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내가 승리로 이끌 테니 버티기만 해
220. 내가 승리로 이끌 테니 버티기만 해
- 준비!
수도 군단 4전단 멕 나이트 한 대가 외부 확성기로 구령을 외치자 출발선에 선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이 달릴 자세를 취했다.
브레이브 랜드와 필센 소년 캠프의 레오파드 트레이너는 각각 15대.
- 뿌움!
멕 나이트가 소음 발생기를 짧게 작동하여 낸 소리를 신호로 총 30대의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이 일제히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츠쿵츠쿵츠쿵츠쿵-
츠쿵츠쿵츠쿵츠쿵-
평지 구간을 달릴 때부터 우열이 가려지기 시작했으나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흙탕물 웅덩이 - 멕 나이트를 타고 하천과 늪지대를 건널 때를 상정한 구간 - 를 만나면서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푸학!
무거운 기체의 발이 눈에 보이지 않는 웅덩이 바닥에 푹 빠지고, 바위에 걸리고, 하체가 물의 저항을 만나 속도가 현격히 느려지면서 관성을 이기지 못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는 기체들이 속출했다.
파일럿의 조종 실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구간인 것이다.
선두 기체는 재빠르게 웅덩이 밖으로 나온 반면 뒤쪽 기체들은 앞서간 기체들이 밟아 뭉개진 웅덩이 기슭에서 여러 기체가 뒤엉키며 미끄러져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한 대씩 웅덩이에서 벗어났다.
기체들 간의 격차가 확 벌어졌다.
세 번째 코스는 다시 평지 구간.
파일럿 소년들은 이를 악물고 달렸지만, 30대의 레오파드 트레이너는 웅덩이 구간에서 벌어진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네 번째 코스는 평지 함정 구간.
1미터에서 2미터 깊이의 구덩이를 곳곳에 파고 그 위에 널빤지를 덮은 뒤 짚과 덤불을 깔아 육안으로 함정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두가 유리하지 않았다.
선두 기체가 함정에 빠져 넘어질 때 뒤따르던 기체들은 그것을 피해 갈 수 있어서 격차가 줄어들 수 있는 구간인 것이다.
와작!
필센 소년 캠프의 선두권 기체들이 널빤지를 부수고 함정에 빠져 넘어졌다.
뒤에서 달려오는 기체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아졌다.
그런데 그렇게 앞뒤에 달리는 기체들 간의 간격이 점점 줄어들자 모든 기체들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동료의 팔짱을 끼고 달리는 것이 아닌가!
“호오! 이번에도 보여 주려나?”
참관인으로 초대된 장군들이 망원경으로 필센 소년 캠프의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한 기체가 함정에 발이 빠져 넘어지려는 것을 동료 기체들이 붙잡아 버티는 원리였다.
잘못될 경우 함께 쓰러질 수도 있지만, 이미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잔뜩 긴장하며 달리고 있었기에 어느 기체도 넘어지지 않았다.
필센 소년 캠프 측의 모든 파일럿들이 비슷한 수준으로 뛰어났고, 많은 훈련으로 팀워크가 매우 좋았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비록 평지를 전속력으로 달릴 때만큼의 속도는 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15대의 레오파드 트레이너가 모두 들어온 쪽이 승리하는 시합이기에 한두 기체가 속도를 높인다고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오! 저길 봐!”
“이야!”
관람객들이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브레이브 랜드 측의 선두 기체들도 속속 함정에 빠져 넘어졌다.
그런데 이에 대비한 작전이 이미 마련돼 있었다.
브레이브 랜드의 레오파드 트레이너 15대는 철저히 선두의 뒤를 따라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뒤따르던 기체들이 쓰러진 선두 기체 옆을 스치며 지나가고, 맨 앞에서 쓰러진 기체는 몸을 일으키더니 맨 뒤에 따라붙어 달렸다.
그러다 다시 선두 기체가 쓰러지면 뒤따르던 기체들이 쓰러진 기체 옆으로 바짝 붙어 새로운 선두 기체 뒤를 따라 달렸다.
여러 기체가 동시다발적으로 함정에 빠지는 사태를 피함으로써 에너지 낭비를 줄이면서도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15대의 기체가 앞 기체의 등만 보고 그야말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 작전의 가장 어려운 점은 다름 아닌 두려움!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몸이 거부하지.”
동부 공업 지구로 떠나기 전, 루산이 말했다.
