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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38화 (238/450)

238. 오!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238. 오!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루트 오베론은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비굴하게 빌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허다했다.

낮이라고 마음이 편안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위해 전력을 다해 왔지만, 결국 아버지에 의해 이용되고 버려진 지난 15년.

그 시간을 되돌릴 길이 없었다.

자신을 가두어 고문하고 괴롭힌 황제 - 자신을 납치해 감금하고 모진 고문과 심문을 해 온 자들을 황제의 부하라고 믿고 있었다 - 에게 당한 2년은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떻게든 복수하고 보상을 받아야 했다.

그는 자신의 측근들을 불렀다.

납치당해 감금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적은 없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비쩍 말라 병색이 완연한 비서와 호위 기사였다.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루트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왔기에 그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았고, 함께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에 더할 수 없이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바트가 호위 기사에게 말했다.

“군터, 울름 남작의 부하들을 수습해.”

“울름 남작은 어찌됩니까?”

“최소 몇 년은 살아야겠지. 풀려나도 당분간 일선에서 활동하기는 어려울 거야.”

그 사이에 그의 부하들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호위 기사가 짧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바트가 비서에게 물었다.

“레톤, 마젠스 자작은 아직도 공단 사장을 하고 있나?”

필센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크고 개인 소유로는 최대 규모인 오베론 공단을 말하는 것이다.

마젠스 자작은 오베론 가문의 가신으로 2년 전까지 그곳 사장을 맡고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알아볼까요?”

“어차피 오베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으니까 갔다 와.”

“네, 공자님.”

“마젠스 자작에게 조만간 내가 만나러 간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루트의 지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데사우로 형제를 불러와.”

“데사우로 형제 말씀입니까?”

호위 기사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데사우로 형제는 노바 암흑가의 한축을 담당하는 조직을 이끌고 있었는데, 루트가 반란 공작을 실행하고 다닐 때 수족처럼 부려 온 자들이었다.

“쓸 데가 있어. 그리고 당장 부릴 만한 자들도 없잖아.”

2년 전에는 루트도 부하들을 제법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울름 남작의 재촉으로 부하들에게 소식을 알릴 틈도 없이 비서 하나, 호위 기사 하나만 대동하고 도망치다시피 노바를 떠났던 것이다.

모두들 어딘가에 있겠지만, 당장 모을 수가 없었다.

“공자님, 제가 남방군 파일럿 훈련소 동기들을 모아 보겠습니다!”

호위 기사 군터가 자못 비장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루트의 비쩍 마른 얼굴 위로 쩍 갈라진 미소가 떠오르다 사라졌다.

“괜찮아. 어차피 다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까.”

“아!”

“······!”

비서와 호위 기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격동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루트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바트는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났고, 울름 남작은 갇혀 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 전쟁터는 멀고 공작께서는 연세가 많으시니까.”

루트는 이미 가문의 모든 것을 자신이 차지함으로써 지난 세월을 보상받고 이를 바탕으로 황제에게 칼을 꽂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곧바로 아버지인 오베론 공작에게 반기를 들거나 복수의 칼날을 들이미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방패가 사라지면 누가 황제의 힘을 막을 것인가?

“내 사람을 모으고 모든 보고는 나를 거치도록 할 거야. 하지만, 천천히, 은밀히 진해해야 해. 가문에는 오로지 아버지를 섬기는 자들과 첫째가 상속하는 것을 무슨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여기는 고루한 자들이 많으니까. 그런 자들을 모두 쓸어버릴 만한 힘이 생길 때까지는 죽은 듯이 지내야지. 겉으로는 말이야.”

“알겠습니다, 공자님!”

비서와 호위 기사가 비쩍 마른 몸을 이끌고 루트의 저택을 나갔다.

루트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근육이 없어 다리가 휘청휘청했지만, 그는 쉬지 않았다.

서둘러 몸을 회복해야 했다.

감금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복수를 못한 채 앓아눕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빠! 날씨가 추운데 밖에서 그리 오래 계셔도 괜찮아요?”

딸 그레타가 달려와 루트를 부축하며 함께 마당을 걸어 주었다.

