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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18화 (218/450)

218. 한마음 한뜻으로 변하는 세상은 없다

218. 한마음 한뜻으로 변하는 세상은 없다

스텐커는 동부 공업 지구 쪽에 아는 경찰이 많았다.

비록 경찰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떠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줄곧 근무해 왔고 동료를 위해 몸을 던져 큰 부상을 입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경찰을 그만두게 된 그의 사정을 당시 모든 동료 경찰들이 안타까워했었다.

그래서 스텐커가 탐정이 된 뒤에도 무리가 아니면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었다.

동부 공업 지구 남쪽에 인접한 보룬 지구대의 대장 페터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아이고,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밤중에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 지나가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들렀지.”

“말도 마십시오. 난리도 아닙니다.”

“나도 들었네. 며칠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겠구먼.”

“집에 못 들어가는 거야 잔소리 안 들으니까 오히려 휴가 온 셈이라 쳐도, 상황이 영 심상치가 않아서요. 경찰 기동 타격대가 멕 나이트를 죄다 끌고 왔어요.”

보룬 지구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꺼냈다.

그만큼 스텐커를 편하게, 가깝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텐커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동자들도 장난이 아니에요. 공업 지구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에 건축 자재, 강판, 광석 같은 걸 산처럼 쌓아 놓고 멕 워커들이 죽 늘어서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어요. 이거 전쟁이 나게 생겼다니까요. 대체 위에서는 왜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지 원······. 살살 달래가면서 일을 진행해야지 항복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어쩌라는 건지. 하!”

페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동부 공업 지구의 경찰들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오랫동안 노동조합 운동을 억누르고 관련 노동자들을 체포해 왔다.

그러나 그만큼 그들은 노동자들의 사정을 잘 알았다.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이, 미움과 증오만큼 생겼던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무슨 일이세요?”

“사실 의뢰를 하나 받았는데, 바움 대학 학생 하나가 노동조합과 연대 투쟁인지 뭔지를 한다고 집에 안 들어온다나 봐. 찾아달라고 사정을 하지 뭔가.”

“어휴, 선배도 고생이 많습니다.”

“허허, 이게 내 일이니까 어쩌겠어.”

“이름이 뭐죠? 알아볼 수 있으면 알아봐 드릴게요.”

“아직 경찰 명단에는 없을 거야. 뛰어든 지 얼마 안 돼서. 다만 어울리는 아이들이 행동하는 청년 그룹이라고 하더군.”

“행동하는 청년 그룹? 아이 참, 하필 골칫덩어리들이랑 엮였네.”

“그래?”

“네. 제일 과격한 놈들이라 경찰도 고개를 절레절레 하거든요. 포위되기 전에 들어왔다면 하역 노조 쪽에 있을 것 같은데?”

페터는 동부 공업 지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덕에 노동조합 투쟁과 관련된 일들을 좍 꿰고 있었다.

“하역 노조?”

“네. 요새 걔들이 제일 거칠어요. 무섭죠.”

스텐커가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게 도와줄 수 있을까?”

페터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건 지구대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노바 경찰청에서 직접 통제하는 거라······. 그리고 도와드릴 수 있다 해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너무 위험해요. 지금 분위기로 보면 그냥 밀어버릴 것 같다니까요.”

“위험해도 내 일이 이거니 어쩌겠어? 부탁할게.”

“하아!”

페터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알아보기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장담은 못 해요.”

“당연하지. 고마워.”

스텐커는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페터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는 차를 타고 동부 공업 지구 외곽을 천천히 돌며 경찰 포위 상황을 살폈다.

“뒤에 미행 차량이 계속 따라붙고 있습니다.”

“내버려 둬.”

그들의 의도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습격당할 걱정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쪽은 경찰이 좍 깔려 있었다.

섣불리 공격해 올 리가 없었다.

“네.”

스텐커는 동부 공업 지구를 빙 돌아본 뒤 루산이 올 것에 대비하여 잡아 놓은 여관으로 갔다.

