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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27화 (227/450)

227. 오늘은 잔치가 벌어질까요?

227. 오늘은 잔치가 벌어질까요?

스텐커를 돕고 있는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 보르비스가 다리를 절룩이며 쇠창살로 다가갔다.

불편한 다리로 걸어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루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근 2년 동안 감금되어 매일 매타작을 당하고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쓰라고 압박을 당한다면 누구나 그렇게 될 것이다.

쇠창살 바로 앞에서 멈춘 보르비스는 아무 말 없이 루트를 내려다보았다.

스텐커의 지시 - 스텐커가 전달한 루산의 지시 - 를 수행해야 하는 그의 마음은 무척 복잡했다.

평소와 달리 침묵이 한참 동안 이어지자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던 루트가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그러다 보르비스와 눈이 마주치자 찔끔하여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보르비스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황제가···, 아니다.”

그는 황제를 언급한 게 실수였다는 듯이 얼른 말을 바꾸었다.

“위에서 널 풀어 주기로 결정했다.”

루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 정말이오?”

“나와 동지들은 너를 찢어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보르비스의 살벌한 눈빛에 루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풀어 준다는 말이 잘못 들은 게 아님을 알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갇혀 지내다 철창 안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줄 알았던 것이다.

보르비스가 쇠창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루트는 저도 모르게 비쩍 마른 몸뚱이를 버둥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무, 무엇이오?”

“풀어 준다는 말 못 들었어!”

“지, 지금 말이오?”

“지금이 아니면? 이곳을 떠나기가 아쉬워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라도 달라는 거야 뭐야?”

“그, 그건 아니오!”

“그럼 닥치고 가만히 있어. 마지막으로 작살을 내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

계속 맞아 왔다고 한 번 더 맞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루트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보르비스가 루트의 눈을 가린 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끌고 가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루트는 두려움이 일었지만, 보르비스의 반응을 볼 때 정말로 살려 주는 것 같았다.

보르비스가 루트를 차에 태웠다.

어디로 가는지 차가 잠시 덜컹이다가 이내 흔들림 없이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 조건 없이 풀어 주는 것이오?”

“그럼 뭐, 조건이라도 걸어 줘?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야?”

“······.”

“지금 무지 참고 있다는 걸 명심해. 너와 네 가족들을 늘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반란에 가담한 남방군 출신 기사들의 복수심은 이 말을 단순한 위협용으로 할 만큼 작지 않다는 것을 루트는 알고 있었다.

전에 딸이 다니는 학교까지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던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알았소.”

차 안에 다시 또 정적이 감돌았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추고 보르비스가 루트의 눈을 가린 천을 풀었다.

루트가 잠시 눈을 찡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디인지 얼른 파악이 되지 않았다.

“가.”

“저, 정말 가도 되는 것이오?”

“이 새끼가······!”

보르비스가 입술을 깨물자 루트는 얼른 문을 열고 구르듯이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는 그대로 떠나갔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고 비쩍 곯은 루트가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빙 돌렸다.

그때 그와 비슷하게 비쩍 마르고 수염이 덥수룩하고 험상한 차림을 한 두 사람이 차에서 튕겨 나오듯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을 내려준 자동차도 금세 떠나 버렸다.

세 사람은 서로를 한참이나 쳐다보다 겨우 알아보았다.

“자네들은······!”

“설마··· 공자님?”

“이런! 살아계셨군요!”

루트와 함께 외국으로 가는 배를 타다 붙잡힌 비서와 호위 기사였다.

“세상에! 정말 살아계셨어요! 다행입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껴안았다.

비쩍 마른 몸 어디에 물기가 남아있었는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잠시 후 그들은 이곳이 오베론 공작의 저택 근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들어가시죠, 공자님!”

“하아! 가지.”

“네.”

거지꼴을 한 둘째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여 문 앞에서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이내 공작 저택이 발칵 뒤집혔다.

루트가 공작가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때 멀찍이 떨어진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루산, 스텐커, 그리고 조금 전 루트 오베론을 데려온 뒤 이 차로 옮겨 탄 보르비스였다.

보르비스는 아직까지 화를 삭이지 못해 말투가 날카로웠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걱정하지 말아요. 황제를 들이받을 각오가 되지 않았다면 저들은 당신 가족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루산이 여전히 시선을 공작 저택에 두고 말했다.

보르비스는 그 말을 이해했지만, 분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루산이 스텐커에게 말했다.

“루트가 안에서 휘젓는 동안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세요.”

“네, 기사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2년 가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제국 재상이 된 아버지와 남방군을 이끌고 당당히 원정을 떠난 형에 대한 배신감과 보상 심리가 들끓을 둘째 아들이 제대로 날뛰어 줄 것을 기대하며 그들은 그동안 루트가 알려준 많은 내용들을 토대로 오베론 가문에 대해 다양한 일들을 벌일 작정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보르비스를 비롯한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이 화를 참고 루산의 말을 들은 것이다.

스텐커의 조수가 차를 출발시켜 둘째 아들이 들어간 오베론 공작의 저택 앞을 지나갔다.

“그래도 오늘은 잔치가 벌어질까요? 아들이 돌아왔으니까요.”

스텐커의 조수가 농담인지 비꼬는 것인지 모를 말을 뜬금없이 꺼냈다.