“그런데 너희가 우리에게 멕 나이트 조종법과 필승 작전을 배웠더라도 이것들이 몸과 머리에 완전히 새겨지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요 며칠 만에 필센 소년 캠프의 훈련량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대로는 패배한다. 패배해도 괜찮은가? 이제 패배가 익숙한가?”
소년들은 눈에 불을 켜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승리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넘어지는 충격 정도는 견뎌라! 충격 완충 장치 덕에 죽는 일은 없을 테니까.”
15대의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이 전속력으로 달렸다.
선두 기체가 함정에 발이 빠져 넘어지며 지면과 거칠게 충돌했다.
쿠웅!
무시무시한 굉음이 관람석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뒤따르던 기체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넘어진 기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넘어진 기체는 몸을 일으켜 맨 뒤에서 다시 전속력으로 따라붙었다.
이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브레이브 랜드의 소년 파일럿들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충격 완충 장치가 있다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다 넘어질 때는 엄청난 충격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년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더는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저쪽이다!”
“잡아!”
“거기 서지 못해!”
공장 지대로 진입한 무장 경찰들이 달아나는 노동자와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쫓아왔다.
“헉헉!”
바움 대학 학생들은 노동자들과 섞여 미친 듯이 달렸다.
그들 사이에 좀 더 어려 보이는 소년 하나가 섞여 있었다.
바로 클라크였다.
클라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시위에 나설 때, 처음으로 시위대 선두에서 돌을 던질 때에도 두려웠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높이 세운 방어벽에 불이 붙고, 경찰 멕 나이트가 방어벽을 마나 진동 대검으로 자르고 몸으로 밀고 들어오고, 불붙은 인화 물질 통에 맞아 멕 나이트가 화염에 휩싸이고, 멕 워커가 경찰 멕 나이트에 맞서다 짓밟히고, 온통 불바다가 된 도로를 뚫고 들어온 멕 나이트들이 공장 지붕에서 투석기를 발사하는 노동자들을 떨어뜨리는 장면들은 지옥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었다.
클라크는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뭐 해, 클라크! 달아나!”
어깨를 잡고 끄는 사라의 고함에 저도 모르게 함께 뛰고 있었던 것이다.
“이쪽이야!”
노동자 한 사람이 골목으로 들어가 좁은 샛길로 빠져 작은 공장으로 들어가는 개구멍을 열었다.
노동자와 학생들은 살기 위해 정말 개처럼 기어 그 구멍으로 들어가 작은 공장 창고 구석에 숨었다.
“헉! 헉! 헉!”
거친 숨소리, 공포에 젖은 눈빛들··· 사람들은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목을 뛰어다니는 무장 경찰들의 발소리와 지휘관의 호통 소리에 마음을 졸이고 쿵쿵 울리는 경찰 멕 나이트 행진 소리에 몸을 떨었다.
주위의 소란이 잠잠해지자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어쩌지?”
“아인스 제철소로 가야 해!”
“아인스 제철소?”
“응. 공업 지구 입구에 쌓아 놓은 방어벽이 뚫리면 거기서 농성하기로 했거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노동조합 관계자가 있으면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갈 수 있겠어요? 경찰에 의해 차단되었을 텐데?”
“샛길도 있고 하수구도 있어. 여기가 얼마나 넓고 복잡한데 다 차단하겠어?”
“그럼 다행이지만······.”
“쉬었으면 가지.”
“···네.”
학생들이 노동자들을 따라 움직였다.
클라크도 일어났다.
그들은 작은 공장 창고를 나가 다시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 먼발치에서 경찰이 대로를 막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하구수로 들어갔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더러운 물이 발과 온몸을 적셨지만,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
모든 기체들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동료의 팔짱을 끼고 일사불란하게 달리는 필센 소년 캠프!
모든 기체가 일렬종대로 전속력으로 달리다 선두가 넘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다음 기체가 새로운 선두가 되어 달리는 브레이브 랜드!
“군사적으로는 필센 소년 캠프 쪽이 훨씬 유용한 작전 아닙니까?”
“그렇지요. 저렇게 단합하여 움직이면 기습 공격에 당할 염려도 없고 기체 상태도 망가지지 않을 테니까요. 브레이브 랜드 쪽 기체를 보세요. 저렇게 세게 넘어지면 기체에 무리가 가지 않겠습니까?”
