형을 붕괴시켰다.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타고 똑같은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어깨로 들이받고, 방패로 막아 흘려 넘어뜨리고, 마나 진동 기능이 없는 대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넣어 등에 대고 팔을 꺾고,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번쩍 들어 메쳤다.

수련생들은 시에나를 상대할 때 완벽한 실력 차이를 느끼면서도 동경하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다른 차원의 존재를 만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켜보던 바이크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오늘 대장님 심기가 영 안 좋으신가 봐.”

“그럴 수밖에······.”

시에나는 클라크에게 별일이 없기를 바라라며 바이크의 말을 받았다.

***

스텐커의 삶은 루산을 만난 뒤로 크게 달라져 있었다.

루산은 보름스 가문의 재산을 되찾으면 5만 골드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5만 골드.

경찰로 평생을 일해도 반의반, 그 반의반도 모을 수 없는 거금이었다.

5만 골드만 받은 것이 아니다.

그동안 조사를 위해 매달 받은 보수와 활동비가 있었다.

조사를 도운 조력자들과 나중에 합류한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에게 생계비와 활동비로 지급하는 자금의 집행도 그가 했다.

생활비로 따로 들어가는 돈이 없을 정도였다.

조사를 위해 마차 대신 자동차도 굴리게 되었다.

그는 루산에게 명시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준 그를 평생 섬기기로 이미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상대가 워낙 거물이라 이 조사를 시작한 이후 삶의 모든 면에서 극도로 조심해 왔다.

5만 골드에서 자식들의 결혼 자금으로 빼둔 일부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로 노바 곳곳에 집을 여러 채 구입했고,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는 미행은 없는지 확인하면서 여러 곳을 경유했다.

이쪽이 저쪽을 감시한다면 저쪽도 언제든 이쪽을 감시할 수 있다.

이쪽이 저쪽 자식을 잡아 가두었다면 저쪽도 언제든 이쪽 자식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아내를 안타깝게 보낸 뒤 혼자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들을 잃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경찰 출신으로 오랫동안 탐정 일을 해 오며 생긴 조심성과 철저함은 오베론 공작 가문을 조사하면서 완전히 몸에 배어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늘 경계와 의심이 발동되었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그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들어왔다.

“저 차 좀 봐. 저기도 있네. 저쪽 모퉁이에도 있고.”

사무실이 있는 거리에 낯선 자동차가 무려 세 대나 길가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네요.”

운전하던 조수가 스텐커가 가리킨 방향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어제까지 없었잖아.”

“네.”

“음······.”

스텐커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사무실 앞에서 멈추지 말고 이대로 죽 가. 따라오는지 보게.”

“네.”

조수 역시 스텐커와 오랫동안 이 일을 함께해 왔기 때문에 스텐커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는 올 때와 같은 속도로 사무실 앞을 통과해 계속 달렸다.

“안 따라오는데요?”

“난 저기서 기다릴 테니까 넌 사람들 데려와.”

“누구요?”

“전직 칼잡이들.”

부상을 입어 변경 8구역으로 가지 않고 노바에 남아 스텐커를 돕고 있는 남방군 출신 반역 기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아! 네!”

스텐커는 차에서 내려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고 아침부터 간단한 식사를 파는 카페로 들어가 빵과 차를 시키고 신문을 읽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자동차 두 대와 마차 한 대가 카페 앞에 멈추었다.

조수가 카페로 들어왔다.

“열한 명 데려왔고, 감시 철저히 하라고 당부하고 왔습니다.”

루트 오베론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걸어서 사무실로 갈 거야. 만약 저들이 나나 사무실을 덮치려고 몰려오면 뒤를 덮치고, 계속 감시만 하고 있으면 멀찍이서 들키지 않게 저들을 감시하라고 해. 아마도 내 뒤를 밟아 둘째가 있는 곳을 알아내려는 것일 테니까.”

“네.”

“그리고 넌 그리마를 찾아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해 봐. 조심스럽게! 알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요새 시내에 경찰이 좍 깔렸잖아요. 바빠서 자리에 없을 수도 있고, 또 사실 별일 아닌 걸 수도 있잖아요?”

스텐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일 아니면 좋은 거지, 뭐.”

“네, 알겠습니다.”

조수가 나가자 스텐커는 신문을 겨드랑이에 끼고 지팡이를 짚으며 카페를 나가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날씨가 무척 쌀쌀했다.

스텐커는 세워져 있는 낯선 자동차를 지나며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몸이 아파서 출근이 늦어진 것처럼 보이기를 바라면서.

사무실은 이미 다른 조수가 문을 열어 놓았고, 그가 도착한 뒤에도 낯선 자들이 습격해 오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텐커는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잘 알잖아, 미행과 감시는 인내심 싸움이라는 걸.”

“네.”

사무실로 출근한 조수와 그동안 조사를 도와 온 사기 피해 가문 출신 청년들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뒤 다른 조수가 돌아왔다.

“그리마 씨를 찾아가 만나고 왔습니다.”

“뭐래?”

“미안하다고······.”

“흐으음!”

스텐커가 콧숨을 길게 내뿜었다.

“오베론 공작 가문의 울름 남작이 찾아와 자식들 목숨을 거론하며 위협해서 어쩔 수 없었답니다. 집과 가족들이 지금도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스텐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리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항구를 떠난 배를 추격해 해상에서 체포한 사람이 오베론 공작의 둘째 아들이라는 것 역시 당연히 몰랐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전부였다.

알았다면 아무리 예전에 목숨을 구해주었다 해도 절대 부탁들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스텐커는 이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할 상황이었지만, 결코 그리마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어쨌든 울름 남작의 감시망이 우리에게 뻗쳐 왔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했지만, 해결 방법이 얼른 떠오르지는 않았다.

“둘째 아들의 행방을 확인할 때까지는 인내심을 발휘할 겁니다. 무사히 살아 있는 아들을 찾고 싶을 테니까요. 우리의 배후도 궁금할 테고 말이에요.”

“그렇겠지.”

“그런데 그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르겠네요. 우리가 계속해서 그들을 둘째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를 잡아 고문하려 하겠죠.”

“그렇지.”

“칼잡이들을 동원해 밖에 있는 사람들을 해치우는 건······?”

“그런다고 해결되나?”

“그렇겠죠?”

“대비는 해야겠지만, 먼저 칠 수는 없어.”

“알겠습니다.”

“며칠 지켜보면서 방법을 찾아보자. 우리는 전과 똑같이 지내는 거야.”

“네!”

스텐커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려 노력했다.

의뢰인이 찾아오면 상담하고 의뢰를 수행하러 외출했다가 돌아와 사무실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복수의 칼을 가는 남방군 출신 칼잡이들이 멀찍이서 보호하는 가운데 울름 남작 수하들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는 것은 두렵고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자동차 한 대가 그의 사무실 앞에 멈춰 섰다.

사무실 사람들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 유리창 블라인드 사이로 그 차를 지켜보았다.

감시자들 또한 자동차 안에서 스텐커의 사무실 앞에 세운 차를 날카롭게 주시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다.

바덴이 클라크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다급히 달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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