루트의 메마른 얼굴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이 기쁨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원 걷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자들에게 처절한 복수의 칼을 휘두를 생각을 하던 루트는 딸을 보고 다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빠는 괜찮아. 추우니까 들어가렴.”

“나도 괜찮아요. 같이 걸어요, 그럼.”

부녀는 오순도순, 티격태격, 그렇게 정원을 걸었다.

***

여러 개의 커다란 배합 통에 무게를 정확히 잰 곡물과 밀가루, 각종 조미료가 투입되었다.

그 뒤 건포도, 말린 딸기, 말린 사과, 견과류 등 통마다 다른 재료들이 추가되었다.

깨끗한 물이 콸콸콸 통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작업자가 스위치를 켜자 거대한 기계 팔이 회전하며 재료를 반죽했다.

반죽이 끝나자 작업자가 통 아래쪽 출구를 열었다.

밀려 나온 반죽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실려 있는 넓은 사각형 쟁반 위에 담겼다.

작업자들이 반죽을 넓게 펴서 다른 컨베이어 벨트 위로 밀었다.

반죽이 담긴 사각 쟁반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채 줄줄이 화덕으로 들어갔다가 빠져 나왔다.

작업자들이 잘 구워진 과자를 프레스 기계에 올려 정확한 크기로 자른 뒤 바닥이 푹신한 다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쟁반을 뒤집었다.

마침내 제품 크기로 잘린 과자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계속 이동하다 식으면서 마침내 최종 포장 단계에 들어왔다.

포장지에 과자를 담는 것은 사람의 몫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양쪽에 늘어선 작업자들이 밀려오는 과자를 봉지에 담아 뒤쪽 컨베이어 벨트로 옮기자 그쪽 작업자들은 기계에 포장지 입구를 끼워 밀봉했다.

밀봉된 제품은 최종적으로 작은 상자에 32개씩 담겼다.

전선의 장병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지급되는 간편식 레오파드는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요! 아주 인상적입니다!”

레이크 시티에 있는 반달 식품 간편식 공장을 바덴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던 율리안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컨베이어 벨트와 기계라······, 책으로 봤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직접 보니 정말 놀랍습니다!”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사람의 손이 많이 간답니다. 특히 반죽을 틀로 옮기는 단계나 포장 단계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요. 그 공정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건 알겠는데, 계속 인력을 줄여 나가면 나중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감탄하다가 갑자기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율리안의 질문은 종종 바덴을 당황시켰다.

“음······, 그때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마차를 제작하던 사람들이 자동차 공장에 취직하고 마차를 몰던 마부들이 자동차를 모는 운전기사로 바뀌듯 말이에요.”

“흐음! 그렇겠죠?”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도 하던 일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을 테니 고슬라 사장님 같은 분들이 좀 더 신경을 써 주세요.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없도록, 일자리를 잃는 시간이 줄어들도록,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하는 것을 돕도록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통치자님.”

바덴과 율리안의 대화를 들으며 두 사람 뒤를 따라가던 루산도 반달 식품 공장 내부를 견학하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만드는 물건의 종류가 달라서일 테지만, 레오파드 부품을 만드는 신화 공업사에서 하는 작업은 규모가 거대할 뿐 이처럼 빠른 속도로 많은 제품을 쏟아내지 못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과거의 유산과 변화의 시도들이 뒤섞여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루산은 변경에 있는 반달 식품 공장에서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꼈다.

“아, 저게 바로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이군요? 작은 상자 안에 하나씩 들어 있다는······.”

최종 포장 단계를 지나던 율리안이 개별 포장된 간편식과 똑같은 크기의 상자에 담겨지는 인형들을 보며 말했다.

“한 상자에 하나씩 들어가는 건 아니고, 일정한 확률로 무작위로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레오파드 마스코트도 무작위입니다.”

물론 등급도 있었다.

가장 희귀한 것은 골드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로 전선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구입하기 위해 몇 달 치 급료를 지불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확률을 올려달라는 연락을 군부부로부터 받기도 했었다.