마침 루산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

“···그래서 당장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스텐커의 보고를 듣고 루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뿐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았다.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잠시 후 루산이 물었다.

“진입해서 소탕하는 작전은 언제쯤 시작할까요?”

“그것도 들은 바가 없다고 합니다. 노바 경찰청에서 직접 지휘하기 때문에 이 지역 경찰들은 작전과 관련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답니다. 그래도 오늘내일 개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으음······.”

루산도 경찰이 동부 공업 지구에 곧바로 진입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바덴이 들려준 상무대신의 말을 추측해 보면, 이번 작전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과 공화주의, 민주주의 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해 아우로라 연합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차 정부가 하는 일에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아우로라 연합의 사주를 받은 불온 세력이 필센 제국의 심장이라는 동부 공업 지구를 장악하여 전쟁 수행을 방해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연일 신문 기사에 이 사실을 실어야 하고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이 이야기를 나누고 지탄해야 한다.

군사적으로도 포위한 뒤 곧바로 들이치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 포위하는 측의 피해를 줄이고 상대측의 분열과 항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동부 공업 지구는 필센 제국의 심장. 가동을 멈추는 만큼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필센 제국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어느 정도의 기간이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율리안 님이 노바에 계시면 좀 더 수월하게 알아볼 수 있을 텐데······.’

노바 경찰청장은 율리안의 외숙인 밤베르크 백작의 사람이라 스텐커가 파악한 것보다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열차로 사흘 걸리는 곳에 있는 율리안을 당장 데려올 수도 없는 일, 루산은 그 생각을 떨어 버렸다.

그때 루산의 머리에 다른 생각이 스쳤다.

“동부 공업 지구는 엘버 강과 붙어 있지 않습니까?”

노바를 가로지르는 엘버 강을 통해 동부 공업 지구에서 생산된 물건이 브레머 항으로 이동해 수출되고, 브레머 항으로 들어온 원자재가 엘버 강을 거슬러 올라 동부 공업 지구에 공급된다.

“배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 부분도 생각해 봤는데, 강에도 경찰 순시선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서 곤란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루산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조금의 가능성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안으로 진입한다 해도 퇴로를 염두에 두어야겠죠. 강을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배를 준비하고 통행 허가를 받는 부분은 미스 고슬라와 상의를 할 테니 스텐커 씨는 어느 지점에 배를 대는 게 좋을지 알아봐 주세요. 모든 방안을 고려해 보자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기사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루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기 전에 스텐커에게 물었다.

“감시하는 놈들은 어떻습니까? 괜찮겠어요?”

“대상을 확보할 때까지는 감시만 할 것 같습니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남방군 출신 기사들을 근처에 대기시켜 놓고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내일 저녁에 다시 오죠. 일이 있으면 그 전에라도 사람을 보내세요.”

“네, 기사님!”

루산은 여관 뒷문으로 나가 스텐커의 조수가 모는 차를 타고 돌아갔다.

동부 공업 지구 외곽 도로는 가로등이 환히 켜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물론 오가는 마차나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필센 제국의 심장이 멈춰 있는 것이다.

필센 제국이 사망하기 전에 정부는 불온 세력을 쓸어버리고 동부 공업 지구를 재가동시키려 할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루산은 알 수 없었다.

매일 오가며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루산은 바덴에게 자동차를 몇 대 더 준비시켜 스텐커에게 보내고 자신이 이용할 것도 한 대 보내라고 지시했다.

강을 통해 동부 공업 지구로 들어가거나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알아보라고 했다.

그는 매일 브레이브 랜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날이 저물면 차를 타고 바이크, 시에나와 함께 동부 공업 지구로 가서 대기했다.

그러는 동안 경찰은 불온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노바 시내에 있는 대학을 차례로 훑어 나갔고, 야학과 독서회, 노동조합을 완전히 쓸어버렸다.

그러고는 일부 경찰을 대학에 남겨 두고 나머지 병력을 모두 동부 공업 지구로 보냈다.

