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난 이 나라 사람도 아니니깐
223. 난 이 나라 사람도 아니니깐
“이렇게는 못 찾겠는데요?”
바이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만간 경찰이 포위할 걸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요.”
경찰이 포위하기 전에 클라크를 찾아서 나가야 했다.
그런데 아인스 제철소는 부지가 워낙 넓었고, 공장이나 창고, 사무실 건물이 무척 많아 일일이 훑어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붙잡고 클라크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닐 수도 없었다.
모두들 농성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행방을 묻고 다니는 것은 누가 봐도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온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임무를 맡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의심을 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편하잖아요.”
시에나의 말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멕 워커 파일럿으로 지원하는 게 좋겠어요.
“멕 워커?”
“보니까 놀고 있는 멕 워커가 많더라고요.”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필센 제국 최대 공업 지구.
멕 워커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역이었다.
소탕 작전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몸을 뺀 노동자들과 동부 공업 지구 입구 방어전에서 붙잡힌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멕 워커 파일럿 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고요.”
혹시나 경찰에 포위되어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라도 멕 워커를 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자.”
루산은 바이크와 시에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멕 워커 파일럿으로 지원했다.
남아 있는 멕 워커가 많았기 때문에 탑승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 세 사람은 쉽게 멕 워커 파일럿이 되었다.
그들은 멕 워커를 타고 담장 보강 공사를 하며 경찰 포위 상황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었고, 순찰 임무를 수행하며 규모가 큰 아인스 제철소를 더 빠르게 훑어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때에도 별로 의심을 받지 않았다.
“혹시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동생이 바움 대학에 다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려도 연대 투쟁인지 뭔지 한다고 쏘다니더라고요. 혹시 여기에 있는지 몰라서······.”
형제가 모두 최후의 성채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기꺼이 아는 것을 말해 주었다.
***
루산이 탑승한 멕 워커가 몸을 던져 밀어낸 경찰 멕 나이트가 일어났다.
- 다 죽인다!
분노한 경찰 파일럿이 상처 입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단지 엄포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화염 통에 맞고 불바다를 통과한 뒤 다시 화염병에 맞았다.
다행히 죽지 않았지만, 기체가 뜨겁게 달궈지고 시야가 아른거렸으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불바다가 일어난 면적이 조금만 넓었어도 질식사하거나 뜨거운 열기가 조종실까지 침범에 온몸이 익어서 사망했을지도 몰랐다.
악에 받친 경찰 파일럿은 자신을 공격한 멕 워커를 찢어 버리기 위해 일렁이는 마나 진동 대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때 길고 묵직한 건축용 철제 빔이 날아와 경찰 멕 나이트의 왼쪽 얼굴을 때렸다.
텅!
다른 멕 워커가 던진 것이었다.
- 야! 여기야, 여기!
상대를 열 받게 하는 바이크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외부 확정기로 울려 나왔다.
- 이것들이 진짜!
루산을 공격하려던 경찰 멕이 바이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이크는 얼른 철제 빔을 하나 던 던졌다.
슉!
그러나 경찰 멕은 방패를 들어 간단히 막아 냈다.
- 흥! 이 따위 공격에 당할 것 같으냐!
바이크가 탑승한 멕 워커가 겁을 먹은 듯 뒷걸음질을 치다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는 사전에 계획된 움직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간간이 철제 빔을 투창처럼 던져 화를 돋우어 다른 목표물을 제쳐두고 자신을 따라오도록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분노한 경찰 파일럿이 바이크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쿵쿵쿵쿵!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클라크에게 루산이 말했다.
- 클라크!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어!
“네?”
- 네 목숨을 헛되이 하지 말란 말이야!
그 말을 남기고 멕 워커는 경찰 멕 나이트 뒤를 맹렬히 따라갔다.
멕 나이트보다 출력이 낮아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뒤뚱뒤뚱 열심히 발을 놀렸다.
“기··· 사님?”
기사님이 여기에 계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클라크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학생들이 달려와 클라크를 일으켜 양쪽 팔을 붙잡고 건물 뒤쪽으로 달아났다.
그때 불길을 뚫고 들어온 경찰 멕 나이트들이 다른 멕 워커들을 공격하고 지붕에서 화염 통을 발사하는 투석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공장 건물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경찰 멕 나이트에 화염병을 던졌지만, 경찰 멕 나이트는 불이 붙은 채 악귀처럼 다가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비명이 난무했다.
