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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37화 (237/450)

237. 쉬었다 갈 생각이었습니다

237. 쉬었다 갈 생각이었습니다

협상은 단번에 끝나지 않았다.

율리안과 본부 수뇌부들은 바덴이 제안한 조건이 과연 변경 8구역에 이익이 되는지, 이행 의사와 능력이 되는지, 법률에 저촉되거나 다른 악영향은 없는지 충분히 검토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왕 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으면 최대한 8구역에 유리하게 조건을 조종할 필요도 있었다.

바덴이 직접 말하기 곤란한 내용들은 루산이 중간에 나서서 율리안과 본부 간부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반달 호수 지역 개척 상황을 보면 레인보우 시티, 레이크 시티, 본부 개척 기지, 이 세 곳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파 기지에서 파견한 개척단은 초기에 전멸했고, 베타 기지, 감마 기지 개척단의 결과물은 초라했다.

애초에 루산이 이끄는 델타 기지 개척단이나 8구역 본부가 직접 나선 본부 개척단에 비해 규모도 작았고 지원도 부족했다.

그러던 것이 루산이 레이크 시티에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나 연료·윤활유 생산 시설과 레오파드 생산 단지를 유치하면서 이주민 쏠림 현상이 극심해졌다.

루산이 개척민 모집 사업으로 적극적으로 유치한 이주민을 레이크 시티에 우선 배정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프 마법 연구소 생산 단지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8구역에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일자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노동력이 풍부한 곳에 사업가들이 공장을 짓고, 일자리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곳으로 사람이 꾸준히 들어오는, 이른바 눈덩이 굴림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로 인해 델타 기지 대장으로 있던 호른이 욕심을 부려 나중에 새로 확보한 중앙 개척 기지는 말할 것도 없고 초기에 개척단을 파견한 베타 기지와 감마 기지에서 건설한 개척촌도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곳을 차라리 농업 중심지로 삼고, 외부 자본을 대거 유입해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8구역을 위해서 더 낫지 않습니까? 고슬라 사장이 지적한 대로 우리 8구역은 전쟁으로 이주민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식량 수급 균형이 깨졌습니다.”

처음 아라드 왕국 피란민이 들어왔을 때만 해도 농지를 확대해 식량을 자급하려 했으나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나 연료·윤활유 생산 시설, 레오파드 생산 단지를 유치함으로써 8구역이 농업 지역에서 공업 지역으로 확 변하고 전쟁으로 들어온 피란민을 대거 수용하면서 식량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 것이다.

“레이크 시티의 발전으로 8구역의 전체 수입이 급증해 식량 구입비를 지출하고도 남는다지만,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식량 공급 방식을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위험합니다.”

필요성에는 다들 공감했다.

그러나 본부의 간부들은 여러 이유를 들며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율리안이 상황을 정리했다.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니 쟁점이 세 개 정도 있는 것 같군요.”

첫째, 과연 바덴의 방식이 가능한가? 할 일도 많은데 불가능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를 쓰는 것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다.

둘째, 법에 저촉되지는 않는가? 이익이 된다 해도 필센 제국의 법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셋째, 이로 인해 미칠 영향은 얼마나 큰가? 이익이 크다 해도 손해를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면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도 바덴은 막힘없이 답했다.

“8구역은 현재 남아도는 노동력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농지를 새로이 조성하고 광대한 농지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펜트 사에서 자동차 엔진을 장착한 농업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고, 밭을 갈고, 곡물을 탈곡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바덴은 붐붐 자동차의 포이어 바겐으로부터 자동차에 대해 배우다 그 농업 기계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높은 가격과 잦은 고장으로 인해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기억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나중에 전쟁으로 인해 식량 가격이 올라가고 반달 식품도 원료 수급에 문제를 겪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바덴은 작년에 붐붐 자동차를 통해 펜트 사를 인수했다.

전쟁으로 젊은 남자들이 징집되는 바람에 농업 분야에서도 노동력이 부족했다. 펜트의 농업 자동차는 이 문제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멕 워커를 대거 투입할 예정입니다. 변경에서도 개척촌을 건설할 때 농지조성에 멕 워커를 투입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맨 처음에 황무지의 바위나 나무 같은 커다란 장애물을 제거하고 농지 구획을 정하는 정도로만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농부들이 실제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당연한 일이죠. 농부들이 고가의 장비를 구입할 수는 없으니까요. 구입은 고사하고 빌려서 쓰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고가의 농업차와 멕 워커를 대량으로 보유해 필요한 곳에 투입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바덴은 이곳에 와서 변경 8구역 관계자들만 만난 것이 아니었다.

루산의 소개로 가프 마법 연구소 대표 마법사인 가라로슈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루산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간편식 사업과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통해 레오파드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레오파드 생산 설비를 제공해 주는 사업가를 홀대할 수는 없었다.

가라로슈와 만난 자리에서 바덴은 농업용 멕 워커를 제안했다.

“출력은 기존의 멕 워커보다 많이 떨어져도 괜찮아요. 남자보다 힘이 약한 여자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동화기 장력이 세지 않은 멕 워커가 있으면 좋겠어요.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요. 우리는 농업 기지 사업을 8구역뿐 아니라 나머지 변경 구역, 필센 제국 북부, 아라드 왕국 호리아 평원으로까지 확대할 거예요. 그러다 점점 필센 제국 전역으로 넓혀 나갈 예정입니다.”

가라로슈는 바덴의 포부와 사업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판단력에 크게 감탄했다.

“우리 역시 멕 워커 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레오파드 생산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여력이 생기면 곧바로 시작하려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생산하는 첫 번째 멕 워커는 농업용이 되겠군요. 허허허!”