“글쎄.”

스텐커가 저택을 주시하며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루산은 새삼 자신이 오베론 공작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권력을 위해 여러 가문을 파탄 내고 아들까지 속인 사람도 과연 자기 아들의 귀환은 반길 것인지 아니면 이 일이 자신에게 미치는 이해득실을 먼저 판단할 것이지 알고 싶었다.

‘과연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여 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

아인스 제철소를 수색하던 경찰은 어느 건물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묶여 있었고, 하도 두드려 맞아 온몸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놀란 경찰은 그들을 풀어 주고 주위를 수색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처에 그들의 의복과 정체를 짐작하게 해 주는 지갑 그리고 단검이 친절하게 놓여 있었다.

“재상부 민정 조사실?”

그들은 울름 남작의 부하들이었던 것이다.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요?”

상처를 치료해 주고 담요를 덮어 주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 경찰은 당연히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러나 울름 남작의 부하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위로 올라간 보고는 현장에서 소탕 작전을 지휘한 대장과 작전을 총괄한 노바 경찰청장에게까지 닿았다.

최악의 실패를 겪은 작전 지휘부는 무엇이라도 알아내야 했다.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었다.

동부 공업 지구로 잠입해 들어온, 엄청난 실력을 지닌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 파일럿을 체포해야만 했다. 체포하지 못한다면 소재라도, 정체라도 파악해야 했다.

늦었지만 그들이 도주시켜 시내로 숨어든 노동자와 학생들을 모두 체포해야 했다.

그러나 동부 공업 지구를 벗어나 시내로 들어간 노동자와 학생들을 모두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부 공업 지구 동쪽 선착장에서 경찰 순시선을 뚫고 강을 통해 달아난 적의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알아내지 못했다.

분노한 황제에 의해 작전 수뇌부의 목이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그때 재상부 민정 조사실 요원들이 아인스 제철소 안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걔들이 거기 왜 있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입을 안 열어?”

그야말로 수상한 일이 아닌가!

필센 제국의 재상 오베론 공작은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2년 전 반란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돼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 관리들도 많았고,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을 배신하고 재상 자리를 차지했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 밤베르크 백작은 루산에 의해 반란 사건의 진실에 꽤 가까이 근접했기에 오베론 공작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노바 경찰청장인 에르젠 자작은 밤베르크 백작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밤베르크 백작의 요청으로 반란 사건을 조사하다 보름스 가문의 장원 안에 비밀리에 건설된 멕 나이트 생산 공장에서 나온 반란군 멕에 의해 경찰 기동 타격대의 멕 나이트를 모두 잃은 경험이 있었기에 오베론 공작 하면 이가 갈리는 사람이었다.

“혼자 죽을 수는 없지. 엮어 봐.”

“어떻게요?”

“이 시점에 왜 거기 들어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찰에 공식적으로 요청도 하지 않고 대체 왜 들어간 거냐? 만약에 적 멕 나이트 파일럿이 잠입했다는 첩보를 접하고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다면 우리에게 먼저 알렸어야 하지 않느냐? 너희 때문에 경찰 기동 타격대가 개박살이 났다. 아니면 동부 공업 지구에서 암약하고 있는 적의 간첩과 접선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그건 좀 너무 간 것 아닙니까? 다름 아닌 오베론 공작입니다. 증거도 없이 그런 혐의를 씌웠다가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적당히 거르고 순화하란 말이야!”

“네, 청장님!”

“정부와 군에는 오베론 공작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그의 둘째 아들이 구 귀족파 잔당을 반란군 파일럿으로 끌어들였다는 건 체포된 반란군 파일럿 조사 과정에서 이미 다 나온 이야기야. 함구령이 내려져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 물론 공작은 반란 세력 척결을 위한 작전이었다고 하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래서 도피시켰잖아.”

“그런 일이······!”

“근위대에서 나온 조사단에 흘려. 그쪽도 오베론 공작 싫어하는 애들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목이 날아가게 생긴 노바 경찰청장이 아인스 제철소에서 발견한 울름 남작의 부하들을 보고 이번 작전 실패를 오베론 공작과 엮었다.

증거 없이 아우로라 연합과의 접촉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교묘하게 수상하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사태의 본질과 무관하게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오베론 공작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재상부 요원들이 거기 왜 잡혀 있었던 겁니까?”

“그 전에 재상부에 민정 조사실이라는 기구가 원래 있던 겁니까?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그동안 수행해 온 업무를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오베론 공작은 누군가에게 잡혀간 둘째 아들을 찾기 위해 들어갔다는 - 경찰이 개입한 것으로 보아 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부의 비밀 조직이 의심스럽다는 -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근위대 조사관들이 나섰다.

“재상 각하! 저희가 민정 조사실 요원들을 불러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아시다시피 동부 공업 지구 사태가 워낙 심각하여······.”

“내가 폐하께 직접 말씀드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압박을 피한 오베론 공작은 부하들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울름 남작의 부하들 문제는 그리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자잘한 일들을 크게 부풀려 자신을 몰아붙이는 세력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 것이다.

그렇게 골머리를 썩이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정녕··· 루트가 맞느냐!”

넝마 같은 옷은 갈아입었지만, 병자처럼 빼빼 마른 루트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네.”

루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분노한 오베론 공작의 목소리가 저택을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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