한편 바이크가 탑승한 멕 워커 뒤를 쫓는 경찰 멕 나이트는 거리를 금세 좁혔다.
덩치가 훨씬 크고 운동 능력도 더욱 뛰어났기에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크는 창고와 공장 건물들 사이로 요리조리 방향을 틀면서 얄밉게 잡히지 않았다.
멕 나이트와 멕 워커의 거리가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좁혀졌을 때 바이크가 창고 모퉁이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홱 틀었다.
- 어딜!
약이 오른 경찰 파일럿도 멕 나이트의 왼발로 지면을 강하게 박으며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모퉁이 뒤에 바싹 붙어 몸을 숨기고 있던 멕 워커 한 대가 두 손으로 잡고 있던 거대한 쇠뭉치 -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넓게 펴는 원통형 압연 롤러 - 를 힘껏 휘둘렀다.
부웅-
몸통 전체를 회전시켜 휘두른 쇠뭉치가 급히 방향을 트는 멕 나이트의 머리를 강타했다.
터엉-!
방향을 급히 틀던 경찰 멕 나이트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벌렁 넘어가며 균형을 잃고 미끄러졌다.
끄그그그그-
불똥을 일으키며 미끄러진 경찰 멕 나이트가 공장 벽을 부수고 들어가 깊이 처박혔다.
쾅!
원통형 압연 롤러를 휘두른 멕 워커 - 시에나가 타고 있었다 - 는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쇠뭉치를 던져 버리고 서둘러 달려가 경찰 멕 나이트의 오른팔을 무릎으로 찍어 누르고 손에 쥐고 있던 마나 진동 대검을 빼냈다.
원통형 압연 롤러에 맞았다고 해서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경찰 멕 나이트 파일럿은 엄청난 충격에 넘어지고 미끄러져 벽에 처박힐 때까지 멕 나이트 통제를 상실했다.
그 순간 속수무책으로 마나 진동 대검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의 불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달려온 루산의 멕 워커가 시에나로부터 마나 진동 대검을 넘겨받아 공장 벽에 박혀 버둥대는 멕 나이트 가슴에 마나 진동 대검을 댔다.
지이이잉-
금속이 녹으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무, 무슨 짓이냐!
겁에 질린 경찰 파일럿이 소리를 지르고, 그가 탄 멕 나이트가 들썩들썩 움직였다.
그러나 벽에 처박혀 움직임이 제약된 데다 시에나와 바이크가 탑승한 멕 워커들이 힘껏 누르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이이잉-
루산은 기어이 가슴을 썩썩 갈랐다.
멕 나이트 조종실을 보호하기 위해 두툼하게 만든 가슴 덮개 - 출입문 역할도 한다 - 의 경첩 부분을 잘라낸 것이다.
파일럿 보호를 위해 워낙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다 보니 경첩에 끼우는 쇠기둥도 쉽게 잘리지 않도록 몸체 깊이 만들지만, 멕 나이트에 대해 잘 아는 루산이라 가슴 장갑판을 떼어 내지 않고도 마나 진동 대검으로 장갑판을 그대로 뚫고 그 아래에 있는 경첩을 쓱쓱 잘라냈다.
이윽고 루산의 멕 워커가 멕 나이트 가슴 덮개를 뜯어냈다.
멕 나이트 조종실에 갑자기 찬바람이 덮쳤다.
깜짝 놀라 헬멧을 벗은 파일럿의 눈앞에 이글거리는 마나 진동 대검 끝부분이 다가와 있었다.
- 내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경찰 파일럿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동화기에서 벗어나 멕 나이트 밖으로 뛰어내렸다.
- 열쇠!
머뭇거리는 그의 몸 앞에 거대한 마나 진동 대검이 박혔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기에 노동자들에게 붙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지만, 이대로 마나 진동 대검에 몸이 쪼개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는 서둘러 목에 걸고 있는 멕 나이트 열쇠를 던지고 달렸다.
루산은 달아나는 경찰 파일럿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 당겨.
세 대의 멕 워커가 공장 벽에 처박힌 경찰 멕 나이트를 끄집어냈다.
곧이어 루산이 멕 워커에서 내려 멕 나이트 열쇠를 목에 걸고 가슴 덮개가 떨어져 나간 경찰 멕 나이트에 올라탔다.
파일럿의 신체가 다르기 때문에 동화기에 있는 고정 고리에 팔과 다리를 끼우고 신발과 장갑을 착용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늘리고 줄이고 조작을 마치고 투구를 쓴 뒤에 루산은 경찰 멕 나이트를 일으켰다.