그렇게 바덴은 가프 마법 연구소로부터 농업용 멕 워커 생산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율리안과 8구역 간부들을 설득해 나갔던 것이다.

“물론 기계를 도입한다 해도 농사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농사는 시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죠. 그리고 우리 제국은 위도에 따라 기후가 달라 지역마다 재배하는 작물도 많이 다릅니다. 그것을 이용해 볼 생각입니다. 부족한 노동력은 타 지역 농한기 노동력을 이용하려 해요.”

바덴은 지역별 주요 작물 재배 현황과 작물별 노동력 투입 시간, 농업 종사 인구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를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농한기 노동력 모집과 수송 계획까지 마련해 두었다.

율리안과 변경 8구역 간부들이 이런 철저한 준비성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단지 돈이 많은 사업가가 아니라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대단한 사업가.

그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인식이 이렇게 바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농업 기지 사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서도 바덴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고 사람을 부려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 헌법과 농지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실 수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8구역에서 하려는 농업 기지 사업의 기본 구조는 변경 개척 방식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개척 방식과 똑같다고요?”

“네. 우리 회사가 대규모 농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민 즉, 농부가 일정 농지를 소유합니다. 맨 처음 우리가 농지를 조성합니다. 그리고 농부와 계약을 맺죠. 우리는 농업차와 멕 워커,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노동력을 공급해 주고 농부는 그 대가를 우리에게 지불하면 되는 것입니다. 분할 받은 농지를 장기 할부로 갚아 나가면 완전한 소유자가 되는 것이죠.”

“정말로 같군요. 일손을 거들어 주는 것 말고는.”

“네.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제공하는 농지는 기존에 개척민에게 나눠 주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겁니다. 농민 한 사람이 몇 배나 더 큰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거죠.”

“기계의 힘으로.”

“네. 이렇듯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와 관련된 시비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농지법 변경을 청원해 두었습니다. 농산물 증산에 이바지하는 내용이라 전쟁 기간에 식품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제국으로서는 채택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법도 바꾼다!

바덴의 자신감은 변경의 간부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바덴이 마지막 쟁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분명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서 농사를 지어 오던 농부들입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농산물의 경우는 폭락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농부 한 명이 경작하는 농지를 늘려 주면 되는 것이죠.”

변경 개척 매뉴얼에는 개척민에게 나눠 주는 농지 규모를 한 사람이 농사지을 수 있는 최대 면적보다 작게 주도록 돼 있었다.

왜냐하면 변경에서는 새로 개척촌을 건설하고, 도로를 까는 등 노동력이 필요한 일들이 많았다.

농사 외에도 이런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변경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농지 규모를 일부러 축소시킨 것이다.

바덴의 말은 이 변경 개척 매뉴얼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 8구역 간부들이 여러 이유를 들며 문제를 지적했다.

그중 타당한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단기간에 이주민이 많이 들어온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늘 적은 인구로 많은 일을 해야 했어요. 이 매뉴얼은 그래서 만들어진 겁니다. 만약에 이주민이 줄어들면 그때는 어디서 노동력을 구해 공공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변경 개척은 힘이 듭니다. 모두가 자기 일만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다면 힘들고 고달픈 노역에 종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바덴은 간부들의 이런 보수적인 생각에 물러서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저는 변경에서의 삶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원시의 땅에 사람이 사는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서 이룩한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이 들지도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그 개척민은 언제까지 그 힘든 일을 해야 하나요? 자신의 넓은 농장에서 보람차게 일하다 필요하면 농업차와 멕 워커를 빌려 쓰고 농번기에는 노동력을 동원해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 풍족하게 살면 안 되는 건가요? 늘 노역에 동원되어 고생을 해야 하나요? 노역이 필요하면 임금을 올리면 됩니다. 그래도 개척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하다면 더는 개척이 필요 없는 시기일 겁니다. 그때는 전에 건설한 마을과 도시를 보수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이 땅을 아름답게 가꾸면 되지 않을까요?”

일부 간부들은 변경을 잘 모르는 도시 출신 젊은 여자 사장의 철없는 소리라고 비꼬았지만, 적어도 율리안은 아니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 8구역을 아름답게 가꾸면 된다?”

새로 개척할 필요 없이 모두가 풍요롭게 살면서 삶의 여건을 개선해 나가는 시기.

과연 변경 8구역에 그런 날이 올까 싶었지만, 율리안은 그날의 8구역이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했다.

‘어디서 이런 보물 같은 사람을 알게 된 겁니까?’

율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루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덴이 루산의 위임을 받아 노바에서 개척민을 모집하고, 관광객을 모으고, 신문사들과 접촉해 변경 8구역을 홍보해 왔다는 것을 루산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교양 있고 설득력 있는 화술, 대단한 통찰력, 그리고 놀라운 사업 수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던 것이다.

루산은 왠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율리안이 간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반달 호수 지역에 있는 베타, 감마 개척촌과 중앙 개척 기지는 그동안 개척에 소요된 비용을 본부에서 지급하고 가칭 반달 농업 회사로 관리권을 이전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부장들은 비용을 산출하고 8구역 전체의 농업 현황을 파악하세요. 최대한 빠르게.”

마침내 변경 8구역 통치자의 결정이 떨어진 것이다.

“알겠습니다!”

율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바덴에게 말했다.

“고슬라 사장님, 혹시 다른 사업은 하실 생각이 없나요?”

“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으실 테니 이왕 온 김에 푹 쉬시면서 천천히 둘러보세요. 또 압니까? 더 좋은 사업 아이템이 떠오를지.”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었다.

바덴이 루산을 힐끗 쳐다보고는 율리안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잠시 쉬었다 갈 생각이었습니다, 통치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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