물론 바덴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아들이 어디서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파일럿들이 목에 걸고 다니다 하나 선물로 준 모양인데, 그때부터 다른 것도 다 모아달라고 조르나 봐요. 한 세트만 주실 수 있을까요?”

율리안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탁했다.

그러나 바덴은 미소를 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

“이걸 무단으로 유출하는 직원은 곧바로 해고하고 민사상 책임을 묻습니다. 이 간편식에서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죄송합니다, 통치자님.”

뒤를 따라오던 본부 간부들의 표정이 단번에 험악해졌다.

율리안도 무안하여 얼굴이 벌게졌다.

“그 대신 용감한 나라 장난감에서 거의 똑같은 제품을 팔고 있으니 그걸로 한 세트 선물하겠습니다, 통치자님.”

“오! 따로 구입할 길이 있었군요!”

“그럼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품질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 멋진 장난감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변경 8구역 주민들의 구매력을 가늠해 보고 용감한 나라 지점을 한번 생각해 봐도 될까요? 용감한 나라 제품들은 저렴한 것도 있지만, 가격대가 그리 낮지 않아서요.”

“고슬라 사장님과의 대화는 여러 모로 즐겁습니다. 저를 도발하시는군요. 오랜만에 승부욕이 들끓습니다. 용감한 나라 장난감 가게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주민들을 더 잘살게 만들어야겠습니다, 하하하!”

바덴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무모하지 않았다.

며칠 만에 율리안의 성품이 너그럽고 자애롭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율리안이 제조 과정에서 떨어져 나와 한데 모아 놓은 온 간편식 부스러기를 오도독오도독 씹으며 말했다.

“역시 맛있어요. 남는 물량이 있다면 우리 8구역에도 팔아 주시겠습니까? 비싼 장난감은 몰라도 우리 주민들에게 이 정도 여유는 있을 겁니다.”

“그럼요! 반달 식품의 간편식뿐 아니라 다른 제품들은 노바와 차별하지 않고 8구역에서 가장 먼저 민간에 판매될 겁니다, 통치자님.”

“고맙습니다, 고슬라 사장님.”

율리안이 감사 인사를 했다.

바덴은 돌아가는 율리안과 본부 간부들에게 간편식 레오파드 두 상자씩을 선물했다.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만 따로 빼돌리는 것은 안 되지만, 완성된 간편식을 선물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니까요.”

“하하, 고마습니다. 골드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가 들어 있으면 좋겠군요.”

율리안이 본부 간부들과 돌아가자 루산이 바덴을 불렀다.

“미스 고슬라.”

“네, 기사님.”

바덴이 루산을 쳐다보았다.

“둘이 한 바퀴 돌까요?”

바덴이 침을 꿀꺽 삼켰다.

변경으로 찾아오라고 본인이 먼저 말했으면서도 그동안 둘만 따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물론 사업상 일정과 겹쳐 있었고 함께 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겠지만, 어떤 핑계를 대서든 밤에라도 시간을 내려면 낼 수 있었는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하리라고 지레짐작하여 편히 쉬라며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며칠 만에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좋아요, 기사님.”

루산은 비서와 회사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라고 한 뒤 루산이 준비해 둔 탐탐으로 다가왔다.

루산이 바덴의 허리를 잡아 번쩍 들어 안장 위에 올려 준 뒤 자신도 다른 탐탐에 탔다.

탐탐!

탐탐!

탐탐 두 마리가 서로를 쳐다보고는 가슴을 북처럼 두드렸다.

“이랴!”

경갑을 착용하고 삼지창과 원형 방패를 든 루산이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보라색 모자를 눌러쓴 바덴을 이끌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루산이 탄 탐탐에는 간편식 레오파드 한 상자가 그물망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소풍이지만, 나름 구색을 갖추려고 루산이 짧은 시간에 머리를 쥐어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처음으로 소박한 소풍을 떠났다.

블랑카가 보았다면 자신이 경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소설 ‘변경의 대물 기사’ 앞부분에 담고 싶다고 말했을 법한, 서툴지만 풋풋하고 아름다운 남녀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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