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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26화 (226/450)

226. 마침 집이 비었다

226. 마침 집이 비었다

루산은 멀리 황궁과 정부 청사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신문을 펼쳤다.

1면에 대문짝하게 실린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 폐하, 긴급 담화문 발표!>

이미 바덴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루산은 빠르게 신문을 훑어 넘겼다.

2면, 3면, 4면에도 1면과 관련된 기사들과 논평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담화문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돼 있었다.

첫째, 아우로라 연합과의 전쟁과 관련하여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으나 최종 승리까지 온 국민의 단합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내용.

말하자면 필센 제국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고취하면서 인내를 요구하는 내용이 첫 번째 부분이었다.

둘째, 아우로라 연합의 간첩들이 불온 세력을 규합하여 제국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으나 정부에서 철저히 대응하고 있으니 애국 백성은 수상한 움직임을 목격하면 신고하고 일상을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내용.

동부 공업 지구 사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매국 세력의 주장은 아우로라 연합의 분열 책동임을 강조하고 애국 백성은 이를 경계하라고 당부함으로써 운동 세력을 몰아내야 할 사회의 적으로 규정했다.

셋째, 전쟁 기간 백성들이 평안한 삶을 살도록 보살피겠다는 내용.

이 부분에 많은 내용을 할애했는데,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고 과격하게 대응한 내무대신을 경질하겠다는 내용이 가장 먼저 들어가 있었고, 전시 임금 동결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 그 다음으로 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황제 직속의 호민관을 임명해 백성들의 어려움을 두루 살피기로 했다.

“전시 임금 동결법을 개정하는군요.”

“전시 임금 동결법을 개정해 임금에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실 별 차이가 없다고 하네요. 물가를 조사하는 상무부 물가 조사국이 대단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위에서 원하는 대로 물가 상승률을 제출하면 그뿐이라는 거예요.”

“음.”

“말하자면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지만, 황제 폐하께서는 일을 잘 못하는 신료들을 혼내고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이번 사태로 상처 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거죠.”

상무대신으로부터 미리 담화 내용을 듣고 루산에게 전해 준 바덴은 그렇게 평가했다.

루산은 바덴의 평가에 동의했다.

황제의 담화는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다.

노동자들을 화나게 한 정책과 과격한 소탕 작전에 대한 책임은 신료들, 그중에서도 내무대신이 지고 황제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주고 눈물을 닦아 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친 주장을 하는 노동자, 학생들을 일반 백성들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그들이 설 자리를 없앴다.

황제가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소탕 작전을 원래 의도한 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과격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백성들 속으로 깊이 숨어들게 되었으니 실제로 황제는 얻은 것도 없는 셈이 아닐까?’

이번 담화로 백성들의 지지는 얻을지 몰라도 황제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을지 모른다.

아우로라 연합에서 파견한 간첩 가운데 놀라운 실력을 지닌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있어서 - 외부에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정부에서는 동부 공업 지구 사태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 수도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대패했으니 황제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루산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놀라운 정치적 수완을 지닌 황제에게 한방 먹인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루산은 창밖을 보다 한 사람이 카페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신문을 덮었다.

딸랑딸랑~

코트에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빈켈.

사기 당한 12가문에 속하면서 현재 군무부 감찰관으로 재직 중인 루산의 협력자였다.

루산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이군요.”

오스카가 루산이 내민 손을 잡았다.

오스카의 악력은 상당했다.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도 최근의 생긴 것처럼 거칠었다.

‘수련을 많이 한 손인데?’

순환 근무로 감찰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검 수련을 등한히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다시 전선으로 가십니까?”

루산의 질문에 오스카가 멋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선이 아우로라 대륙으로 옮겨가면 아무래도 더 많은 파일럿이 필요하게 될 테니까요.”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큰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도 도움이 될 사람이 떠나는 것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루산은 종업원에게 차를 주문하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략 언제쯤 가시게 될 것 같습니까?”

“반년 안에는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가게 된다면 동방군으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부르는 곳이 있나 보군요?”

