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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30화 (230/450)

230. 믿음과 신뢰는 제도로 보완된다

230. 믿음과 신뢰는 제도로 보완된다

브레이브 랜드가 필센 소년 캠프를 이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쁘기는 했지만, 루산은 굳이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 없었다.

브레이브 랜드가 넘어가지 않도록 이기게 해 달라는 바덴의 부탁을 받고 임시 교관으로 며칠 가르쳤을 뿐 브레이브 랜드나 귀족 소년들에게 딱히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착은 브레이브 랜드 아이디어를 내고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한 바덴이 가졌지 루산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형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역시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어! 기특한 녀석들, 하하하!”

“8구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축하해 줘야겠어요!”

겨우 며칠 가르쳤을 뿐이면서도 방방 뜨며 좋아하는 바이크와 시에나를 봐서라도 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루산은 매형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보름스 장원에 도착해 브레이브 랜드 교관들과 학생들을 만났다.

승자의 마음은 너그러워서 나이든 교관들이나 어린 학생들 모두 용병으로 소개된 루산 일행을 반겨 주었다.

바이크와 시에나는 원래 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라 금세 수련생들과 어울리며 축하와 감사를 주고받았다.

반면 루산은 교관들과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서로 할 말이 없는 상황이 오자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는 산중 호수에 다다라 있었다.

옆으로 멕 나이트 조종 훈련을 위해 중간중간 나무를 베어 낸 숲이 보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나름 열심히 훈련했는지 나무들마다 멕 나이트에 긁히고 쓸린 흔적이 가득했다.

최종적으로는 나무에 닿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숲을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흔적과 상처를 남기며 가고 있는 걸까?’

루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수의 길을 가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클라크의 일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남았는지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는지, 혹은 앞으로 어떤 상처와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산중 호수 주변을 걷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보름스 가문의 장원을 되찾았다는 뜻이었다.

루산은 감상에 빠지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고,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루산이 쳐다보자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하인즈 케넨입니다, 교관님.”

이곳 브레이브 랜드에서 유일하게 블랙 레오파드 계급장을 달고 있는 에이스 파일럿, 하인즈 케넨이었다.

“알고 있다. 무슨 일이지?”

“그게··· 오늘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래서?”

“네?”

“나는 말을 돌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 용건이 있으면 정확히 말하는 게 좋아.”

그리 윽박지르거나 위협적으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하인즈는 루산의 말에 주눅이 들었다.

상대를 밀어내는, 차가운 말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인즈는 이내 용기를 내 가까이 다가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루산이 물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 파일럿이 되면······.”

“되면?”

하인즈는 용기가 더 필요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요?”

“뭐?”

의외의 질문에 루산은 얼른 답변을 찾지 못했다.

“갑자기 무슨 얘기지? 내가 내 수입을 너에게 얘기해 줄 의무는 없지 않아? 내가 너한테 용병 파일럿이 되라고 사정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야··· 그렇죠.”

“네가 왜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는지 알아듣게 설명해 봐. 남작 가문의 둘째 아들이 갑자기 용병의 돈벌이에 대해 질문하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죄송합니다.”

하인즈가 사과를 하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 말했다.

“용병이 된다는 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당연한 일이었다.

하인즈는 케인 남작 가문의 둘째 아들.

용병이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이미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 합격한 상태고요.”

루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즈는 또래들 가운데에서 제법 실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교관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고민 없이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 진학해서 제국군 파일럿이 되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여러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를 만난 뒤로?”

“네. 정확히 말하면 교관님을 만나 경쟁전에서 승리한 뒤로요.”

“무슨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우리는 그동안 연패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교관님 말씀을 듣고 나서 승리했어요. 훈련 때에도 느낀 거지만, 교관님만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 교관님이 왜 제국군이 아닌 용병단에서 활동하고 있을까?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나?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가? 궁금하더라고요.”

“흠.”

당돌하지만 솔직한 태도여서 루산은 아까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하인즈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연패를 하고 있었다고요. 어릴 때부터 계속 검을 수련해 왔는데 평민 아이들한테 지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필센 소년 캠프에 들어가는 평민 아이들이 우리 브레이브 랜드 아이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거예요.”

하인즈의 얼굴에 나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언뜻 비쳤지만, 입 밖으로 속마음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 아이들이 캠프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고 군대로 들어가겠죠. 우리는 군대에서도 그런 평민 출신들과 계속 부딪쳐야 해요.”

이반 황제의 평민 우대 정책으로 이미 필센 제국군 파일럿의 절반 이상이 평민 출신인데, 필센 소년 캠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이 비율이 평민 쪽으로 확 기울고 실력 있는 평민 파일럿도 더 많아져 귀족 출신 파일럿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경쟁전에서 한 번 승리를 경험했다지만, 변화의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루산은 하인즈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이해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체감하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을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어요. 어차피 돈이 최고니까요.”

루산은 쓴웃음이 나왔다.

이게 요즘 아이들의 생각인가 싶었다.