신문들이 연일 아우로라 연합의 사주를 받은 반란 세력이 노동조합과 대학생들을 포섭해 제국의 산업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는 기사를 무비판적으로 내보내는 가운데 동부 공업 지구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바 남부에 있는 보름스 장원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동부 공업 지구는 전운이 감돌고 경찰이나 노동자들이나 등골이 서늘한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면 보름스 장원 사람들은 눈을 치우고 우유를 실어 나르고 봄 농사 준비를 했다.

보름스 장원 북쪽에 있는 브레이브 랜드는 더했다.

수련생들은 눈 쌓인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인 채 연병장을 진창으로 만들며 오로지 경쟁전 훈련에 구슬땀을 흘렸다.

매일 브레이브 랜드와 동부 공업 지구를 오가는 루산은 같은 노바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풍경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누군가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지만, 누군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마음 한뜻으로 변하는 세상이란 없으며 변화는 누군가의 극단적인 선택과 다른 누군가의 일상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배편을 알아보던 도중 보고하러 온 바덴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정부가 동부 공업 지구 이전 계획을 확정했답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요?”

“갑자기는 아니고 늘 수면 아래에 맴돌고 있던 사안이었는데, 이참에 논의가 급물살을 타서 확정됐다고 해요.”

동부 공업 지구는 이반 황제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옛날에 제국 경제의 부흥을 위해 조성되었다.

그런데 경제 발전으로 공장이 속속 들어서고 노바의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택지 조성 문제, 공업 지구 확장 문제가 충돌한 것이다.

그래서 동부 공업 지구를 이전하자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나왔으나 노바를 떠나고 싶지 않은 사업주들과 노동자들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노동조합 운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각종 시위와 집회가 빈번해지다 대규모 충돌 사태가 일어나자 공업 지구를 노바 밖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쾌적한 주거 단지와 문화 지구를 건설함으로써 제국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고 노바 시민의 쾌적한 삶을 보장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루산도 이해했다.

“동부 공업 지구 이전 대상지는 노바 동쪽에 인접한 보헨 지역이에요. 지금과 마찬가지로 엘버 강 수운을 이용할 수 있고, 노바와도 가깝죠. 농촌이라 인구도 얼마 없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루산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이미 이 지역의 땅 20퍼센트를 오베론 공작 가문이 보유하고 있다는 거예요. 다른 귀족들이나 고관들이 보유한 토지도 합쳐서 20퍼센트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

“이번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구입한 건 아니고 예전에 동부 공업 지구 이전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계속해서 사들였답니다.”

루산은 그 온순한 클라크가 왜 돌을 던졌는지 알 것만 같았다.

노동자들은 전시 임금 동결법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고관, 귀족들은 오래전에 획득한 정보로 미래의 풍요를 약속받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아렸다.

그때 바덴이 말했다.

“기사님, 마침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에는 유능한 부동산 팀이 있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장원 별장 부지를 물색하고, 작은 농지를 여러 개 구입해 합치고,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의 부동산을 처리하고, 브레이브 랜드 부지를 구입하고, 반달 식품에 안정적으로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북부 전선 패배 소식으로 피란민이 대거 빠져나간 제국 북부의 농지를 구입하는 등 거래 경험이 많고 조직 규모도 상당했다.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기 전에 우리도 보헨 지역의 땅을 최대한 많이 사들여야겠어요. 사업 규모가 역대 필센 제국 단일 사업 중에 가장 클 거예요.”

“······.”

루산은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바덴이 클라크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았다.

클라크를 걱정하면서도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업가로서의 일상을.

자신도 스텐커에게 클라크 찾는 일을 맡기고 브레이브 랜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 순간적으로 바덴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이렇게나 크다면 과연 클라크가, 학생들이, 노동자들이 던진 돌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경찰에 포위된 노동자들은, 학생들은, 클라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참 후 루산이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기사님.”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스텐커의 조수가 자동차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왔다.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가죠!”

루산은 바이크, 시에나와 함께 동부 공업 지구로 달렸다.

일상의 영역에서 변화의 영역으로.

그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루산은 알 수 없었다.

굳이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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