원칙적으로 필센 제국의 군인은 모두 군무부의 인사 명령에 따르게 되어 있지만, 귀족들은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었다.

귀족의 명예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과도하지 않으면 들어주는 편이었다.

특히 귀족 출신 지휘관이 승진하면 자신의 부관이나 가문의 기사를 데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귀족적 기풍이 아직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라이네 후작께서 순환 근무가 끝나면 돌아오라고 하셔서······.”

“아!”

라이네 후작은 이전의 대전쟁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을 부르가스 지방에서 아우로라 연합과 싸우며 해외 영토를 지켜냈고 지금은 동방군 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필센 제국군의 영웅이었다.

오베론 공작도 대전쟁 기간을 동방의 전쟁터에서 보냈지만,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귀국한 것과 달리 라이네 후작은 대전쟁이 끝난 뒤에도 부르가스에 남아 국경선을 확장하고 적의 침입을 격퇴하기 위해 계속 싸워 왔다.

권력은 오베론 공작이 훨씬 클지 몰라도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라이네 후작이 더 높았다.

그의 무용담과 제국에 대한 충성심은 워낙 유명하여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을 정도이니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인 루산이 모를 수가 없었다.

“대단한 분과 인연이 있으시군요!”

루산이 탄성을 지르자 오스카의 얼굴에 언뜻 자부심이 떠올랐다.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나서 잠깐 호위 기사로 곁에서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루산은 살짝 부러움을 느꼈다.

위험하다는 동방에서 위대한 장군을 지키며 군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그쪽 길과는 멀어졌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동방군의 병력 손실률이 가장 높으니 돌아가면 기동 전대장직을 맡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명령서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말입니다.”

오스카는 통상적으로 전대장이 되기에는 조금 젊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시 증편 계획에 따라 병력 규모가 두 배로 늘었고 계속된 전투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해 새로운 지휘관 자원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는 귀족 출신의 유능한 파일럿이고 영웅을 가까이에서 호위한 인연이 있었다.

전대장이 될 것 같다는 말은 근거 없는 자기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름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오스카는 루산 앞에서 괜히 잘난 척한 것 같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북부 전선은 이제 확실히 승부가 났습니다. 적이 철수 작전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아우로라 연합군은 필센 제국 북쪽에 많은 병력을 투입해 초기에 큰 성과를 보았다.

그러나 루산이 개입한 북방군 3군단 별동대에 의해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병력이 많았다. 그 병력을 무사히 귀환시켜 재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굴다크 공작이 이끄는 병력을 아우로라 대륙으로 무사히 옮기기 위한 수송 함대가 이미 조직되고 있으니 대규모 해전이 벌어질 겁니다.”

필센 제국으로서는 아우로라 연합의 북부 방면군이 본토로 돌아가는 것을 저지하려 할 것이고, 아우로라 연합군은 수송 함대를 지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루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해전은 양쪽 모두 피하게 되지 않을까요? 아우로라 연합 해군이 패한다면 병력을 귀환시키는 게 불가능하게 되고, 우리 제국도 만약 해전에서 대패하면 향후 동방 전략에 크나큰 차질을 빚게 되니까요.”

필센 제국은 해군 전력이 약화되면 동방에 병력과 물자를 보낼 수가 없다.

동방에 보낸 막대한 전력이 고립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렇군요. 그 부분도 더 알아보겠습니다.”

“무리하지는 마세요. 대략적인 그림만 알면 되니까요.”

루산은 상세한 군사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업과 복수.

이 두 가지를 위해 필요한 전쟁 상황을 오스카를 통해 대략적으로만 알면 되는 것이다.

상세히 알면 좋겠지만, 일개 군무부 감찰관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네.”

그때 종업원이 차를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놓고 돌아갔다.

오스카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살짝 축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남방군 1군단이 아라드 왕국을 완전히 떠나 네세베르 공략군 남동쪽에 포진해 아우로라 대륙 남쪽 해안가를 장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남방군 1군단은 오베론 공작의 장남 바트가 이끄는 부대로 이미 세 배 규모로 증편을 마쳐 과거 남방군 3개 군단의 병력 규모를 회복한 상태였다.