참관하던 장군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 한 장군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 종목은 기체를 고장 내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기체가 결승선을 빨리 통과해야 이기는 것 아닙니까? 결국 브레이브 랜드가 이기겠는데요?”
“흐음!”
“저렇게 세게 넘어지면 베테랑 파일럿들도 충격이 상당할 텐데, 보십시오. 넘어져도 벌떡벌떡 일어나 다시 죽어라 달리지 않습니까? 승리를 향한 소년들의 열망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군요.”
근위대 쪽 장군과 훈련을 담당한 수도 군단 4전단 파일럿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브레이브 랜드 소년들의 투지는 잃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함정에 빠지는 빈도도 전체적으로 보면 브레이브 랜드 쪽이 훨씬 적어요. 옆으로 넓게 벌려 달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뛰기 때문이죠.”
결국 브레이브 랜드 쪽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이 필센 소년 캠프 쪽 기체들과 현격한 차이를 벌리며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 승리는 브레이브 랜드!
심판을 보던 4전단 멕 나이트 파일럿의 목소리가 외부 확성기에 의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거 이번에는 브레이브 랜드가 사고를 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크흠! 운이 좋았겠지요.”
근위대와 4전단 쪽 장군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필센 소년 캠프의 책임자인 슐라우 남작의 얼굴은 아예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바덴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 와! 이겼다!
- 야아아아!
기뻐하는 브레이브 랜드 소년들의 환호 소리에 가슴이 뭉클하고 콧날이 시큰해진 바덴은 남은 경기도 모두 이기기를 기원하며 브레이브 랜드 소년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한편 패배한 필센 소년 캠프 소년들은 잔뜩 풀이 죽었다.
- 황제 폐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패배하다니, 참을 수가 없어! 남은 두 종목을 모두 이겨야 해!
- 맞아! 다들 힘을 내! 저 자식들, 운 좋게 이겨서 희희낙락하고 있을 텐데, 회전에서 완전히 밟아 주자고!
필센 소년 캠프에 선발된 평민 소년들은 이를 악물고 설욕을 다짐했다.
잠깐의 휴식 시간 이후 두 번째 종목이 시작됐다.
두 번째 종목은 회전(會戰).
이름처럼 대규모 병력이 맞붙어 싸우는 전투가 아니라 크지 않은 정사각형 구획 안에서 상대방 기체를 구획 밖으로 밀어내거나 넘어뜨려 더 많은 기체가 서 있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의 경기였다.
- 양측 정렬하라!
4전단 멕 나이트의 구령에 따라 필센 소년 캠프의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은 날카로운 꼭짓점이 브레이브 랜드 쪽을 향하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정렬했다.
상대 진형을 돌파하여 적을 좌우로 찢어 놓겠다는 의도가 확실했다.
선두 꼭짓점에 선 기체의 돌파력은 뒤에 선 기체 14대가 앞에 선 동료를 얼마나 잘 받치며 밀어붙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필센 소년 캠프는 그동안 이 진형을 사용하여 브레이브 랜드 쪽이 어떤 진형으로 나오든 압도적인 기량으로 기어이 상대를 무너뜨리며 돌파해 냈다.
필센 소년 캠프의 훈련 강도와 작전 수행 능력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편 브레이브 랜드 측은 예전에 사용했던 일렬횡대, 반포위, 마주선 삼각형 모양의 포진이 아니라 역삼각형 모양으로 정렬했다.
양측 모두 삼각 대형이지만, 필센 소년 캠프의 꼭짓점이 브레이브 랜드의 변을 찌르는 모양새의 포진이었던 것이다.
“의도는 알겠는데 과연 버티고 상대를 짓누를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그동안 보여준 기량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이건 운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필센 소년 캠프가 브레이브 랜드를 양쪽으로 갈라 버릴 겁니다.”
“과연······.”
장군들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때 브레이브 랜드의 역삼각형 진형 맨 뒤에 서 있던 기체의 파일럿이 말했다.
- 내가 승리로 이끌 테니 버티기만 해!
루산이 에이스 파일럿으로 지목한 하인즈 케넨으로 현재 브레이브 랜드에서 유일하게 블랙 레오파드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 알았어! 힘내자!
- 이얍!
첫 번째 종목에서 승리한 브레이브 랜드 소년들이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멕 나이트에 탑승한 심판이 외부 확성기로 소리쳤다.
- 준비!
양측 레오파드 트레이너들이 방패를 척 들어 올렸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 시작하라!
경쟁전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