가슴 덮개 없이 조종실이 훤히 노출된 멕 나이트.
루산이 걸으면 걷고 팔을 앞뒤로 휘두르면 똑같이 팔을 휘두르고 고개를 돌리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멕 나이트.
바이크와 시에나도 멕 나이트 조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런 모습이 무척 신기하고 기괴해 보였다.
그러나 조종사가 루산이다 보니 가슴 덮개가 없이 조종사가 환히 노출돼 있는 모습이 특별히 더 강해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루산이 마치 거대한 마법 갑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 대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동화기 미세 조정을 하고 있는 루산에게 시에나가 물었다.
- 난 괜찮아. 공격을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멕 나이트 가슴 부분이 뻥 뚫려 조종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그러나 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 그게 아니고요. 경찰 멕을 타고 경찰과 싸우면······.
시에나는 뒷말을 꾹 삼켰다.
경찰 멕 나이트를 탈취해 경찰과 싸우면 그것은 진짜 반역이 된다.
노동자들이 멕 워커에 타고 저항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에도 루산은 멕 나이트를 탈취해 맞설 계획을 세운 데 이어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경찰 멕 나이트 100여 대가 동원되고 무장 경찰 수만 명이 동원된 이번 소탕 작전에서 클라크를 구해 무사히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멕 워커로는 맞설 수가 없었다.
멕 조종 실력이 남다른 루산이나 시에나가 아주 잠시 멕 나이트 한두 대를 쓰러뜨리는 정도는 가능해도 100대를 물리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루산은 경찰 멕 나이트를 빼앗기로 했다.
경찰 멕 나이트를 타고 아인스 제철소를 둘러싸고 있는 멕 나이트를 쓰러뜨려 달아나기로 한 것이다.
‘반역?’
반역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거부감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반역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복수의 대상을 황제까지 확장할지 여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은 힘을 기를 때였다.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기반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 잡히지 않으면 된다. 들키지 않으면 되는 거야.
멕 나이트만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 너희야말로 확실히 하는 게 좋아.
근처에서 굉음이 들리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전쟁터, 잘못하면 반역자가 된다.
그러나 바이크와 시에나는 두렵지 않았다.
- 체! 여기까지 왔는데 뭘 더 확실히 해요?
투덜대는 바이크의 목소리.
- 히히, 난 이 나라 사람도 아니니깐.
너스레를 떠는 시에나의 목소리.
조종 헬멧을 써 겨우 입만 보이는 루산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감돌았다.
- 그럼 가자!
- 네, 대장님!
- 알겠습니다, 대장님!
가슴 덮개가 없어 파일럿의 움직임이 환히 보이는 경찰 멕 나이트 뒤로 왼팔에 투창을 대신할 철제 빔을 여러 개 끼고 있는 멕 워커와 거대한 압연 롤러를 질질 끄는 멕 워커가 뒤따랐다.
[저거 뭐야?]
[뭐가?]
아인스 제철소 북쪽 담장 중 한 곳을 뚫고 들어와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멕 워커를 부수고 투석기를 설치한 지붕을 무너뜨리던 경찰 멕 나이트 네 대가 그 광경을 보고 얼른 이해하지 못해 움직임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화염병을 던지고 돌을 던지던 노동자들 역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느라 공격을 멈추었다.
잠시 싸움이 멈춘 그 시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눈은 이미 내리고 있었는데 싸우느라 못 알아본 것인지도 몰랐다.
- 너 뭐야?
경찰 멕 나이트 한 대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누르고 루산을 향해 물었다.
- 뭐긴 뭐야? 뚜껑 열린 경찰 멕 나이트지.
가슴 덮개가 열린 경찰 멕 나이트가 푸른빛이 일렁이는 마나 진동 대검을 두 팔로 굳게 쥐고 달려 나갔다.
[적이다!]
[본부, 여기는 북쪽 4구역! 경찰 멕 나이트 한 대가 탈취당했다!]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모여!]
놀란 경찰 파일럿들이 어지러이 마나 통신을 보내며 루산이 탄 멕 나이트를 향해 마주 달려왔다.
하늘에서 내린 눈은 불바다가 된 북쪽 담장 안쪽에 닿자마자 형체도 없이 사그라졌지만, 일부는 가슴 덮개가 없는 멕 나이트의 조종실 안으로 들어와 루산의 피부를 차갑게 식혀 주었다.
그의 감각이 예리하게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