“오베론 가문의 재력과 인적 자원을 모두 쏟아부어 필센 제국군 어느 부대보다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더군요.”

그런데 남방군이 아우로라 대륙으로 원정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루산의 뇌리에는 남방군의 전력 규모나 군사적 목표에 대한 궁금증이 아닌 다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면 현재 오베론 지방은 비어 있는 셈인가요?”

“네?”

“오베론 공작은 재상이 되어 노바에 머물러 있고, 첫째 아들은 남방군을 이끌고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났으니 가문을 다스릴 사람이 없지 않나 싶어서요.”

“그야 뭐 가신들이나 대리인들이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가문이나 사업 운영은 전부터 가신들이 해 왔겠지요.”

루산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오스카가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다.

루산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오스카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굴다크 공작이 이끄는 아우로라 연합군을 완전히 몰아내면 북방군 또한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갈 겁니다. 페르보 제국을 공략하게 되겠죠.”

루산의 머릿속에 아우로라 대륙 전도가 떠올랐다.

“북방군은 아우로라 대륙 북서쪽을 공략하고 동방군, 네세베르 공략군, 남방군은 아우로라 대륙의 남쪽 해안을 감싼 채 안으로 밀고 들어가겠군요?”

“그렇지요.”

“우리 제국군은 증편을 마쳤다 해도 아우로라 연합군에 비해 병력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원정을 떠나는 상황이라 보급과 증원도 더 어렵죠. 게다가 아우로라 연합군은 아무래도 본토 방어를 위해 더 필사적으로 싸울 테니 우리 쪽이 훨씬 불리할 것 같은데 이런 구도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승산이 있을까요?”

루산은 정략이나 전략에 관여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것이 의문이었다.

황제나 군 수뇌부는 나름의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쟁을 확대할 텐데, 그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감찰관으로 있는 오스카 역시 그 점을 명확히 답변할 수는 없었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변경을 보유해 멕 나이트 연료와 부품을 틀어쥐고 있는 우리 제국이 결국 승리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우로라 연합은 연합체여서 통일적 대응이 어려울 테고 막다른 길에 몰리면 자국의 생존을 위해 연합을 깨고 우리 쪽으로 돌아설지도 모르죠.”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그렇겠죠?”

“그럴 겁니다.”

“그렇다는 말은 연료와 부품을 충분히 확보하고 통일적 대응 체계를 갖추면 저쪽이 이길 수도 있다는 거네요?”

“인구도 훨씬 많고 병력도 더 많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루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당장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 줄 정부나 군대의 고위 관계자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참! 동부 공업 지구 사태 조사에 근위대가 개입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근위대가요?”

루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위대가 맡을 사건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실패했고, 수도 군단은 다른 방면군으로 많이 빠져나가 여력이 없어서 근위대가 나선 모양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진노하시어 특별히 지시를 내리셨다는 말도 있고······.”

그럴 만하기는 했다.

노바 안으로 들어온 적의 파일럿이 시가전을 벌여 경찰 멕 나이트를 쓸어버렸다면 안보와 황제의 안전에 크나큰 위협이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루산은 자신의 정체를 들킬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루산은 오스카로부터 군대 동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헤어졌다.

카페에서 나온 그는 곧바로 스텐커의 임시 사무실 - 기존의 사무실은 울름 남작의 부하들에게 들켜 감시를 받고 있었기에 동부 공업 지구에서 작전이 벌어지는 동안 비밀리에 옮긴 것이다 - 로 갔다.

“오셨습니까, 기사님.”

“스텐커 씨.”

루산이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스텐커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 기사님.”

“루트 오베론을 풀어 주는 게 어떨까요?”

“네?”

스텐커는 얼른 루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뽑아낼 건 다 뽑아낸 것 같으니 풀어 주죠.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겁니다. 마침 집이 비어 있다는군요.”

“흐음!”

스텐커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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