“그런데 가업은 형이 이을 테고 둘째인 나는 형의 심부름이나 하다가 작은 사업체를 물려받아 독립하겠죠. 문제는 사업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아버지도 반대하실 테고, 이미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 합격했는데 그 이점을 살리지도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다 돈을 많이 벌 수만 있다면 용병 파일럿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하는 것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당돌하고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소년에게 용병은 피비린내 가득한 현실보다 모험 가득한 소설 책 이미지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루산은 하인즈가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경쟁전의 승리로 잔뜩 고무되었다가 자신을 둘러싼 차가운 현실 -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평민의 지위가 향상되고 명예보다 돈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으로 변해 가는 현실을 깨달은 소년에게는 중요한 질문인 것이다.

루산은 솔직히 답해 주었다.

“네가 돈을 벌고 싶다면 용병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모르긴 몰라도 내 수입은 제국군 어느 파일럿보다 높을 거야. 파일럿뿐 아니라 제국군 최고 지휘관보다 많겠지.”

“그 정도···인가요?”

“그래.”

그러나 자신의 수입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한 번 전쟁에 나가서 멕 나이트 수십 대를 전리품으로 획득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산은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을 벌고 싶다면 용병이 아니라도 괜찮은 직업이 있지. 변경 군단의 파일럿이 되어 원시의 땅에 사는 괴수를 잡는 거야.”

“네?”

“아직은 성장이 끝나지 않았고 조종 실력도 부족하지만, 제국 기사 아카데미만 졸업하면 기본급으로 월 90골드, 각종 성과 보상금을 합치면 한 달에 백 골드 이상, 많으면 몇 백 골드도 벌 수 있지.”

흔치 않은, 아마도 유일할 것으로 짐작되는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 변경 군단 파일럿으로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였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고, 멕 나이트 조종 실력이 떨어지면 기본급 20골드부터 시작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리만 잡으면 어느 직업보다 수입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용병보다 죽을 가능성도 낮고 수입도 많아.”

“와!”

하인즈가 감탄했다.

남작 가문의 둘째 아들로 풍족하게 살아왔기에 금전 감각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한 달에 수백 골드의 수입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루산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 명예와 품위, 문명 생활은 포기해야 하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겪어 보지 않고 말로만 들어서는 알 수 없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심정을.

더구나 귀족 출신이라면 그 생활을 더욱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변경도 사람 사는 곳이라 적응한다면 견딜 만하지만,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용병은 더하지. 명예, 품위 같은 건 아예 없다. 돈을 목적으로 싸우는 건 그런 거야.”

루산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하인즈의 귀로 들어가 마음을 흔들었다.

지난 삶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것이지만, 나에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명예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인즈가 눈에 힘을 주고 루산의 말을 경청했다.

“모두가 돈을 추구하는 세상이라면 명예를 추구하는 삶이 좀 더 가치 있지 않겠어?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오는 거니까.”

루산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

망한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제국 기사 아카데미 경력을 포기하고 그토록 염원하던 기사의 길을 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 변경 파일럿이 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가문의 재산을 되찾았다.

복수와 성공, 두 가지를 다 잡기 위해 변경에 상당한 기반을 구축해 놓았고 바덴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일구어 놓았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이만큼 이룩했다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만약 신이 존재하여 다시 한번 삶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명예로운 기사의 길을 고를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어린 시절부터 품어 왔던 순수한 소년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고 오롯이 올바름을 따르는 길.

이미 마음속 깊이 묻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바로 그 길.

그 길로 가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많이 묻어 버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명예로운 길.

제국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전선 파일럿이나 근위대 파일럿이 된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 순수하고 명예로운 기사의 삶을 살게 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루산은 아직 어린 소년이 그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루산의 이야기를 들은 하인즈는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럼 이만······.”

“아!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교관님.”

하인즈가 어떤 길을 걸을지,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루산은 알 수 없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평민 소년도 고민을 하고 귀족 소년도 고민을 했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 선배는 고민하는 후배를 남겨두고 산중 호수를 떠났다.

***

“내가 처남보다 잘난 건 결혼해서 부인과 아이들이 있다는 거지.”

노이어의 말에 루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아이 참, 그 얘기 하려고 보자고 했어요?”

그러나 노이어는 평소처럼 사람 좋은 웃음으로 루산의 투정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처남은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변경에서 살지. 사업은 모두 고슬라 사장에게 맡긴다면서?”

매형이 바덴과 만났다는 사실은 바덴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루산은 놀라지 않았다.

매형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준 것도 바로 바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결혼 이야기를 왜 꺼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주인이 이렇게나 감독을 못 하는 상황이면 그 주머니는 남의 거야. 그 주머니에 얼마가 들었는지 정확히 알고는 있나?”

“알죠. 매번 보고를 하니까.”

“그 보고가 정확한지는 어떻게 알아? 뒤에서 자기 주머니 챙기는지 안 챙기는지 알 방법은 있고?”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

“······.”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사기를 왜 당하겠어?”

“거 참,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루산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으나 노이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결혼을 생각해 봐.”

“뭐라고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야. 믿음과 신뢰는 제도로 보완되는 거지.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법이나 계약서로 구속할 수준이 아닌 것 같더군. 그런 포괄 계약은 없거든.”

“······.”

“결혼만큼 굳건하고 포괄적인 약속이 어디 있어?”

평소답지 않게 날카로운 매형의 공격에 루산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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